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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8-26 (일) 12:53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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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23강]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012년 마가복음 제23강                                                                 서삼문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말씀/ 막14:32-72
요절/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사람은 어려울 때 본심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움과 고통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의 믿음과 진심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생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인성을 가지신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된 투쟁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지경에 이르셨으나 이때 겟세마네 동산에 나아가 기도하심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과 연약함을 극복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이미 겟세마네 기도로 승리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워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Ⅰ.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2-42)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은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의 동쪽, 감람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동산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찾던 곳이며 가룟 유다도 잘 알고 있던 장소였습니다. ‘겟세마네’는 ‘올리브를 으깨어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은 이곳에서 자신의 피와 땀을 으깨어서 기름을 짜듯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혈과 육의 싸움을 하지 아니하시고 기도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여기 앉아 있으라 말씀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며 세 제자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이때까지 예수님이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광풍이 휘몰아치는 위기 가운데서나 살기가 등등한 원수들 앞에서도 조금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항상 의연하시고 위엄과 영적 권위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놀라고 슬퍼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독사발을 마셨습니다. 사극을 보면 독배를 마시는 신하들도 자기 할 말을 다하며 단숨에 마시고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보통 인간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는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불법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지은 모든 죄로 말미암아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려 만민의 비방의 표적이 되실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나마 하나님께로 부터 버림을 받으셔야만 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감당코자 하실 때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지경에까지 이르신 것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엄청나게 큰 십자가를 져야 하시는 예수님의 정신적인 고통이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고통을 맛보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고뇌와 갈등과 고통을 깊이 이해하시고 능히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에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 주시며 기도하도록 하신 것은 그들이 깨어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영적으로 어리지만 기도의 동역자로 삼으시고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려울 때 어떻게 영적 투쟁을 해야 하는가 하는 좋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셨습니다.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겸허한 자세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필사적으로 기도의 싸움을 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35b,36절을 보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깊은 신뢰를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거나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된 지경에 이르렀으나 어린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듯,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하셨습니다.
  `이 때'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때를 말하고, '잔'이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지 않고 인류 구속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음의 번민과 고통을 하나님께 진실되게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위대한 전환입니다. 자기 뜻에서 하나님 뜻에로의 전환이요, 육에서 영으로의 전환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쳐 복종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십자가를 회피하고자 한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감당코자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기도란 자기 생각, 자기 고집,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영적 투쟁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생각과 뜻을 앞세우고 "아버지의 원대로 마옵시고 내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순종하고자 하기보다,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꼭 이루어주시기를 청구합니다. 그리고 그 청구한 것이 빨리 응답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소원이 이루어져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신앙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소원보다 자기 소원을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은 좁고 자기중심적이고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원대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하고 가장 좋고 확실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원대로만 살고자 할 때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 수 없고 자기 세계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을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원과 희망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의 순종의 삶의 결정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하늘나라의 영광과 권세와 존귀로 옷 입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비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으나 이로써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5:7~9절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도 그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예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왜 잤을까요? 유월절 식사 때 떡을 너무 많이 먹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전과 달리 자꾸 십자가를 말씀하시자 부담감과 슬픔에 짓눌려 피곤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대개 십자가가 부담스럽고 마음이 슬프면 잠을 많이 잠으로써 현실을 도피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깨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37b,38).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깨어 기도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로, 사단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함입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또 간교하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 분별력을 잃고 사단의 시험에 들게 됩니다.
둘째로,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씀은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깨어 기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강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는 사람은 순간순간 기도로 주님을 의지하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겸손히 기도로써 주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결국 매사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이기고 믿음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베드로와 같이 큰소리만 치고 실제 문제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깨어있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모임에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중보기도 등 많은 기도 모임이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 육신이 약하여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다는 핑계로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때 영적으로 깨어서 투쟁할 힘이 없고 주님의 뜻보다는 저의 뜻에 따라 살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이 시간, 제가 깨어서 기도하지 못하고 자기가 뜻대로 살고자 했던 영적인 안일을 회개합니다. 제가 육신이 약하여 어쩔 수 없다고 핑계하지 않고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는 가운데 저의 원대로 사는 자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사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39절과 41절을 볼 때 예수님은 동일한 기도를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마음으로 깊이 영접하고 앞으로 모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영적인 힘을 덧입으시기까지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모든 슬픈 생각, 연약한 생각을 다 물리치시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질 힘을 얻으셨습니다. 기도하기 전의 예수님의 모습은 마음에 번민과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으로 죽게 될 지경이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은 확신과 용기와 담대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담대히 일어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배우는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 기도의 근본 방향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피한다고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소원대로 산다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승리를 주시고 위대한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자기 소원, 자기 뜻을 부인하고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섬기고자 하는 분명한 기도제목을 갖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Ⅱ. 내가 그니라(43-72)
 4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공회에서 파송된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유다는 이미 약속한 신호대로 예수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랑과 신뢰의 입맞춤 대신 유다는 배반의 신호로 예수님께 입 맞추었습니다. 이 때 곁에 선 자 중 한 사람 베드로는 용감하게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님께 대한 충성을 표시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충성심으로 칼을 빼어 혈기로 예수님을 보호하려 하였지만, 그는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의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고, 그가 정말 싸워야 할 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칼을 사용치 않으신 것은 칼을 사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 크신 능력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48,4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자들에게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성경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강도와 같이 잡히시고 강도 대신 형을 받으시고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강도와 같은 흉악한 범죄자의 취급을 받으셨습니다(사53:12). 예수님은 제자들이 도망가는 것이나 자신의 체포당하시는 것이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 등 모든 것을 성경을 기초로 생각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모진 고통 가운데서도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로 '다 이루었다'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기초로 생각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위기의 순간이 오자 모두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51,52절에 나오는 한 청년은 저자 마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이 예수님이 체포당하신 것을 본 목격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고 있다가 예수님이 체포당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일어나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있는 공회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도망가다가 자신이 큰 소리 친 것이 생각나서 되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멀찍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찍이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께 헌신하면 모든 것을 다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안 따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따라갑니다. 그러나 이런 자는 결국 사단의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가까이서 좇아가야 합니다.
  공회는 백성을 두려워하여 야간 불법 집회를 열고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고자 결정해 놓고 증거를 찾고 있었으나 거짓 증거조차 서로 합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아니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때 분명히 대답하셨습니다. 62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승천하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장차 심판의 주로서 재림하실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권세자들 앞에 서면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벌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문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에게 부활의 소망과 재림의 심판에 대해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심판주로서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옷을 찢으며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언도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손바닥으로 치며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담대하게 적의 소굴에 들어왔으나 그의 속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의 협박이나 무자비한 고문에 의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한 연약한 계집종의 말에 의해 그의 큰 소리는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그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가 의협심으로 큰 소리를 치며 자기를 믿고 기도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평생에 교훈이 되어 회개한 후 기도의 종, 믿음의 종으로 많은 사람을 돌이키는데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십자가를 앞에 두고 먼저 기도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기도의 싸움으로 예수님은 진정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갈등하고 뒤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 기도의 투쟁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생명의 십자가를 지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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