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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1-10-31 (월) 14:48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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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8강]무익한 종의 자세

2011년 누가복음 제28강

무익한 종의 자세

말씀: 누가복음 17:1-19
요절: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주님을 이어 복음역사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지도자의 자세와 덕목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제자들은 복음역사에 청지기요 양무리들을 돌보고 섬겨야할 섬기는 종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들이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큰일을 한 후 교만해지지 않고 더욱 더 큰일을 감당하는 겸손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Ⅰ. 스스로 조심하라(1-10)
  1절은 장차 양무리의 목자가 되어야 할 제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범하기 쉬운 죄에 대해 따끔한 경고를 주십니다. 영적 지도자라 해도 인간인지라 어린양을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실족은 원어로는 ‘스칸달라’ 곧 스캔들의 어원입니다. 공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지도자에 대해 실망과 혐오감을 주는 것입니다. 즉 실족케 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cause to sin)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하심으로 그 책임이 큼을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믿음이 어린 작은 자는 목자의 잘 못된 말이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말, 정죄하는 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내 뱉은 말에 실족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목자가 자기 문제에 빠져 때를 따라 양식을 주지 않아서, 때로는 목자의 성장하지 못한 인간적인 모습과 외식 때문에 믿음을 잃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목자가 이런 죄에 대해 조심하지 않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은 큰 형벌이 주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방법은 당시에는 부모를 죽이거나 사회도덕을 어지럽힌 자를 처형하는 로마 형벌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니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가 되는가를 깨우치십니다.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다 하시면서도 실족시키면 무거운 책임을 묻겠다 하시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자라고 무시하거나 선배 권위나 나이로, 경력을 앞세워 눌러서도 안 됩니다. 산모가 갓난아기를 babysiting하듯이 인격적으로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자신에게 철저했는가를 간증하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이를 자유롭게 먹는 것을 보고 믿음이 어린 사람들이 실족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작은 자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양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5) 말씀하시며 어린아이와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작은 자가 실족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며 섬세하게 사랑으로 돌봐야 하지만 형제가 죄를 범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형제가 죄를 범했는데도 실족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죄를 못 본 척하거나 방치해두면 결국 실족하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회막에서 여인들과 동침하고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마음대로 착복하는 큰 죄를 지은 것을 알았으나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돕지 않아서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삼상2:24) 작은 자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더욱 죄를 책망해야(rebuke)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책망함으로 무엇이 죄인가를 가르치고 진리의 기준을 깨우치는 것이 그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깨우치는 수고와 아픔을 감당치 않습니다.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게 보며 자신은 관대한 사람처럼 인간적인 관계만 맺기 쉽습니다. 잠언 27:5절에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Better is open rebuke than hidden love.) 책망의 근본목적은 죄를 깨닫고 돌이켜 믿음을 회복하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죄를 범한 즉시 일대일로 성경공부하며 영적 깨달음이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때 형제가 책망을 듣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회개하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면 실족하게 됩니다. 죄를 책망하는 것만큼 회개했을 때 용서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그러면 형제의 죄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4) 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유대 랍비들은 하루 3번까지는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루 일곱 번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무한정 용서하라는 것이요 또한 회개한다면 이를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고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수없이 용서 받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용서의 사랑을 나누며 격려해야 합니다. 자신이 의인으로서 용서해주는 것처럼 용서에 인색하고 끊임없이 정죄하고 회개를 인정치 않는다면 이 또한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됩니다. 죄를 범한 형제와는 책망과 용서로써 분명한 영적 관계를 맺으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런 진리에 기초한 영적 사랑의 교제가 풍성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하니”(5) 그들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은 너무 높아서 자기들은 도저히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자기들의 믿음을 높여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주님은 제자들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놀라운 믿음의 능력을 체험케 될 것이라 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작지만 살아 있는 믿음, 문제 앞에서 도전하는 실제적인 믿음을 의미합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믿음의 크기나 양(量)에 따라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 실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믿음의 능력이 어떠합니까?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막9:23) 뽕나무는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릴 뿐만 아니라 뿌리끼리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서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지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처럼 형제의 죄를 무한정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고 용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비록 겨자씨 한 알 같이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과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는 문제 앞에서 ‘더 큰 믿음 탓’을 하며 믿음이 성장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우리에게도 죄의 뿌리를 뽑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죄의 세력도 밭에 심겨진 뽕나무와 같습니다. 여러 가지 죄의 뿌리가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서 아무리 용서해도 같은 죄를 반복하므로 죄인들이 변화되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는 일은 불가능해보입니다. 더욱이 자기가 죄인인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어린양들을 품고 섬기고자 할 때 믿음을 더해달라는 하소연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힘든 현실 앞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의 뿌리를 뽑는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요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우리 내면과 양들 심령에 죄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질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섬겨야 합니다. 사실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 좋은 증거입니다. 지금도 기적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7-10절까지는 큰 믿음의 역사를 이룬 다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으로 큰일을 한 후에 여전히 겸손한 하나님의 종으로 남아 있도록 ‘무익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충성스러운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밭에 나가 하루 종일 밭을 갈고 양을 쳤습니다. 그는 요령을 피우거나 눈치껏 적당히 일하지 않고 충성스럽게 자기 일처럼 일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는 몹시 지치고 배도 고팠습니다. 주인은 시원한 집에 편안한 소파에서 쉬면서 한가로이 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하루 종일 종이 수고했다고 위로하거나, 그 종을 위해 식사준비를 하고 와서 음식을 먹으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할 자가 어디 있느냐 하십니다. 도리어 주인은 종에게 너는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허리에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종의 위치요 종의 직분이었습니다. 종은 하루 종일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나 집에 와서 쉬고자 하지 않습니다. 또 죽도록 충성했다고 주인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자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주인이 사례하지 않는다고 피해의식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이 종은 사실 무익한 종이 아닙니다. 주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익한 종입니다. 그런데도 종은 스스로 무익한 종이라 여기고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겸손한 자세를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는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일을 성공적으로 하게 되면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집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로 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시달립니다. 무익한 종으로 살기보다 보상을 기대하며 손님처럼 주의 일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지었으니 밭에 소출이 많고, 내가 열심히 수종들었으니 주인이 굶지 않고 사는 거지”하며 교만을 떨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이상 섬기는 종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주인의 자리를 탐하며 동등 되고자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을 마땅하게 생각하고 웬만한 일로는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알지 못하고 영적 성장이 막히고 쓸모없는 종이 되어 버립니다. 진짜 상급인 하나님의 상급을 잃게 됩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 받은 자체가 큰 상급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였는데 탕감 받았습니다. 정욕과 교만과 허무의 바다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요 귀한 종으로 삼아주신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종이 은혜의 빚을 갚는 것은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은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끝까지 귀하게 쓰임 받는 종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몸에 익혀야 합니다. 무익한 종으로 귀하게 쓰임 받다가 교만해져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서 떨어지고 쓸모없이 되는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도 무익한 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양무리를 돌보고 하나님 역사를 동역하고 섬기느라 새벽부터 기도와 피싱과 심방으로 남달리 많은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캠퍼스에 어린양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일대일 말씀역사를 섬깁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해놓고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바란다는 것이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아무 자격 없는 비천한 자에게 베푸신 은혜요 특권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이런 종에게 주님은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인정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결혼역사를 섬기기까지 무익한 아브라함의 종으로서 충성되이 살았습니다. 사탄은 가끔 무익한 종의 자세를 잃고 나의 존재의미, 인정문제, 보상문제에 얽매어 하나님 섬기는 것을 마땅한 의무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반발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것처럼,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해주는 것처럼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악영향을 끼치게 만듭니다. 이렇게 사탄의 종 노릇하게 될 때 점점 쓸모 없는 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무익한 종의 직분을 겸손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Ⅱ.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1-19)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한 마을에 들어가실 때 10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 중 9명은 유대인이고 1 명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조차 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들은 다 같이 불행한 병을 얻어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처지에 있었기에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흉한 모습의 나병환자 열 명이 함께 모였으니 마치 괴물 집단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마을에 오신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멀리 서서 함께 소리를 높여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 그들이 영혼의 절규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실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이는 그들에게 임한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병이 낫기도 전에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시니 주님께서 그들의 병을 낫게 하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그들이 단순히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갔을 때 가는 도중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불치병이 깨끗이 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신기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추한 병이 나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정말 그들이 고침 받은 은혜는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큰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중에 한 사람만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 돌아와 그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러 왔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17,18) 예수님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치 않는 유대인 아홉 사람을 인하여 마음이 몹시 상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 받은 후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배웁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큰일을 한 후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또 은혜를 받은 후에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은혜를 받은 후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속담에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은혜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감사하러 주님께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핑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집으로 가서 그 동안 나병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나병을 치료하느라 진 빚을 갚고자 먼저 직장을 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은 것은 무엇으로도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감사치 않는 자는 영적 나병환자와 같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육신의 병에서는 구원받았으나 죄와 죽음으로부터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도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선 받은 은혜를 잘 잊어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때로 형식적으로 생각으로, 말로 감사하는 것으로 할 만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러 오지 않음을 지적하십니다. 제대로 감사할 때 주님께 와서 발아래에 엎드려 감사함으로써 감사의 표시가 겉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주님은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는 감사하는 믿음을 통해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영적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영혼을 구원합니다. 우리도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감사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받은바 은혜를 쉽게 잊어버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받은 은혜가 없는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께 불평하며 세상 욕심과 정욕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무익한 종의 자세로 살다가 피곤하고 지쳐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할 일을 맡겨주신 주님께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작은 은혜에도 감동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깊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되어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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