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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24 (일) 13:14
분 류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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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10강]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2015년 요한복음 제10강                                                                      이인구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말씀/ 요한복음 7:14-52
요절/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류시화 시인의 시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연인을 향한 깊고도 간절한 사랑을 표현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목마름이 담겨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옆에 있어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목마름입니다. 이 시를 읊으며 사랑에 대한 갈증을 노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때 많은 젊은이들이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젊음을 바쳤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절히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해도 또 정권이 교체되어 정치개혁이 이뤄져도 사람들의 근본적인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목마름이 단지 물질이나 현실의 조건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목마름은 이 세상의 것을 향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향한 목마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예수님을 만나고 또 목마름을 해결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1장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14-36)
  오늘 말씀의 배경은 유대인의 3대 명절의 하나인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나그네 생활을 했던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한 이때는 가을에 추수 때와 겹쳐서 추수 감사절로도 인식되었습니다. 초막절에 이스라엘의 모든 12세 이상 남자는 예루살렘에 와서 7일 동안 명절을 지내며 광야생활 때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다음 해에도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명절 중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가르치시는 지혜의 깊이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랍비에게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가르침은 스스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 예수님 말씀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순종을 통해 깨닫는다.’는 순종의 비밀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앉아서 생각하는 사람이 가보지 못하는 깊은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인생의 집을 지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듣는 것이 아닌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말씀에 편견을 가지게 되고 자기 뜻대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결국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왜곡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 단지 무지차원을 넘어서 예수님과 대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38중풍병자를 말씀으로 일으키신 사건 후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행해야 부정한 것이 잘려나가고 정결하게 된다 생각하며 안식일에도 기를 쓰고 할례를 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안식 없이 38년을 누워있던 한 병자를 안식일에 일으키신 것을 트집 잡으며 안식일 법을 어겼다며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문제가 사람을 공의롭게 판단하지 않고 외모로 판단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왜 안식일날 그런 일을 하셨는가 그 동기와 목적을 알려고 하지 않고 겉으로 안식일 법을 지켰는가 아니면 어겼는가 만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시험이나 면접을 잘 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 10년 만에 기념하려 같이 외식하러 나가는데 동역자가 “나 어때요?” 라고 어려운 주관식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얼굴이 많이 늙어 보이네요” 하고 외모로 판단하면 불합격입니다. 하지만 “복음역사 섬기느라 고생하느라 얼굴이 많이 좋지 않네요”라고 하면 합격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법을 만들어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의도는 단지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쁘시게 해드림으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안식을 얻으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죄로 죽은 이를 살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는 것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율법의 외적조항에만 매여 오히려 율법을 만드신 분을 판단하고 심지어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공의의 판단은 어떤 것입니까? 공의의 판단은 하나님말씀이 기준이 되는 판단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의 판단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무엇보다 힘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공의의 판단이 될 수 없습니다. 공의의 판단은 세상을 선한 뜻 가운데 창조하시고 지금도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말씀을 적용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우리의 판단이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판단기준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나 자기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영광을 위해 또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 중에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그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니라 판단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는 어디서 오시는지 모르는 신비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랍비의 격언이 있었습니다. ‘전혀 예고 없이 닥쳐오는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메시아, 하나님의 은사 그리고 전갈이니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아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고 또 갈릴리 나사렛 촌 동네에서 성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니엘서(단7;13)에 보면 메시야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고 말라기(말3;1)에 보면 홀연히 성전에 임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한 아기(사9;6)로 한 싹으로 오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실 때는 연약한 어린 아기로 비천한 모습으로 오시지만 다시 오실 때, 재림 시에는 하늘에서 심판주의 권능으로 홀연히 오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 말씀 중에 자신에게 이해되고 은혜가 되는 말씀만 받아들이고 좋아하지 않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려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말씀을 다 받아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한 심정으로 그 뜻을 찾고 구해도 이해되지 않는 말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벧후1;21) 그래서 성경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말씀을 깨닫기 위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아닌 겸손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찾고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말씀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십니다. 그동안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혁명적인 안식일 파괴자정도로 간주했지만 이제부터도 자신을 메시아로 여기는 더 큰 불경죄를 지은 죄인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했지만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아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리 중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근거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보여주실 표적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큰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이 무리들의 동요에 예수님을 잡기 위해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갈 것이고 그때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마7;7)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신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한 사람의 인생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도 사라지는 때가 오는 것이 인생의 냉혹한 진리입니다. 더구나 사람이 죄의 습관에 빠지면 나중 나이 들어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갈 때 후회해도 그 습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인생의 마지막 종이 울리게 됩니다.

제2장 내게로 와서 마시라(37-52)
  37절을 보십시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제 초막절의 끝 날이 이르렀습니다. 이 날은 명절의 절정으로서 큰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절기가 계속되는 7일 동안 매일 아침 제사장이 금주전자를 들고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어 성전에 부었습니다. 그때 이사야서 12장 3절을 노래했습니다.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물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러한 의식은 조상들이 광야에서 목말라 울부짖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나온 샘물로 목마름을 해결하게 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이 일주일동안의 명절을 지키고 목마름을 해결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의 명절행사가 끝이 나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갈증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공허했습니다. 사람들은 형식으로 가득 찬 행사만으로는 결코 내면의 목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제가 끝난 후 방황하다가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의 목마름이 무엇입니까? 목마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핍이며 필요이며 공허감에서 우러나오는 울부짖음입니다. 목마름은 인생에 꼭 필요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말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8;11) 하나님께선 흙으로 만든 인간의 육신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소통하는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과 단절됨으로 인생은 평생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안고 사는 존재가 됐습니다. 마치 아기가 어릴 때 엄마를 잃어버리면 평생 무의식 속에서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명절의 끝 날이 되었고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노리는 사람들의 위협에도 모든 이들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누구든지 목마른 자들을 상한 목자의 애타는 심정으로 찾고 계십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진정으로 목마른 자들은 한겨울에 꽃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만족과 세상적인 만족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사막 같은 세상에서 마실 물은 오래전에 떨어졌지만 신기루 같은 악한 영에 속았습니다. 마실수록 더 목마른 가짜 생수를 마시며 실제적인 목마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런 인생들을 향해 뼈아픈 지적을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 대다수의 사람들은 죄로 인해 영적인 감각(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의에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짐승 같은 본능적인 삶에 빠져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고 부활에 대한 기대도 없으며 다가올 심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심지어 현재 잠시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 영원한 저주도 기꺼이 감수하려 합니다.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절망과 무기력으로 열정도 잃고 장래에 대한 꿈도 잃었지만 오직 손안에 든 핸드폰으로 기쁨과 만족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게임과 음란동영상에 중독되고 쓰레기 같은 인터넷정보의 늪에 빠진 젊은이들이 귀중한 시간과 인생을 헛되게 다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목말라하는 것은 무한 데이터입니다. 그것은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쇼핑중독에 빠진 주부들, 스포츠 중독에 빠진 남자들, 술에 중독된 직장인들, 대상은 다르더라도 무언가 하나씩에는 다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가짜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의 쾌락에 만족을 찾지 못해 진정한 만족을 목말라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을 수 있는 자입니다. 또 벗을 수 없는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거나, 인생의 도전에서 실패해 절망가운데 목말라하는 이 또한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어떤 목마름이라도 능히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인생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습니까? 38,39절을 보십시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 있는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이루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마지막으로 이룬 진정한 표적인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했던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받은 성령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세상에 임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때에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들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 입다, 삼손과 같은 사사에게 성령을 주셔서 나라를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사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을 하기도 했지만 범죄 한 후 회개하지 않았을 때 성령이 사울에게서 떠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계획하셨습니다. 요엘이 예언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즉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신자들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선 십자가의 피의 대가로 믿는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써 믿는 자의 내면에 들어와 새 생명을 가진 새 존재로 거듭나게 합니다. 성령은 거듭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며 일생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또 도와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롬8;16)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할 때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또한 성령의 생수가 있는 분은 자신만 목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에 이른 것처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메마른 세상을 적시게 됩니다. 그 배에서란 우리의 가장 깊은 곳 우리의 중심을 말합니다. 에스겔 47장을 보면 이런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 문지방밑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물이 처음에는 물이 발목을 적시더니 나중에는 무릎, 허리까지 차오르다 그 후에는 헤엄을 칠 정도로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물로 인해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고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명이 살고 번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성령을 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처음에는 나 한사람의 영혼을 적시던 생수가 나중에는 가족과 친구들과 직장과 나라와 온 세상을 적시는 큰 강이 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메마른 온 세상을 적실수 있는 생수의 근원이 됩니다.
어떤 분이 마음에 성령의 생수가 있는 분과 없는 분의 차이를 낙타와 사슴으로 비유했습니다. 사슴은 비싼 녹용도 머리에 달고 있고 신비스런 눈동자에 목도 가늘고 길어 스타일 있는 공주처럼 보입니다. 반면 낙타는 겉으로 보기엔 볼품없는 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막이나 광야 길을 가게 되면 그 진가를 보여줍니다. 낙타는 아무리 오래 걸어도 몸에 물주머니가 있어 처음과 같은 스피릿을 꾸준히 유지합니다. 하지만 사슴은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지만 없으므로 곧 몸에 수분이 부족해 눈동자가 풀리고 쓰러집니다. 인생은 메마른 광야길입니다. 가끔씩 푸른 초장을 만날 때도 있지만 신기루일 때가 많습니다. 광야 길에선 비싼 녹용도 신비스런 눈동자도 가늘고 긴 목도 다 필요 없습니다. 오직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낙타의 물주머니 같은 성령의 생수만이 필요합니다. 내면에 성령이 생수가 있는 분은 인생의 어떤 길에서도 성령의 도움으로 낙타무릎으로 기도하며 인내하며 절제하며 충성하며 온유하며 화평하며 사랑하며 천성으로 향한 인생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그때 녹용 뿔과는 비교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성령의 생수주머니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내 안에 있는 하늘의 저수지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목마른 사슴처럼 세상 시냇물을 찾아다닙니다. 심지어 자신이 내면에 생수의 근원이 있다는 것도 잊은 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의 생수가 항상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항상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까?
첫째, 말씀과 기도 또 찬양을 항상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이요, 성령을 좇는 삶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으로 내 안에 들어오지만 강제적으로 내 의지를 억압하거나 나를 이끌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지배하시고 또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말씀과 기도 찬양은 매일 주님과 교제하는 삶이고 매일 주님으로부터 생수를 공급받는 삶입니다. 또 성령의 생수를 지닌 하나님의 자녀로써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메마른 세상에서 종의 자녀처럼 눈치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자녀로써의 권리요 능력이요 영광입니다.
둘째,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예전에 동역자의 한의학 책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건강한 사람을 위아래가 뚫린 배관처럼 그린 그림을 봤습니다. 중간에서 막힘없이 잘 먹고 잘 배설하면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중간에서 막히면 그 순간부터 병이 생깁니다. 이처럼 신자가 죄에 빠질 때 성령의 샘이 막히게 됩니다. 죄는 우리 내면을 혼탁하게 합니다. 은밀하게 죄를 즐기게 되면 죄의 쓰레기가 쌓이고 결국 성령의 샘을 막아버립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은 “성령을 소멸케 하지 말라 했습니다.” 죄는 내 마음에 타오르는 성령의 불을 꺼버립니다. 대신 욕망의 불이 타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린 댓가로 우리에게 성령의 생수를 주셨지만 사단은 끊임없이 죄의 탁류를 흘려보내 생수를 혼탁하게 합니다. 신자가 죄에 매일 때 성령은 심히 근심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근심을 깨닫고 즉시 회개함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이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과 기도 찬양을 가까이 할 때 죄가 들어 올수 없습니다.
셋째,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웅덩이와 샘의 차이를 아십니까? 웅덩이는 물이 고이기만하고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샘은 계속해서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항상 신선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생수를 받았으면 열심히 흘려보내야 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성령의 생수를 흘려보내는 사람은 내면이 부패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영광을 위해 또 양의 영혼을 위해이지만 또한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먼저 자신이 성령의 생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샘처럼 흘려보내는 자에게 성령께서 끊임없이 생수를 부어주시기 때문에 더욱 풍성하고 샘솟는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내 안에 있는 성령의 생수를 적극적으로 흘려보내며 메마른 세상을 살리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삶을 통해 성령 충만함으로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선 평생 세상의 헛된 만족을 찾아 헤매던 죄인을 예수님의 은혜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의 생수를 주셨습니다. 또 목자로 자신뿐 아니라 세상 다른 이에게도 생수를 흘려보내는 사명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와 현실문제 때문에 성령의 샘이 막힐 때가 많았습니다. 최근 오랫동안 지속됐던 병원직원문제가 커지면서 심령이 막히면서 성령의 샘이 막히게 됐습니다. 이 상황이 하나님의 연단인지 사단의 시험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죄인이 먼저 내 안에 성령을 붙들어야 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거듭나 성령의 생수를 소유했지만 그동안 너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세상만족만을 추구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됐습니다. 제가 문제가운데 세상가치관대로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했을 때 조금씩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 작은 체험을 통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나와 함께 하신 성령의 인도하심가운데 세상만족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영광을 위해 생수를 흘려보냄으로 기쁨과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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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3강]메시아의 잔치 1 관리자 2011-01-23 2992
635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0강]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김반석) 관리자 2010-12-26 2992
634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3강]새성전 리스닝 2010-03-16 2991
633 느헤미야 [2011년제자수양회 제2강]위기를 극복한 지도자 느헤미야- 노아자.. 리스닝 2011-06-13 2988
63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983
631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5강] 길이 참으라 관리자 2012-02-19 2981
63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2980
629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2979
628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978
627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관리자 2013-03-24 2978
626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5강]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관리자 2015-06-28 2977
62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0강]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관리자 2015-05-24 2975
624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관리자 2009-09-20 2975
62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971
622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1-07-24 2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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