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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7-25 (일) 17:53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년_여름수양회_주제_3강(양용민)-1.hwp (28KB) (Down: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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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여름수양회제3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2010년 여름수양회 주제강의 제 3 강                                          양용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8:1-12, 31, 32
요절/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죄 문제는 그 심각성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특히 정욕의 죄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서 성범죄는 나날이 증가하여 거리를 다니기가 무섭고 자녀들을 내보기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죄에 대해 무지하고 둔감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란한 이 시대를 개탄하며 성범죄자들을 죽일 놈들이라며 정죄하지만 정작 그 자신들은 죄에 대해 관대해져서 죄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죄는 마치 마약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빠져들지만 조금 있으면 중독이 되어 버리고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비참해지고 인간으로서 더 이상 쓸모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죄의 노예 된 상태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을 배워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헤매지 아니하고 빛 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정죄치 않으시는 예수님 (1-11)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침 일찍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후 성전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말씀을 달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초막절 축제 기간 동안에도 무리들에게 쉼 없이 말씀을 가르치시느라 피곤하셨지만 그들에 대한 상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말씀을 공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런 분위기를 깨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밤에 어떻게 잡았는지 한 간음한 여인을 잡아 질질 끌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을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무리들은 모두 깜짝 놀라 간음한 여인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실지 예수님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로 치라고 하시면 로마법에 저촉되어 살인교사죄로 고소당하게 될 것이요, 반면 치지 말라 할 경우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되어 율법의 고소조건이 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이용하여 눈엣가시 같은 예수님과 덤으로 간음한 여인까지 잡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을 죽이는데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을 죄로부터 보호하고 죄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에 눈이 멀어 정작 율법에서 금한 살인죄를 저지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여인의 입장에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으므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엄격한 유대 율법 사회에 살면서 정욕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인이 간음죄를 저질렀을까요? 축제 기간 분위기에 들뜬 나머지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랬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공허한 내면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저지른 것일까요? 우리가 사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여인의 마음속에 죄의 소욕이 불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에 빠지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래 이번 딱 한번이야.” “다른 사람도 다 하는데 뭘” “나는 안 들킬 자신 있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사단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우리로 죄의 함정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특히 이 정욕의 유혹은 너무 달콤해서 가장 걸리기 쉬운 죄의 덫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갈수록 음란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조장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영화포스터를 보았습니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던 저는 유심히 포스터를 보니 제목이 기가 막혔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어떤 미친 사람이 만들었는가 자세히 훑어보니 그 아래는 더욱 기가 막힌 글이 적혀있습니다. “난 안 들킬 자신이 있어.”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그 핵심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인생을 살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연애하다 동거해서 죄를 짓고, 결혼해서 간음하다가 들켜서 이혼하고... 이런 죄악이 우리 사회를 현재 지배하고 서서히 병들어 죽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에도 사마리아 여인 같은 사람이 있었고, 본문에도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 있는 것을 볼 때 인간의 죄에 대한 본성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은 여러 말씀을 통해 정욕의 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7장 22, 23절 말씀에 간음하는 사람은 소가 스스로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과도 같고 새가 스스로 그물로 날아드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잠시 쾌락을 즐기는 것 같아도 결국 그 모든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 견딜 수 없는 수치를 당하고 종국에는 돌에 맞아 죽는 무서운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십니까? 6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위기의 상황에서 무슨 글을 쓰셨을까요? 네 자신을 알라고 쓰셨을까요? 거기 모인 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셨을까요? 알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쾌재를 부르고 모인 사람들은 더욱 열을 내며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요?” 이 때 예수님이 드디어 입을 떼셨습니다. 7절을 모두 한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극한 긴장과 침묵 속에서 예수님은 이 한마디를 남기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길거나 복잡하지 않았지만 이 말씀이 무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감시하고 이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남의 허물을 감시하고 들춰내는 자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하시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심각한 것은 남의 죄가 아니라 나의 죄입니다. 그리고 나의 죄를 알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입니다. 자 이제 모두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으시면 손들어보십시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정죄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기 원하셨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 안에 박힌 뿌리 깊은 죄성은 우리를 무수히 범죄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이 여인의 간음죄는 돌에 맞아 죽을 무서운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문란한 세대에서 간음죄 정도야 하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욕에서 비롯된 간음죄는 인간을 파괴하고 가정을 결단내고 사회를 붕괴시키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창설하시고 가정을 이루신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우리내면의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는 큰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28절 말씀을 통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 우리 모두가 다 돌에 맞아야 할 간음의 죄인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맞아야 할 돌의 크기가 다를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돌에 맞아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짱돌을 들고 살기등등하게 서있던 무리들은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슬며시 돌을 떨구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들까지 하나 둘씩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그 가운데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수백 개의 돌보다 더한 파워가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리들의 양심을 쳐서 나가떨어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으로 향하던 그들의 정죄의 눈길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릎 꿇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요한 1서 1:8-10절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0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성전 뜰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죄 많은 이 여인을 가리켜서도 ‘여자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간음한 여자야’ ‘이 돌 맞아 죽을 죄인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여’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떠한 죄인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음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떨고 있는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도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돌에 맞느니 예수님의 깨끗한 돌에 맞아 죽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여인을 심판한다고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이 땅의 죄인들을 정죄하러 오셨다면 세상에 남아날 인간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의 죄인들을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치료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심판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죄인들을 위해 자신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여인이 받을 간음죄의 형벌마저 다 대신 당하셨습니다. 돌보다 더 무서운 채찍에 맞으시고 이 여인이 받을 수모보다 더한 치욕을 당하셨으며 끝내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고통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 죄를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무책임하게 죄인들을 풀어주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용서는 세상 어디서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은혜요 보배로운 용서입니다. 베드로전서 1:18절 19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우리들을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리사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감사 찬송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주시면서 까지 우리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죄로 인한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또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우리가 완전히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이 세상의 죄 문제는 심각하고 죄의 세력은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분명히 방향을 주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죄의 쓴 맛을 본 여인은 앞으로 다시는 그런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그런 삶을 사는 것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여인은 적극적으로 죄와 싸우는 삶,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와 싸우며 죄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2,31,32)
  12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되어 원치 않게 죄에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하며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과 같이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것은 계속적인 의미와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죄를 피해 다니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적극적으로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죄의 소욕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며 죄가 더 이상 나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사명의 인생을 살 때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근본 처방을 말씀하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영어로 'hold on' 즉 꼭 매달린다는 뜻입니다. 한 번 매달려 보는 것이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예수님의 말씀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 된 본성으로 어려울 때는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하다가도, 조금만 사정이 좋아지는 것 같으면 언제 그랬냐 싶게 말씀을 팽개치고 자기 맘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비범함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더라도 말씀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순종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거하는 삶을 사는 자의 축복은 여기에 국한 되지 않습니다. 다같이 32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는 구도나 학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진리가 있더라도 나와 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나에게 참 가치가 되고 내 인생의 보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가 있고 내 인생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절대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바로 예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예수님은 곧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진리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죄와 사망에 있던 자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감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볼 수도 없었던 자가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진리를 알 때 우리가 누릴 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입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것이 자유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렇게 내키는 대로 하면 죄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도로 지긋지긋한 처음 상태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거짓을 깨닫게 하고 거짓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하며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진리를 알 때 지금까지 우리를 얽어매고 있던 죄의 세력을 깨닫게 되며 이 죄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거짓에 얽매이지 않고 참된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리로 인해 이전까지 자신을 얽매던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소심하던 자는 염려에서 풀려나 담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죄로 인해 지금까지 억눌렸던 재능도 개발되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알 때 무엇보다 죄의 열매만 맺고 심판을 기다리던 자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면서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아가는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이처럼 말씀에 순종함으로 진리의 종이 될 때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일생 죄의 사슬에 매여 두려움으로 살 우리에게 진리 되신 예수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 드립니다. 이제 후로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갑주로 무장하여 이 세상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죄악의 화살들을 물리치고 일생 예수님을 따르는 귀한 인생 끝까지 달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간증: 저는 1970년 8월 13일 평범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내성적 성격과 작은 외모로 인해 아무도 저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았고 이에 저는 좋은 대학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결심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원하던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하던 도중에 설상가상 시험을 한 달 남기고 폐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망과 다급함으로 그간 찾지 않았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대학에 붙여주시면 당신을 위해 살겠노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몰염치한 자의 기도도 외면치 아니하시고 1990년 경희의대에 합격시켜 주심으로 당신의 존재와 그 은혜를 알게 하였습니다. 대학에 들어온 저는 이제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 기대하였지만 현실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고교 때는 공부라도 잘해서 알아주었지만 여기서는 공부도 못하고 키도 작고 내성적이고 정말 투명 인간이었습니다. 강의실을 며칠 안 들어와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대공부는 왜 이리 어려운지 따라가기가 버거웠습니다. 앞으로의 인생도 이와 같을 것을 짐작하니 정말 인생을 살기 싫었습니다. 저는 다 포기하고 영화의 세계로 도피하였습니다. 영화는 저의 현실도피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저의 가치관을 흔들고 정욕의 죄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저는 음란한 생각과 자위행위로 정욕의 죄를 범하고 더욱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나님은 알았기에 이런 죄악이 지옥형벌에 떨어져야 마땅할 죄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옥의 불꽃을 생각하며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어찌하던 여기서 탈출해서 보람된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저는 이런 저런 인생의 처세와 진리에 대해 쓴 것 같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저를 단단히 얽어매고 있던 죄의 사슬은 저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허무하고 괴로운 인생을 왜 더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정말 세상에 확실한 것, 믿을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은 저를 더욱 절망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모든 걸 다 포기하였습니다. 그런 도중 시선공포증까지 생겨 인생과 학점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정욕으로 도피하고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 하며 인생이 망가지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재시를 왕창 걸려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정주 사모님을 보내사 저를 여름 수양회 가운데로 초대하였습니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대학에 들어오기 전 제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기억났습니다. 그간 하나님께 죄송한 것도 있고 해서 참석하였습니다. 수양회 넷째 날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죄인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저의 정욕의 죄, 열등감의 죄, 운명주의의 죄악으로 인해 무서운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쏟으시고 처절하게 고통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 앞에 눈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순간 예수님의 사죄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사죄의 은총은 저를 그간 단단히 얽어매고 있던 죄의 사슬을 단번에 끊어버리고 자유하게 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평강과 기쁨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이 저의 무거운 죄 짐을 벗겨주신 순간 저는 자유가 무엇인지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참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에 날듯이 기뻤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고통 하던 저는 이제 저의 죄를 위해 목숨을 내주신 예수님을 위해, 그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기 위해 살기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들어가지도 못하던 강의실도 담대히 들어가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던 자가 그들에게 다가가 저에게 임한 예수님의 사죄의 은혜를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땅만 보고 한숨만 푹푹 쉬던 자가 이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로 밝게 웃는 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올해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영접한지 어언 20년이 됩니다. 아직도 그 때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 감사와 감격이 제 몸을 휘감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인생의 파도가 있었지만 십자가에서 저를 용서하신 예수님은 저의 인생을 진리의 말씀가운데 베스트웨이로 인도하시고 이렇게 당신의 은혜를 증거 하는 자로 쓰시고 계십니다. 심판의 지옥불에서 영영 고통 할 죄인을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합니다. 제가 앞으로의 인생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히 깨닫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을 일생 붙잡고 그 사죄의 은혜를 증거 하는 인생을 끝까지 달려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한마디 말씀 가운데 우리가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고 이제 감사함으로 진리를 위한 삶을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 시대는 심히 죄악 된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여전히 연약하고 죄악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신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죄와 싸우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빛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진정한 자유인의 인생 살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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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8강]무익한 종의 자세 리스닝 2011-10-31 2863
605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 19강]새 하늘과 새 땅 관리자 2011-03-06 2846
604 히브리서 [2013년 히브리서 제4강] 승리하는 믿음 관리자 2013-11-24 2845
603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837
602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3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리스닝 2010-07-25 2836
601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2강]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관리자 2010-10-31 2834
60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1강]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십계명.. 관리자 2009-06-21 2831
599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0강]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김반석) 관리자 2010-12-26 2827
598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21강] 진리의 왕 관리자 2015-08-09 2822
597 디모데전서 [2012년 신년특강 제1강]너의 성숙함을 나타나게 하라 리스닝 2012-01-01 2806
596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2강 리스닝 2010-04-01 2805
595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5강] 나를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관리자 2013-10-27 2797
594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20강]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15-08-02 2794
593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관리자 2013-07-07 2790
592 신명기 [2015년 신명기 제10강] 너희는 여호와의 성민이다 관리자 2015-01-18 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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