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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06 (일) 12:40
분 류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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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2강]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2016년 사도행전 제2강                                                                          이인구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 /사도행전 2;1-47
요절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어떻게 부족한 우리가 예수님의 하신 일보다 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예수님이 곁에서 도와주시면 모를까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 어떻게 혼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제자들 곁을 떠나시면서 어떻게 항상 제자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것입니까? 영원히 함께 하기를 맹세한 사랑하는 부부도 같이 있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둘 중 하나는 먼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떠나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예수님께서 떠나시지만 성령의 모습으로 다시 오셔서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들이 이뤄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후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성령님이 임하시는지 또 그 의미와 목적을 배움으로 항상 성령과 함께 하는,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장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1-13)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역사를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말씀을 남기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약 120명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성령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10일 지나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감사절로 유월절로부터 50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의 큰 명절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성령님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으로 각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바람’은 형체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강하고 분명한 역사를 일으키는(영향을 끼치는) 속성과 유사해 성령님을 바람에 비유합니다. 폭풍과 같은 바람은 땅속 깊이 박혔던 나무뿌리도 뽑아버리고 높은 건물도 한순간에 무너뜨립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죄악되고 더러운 것들을 태워버리는 권능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은 강한 바람처럼 불처럼 제자들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이는 마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을 당시 성결함으로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자 하나님께서 큰 권능과 위엄을 갖추시고 시내 산에 강림하신 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제자들에게 강력한 성령이 임하자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을 충만히 받은 그들은 먼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언어들이란 우리가 흔히 기도원에서 들을 수 있는 천사의 언어라는 방언(고전12;10)이 아닌 외국어를 의미합니다. 11절에 보면 성령 받은 제자들은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폭풍 같은 바람소리와 강한 불꽃이 번쩍인 후 120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큰 소리로 각자 다른 외국어를 말하자 오순절을 치루기 위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들은 깜짝 놀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갈릴리 촌구석에만 있던 제자들이 무식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전 세계 각 지역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은 로마 본토에서 몇 년을 살았어도 할 수 없는 말을 그들은 본토인보다 더 유식한 로마어를 유창하게 혀를 굴리며 말하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도 간단한 생활 언어정도가 아닌 심오한 철학과 사상까지 담겨있는 하나님의 큰일인 구원역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인간적 능력이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이런 성령님의 역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큰 일, 하나님의 구원역사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영이 죽은 육신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생명과 행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다시 허무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첫 범죄 때부터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죄 가운데서도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구원역사를 이루어나가셨고 마침내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구원자는 죄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죄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음을 아시고 친히 육신을 입고 세상의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해주심으로 구원해주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복음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복음조차 거부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수제자 베드로까지도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먹고 살고자 사명을 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떠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인간들의 죄성과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승천하신 후 곧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예수님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셨지만 성령은 영으로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이들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면 어떤 인간이라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거듭남으로 하나님과 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리게 됩니다.
둘째,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럼 성령께서 강한 바람처럼, 불처럼 제자들에게 강림해 외국어로 말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오실 때도 많습니다. 비둘기같이 조용히 평화롭게 임하기도 하고(마3;16) 신자의 마음에 생수와 같이 흘러 참 만족과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요 7;38,39) 또 성령을 통해 외국어를 잘 하는 은사도 받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받거나 믿음을 얻거나 예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 또 방언을 말하는 은사 등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고전12;4-11) 하지만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말씀을 이루시고자 하심입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은 당시 전 세계를 대표하는 15개국으로부터 온 수많은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제자들에게 강한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의 바람으로 세상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복음의 불로 세상의 더러운 죄악을 태워 없애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본래 인류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교만의 죄 가운데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흩으시고 서로 소통해 죄를 짓지 못하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인생들은 죄 때문에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소통도 단절됐을 뿐 아니라 수평적인 인간사이의 소통도 막히게 됐습니다. 인간들이 부단한 노력으로 역사를 거쳐 전 세계로 통하는 길을 만들고 최근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지구반대편의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을 만들었지만 실상 더욱 소통이 단절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소통의 도구가 아닌 죄악의 통로요 온상이 되었고 인간들을 더욱 고립시켰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까지 저녁식사 때에도 대화 소통하지 않고 서로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며 각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gg, 지못미, 금사빠, 장미단추”등 외국어보다 더 어려운 인터넷용어를 쓰며 소통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선 제자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복음의 증인으로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성령이 할 말을 알려주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선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오랜 광야훈련가운데 말이 둔한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할 말을 알려주셨을 때 말이 안 통하는 교만한 바로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무지한 노예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주신 말을 증거함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 할 때 생명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닫힌 양의 마음 문을 열수 있는 가장 합당한 말을 성령께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과 경험으로 말씀을 전하면 완악한 양에게 격려의 말씀을 세상 두려움에 빠진 양에게 심판의 말씀을 주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필요한 것은 말을 잘 할 수 있는 기술이나 방법이 아닌 내 속에 계신 성령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증거하는 영적 분별력입니다. 또 항상 성령 충만 하도록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제자들의 놀라운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를 놀라워했지만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눈앞에서 보고도 부인하며 하나님과의 소통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진정 세상죄악에 깊이 취한 이들이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과 성령 충만한 사람과 겉으로 보기에 공통점이 많습니다. 어떤 이가 9가지의 공통점을 말했습니다. 첫째, 말수가 많아집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제자들처럼 내면의 기쁨과 감사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둘째,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셋째, 권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복음을 믿도록 강력하고 간절하게 권합니다. 넷째, 웁니다. 성령 충만하면 나의 죄악과 예수님의 피의 은혜에 감동해 웁니다. 다섯째, 용감해집니다. 성령 충만하면 부활신앙가운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여섯째, 중독됩니다. 예수님 없으면 못삽니다. 일곱 번째, 안주가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항상 말씀과 일용할 양식을 먹고자 합니다. 여덟째, 냄새가 납니다. 성령 충만하면 그 내면에서부터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향기가 납니다. 마지막 아홉째, 주를 자신의 주인으로 섬깁니다. 에베소서(5장 18절)은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세상은 죄악으로 취해 제자들을 미혹하지만 우리는 성령에 충만함으로 세상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2장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14-41)
  14절을 보십시오. 사도 베드로는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때가 제 삼시 즉 아침 9시이므로 술을 마실 때가 아님을 상기시켰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닌 성령에 충만한 것을 선지자 요엘을 예언을 들어 증거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것이요 너희의 젊음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구약시대 때는 선지자, 제사장, 왕 등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이 임해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이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영접한 모든 이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럼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까? 자녀들은 예언을 하게 됩니다. 보통 아이들은 장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 재미있고 감각적이고 느낌이 좋은 곳을 따라 이리저리 쏠려다닙니다. 부모의 권유에 장래를 위해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머릿속은 온통 노래하며 춤추며 게임하는 가상 세계에 삽니다. 어떻게 이들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할 수 있습니까?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어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기초해 왜곡해서 받아들이지만 아이들은 순수하게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자녀들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앞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고 예언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가르칠 때 그들은 요셉처럼 사무엘처럼 영적 통찰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늙은이들은 일반적으로 곧 죽게 될 장래보다는 지나간 과거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서 “그때가 좋았지. 난 국민학교 때 줄반장하면서 엄청난 꿈이 있었어. 하지만 중학교 때 너무 노는 바람에 인생이 꼬여 이렇게 되었어. 10년만 젊었어도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며 세월 탓을 하며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할 때 노인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화살처럼 지나간 것처럼 앞으로 화살처럼 빠른 시일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꿈을 꾸게 됩니다. 성령이 주는 꿈을 꾸면서 은퇴(retire)가 끝이 아니라 타이어를 다시 갈아끼우는 것으로 여기고 성령이 주는 꿈을 향해 다시 달려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우리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환상을 보게 됩니다. 청년의 때는 젊음의 힘과 열정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유혹에 약해 실족하면 무한히 타락하고 무기력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요사이 많은 젊은이들이 흙수저, 헬조선, 열정페이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라며 꿈꾸기를 포기한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그것은 어둡고 죄악된 현실과 부족한 자신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환상 즉 비전을 보게 됩니다. 성령이 임할 때 젊은이들은 복의 근원, 열국의 아비, 왕 같은 제사장, 교수목자 등 현재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비전도 붙들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성령이 우리 심령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나는 것처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애벌레에게는 자기가 가는 길에 늘어선 모든 것들이 다 문제입니다. 앞에 있는 돌덩이도 문제고 냇가도 문제고 막대기도 문제입니다. 학과 공부도 문제고 졸업 후 취직도 문제고 결혼과 자녀양육은 더 큰 문제입니다. 모든 것들이 죽을 힘을 다해야 겨우 넘어설 수 있는 장애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나비가 되고 나면 그런 것들은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이 아닌 목표를 향해 가는데 둘러보는 구경거리일 뿐입니다. 왜냐면 나비는 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설사 현재 나의 겉모습은 애벌레처럼 보여도 성령으로 거듭날 때 나비의 시야 즉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환상은 내가 꾸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비전입니다. 그것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이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비전을 위해 나를 지으시고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결국 나를 통해 그 비전을 이루실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신 성령께서는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하시고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심으로 결국 성취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젊은이에게 비전이 없을 때 나이는 젊지만 젊은이다움을 상실하고 애늙은이가 됩니다. 십자가를 싫어하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이 되고 현실에 안주해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는 작은 행복만을 찾고자 합니다. 비전을 향해 전진하는데 행복을 찾기보다 틈틈이 즐기는 핸드폰게임이나 드라마 또 밥 대신 먹는 비싼 커피에서 삶의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할 때 젊은이는 성령이 주는 비젼 가운데 개척하고 정복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힘들지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힘들지라도 나와 함께 하신 성령의 도움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고 또 사명을 이루고 그 길을 완주한 후 하나님의 크신 상급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비전을 덧입은 젊은이는 걱정과 두려움이 아닌 설렘과 기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인생길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며 성령이 주시는 비전을 덧입을 때 ‘우리의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가 됩니다. 우리가 매일 눈에 보이는 어두운 현실과 부족한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신 성령이 주시는 비전을 바라봄으로 전진하며 성취하는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요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증거한 후 이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합니다. 베드로는 원고도 없이 요엘서, 시편 등 구약의 말씀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무식한 어부출신 베드로의 이런 변화는 오직 성령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 비전을 봤기 때문입니다. 또 그와 함께 하신 성령께서 할 말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다윗이 쓴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계획된 역사임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야로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손을 빌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심으로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자손 중에서 오실 메시야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역사를 증거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외국에 있던 그들이 직접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베드로의 책망을 들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우리가 어찌할꼬”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권면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 성령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약속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회개는 자신을 위해 살던 죄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을 위해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회개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을 붙들 때 성령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또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영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3장 초대 교회의 탄생(42-47)
  베드로의 회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그날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되었습니다. 이로써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4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은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 가르쳐줍니다. 첫째,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거듭나 성령을 받을 수 있고 또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진리의 말씀가운데 살아 역사하십니다. 영적세계엔 진리의 영이 있지만 미혹하는 사단의 영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붙들 때 나에게 들려오는 음성이 성령의 음성인지 아니면 나의 죄악된 본성을 타고 오는 사단의 음성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사랑의 교재는 섬김 받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서로 섬겨주는 삶입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또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사랑의 교제가 있는 교회는 정글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힘든 영혼들에게 위로와 새 힘을 주는 안식처가 됩니다. 나아가 불신자들에게도 부러움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성도들이 모여 말씀중심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곳이 천국입니다. 셋째,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제자는 기도함으로 성령을 체험하고 그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문제가운데 또 갈급한 심령 속에서 기도하도록 도와주시고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우리가 기도하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선 부족한 죄인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영접하고 거듭나 복음의 증인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거듭나는 것까지는 오직 은혜로 가능했지만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거듭난 후에도 세상적 가치관과 죄악된 본성을 온전히 버리지 않았을 때 말씀을 듣고 전하기는 했지만 복음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세상가치관으로 왜곡된 인본주의적 말씀을 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신자 때는 주로 말씀을 듣기만 하고 전하지 않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 듣고 전하는 상황에서 나의 왜곡된 말씀이 많은 이들을 실족시킬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성령의 도우심을 붙들고 성령의 주신 말씀을 밝히 증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생활가운데 깨어 있어 악한 영에 미혹되지 않고 성령의 뜻을 분별하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영접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말씀과 기도로 또 사랑의 교재로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덧입고 복음의 증인으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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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3강]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 관리자 2016-10-16 1454
455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2강]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관리자 2016-10-09 1585
454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1강] 산 소망 관리자 2016-10-02 1554
45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6강] 로마의 셋집에서 관리자 2016-09-25 1850
45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5강]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관리자 2016-09-18 1624
45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4강]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서삼문 2016-09-11 1677
45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3강]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관리자 2016-09-04 1635
44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2강]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관리자 2016-08-28 1860
44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1강]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관리자 2016-08-21 1737
44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0강]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관리자 2016-08-14 1606
446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9강]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바울 관리자 2016-08-07 1611
445 요한복음 [2016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김태영) 관리자 2016-07-31 2028
444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8강]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니.. 관리자 2016-07-24 2152
44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7강]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16-07-17 2094
44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6강]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관리자 2016-07-10 1698
44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5강]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16-07-03 1941
44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4강]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관리자 2016-06-26 2112
43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3강]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관리자 2016-06-19 1957
43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2강] 이방의 빛 관리자 2016-06-12 1941
43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1강]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관리자 2016-05-29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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