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09 (일) 12:18
분 류 신명기
첨부#1 2014_신명기7강-1(오정훈).hwp (28KB) (Down:177)
ㆍ추천: 0  ㆍ조회: 3151      
IP: 61.xxx.95
[2014년 신명기 제7강]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2014 신명기 7강                                                                               오정훈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말씀/신명기 9:1-10:11
요절/신명기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오늘 말씀은 지난 주 말씀의 연속으로서 여호와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과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자기 의를 주장하지 말고 자기 허물과 죄악을 기억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굳게 붙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잊지 않지 않는 길이요 가나안에서 타락하지 않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 통해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허물을 기억하므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심령에 차고 넘치게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모세의 중보기도를 배워 캠퍼스 영혼들을 위한 중보의 직분을 감당하는 종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첫째로, 자기의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그 백성은 크고 많은 강대한 아낙자손들이었습니다. 아낙 자손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크고 강했는지 40년 전 이스라엘은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 강한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고 이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그들 앞에 나가시므로 그들을 멸하여 버리십니다. 가나안에는 철병거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태우는 불병거가 되십니다. 불이 얼마나 맹렬합니까! 거대한 나무도 불 앞에 쓰러집니다.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맹렬한 불이 되십니다. 더럽고 추한 가나안 세력을 다 태워버리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4a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아직 정복하지도 않았는데, 정복한 후의 이야기를 말씀합니다. 이는 정복하는 것보다 정복 이후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얻는 것보다 축복을 감당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축복을 받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축복 때문에 무너진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론을 설교하는 이찬수 목사님은 교회가 커질 때 처음 마음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 관심갖고 말씀대로 살도록 돕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이제까지 얻지 못한 것을 얻게 될 때 초심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4b절을 보십시오.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강대한 나라, 큰 성읍 아낙자손을 쫓아내었을 때, 그들은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의로워서 저들을 몰아내게 된 것이구나!’ 우리의 힘이 강해서 쫓아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40년간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고 또 가나안 정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말 안하지만 승리를 쟁취한 후 내가 열심히 잘해서 이렇게 됐다 생각합니다. 우리로 치면 큰 역사를 이룬 후, 장학금을 타고, 원하는 직장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한 후 그런 생각을 안하고 싶은데 내가 잘해서 내가 훌륭해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람도 318명을 거느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울 때는 승패를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게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내가 너무 잘 싸워서 승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멜기세덱을 보내 그의 승리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음을 가르쳐 주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셨습니다. 5a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다시 한번 그들이 공의로워서 또 정직해서 그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로움이나 도덕적 우월함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5b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가나안의 악함으로 말미암음입니다.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이는 이스라엘이 잘해서 상을 준 것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이 하도 엉망이어서 짤라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냅니다. 우리 모임에 역사가 있는 것도 우리가 의롭고 뭔가를 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세상이 무기력했기 때문에 우리의 개척정신이 통했고 세상에 비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비젼이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며 그럴 때 깨어 있게 되고 은혜를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쫓아내시는 또 다른 이유는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이 또한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조상들과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보실 때 가나안 족속이나 이스라엘 족속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도 가나안 족속들과 같이 멸망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시고 이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순전히 절대적 믿음을 가졌던 그들의 조상들과 하신 약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로 말미암는 주권적 역사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역사에 쓰임받는 것도 사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주권적 섭리의 역사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고 의로워서 이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고전1:31)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주님의 역사하심과 긍휼하심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의이고 참된 자랑입니다. 현재 나는 무엇을 의지해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나의 공의, 나의 열심에 의지해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자기의, 자기 열심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만을 자랑하고 이를 힘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주와 복음 역사에 쓰임 받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둘째로, 여호와를 거역하는 죄인임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는 것이 그들의 공의 때문이 아니라 단언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요 그래서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목이 곧다는 것은 완고하고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는 그들이 한두 번 그런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나와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하십니다. 그들의 완악함 거역함을 나타내는 그 대표적인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좇아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호렙산 불과 흑암 가운데 강림하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난지 한 달도 안 된 때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빨리 내려오지 않자 아무 형상도 새겨서 만들지 말라는 계명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며 금송아지 우상을 새겨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놀며 그것을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들이 직접 목격하고 친히 그 음성을 들었던 하나님이 임재하신 호렙 산 아래서 이렇게 그렇게 빨리 타락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의 내면이 부패하여 속히 하나님의 도를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소금을 뿌리지 않아서 빨리 부패하는 생선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불 붙는 산 가운데서도 엄위하게 명령하셨는데도 속히 그 도를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마음에 대해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소금이 그 마음에 쳐져 있지 않으면 동태 눈보다 더 빨리 마음이 부패하게 됩니다. 그들은 단지 불붙는 산과 흑암과 구름 그리고 거기서 울려 퍼지는 음성만 듣고 거기에 압도되었을 뿐 진리가 그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새겨지지 않으면 아무리 놀라운 은혜를 받고 기적적인 체험을 해도 심령은 속히 부패해져 여호와를 거역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대학만 합격하게 해주신다면 또 이 직장에만 들어가게 해주신다면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겠습니다’ 말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무섭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버립니다. 그것이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처럼 불 가운데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면 죽는 날까지 100%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해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눅16:31) 체험이 부족해서 자꾸 하나님을 거스립니까? 아니면 내가 받은 은혜가 부족해서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딱딱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진리의 말씀이 새겨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구할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이 곧은 이스라엘처럼 행하지 않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거룩한 하나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목이 곧아서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이 한 사건뿐이 아닙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다베라, 맛사와 기브롯 핫다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습니다. 모세는 사건의 순서에 상관없이 그들의 완악함을 고발합니다. 다베라는 불사름이란 뜻인데 민수기 11장에 보면 그들이 호렙산을 출발한 후 바란 광야에 도착했을 때 자신들의 고생스러움으로 인해 악한 말로 여호와를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하는 입을 향해 여호와의 불이 나오게 하심으로 그들을 태워버리셨습니다. 맛사는 다툼이란 뜻으로 출애굽기 17장에 그들이 신광야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불평하며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바다가 갈라지고 애굽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끝까지 시험하는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기브롯 핫다와는 ‘탐욕의 무덤’이란 뜻으로 그들이 먹기를 탐하다가 죽임당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아마 광야에서 만나만 먹고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자 단백질을 보충하고 싶은 본능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 가마 옆에서 고기도 주워 먹고 마늘도 먹고 좋았다며 징징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평을 들으시고 동풍을 불게 하사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그들 사면에 가득 쌓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탐욕으로 미친 듯이 메추라기를 잡아먹고 있을 때 이 사이에 있는 고기가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그들을 치심으로 욕심을 낸 자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진노케 한 사건은 불행히도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은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또 하나님을 거역하여 불순종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간 12명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열 두령은 장대한 아낙자손을 보고 겁을 먹어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며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 극한 불신을 심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40년간 이스라엘과 함께 한 모세의 소감은 그들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온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9:7절에서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명하였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잊어버리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는 부끄러운 과거인데 왜 이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까? 그것은 나의 죄악됨, 완악함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럴 때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날마다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과거 나의 죄와 허물을 다 잊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여호와를 거역하고 거스리던 나의 완악하고 죄악됨을 기억하므로 이런 나를 감당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심령에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에 힘입어 죄악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셋째로, 목자의 사랑과 중보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제 그들이 어떻게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는지 목자의 중보기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히 부패하여 우상숭배자들이 된 이스라엘을 멸하고자 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싹수가 노란 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호적에서 완전히 파내버리시고 모세 한 사람을 통하여 다시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나를 막지 말라’ 말씀하실 때 모세도 그 동안 징글징글 했기 때문에 “네 알겠습니다. 주님!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식을 살리려고 애가 끓는 부모처럼 그 택한 백성을 어찌하든지 살리기 위해서 급히 산에서 내려갔습니다. 호렙산은 여전히 불이 붙어 있었고 모세의 손에는 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산 밑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뛰놀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죄악된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두 돌판을 그들의 목전에서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다 깨어져 버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깨어진 두 돌판은 깨어진 하나님의 관계성을 나타냅니다. 첫 사람이 첫 계명을 어겼을 때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졌는데 이제 두 번째 택한 민족이 계명을 어김으로 모든 것이 끝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목자 모세는 무엇을 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분노함으로 그들에게 무섭게 진노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불살라 가루로 만들어 그것을 마시게 하므로 그들의 죄를 먹고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하나님의 편에 선 레위 지파를 통해 그 죄에 가담한 자 삼천 명 가량을 칼로 심판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우상 숭배와 언약파기에 대한 죄 값을 백성들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교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의 죄문제에 대해서 영적 분노를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하게 책망하고 죄를 깨우치므로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9:25-29까지는 모세의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기도가 나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겠다 하시자 그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사십일 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째는 언약에 기초한 긍휼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26,27절에서 모세는 주의 큰 위엄과 강한 손으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을 멸하지 말아 달라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그들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말아주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과 하신 약속 곧 언약에 기초해서 다만 긍휼을 베푸시므로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그 백성 삼아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28절입니다. 만약 여기서 그들을 멸하신다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들일만한 능력도 없어서 죽였다 할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심판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입니다. 모세의 사십일 간의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완악하고 소망없는 자라도 목자의 간절한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돌이키사 역사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10:1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과 같은 두 돌판과 나무궤를 만들어 가지고 산에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 돌판에 처음 써 주셨던 것 같이 계명을 써 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의 관계를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11절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세의 끈질긴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참아 멸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 모세의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신 주님의 중보기도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죄인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있었기에 죄인들이 심판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듯이 인생들에게 목자의 중보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흔히 자식은 저절로 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식이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의 갖은 해산의 수고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잘 해서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목자님들의 중보기도와 해산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자기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감사와 겸손함으로 옷 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힘입어 모세와 같이 한 영혼을 위한 중보기도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이 시대 목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신입생 환영 아카데미 때 자기 발로 참석했다는 오래된 자기 의를 남몰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를 아무도 초청해주지 않았지만 초청받은 동기생을 제가 데리고 아카데미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양이 없던 고영훈 목자님과 일대일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이를 기초로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고고하고 선비같은 자세로 살고자 애쓴 결과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자기 의와 정직함을 자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며 제가 여호와를 거스리고 거역한 죄인임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생시절 경희사모님은 저에게 그 근거 없는 교만과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책망하셨지만 저는 ‘내가 어찌 근거가 없으리요’ 하고 목을 곧게 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정욕의 죄에 넘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목자님들을 통해 길이 참으시는 사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심령이 완악해져서 담을 뛰어 넘고 화장실에 숨어버렸지만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포기치 않는 사랑과 목자님들의 끈질긴 기도가 교만과 반발심 정욕으로 심판받을 죄인을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제게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생각할 때 다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릴 뿐입니다. 제가 헛된 자기 의와 열심을 자랑하는 근거없는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긍휼에 힘입어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와 복음역사 힘써 섬기는 종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인간의 공의나 선함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나의 완악함 거역함을 아시고도 길이 참으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오늘 여기까지 나를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감사하므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한 모세와 같이 한 영혼을 위한 중보기도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이 시대 목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13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1강] 산 소망 관리자 2016-10-02 3217
612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2강 리스닝 2010-04-01 3217
611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5강] 화목하게 하는 직분 관리자 2017-10-29 3207
610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09-08-16 3203
609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5강]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15-04-19 3202
608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3강]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14-02-02 3200
607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2강]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관리자 2010-10-31 3198
606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3196
60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8강]무익한 종의 자세 리스닝 2011-10-31 3190
604 느헤미야 [2011년 제자수양회 제1강] 거룩한 성을 중건하자 - 최바울 리스닝 2011-06-13 3184
603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4강]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관리자 2015-06-21 3183
60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강]육신이 되신 말씀 리스닝 2010-02-28 3175
601 시편 [2017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7-11-19 3164
600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 19강]새 하늘과 새 땅 관리자 2011-03-06 3162
599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7강]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관리자 2014-11-09 3151
598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5강]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관리자 2015-10-25 3149
59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7강] 순교자 스데반 관리자 2016-05-01 3144
596 룻기 [2017년 룻기 제1강]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관리자 2017-02-05 3141
59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20강]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15-08-02 3134
59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관리자 2019-07-07 3133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