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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22 (일) 13:01
분 류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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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10강] 일어나 잡아 먹어라

2016년 사도행전 제10강                                          최바울

일어나 잡아 먹어라

말씀 / 사도행전 9:32-11:18
요절 / 사도행전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성령의 역사는 박해를 통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유대 땅을 넘어 땅 끝으로 나가야 할 시점이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두 가지 큰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는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베드로의 좁은 유다이즘을 허무시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좁은 유다이즘을 허무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보여 줍니다. 또한 복음이 어느 한 장소에, 어느 한 사람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베드로에게 주셨던 “일어나 잡아 먹어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저희도 좁은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만민구원역사라는 주님의 원대한 소원을 영접하고 이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베드로가 본 환상(9:32-10:16)
  9:32-43까지는 사방으로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역사를 능력있게 감당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이제 옛날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던 고질병자도 포기치 않고 도전해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며 죽은 자를 살려냈습니다. 어디서 도와 달라 요청이 들어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지체 없이 달려가서 섬겨주었습니다. 전도여행 중에도 호텔대신에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무두장이 집에서 여러 날을 머물 만큼 사도로서 특별대우를 바라지 않고 허물없이 양들과 교제했습니다. 그는 갈릴리 촌구석의 예수님의 제자에서 이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목자답게 온 팔레스타인 구석구석을 심방다니며 섬길 만큼 활동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베드로의 관심과 사역은 유대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제 유대지역을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시는데, 정작 이 사역을 수행해야 할 베드로는 이방 선교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문제의식을 가지시고 그가 이방인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도우십니다.
  10:1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가이사랴는 헤롯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를 12년간의 대공사 끝에 커다란 항구도시로 만들어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헌정한 도시였습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로서 주민의 대다수가 헬라인이었습니다. 또한 로마제국이 로마군 이달리야 부대 제5군단을 주둔시키면서 주변의 식민지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군대를 파송했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한마디로 이곳은 복음을 모르는 이방 영혼들로 가득한 복음의 미개척지요, 복음이 만국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베드로는 이렇게 중요한 곳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이사랴를 하나님 편에서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고 단순히 헤롯이 만든 이방인들의 도시요, 로마의 식민지 지배에 협력하는 군사도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구원에 대해 관심도 없어 보이는 이방인들을 섬기는 것보다 율법도 좀 알고 하나님도 경외할 줄 아는 유대인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복음역사 편에서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는 이방인 가운데 역사하시려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고넬료와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 중 유일하게 그 이름이 언급되는 고넬료는 어떤 사람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당시 로마군의 백부장은 선출직으로 부하들로부터 존경과 신임을 받는 사람들이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들도 대부분 예수님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 당시 로마제국의 주류 사회의 분위기는 초기 도시국가시절의 로마 정신을 잃어버리고 음란하고 패역하고 부패하여 타락과 죄악상이 정점에 이른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마음과 인격을 가진 고넬료와 같은 백부장들이 식민지 유대백성들의 경건한 삶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본문의 고넬료도 음란하고 지저분한 시대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군인정신에 기초한 원칙적인 삶, 양심에 기초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했을 때 하나님을 창조주로, 역사의 주관자로, 또한 구원과 심판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인정하고 경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식민지 중에서도 다루기 까다롭고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유대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들을 만큼 구제사업에 힘썼습니다.(10:22) 무엇보다 그는 바쁜 군대 생활 중에도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꽤 괜찮은 백부장이었습니다. 가이사랴 지역에, 그것도 로마 군대 안에 고넬료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30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심방하기 전까지 아무도 이곳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서라기보다 마음이 멀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Campus는 이 시대 가이사랴와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2016학번 신입생 양들, 기존 재학생 양들, 해외에서 공부하러 온 양들로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캠퍼스에 올라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까요? 이는 거리나 시간과 같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베드로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편하고 익숙한 룻다와 욥바만 다니며 편하고 익숙한 일만 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할 때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룻다와 욥바에서 벗어나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하고, 성령의 방향에 순종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고넬료와 같은 꽤 괜찮은 영혼들을 만나게 도우실 것입니다. 저희들이 봄학기 목자의 마음을 준비하여 복음을 듣지 못한 캠퍼스 영혼들에게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3-8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고넬료를 아시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고넬료가 은밀한 중에 기도하고 구제했는데 하나님은 신기하게 그런 영적인 투쟁을 다 아시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내어 그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도록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고넬료는 환상을 본 후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모든 일을 말한 후 욥바로 보냈습니다. 이튿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성에 가까이 갔을 때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무두장이의 집안을 피해 조용한 지붕으로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때는 제 6시 곧 정오였습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가장 무더운 정오에 베드로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생전에는 기도하지 않고 큰 소리만 잘 쳤습니다. 억지로 끌려나온 새벽기도 시간에는 방석을 깔아놓고 잠을 자고, 철야기도 시간에는 포인트 있게 기도한 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동역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그는 말은 잘했지만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유대인들의 기도시간도 아닌 정오에 기도하기에 적합하지도 않은 옥상에서 졸리고 배고픈 중에도 기도에 전념하는 성숙한 기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도 기도의 종이요 베드로도 기도의 종인 것을 보면 중요한 성령의 역사에 성령께서 아무나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종들을 택하시고 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땀 흘려 기도하고 있는데 밑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왔습니다. 점심 때라 주방에서 사모님들이 2인 1조로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훈련받을 때나 성숙한 목자가 되어서나 항상 식욕이 왕성한 베드로는 몹시 배가 고팠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비몽사몽간이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에게 환상이 임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를 매어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배고픈 것을 아시고 내가 좋아하는 갈비찜, 된장찌게, 두부조림 등을 잔뜩 주시는 모양이다 생각하며 식사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 곧 돼지, 멍멍이, 고양이, 뱀, 올빼미, 박쥐, 도마뱀들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런 음식들은 태양인 베드로의 체질과도 맞지 않는 것이어서 보는 순간 식욕이 싹 가시고 온 몸에 새빨갛게 두드러기가 났습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베드로에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 그는 한 번도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먹어 자신을 더럽힌 적이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하늘에서 두 번째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모든 율법을 완성하심으로 율법에서 부정하다 했던 동물들도 이제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더이상 율법에 기초해서 속되고 더럽다며 멀리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깨끗하게 되었음을 믿고 잡아먹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편식하지 말고 아무거나 잘 먹어서 더운 날씨에 건강을 챙기라는 뜻일까요? 이 환상은 이방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보자기의 네 귀는 동서남북 온 세상을 상징하고 보자기 안에 있는 부정한 짐승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보통의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을 속되고 더러운 사람들이라고 멀리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제는 유대인이 아닌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이방인들을 영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죄를 씻음 받고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박힌 베드로는 이를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야 제발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에게 3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항상 3번 말을 해야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이 말씀이야말로 베드로가 반드시 영접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첫째는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잡아 먹어라 kill and eat! 이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하여 죄로 물든 이전 사람을 죽이고 새 것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크게 쓰시고 그의 인생을 위대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유대에서만 뱅뱅 도는 좁고 작은 사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세계적인 인물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둘째는 유다이즘을 깨고 어떤 족속도 영접하고 복음을 전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피부 색깔이 하얀 양이나 검은 양이나 누런 양이나 다 영접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박쥐같이 변덕이 심한 양이나 개처럼 물어뜯길 잘하는 양이나 부엉이처럼 야행성인 양이나 여우같이 뺀질뺀질한 양이나 두더지같이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는 양이나 어떤 종류의 양도 영접하고 제자로 키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이방인을 영접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과 우월감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철저히 율법을 좇아 살았다는 강한 자기의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율법 없이 육신과 감정을 좇아 문란하게 사는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같이 생각하고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이방인과 가까이 하거나 친구 삼는 것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극복해야 할 ‘유다이즘’입니다. 실상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체험하고 세상만민을 섬기라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왜 선택받았는가는 생각하지 않고 먼저 선택받았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교만과 독선과 편견과 아집에 빠졌습니다. 초대교회의 수장인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베드로를 세계적인 목자로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유대인의 좋은 목자도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일어나 잡아 먹어라’는 말씀을 주심으로 어떤 족속도 품고 섬기는 위대한 목자가 되게 하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여러 족속을 품고 섬기는 사람으로 키워 가십니다. 우리가 대하고 도와줄 사람들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기적이고, 어떤 사람은 교만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정욕적이고 지저분한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무기력하고 어떤 사람은 목자가 따라가기 힘들만큼 너무 부지런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조용히 일대일만 하려하고 어떤 사람은 사교적이고 쇼맨쉽이 많아서 엠티나 수양회만 가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귀가 너무 얇아서 이모임 저모임 전전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절대로 꺾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에 나의 판단기준과 가치관과 취향대로 한다면 한 사람도 영접하기가 힘듭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은 그 사람을 통해 자기 약점을 보기 때문에 싫고 자기와 다른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아 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유형의 사람도 다 영접하고 이해하고 섬기려면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몇몇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고전9:22) 실제로 지도자의 위대성은 다양한 문제를 가진 여러 종류의 사람을 얼마나 많이 품고 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제로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양, 더 힘든 양을 감당하는 종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위대한 목자가 되려면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가 커야 합니다. 위가 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음식이나 어떤 음식도 잘 소화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좁고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 위가 작은 사람은 잘 체하고 소화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좁고 편협한 마음을 회개하고 넓은 마음의 목자, 스케일이 큰 목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양도 복음으로 도전하여 믿어 순종케 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어떤 양도 감당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하고 베드로와 같이 “일어나 잡아 먹어라”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말씀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 선한 일과 구제를 많이 하더라도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인생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속되고 더러운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속되고 더러운 죄라도 씻음 받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생명의 복음이 내 안에서만, 유대세계 안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영접하고 “일어나 잡아 먹어라” 말씀에 순종하여 캠퍼스에 나아가 여러 족속들을 다 감당하는 위대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속되고 더러운 인생을 살던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시고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성경선생이요 목자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38년 중풍병자 출신으로 목동시절부터 능력있고 부지런한 세리 족속들에 대해서는 목자의 심정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주로 수업시간에 뒤에서 신문을 보고 있거나 졸고 있는 양이나, 벤치에 누워 자고 있는 양, 시험기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양에게는 목자의 심정이 충만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요새 캠퍼스에는 모든 학생들이 부지런하고 능력있어 보였습니다. 종합강의동에 가서 수업중인 강의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학생들 대부분 교수님 말 한마디 놓칠세라 스마트 폰으로 강의내용을 찍으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벤치에 모여 각종 취업정보를 나누고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 박혀 나오질 않았습니다. 바쁘고 능력많은 지성인들에게는 영적인 소원이 없을 거라는 편견, 여기저기 오라는 데 많고 갈 때 많은 학기초에는 영적인 소원이 없을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와 같은 사람도 복음이 필요하고 고넬료와 같은 사람이 복음을 영접할 때 복음이 흥왕하게 전파되는 계기가 됨을 보게 하십니다. 제가 일어나 잡아 먹어라 말씀에 순종해서 학창시절 자신과 비슷한 양들만 찾아다니지 않고 사도 바울과 같이 여러 모양의 양들을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다. 룻다와 욥바와 같이 익숙한 시간, 익숙한 양, 익숙한 장소만 다니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캠퍼스 여기저기에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몇 몇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임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베드로(10:17-11:18)
 17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좀전에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보자기 속의 음식이 무슨 의미일까? 그 보자기가 그대로 하늘로 다시 올라간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또 세번씩이나 말씀하셨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와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으로 심방갔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순종은 자신과 예루살렘 교회가 유다이즘의 장벽을 허물고 만민 구원역사를 감당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어떻게 맞이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고넬료는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이 귀한 성경아카데미에 친척들과 친구들과 초청 가능한 모든 사람을 다 불러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오자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베드로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베드로를 하나님의 종으로 영접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고넬료를 일으켜 세우며 ‘나도 사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선민의식이 강한 베드로는 이제 자신을 이방인과 같은 한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는 이제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성경학자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도 바울의 회심과 더불어 사도행전의 3대사건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엄청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자 군인이었고 베드로는 유대인이자 목회자로서 두 사람이 만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령께서 기도하던 두 사람을 각각 자기세계에서 이끌어 내어 복음 안에서 만나게 하시고 민족과 직업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게 하심으로 역사적인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성령의 역사, 영적인 역사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가 증거한 예수님은 만유의 주되시며 화평의 복음을 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죄사함을 통해 인간 사이의 불안과 갈등을 없애주고 화평케 합니다. 복음은 유대인의 대표인 베드로와 이방인의 대표인 고넬료를 화평케 했습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사흘 만에 부활하심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심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모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메시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43절을 보십시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음을 결론적으로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복음을 듣는 이방인들 가운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성령이 듣는 모든 사람 가운데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성령 강림은 이방인에게도 성령 강림이 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강림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꺼이 세례를 주었습니다. 한편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이방인과 교제한 것을 꼬투리로 베드로가 순수성을 잃어버렸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감정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그동안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를 차례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11장 1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감히 막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새 역사, 이방인 구원역사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 모든 족속을 영접하시고 구원코자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일어나 잡아 먹어라 말씀에 순종하여 어떤 양일지라도 영접하고 말씀으로 도전하는 봄학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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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50 로마서 [2012년 로마서 제1강] 복음의 능력 관리자 2012-10-07 3281
649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2-08-19 3279
64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3277
647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관리자 2010-11-07 3276
64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3276
645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8강]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관리자 2016-05-08 3265
644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0강]여자와 용 관리자 2009-11-15 3265
64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3262
642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42강]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관리자 2009-03-13 3260
641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3강]새성전 리스닝 2010-03-16 3258
640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0강]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관리자 2015-05-24 3257
639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5강]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관리자 2015-06-28 3256
638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1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2-05-27 3256
63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1강]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십계명.. 관리자 2009-06-21 3256
636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4강]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관리자 2016-06-26 3255
635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2-05-20 3253
634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41강]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관리자 2009-03-01 3253
63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5강]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관리자 2016-04-17 3248
632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3248
631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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