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11-29 (월) 13:33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0년_추수감사-1.hwp (49KB) (Down:130)
ㆍ추천: 0  ㆍ조회: 2808      
IP: 61.xxx.74
[2010년 추수감사]감사하는 믿음
2010년 추수감사메시지                                               이사가랴

감사하는 믿음

말씀: 누가복음17:11-19
요절: 누가복음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2010년 추수감사 예배입니다. 보통 사람은 감사할 것이 눈에 보이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실제로 올 한 해를 돌이켜볼 때 하나님께 감사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의 제단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십자가를 지시고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께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해를 돌아보며 예수님께 감사제목을 찾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자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그 노중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의 복음전파의 주 무대였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는 이방인지역으로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지역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의 무대는 복음지역과 비복음지역의 경계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멀리서 만났습니다. 나병은 결핵균과 같은 계열의 나균에 의하여 전염되어 생기는 만성 육아종성 질환입니다. 현재는 좋은 치료약제가 있어서 그리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질병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한번 걸리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나 나균은 신경조직까지도 침범하여 감각을 무디게 함으로 손가락, 발가락들이 잘려나가도 무감각해지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도 나병에 걸린 자들은 부정하다고 여겨져 진영밖에 쫓겨나 혼자 살게 하였습니다. 이런 나병환자들이 진영을 넘어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에 율법을 깨고 진영을 넘어 예수님께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저주와 방해도 이기고 예수님을 만나는 나병환자들의 믿음이 어떤 단계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첫째로, 소리 높여 기도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들은 큰소리로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소리치자 멀리 계시던 예수님께 상달될 수가 있었습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못 듣고 지나치실까 열 명이 합심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그들의 기도에는 그들의 한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라면 자기들의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음을 믿고 바랐습니다. 자기들은 예수님께 나올 자격도 없는 자들임을 인정하고 다만 예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구하되 상한 심정과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부르짖는 기도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합심하여 외치는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합심하여 기도할 때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조용히 속삭이는 기도, 묵상의 기도도 필요하지만 절박한 문제가 있을 때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입니까? 어떤 기도의 용사의 간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아는 울지 않는다.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와 보듬어 줄 부모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영적 고아는 울며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울보여야 한다.” 돌이켜보면 초기 개척기에는 대부분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불가능한 가운데서 놀라운 생명 구원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기도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절박한 기도제목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부요해지고 영적으로 무디어 진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가운데 연초부터 새벽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4-5명이 모여 합심으로 외치며 기도해 왔습니다. 눈을 비비며 새벽 꿀잠을 부인하고 센터에 나와 선교사님들과의 기도제목 그리고 동역자들의 기도제목 들고서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성전에서 기도의 향기가 끊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받으시고 기적과 같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 선교지에서는 우리의 새벽기도 제목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중보기도를 간절히 부탁하기도 합니다. 드넓은 선교지에서 나 홀로 복음역사를 섬기는 선교사님들의 일상이 어떠할 것입니까? 가만히 묵상해 보면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기도 힘든 상황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중보기도만이 우리가 파송한 이역만리의 선교사님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됨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가 새벽미명에 큰소리로 외치며 예수님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간절한 기도시간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병이 완치된 경우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판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현재 나병환자들인 이들이 제사장에게 가려면 먼저 병 고침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병 고침에 앞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십니다. 이 방향에 나병환자들이 순종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황이 변하기까지 기다리다가 가자며 꾸물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현재의 상황을 이기고 예수님을 신뢰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아직 나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낫는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현재의 안 좋은 상황만 보고 주저앉지 말고 병 고침의 능력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나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할 때 현재의 상황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있을 때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순종은 상황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성인 여리고성 정복을 위하여 이스라엘 군사들이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 수 있었던 것도 순종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하였는데 여리고성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면 이스라엘 군사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성을 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한 바퀴를 돌거나 두 바퀴를 돌아도 아무런 변화가 전혀 일지를 않았습니다. 군사들의 힘이 쏙 빠져나가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군사들이 일곱 바퀴까지 돌았습니다. 이렇게 돌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한분만을 신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순종하는 게 중요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나갈 때 우리는 가장 좋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감사하는 믿음 15,16절을 보십시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병이 나은 열 명중의 한 사람은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하였습니다. 나병을 낫게 해주셨다면 당연히 돌아와 감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한사람만 돌아와 감사를 하였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도 믿음이 있어서 나음을 받은 것은 틀림이 없었지만 감사하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이를 볼 때 감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감사하기가 어렵습니까?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철저히 율법적이고 자기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았지만 자기들도 힘들게 자의식을 깨고 나왔고 또 목이 터져라 외치며 열심히 기도했다는 자기의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예수님께 감사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굳이 돌아가서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은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제사장에게 먼저 보이려고 순종하여 갔다고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감사하러 돌아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 사람 한명은 돌아와 엎드려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한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감사의 표시가 분명하였습니다. 감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감사가 넘쳤습니다.     사실 우리의 본성만으로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사치 않는 것이 죄의 뿌리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행복한 가정을 선물로 받고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실과로 가득 찬 에덴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을 때 마음이 교만해져 선악과를 따먹고 실낙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육체의 본성에 감사치 않음과 교만이 있습니다. 온갖 욕심과 이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아홉 사람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치매 환자는 5분 전에 한 행동도 잊어버립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주 쉽게 잊어버리는 영적 치매환자입니다. 저절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돌아와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감사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말을 힘써 해야 하고, 주일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헌금에 감사제목을 구체적으로 찾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믿음을 차원 높은 믿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8)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리에 없는 아홉 명을 찾고 있습니다. 섭섭해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감사를 드리는 자리에는 반드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열심과 자기 의로만은 안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질문을 우리에게도 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감사하는 자리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감사하는 한 사람에 속하는 가 아니면 감사하지 않는 유대인 아홉 명에 속하는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덧입고 기도하는 데는 열심인데 감사하는 믿음이 부족하지 않았나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것이지만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이 가득한 우리의 본성은 범사에 불평하게 만듭니다. 불평은 죄요 불행의 근원입니다. 감사할 때 받은 은혜가 더욱 확실해지고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깊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랑과 섬김을 많이 받은 목자님들께도, 부모님, 형제자매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미국의 뉴욕 재활병원의 벽에는 어느 환자의 고백으로 알려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삶이었지만 미처 표현 못한 기도까지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감사하러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 한명에게 영적인 구원을 주시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에게는 영적 구원이 없습니다. 육신의 병을 고침 받았지만 영혼의 병은 치유 받지를 못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께 구원받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살전5;18)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시 50;23) 은혜를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 받은 후 감사하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감사할 때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이 하나님의 복 받은 나라가 된 것도 조상들이 추수감사제를 하나님께 드린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620년 9월 16일,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기 위해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하였습니다. 그들은 65일간의 긴 항해 끝에 12월 21일 추운 겨울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연안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풍랑과 식량난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고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땅을 밟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어 교회부터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열심히 농사를 하여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추수로 거두어들인 첫 곡식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이것이 전통으로 이어져 1789년에는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11월 26일을 감사절로 공포하여 오늘날까지 추수감사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감사하는 믿음을 기뻐하사 영육간에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해 동안 우리 모임과 함께 하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연초부터 오늘까지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요한복음, 요한일서 그리고 이사야서 말씀으로 먹이시고 함께 하시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수양회를 열어주시고 특별한 말씀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웠습니다. 개인별로 맞이하는 하루하루마다 일용할 양식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었습니다. 올해 여름수양회에서는 준비를 하면서 각자가 인생소감을 쓰며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며 준비하는 은혜가 넘쳤습니다. 환난가운데 있는 동역자들에게 은혜를 주시어 화평케 하시었습니다. 특히나 올해에는 육체의 질병으로 수술 받거나 치료받는 분들이 많은 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는 합심기도에 정확히 응답하시어 치료의 광선을 베푸시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였을 때 각 선교지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양들이 살아나고 선교사님들이 은혜 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가을에는 3부 개척 역사를 이루시었습니다. 그리고 건축역사도 이루시어 교육과 훈련의 공간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모임이 연륜이 쌓이며 2세들이 성장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세 선교사나 2세 목자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년에는 역사의 현장에 일꾼들이 될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 8월초부터 요한이의 수능을 위해 100일 작정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기도의 깊은 세계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이도 수능을 잘 치를 뿐 아니라 덤으로 요회 내에 많은 동역자들을 보내시어 요회의 배가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었습니다. 요회 모임 때면 북적대며 활기가 넘쳐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드리는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매사에 감사를 표현하는 성숙한 믿음의 종들이 되어 새해에는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한해를 돌아보며 우리에게는 센터에서나 팀에서나 개인적으로나 감사할 제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렇게 죄 많은 세상에서 의미를 가지고 살아 갈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 한 해 동안 베푸신 모든 은혜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엎드려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열심과 성실로 이루어 졌다는 자기 의를 깨고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아 다음에 감사하겠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예수님의 발 앞에 감사하는 믿음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81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5강] 화목하게 하는 직분 관리자 2017-10-29 2891
58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강]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관리자 2016-03-06 2881
579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2강]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관리자 2015-06-07 2877
578 로마서 [2012년 로마서 제7강] 의롭게 된 자의 축복 관리자 2012-11-25 2876
577 디모데후서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3강]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관리자 2015-08-30 2870
576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1강]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으니 관리자 2015-09-20 2865
5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9강]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관리자 2011-08-28 2864
57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6강]세례 받으신 예수님 관리자 2011-04-17 2862
57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8강]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니.. 관리자 2016-07-24 2849
57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1강]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관리자 2016-05-29 2840
571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9강] 산 자의 하나님 관리자 2012-07-29 2840
570 로마서 [2013년 로마서 제13강]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관리자 2013-02-17 2836
56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3강]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관리자 2016-06-19 2835
568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최동진 휴화산 2010-01-14 2835
56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0강] 듣고 행하는 자 관리자 2014-04-06 2827
566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15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7-05-14 2824
565 사무엘상 [2015년 제자수양회 주제2강] 소년 다윗과 거인 골리앗 관리자 2015-10-04 2824
564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7강]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관리자 2014-11-09 2820
563 느헤미야 [2011년 제자수양회 제1강] 거룩한 성을 중건하자 - 최바울 리스닝 2011-06-13 2813
562 누가복음 [2010년 추수감사]감사하는 믿음 관리자 2010-11-29 2808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