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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8-02 (일) 13:30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5_요한복음_제20강-1(김요나단).hwp (58KB) (Down: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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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20강]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015년 요한복음 제 20 강                                                                                김요나단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요한복음 17:1-26
요절: 요한복음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루의 일과를 새벽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는 아예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공생애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기도하고자 합니다. 이 기도에는 지금껏 예수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예수님의 간절한 바람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는 크게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제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장차 올 수많은 성도들을 위한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대 제사장적인 기도라 이릅니다. 이 기도제목 하나하나는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을 잘 보여줍니다. 기도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의 대 제사장적인 기도를 배우고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배움으로 우리 모두가 기도의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1-8)
1절을 보면 때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가 끝나면 18장에서 체포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까요? 보통 사람들은 죽음에 직면하면 패닉상태가 되고 죽음의 공포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명이고 뭐고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습니다. 기도를 해도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나, 가장 중요한 것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전 인생을 정리하시면서 이 땅에서 이루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니까?
첫째,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1).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키워드는 “영화”입니다. 1~5절까지 “영화”라는 단어가 무려 5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친 사명이요 인생목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여름수양회에서 우리는 십자가형이 인류가 고안해 낸 형벌 중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형벌로 그 당시 제일 중 죄인들에게 주어졌던 형벌이라고 배웠습니다. 죄인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이런 억울함을 풀어주시도록, 참담한 고통에서 건져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1절을 다시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하십니다. 이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예수님은 영광의 십자가로 여기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벽이 무너지고 새롭고 산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히 10:20). 이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요 14:6). 3절을 보면 이 십자가가 세상만민에게 영생을 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십자가입니까? 이 기도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이를 지켜보던 로마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신이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과 같이 큰 환란이나 재난에 부딪히게 되면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때에 절망을 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이때가 바로 영광을 얻을 때입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는 때입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이기적이 되지만 그러나 목자님들에게는 양들을 돌보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가족이 사고를 당하면 큰 슬픔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정복음화의 기적이 올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아무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이기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자 하는 인생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나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가를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하라고 주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속역사를 완성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완성된 구속 역사를 땅 끝까지 전파할 제자들을 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한 직후에 메시야를 보내시고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5)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천하 만민을 구원하실 것을 맹세하셨습니다.(창22:16-19)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마침내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명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이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구속 역사를 전파하고 확장할 제자들을 양육하셨습니다. 이 사명을 이제는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이어받아 감당해야 하며, 제자의 제자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또 오늘날에는 우리 목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즉 이 두 가지는 우리 목자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캠퍼스 복음역사와 1:1 제자양성역사를 사명으로 여기는 것도 이 두 가지를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일을 우리가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학생 목자님들에게는 학과공부와 양들을 피싱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사명입니다. 목자님들은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서도 센타로 와서 밤중에 말씀역사를 섬기시는데 내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합니다. (이 사명 때문에 목자님들이 늙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정훈 목자님을 볼 때마다 은혜가 됩니다.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쩜 저렇게 똑같은지,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저는 벌써 귀밑이 하얗게 반백이 되고 배에 인격이 쌓여 3겹, 5겹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분은 뱃살 하나도 없더군요. 어떤 분은 탁구로 다져진 몸매라고 하시는데, 저는 이분이 사명을 감당하셔서 영화롭게 된 것이라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몇 주간 사모님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새벽기도를 하시고 가사일과 자녀들을 돌보는 중노동을 다들 감당하고 계실 텐데, 매일 10시에 기도모임을 이루시고 반백의 나이에 캠퍼스에 피싱을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2~30년 전부터 하던 피싱을 변함없이 하고 계십니다. 이런 스피릿이 지금껏 경성센타를 지탱해 온 힘이라고 믿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사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모임을 이루는 것, 목자님들이 퇴근 후 한 밤중에라도 캠퍼스에 올라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내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들입니다. 우리가 이 작은 사명 하나 하나를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Ⅱ.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 제자들을 위한 기도 (9-19)
이 부분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자로서 양들에 대한 자세와 기도제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제자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보셨습니다. 얼핏 보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제자들은 비린내 나는 비천한 어부 출신들이요, 또 이기적인 세리 출신도 있습니다. 이들은 너무나 자주 못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인간적으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들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하늘나라의 황태자로 여기시고 사랑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망을 두시고 책임성 있게 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제자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길 때 근본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현재 좀 부족하더라도 소망을 끊지 않고 인내와 책임성을 가지고 돌보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첫째로, 저희를 보호하사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제자들 간에 하나가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내일이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됩니다. 분명히 제자들은 이런 시련과 풍파 앞에서 한명도 남김없이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 생전에도 누가 더 크냐며 경쟁하던 자들이었는데, 예수님도 안 계시니 하나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어야 합니까? 11절을 자세히 보면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편을 가를 수 없는 완벽한 삼위일체의 연합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과 스타일이 다르다고 개성을 주장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전 일생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이 곧 하나님의 사역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한 뜻이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한 마음이 될 때 제자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자기의 계획이 있고, 재능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릅니다. 직장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다른 것을 뒤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간절히 바라시는 바입니다.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 예수님의 기도는 11절, 21절, 22절, 23절에 걸쳐서 무려 4번씩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제자들이 세상의 악에 대처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연합된 유기체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똑 부러지는 사람도, 아무리 명석하게 말씀을 풀어내는 사람도 개인플레이로는 악한 세상을 당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먼저 부러집니다.
절전지훈(折箭之訓)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뜻은 가느다란 화살 한 개는 잘 꺾이나 여러 개의 화살은 꺾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화살 1개는 잘 부러지지만 10개를 묶어놓으면 절대 안 부러집니다.) 이 구절은 연개소문이 그의 아들들에게 힘을 합쳐 당나라를 대적하도록 유훈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세 아들들은 뿔뿔이 찢어져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당나라의 앞잡이가 되었고, 동북아의 강대국 고구려는 당나라에 멸망해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저희 경성센타 목자님들이 10개 화살이 뭉쳐진 것처럼 하나가 된다면 저희 경성센타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제자공동체가 될 것을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년간 전 세계에서 유래 없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부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각종 문제들도 산적해 있습니다. J. C. 스미스라는 학자는 선교국제보고서라는 잡지 1961년 7월 호에 실린 "한국의 정책과제"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장로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분열 많이 하는 교회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에 묘사된 초대교회의 모습은 하나가 된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Christian Community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공산주의가 아닌데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물건을 통용하고 항상 떡을 같이 떼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크리스챤 공동체로 초대교회는 엄청난 핍박들을 이겨내고 오히려 급속도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가 된 교회를 주님은 축복하십니다.
둘째로,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전하여 지켰습니다. ‘지킨다’는 말은 부단히 살피고 훈련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악이 가득한 곳입니다. 음란과 쾌락의 누룩이 가득 찬 곳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단히 살펴왔고, 악과 싸울 사도들로 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셔야 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제자들을 살피고 보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자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 악으로부터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 대신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세상에서 우리가 말씀대로 살다보면 미움 받고 박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물러나거나 안전한 장소에 숨어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15절과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고 세상의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움추러 들게 아니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말씀을 붙들고 악과 싸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셋째로,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진리의 사람,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세상과는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죄와 악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좇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육신의 소욕이 있습니다. 여름수양회도 잘 치렀는데 이제 편히 쉬고 싶고 좀 여유를 즐기고 싶습니다. 퇴근 후 센타에 말씀공부 가기보다 집에 가서 수박이나 먹으며 스포츠 중계를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때에는 며칠 병원 간판을 내리고 남해바다의 섬으로 떠나 여름 비경을 즐기거나,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발리로 떠나 바다에 발 담그고 피서를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자 살펴본 바로는) 수양회 직후 우리 목자님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토요모임을 어떻게 잘이룰까, 수양회 때 얻은 양들을 어ᄄᅠᇂ게 잘 거둘까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기도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 119:9).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가치기준이나 판단 기준이 모두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와 악에 빠지는 것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모던 사회에서는 절대 기준을 부정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할 기준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갈수록 회의주의와 도덕적 해체현상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주의 말씀만 지킬 때 거룩한 종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진리, 곧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거룩하기를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사시므로 제자들이 이를 본받기를 원하셨습니다.  
Ⅲ.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 (20-26)
예수님의 기도가 점점 폭이 넓어지더니 이제는 장차 제자들을 통해 믿게 될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다. (12제자들도 아직 변화되지 않았는데 제자들의 제자들까지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II 파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는데,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뜻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어느 모임에서나 우리는 수없이 갈등과 문제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 사이의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는데서 생겨납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것이 분명히 옳은데 어떻게 내 생각을 굽히겠는가? 내 소신껏 해야 하지 않는가 말하며 하나 되기를 거부합니다. 자기생각과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한 교회 안에서도 당을 짓게 됩니다. 이것이 집단 이기주의의 출발입니다. 분쟁과 분열은 아무리 명분이 그럴듯해도 그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각기 다른 생각과,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21절을 보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주안에 거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한 가지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에베소서 1:10절을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집단 이기주의를 회개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함께 부르심 받은 형제 자매들로 서로 영접할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 된다’는 것은 획일적이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되 주님 안에서, 한 영으로 말미암아(One spirit),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동역한다는 뚯입니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과 같이 각자 자기소리를 내지만 같은 곡을 가지고 한 지휘자의 지휘를 받으므로 아름다운 곡이 연주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믿는 자들이 하나될 때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둘째로,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영광에 참예하도록 기도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때 장차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됩니다. 또 주님께서 누리는 그 영광에 우리도 동참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제 인생에서도 화두요 미션입니다. 제가 신앙공동체에 대한 깊은 철학이나 이론적 지식은 없지만 제 안에 공동체에 대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태껏 좋은 말씀을 많이 받았고 말씀 통해 회개도 하고 사명도 영접하고 많은 은혜를 누렸지만 다시 되돌아보면 제가 UBF에 발을 디디고 회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UBF 신앙 공동체를 누리며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경험상 경성 UBF가 세계최고의 크리스챤 Community 라 믿습니다. 캠퍼스 복음역사가 절정에 다다르던 80년대 중반에 저는 피싱이 되어서 공동체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았던 행운아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았던 은혜를 짧게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85년도 대학에 입학한 후 인생의 방향 없이 여기저기 놀기만 하다가 2번 연속 학사경고를 받고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던 저를 주님은 빛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초기 장막생활은 제 신앙 초기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86년 2학년 때부터 30살 인도네시아에 오기까지 10년을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두 번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기간입니다. 학생장막 때 많은 목자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80년대에는 식사초대도 많았었는데 지금처럼 식당이 아니라 가정으로 많이 갔습니다. 장막별로도 엄청 식사초대를 받았었습니다. 성탄 전후로는 이렇게 끊임없이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런 게 은혜가 있어서 저도 양들을 장막으로 데려와 라면을 끓여주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시대가 많이 달라졌고, 나라도 달라서 제가 누렸던 공동체의 모습을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루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입니다. 국적이 달라 장벽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받았던 은혜가 항상 제게는 동기부여가 되고 목표치가 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95년 8월 2일 사명의 땅 인도네시아에 발을 내딛었고 처음 7년은 데뽁에서 선교사님들과 동역하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해에 UKI대학교 근처에 Cawang Center를 개척하게 되었고 많은 형제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때가 주기적으로 있었고 양들이 몰려왔다가 떠나감으로 물갈이가 되곤 하였습니다. 양들은 물갈이가 되어도 제 마음은 물갈이가 잘 안되어 힘들던 적도 많이 있었지만 센타는 다시금 양들로 채워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도 기도해야 할 양들의 목록은 점점 늘어나가 되었습니다. 현재 센타 상태는 많이 썰렁하지만 이태껏 양들을 보내어주시고 말씀역사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인도네시아에 간지 20년이 되었고 제 나이가 50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남긴 열매가 불분명하고, 직장에서도 별 볼일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짜왕센타에서 나이가 50이 되어서도 매주 예배 끝나고 요회 모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배 후 말도 안 되는 소감을 발표하는 양들 소감을 아직도 듣고 있노라면 솔직히 요즘은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 가슴과 머리에 항상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앞으로의 사역에도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을 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열매가 눈에 보이는 열매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얻고 본받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흥이 아니라 내안의 부흥이요, 영성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사에서 보이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신앙의 선배들이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UBF에도 구름 같은 개척 시니어 목자님들이 있습니다. 제가 끝까지 이 길을 따라 걷길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자신을 위하여, 제자들을 위하여, 온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땅으로 향한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위하여, 또 앞으로 뭇별과 같이 올 수많은 후손들을 위하여, 더 나아가 모든 교회들을 위하여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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