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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27 (일) 12:29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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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25강] 나를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2013년 창세기 제 25 강                                                                        최 동 진

나를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말씀 / 창세기 42:1-45:28
요절 / 창세기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오늘 말씀은 요셉의 후반부 생애로서 요셉을 통해 형들과 아버지를 훈련하시고 가정의 상처와 병든 부분을 치유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셔서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루시고 야곱의 가정을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첫째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둘째로, 섭리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요셉을 통해 형들을 훈련하신 하나님(42-44장)
  7년 동안의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들자 각국 백성들은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몰려왔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러 애굽에 와서 총리인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22년 전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셨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셉의 볏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볏단은 자기의 볏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던 꿈의 모습이 성취된 모습이었습니다. 이 현장에서 요셉은 바로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엎드린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형들을 어떻게 돕고자 하였습니까? 42: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먼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백을 증명하려면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을 3일을 감옥에 가두었다가 풀어주면서 시므온만 결박하여 인질로 잡아두고 다른 사람들은 곡식을 가지고 집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형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어린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더욱이 낯선 땅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갈 때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자기를 팔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음에도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요셉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또 요셉이 없어졌을 때 아버지 야곱이 겪을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기들이 감옥에 갇혀 괴로움을 겪게 되면서 요셉의 괴로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요셉에게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무정하고 무자비한 것이었는지 깨달으며 죄의식과 인과응보적인 생각으로 고통하였습니다. 큰 형 르우벤은 동생들의 죄를 탓하며 그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득죄하여 그 핏값을 받게 되었다며 원망하였습니다. 죄는 세월이 지난다고 잊혀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형들의 모습을 볼 때 요셉은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하여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돌아왔습니다. 요셉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그 마음에서 얼마나 형들을 진실되게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훈련은 받는 사람이나 시키는 사람이나 다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도 훈련시키고자 한 것은 이들이 죄인으로서 깨닫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도 양들의 생명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목자의 해산의 고통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요셉은 그들을 보낼 때 곡물과 함께 돈도 도로 넣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도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형들은 혼이 나갈 정도로 떨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28b) 요셉은 형들에 대한 애정으로 돈을 넣어주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벌로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일을 지난 22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채 지냈습니다. 10명의 형제들이 입을 맞추고 아버지를 속였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죄 문제는 반드시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됩니다. 죄 문제는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서 회개하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노발대발합니다. “왜 쓸데없이 동생이 있단 말을 해?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까지 빼앗아 가려느냐?” 야곱은 요셉도 잃고 시므온도 잃고 또 베냐민까지 잃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이때 형들이 회개하지 않고 과거 모습 그대로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아버지께 거짓말을 하고 베냐민을 몰래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장남인 르우벤이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37)” 장남으로서 책임지려는 자세는 있었지만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그의 감당 못 할 맹세는 야곱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심하고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도 다 떨어져서 양식을 사러 형들을 다시 애굽에 내려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를 통해 자기 속에 남아 있는 집착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야 했지만 아직 정에 얽매어 자기 품에서 놓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요셉을 잃었을 때 슬픔이 너무 커서 마치 그 자신이 스올로 내려 갈 것 같았습니다.(37:35)  베냐민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42:38b)” 야곱에게 있어서 베냐민은 마지막 남은 생명과 같은 존재로서 절대로 어디에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훈련하사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유다가 말했습니다. 43:8,9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유다는 자기 몸을 담보로 베냐민을 책임지고 데리고 오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하였습니다. 과거 요셉의 형들은 무책임하고 잔인하였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다니는 요셉이 미웠고,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혀서 키우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팔았어도 전혀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붙들고 오열하는 아버지를 모른 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도 자식들을 키워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동생 요셉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합니다. 만일 베냐민을 보내지 않는다면 모두가 굶어 죽을 판입니다. 그리고 베냐민도 결국 굶어죽을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온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베냐민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베냐민을 데려가도록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43:14절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그들은 각종 예물과 갑절의 돈을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함께 온 것을 확인하고 형들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짐승을 잡고 발 씻을 물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이를 주며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43:24) 베냐민을 바라보는 요셉은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왔습니다. 요셉은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였습니다.(43:31) 이는 요셉이 형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억제하고자 얼마나 내적 투쟁을 많이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들을 나이 순서대로 앉히고 자기 식물을 그들에게 주며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더 주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함으로써 형들에게 있었던 미움과 시기심의 죄가 베냐민에 대해 어떠한지 보았습니다. 돌아갈 때가 되자 요셉은 또 다시 한 사건을 만들어 형들을 훈련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게 함으로 그들을 도둑으로 몰았습니다. 그들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추격하여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을 발견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잡혔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억울하지만 자신들의 진실함을 보일 아무런 꼬투리가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죽을 죄인들이 되었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이때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자신들은 살 길을 강구하기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로 자기가 책임지겠다 하며 모두 종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종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유다가 요셉에게 가까이 가서 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44:18-34절까지는 유다의 탄원 내용입니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진정으로 회개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는 동생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그를 팔아넘기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그렇게 할 때 요셉이 얼마나 고통 받게 될 것인가,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감정과 자기 유익대로 악을 행하는 자기중심적인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44:16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요셉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적발하셨음을 인정하고 죄의 대가로 종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30,31)” 베냐민을 잃으면 늙으신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겠는가, 동생은 얼마나 비참해질까 생각하며 아버지와 동생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인정하고 이들을 섬기고 보호하고자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둘째는, 그가 책임성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과 약속하기를 베냐민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베냐민의 생명은 보호하고 살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요셉이 베냐민을 종 삼고자 하였을 때 그는 발뺌하지 않고 이 약속대로 베냐민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하며 자기 생명을 희생코자 하였습니다. 과거 그는 약속을 했다가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쉽게 그 약속을 어기는 무책임한 자였습니다.(38장) 그러나 이제 그는 동생의 생명을 아끼고 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책임성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변명하지 않고 죄를 깨닫고 진실하게 회개하였을 때 성령께서 그 마음에 역사 하셔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받으시고 구속역사를 계승하는 주인공으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는 형들을 훈련하는 요셉을 통해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훈련시키는 사랑이요, 둘째는 회개시키는 사랑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고, 베냐민에게 도둑질의 죄를 덮어 씌운 것은 형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정을 억제하고 마음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허물과 죄로 죽어가는 자들을 제사장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빚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이 반발하고 관계성이 나빠질까봐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키고 회개시키는 영적인 사랑의 수고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오히려 죄를 보고 그냥 덮어두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그 사람의 성장을 막고 못쓰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훈련을 통해서 자기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영적인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훈련 받을 때에 인간적인 꾀를 부리고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적 사랑의 훈련으로 영접하고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캠퍼스 양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변화되기까지 요셉의 참된 사랑으로 훈련하고 섬기는 사랑의 목자들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II. 요셉을 섭리의 인생으로 인도하신 하나님(45장)
  45:1절을 보십시오. 형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것을 본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형들에게 자기를 알렸습니다. 그는 궁중 모든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울며 형들을 뜨겁게 영접했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형님들, 나는 요셉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십니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감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하였습니다. 요셉과 베냐민과 형들 모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곳은 일순간에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눈물은 22년 만에 형제들이 다시 만나는 감격의 눈물이요, 묵은 죄 문제가 해결되는 죄 사함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야곱의 가정의 모든 응어리가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와 형제들,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는 놀라운 감격이 임하였습니다. 유다 한 사람이 앞장서서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고자 결단했을 때 모든 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사랑과 화해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은 혈육의 정에 기초해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진리에 기초한 영적인 사랑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비록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못난 점이 있을지라도 아버지 야곱을 계승해야 할 사람들임을 잘 알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아버지 야곱에게로 이어져 온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계승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할 사람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이고 무책임하여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형들을 향한 거룩한 사랑을 주셔서 형들을 여러 모양으로 훈련시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지도자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형들을 연단하셨습니다. 훈련 과정 중에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 그들을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이는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계획과 선한 뜻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섭리의 하나님,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을 때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 곧 자기를 죽이려 하고 팔아버린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5a)" 하며 도리어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b)"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7)”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만일 자신의 삶을 운명적으로 보았다면 그의 생애는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는 어머니가 서로 다른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열 한 번째로 태어나 어릴 적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늙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이유 없이 형들의 미움과 구박을 받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꿈 이야기를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인생의 기초를 놓아야 할 17세 황금 시기에 노예로 팔려가 낯선 이방 땅에서 종살이 하다가 성 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지내야 했으니 이 소설 같은 그의 인생은 실로 비참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견딜 수 없어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왜 일찍 돌아가셨나요? 왜 하필 하나님은 내게 꿈을 주셨나요?” 운명을 저주하는 노래를 부르며 살다 어느 날 복수극을 벌이고 더 깊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인생을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과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고자 이곳에 자기를 먼저 보내셨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운명적이고 고통스런 생애 가운데서도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완전무결한 뜻 가운데 그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환란이 이런 그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이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절대주권과 섭리 가운데 인도하신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사 요셉을 연단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이렇게 연단하신 것은 그를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시고자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믿음으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자신의 삶을 보았을 때 역경의 때에도 좌절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믿음으로 살면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은 그로 하여금 낯선 이방 땅에서 슬픔과 고독을 극복하게 했고, 정욕의 유혹을 물리치고 청년의 순결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은 감옥에 들어온 죄인들을 품고 섬길 수 있는 내면성과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섭리를 믿는 믿음은 가는 곳마다, 바로에게까지도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의 자세를 갖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에게는 운명, 허무, 실패, 상처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의 삶의 여러 과정은 실패하고 손해 보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였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사랑입니까? 예수님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 자신을 못 박은 것보다 예수님을 못 박음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를 대적하고 그 뜻을 거스리므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진노를 받게 될 것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가 녹아지고 운명이 변하여 섭리가 되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용서의 사랑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은 현재의 삶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계십니까? 자기편에서, 아니면 하나님의 선한 섭리에서 보십니까? 자기편에서 보고 판단한다면 운명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본다면 요셉과 같이 운명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위대한 인생을 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을 주시고 차원 높은 사랑을 하는 자로 빚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과거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만을 위해 살던 죄인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을만한 자로 빚으시기 위해 오랜 기간 여러 모양으로 훈련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매사에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다가 성적이 떨어져 맘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턴에 남을 수는 있었지만 레지던트 시험에 떨어져 군대로 가야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1년의 1/3정도는 야외훈련으로 텐트생활을 해야 하는 말단 전방부대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그야말로 광야훈련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레지던트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개원을 하였지만 IMF와 의약분업의 격변의 시기를 지내면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제가 붙들고 있던 세상 욕심과 허영심을 깨시고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영육간에 나보다 더 힘든 형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기도하며 섬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15: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말씀으로 비전을 주시고 가대 캠퍼스 개척역사를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품고 섬길 수 없던 죄인을 변화시키사 캠퍼스 양무리들의 목자로 세우시고 양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으로 먹이는 성경선생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고 현실 상황도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이러다 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센터와 캠퍼스가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여 캠퍼스 역사라도 열심히 섬기고자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꾸준히 캠퍼스를 심방하며 말씀과 기도의 씨를 뿌렸을 때 많은 양들이 말씀 안에 자라게 하시고 영육간에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나의 인생을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제가 순간순간 들어오는 자기 계획과 세상 욕심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인도하심만을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영적인 기근이 심한 이 시대에 저희들을 통해 생명구원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요셉과 같은 진실한 사랑으로 한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섬기는 가운데 캠퍼스 가운데 영혼 구원 역사가 풍성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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