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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03 (일) 13:19
분 류 고린도전서
첨부#1 2016_부활절특강3강-1(고영훈).hwp (64KB) (Down: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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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부활절 특강 제3강]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2016년 부활절 특강 제3강                                                                    고영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말씀/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고린도전서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지난 주 말씀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과 죽은 자의 부활이 반드시 있음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가운데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인 동시에 부활을 믿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땅에 살면서 장차 맞이하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을 소망하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영광스러운 부활(35-49)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 말씀에서 부활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둘째는,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썩어서 형체가 없어지고 화장을 한 경우 한 줌의 재만 남게 되는데 어떻게 새로운 몸을 입을 수 있는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또 부활의 몸을 생각할 때도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부활할 때는 어떤 몸을 입는가? 죽을 때의 모습인가, 가장 젊었을 때의 모습인가, 어려서 죽은 아이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지금같이 못 생긴 모습으로 똑같이 부활한다면 평생 자신의 외모 때문에 운명주의에 빠져 살았는데 부활하고도 영원히 열등감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 등등 많은 질문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자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은 식물의 씨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씨는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씨는 흙에 뿌려져서 죽어야 새싹이 나고 새로운 형체로 살아나 자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죽은 몸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몸이 죽어야 새로운 형체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능히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십니다. 둘째, 씨는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알맹이인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죽어서 살아나게 되면 온갖 다양한 식물들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이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체에도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새의 육체, 물고기의 육체들이 있습니다. 공중의 새는 하늘을 날기에 적합한 육체를 가졌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기에 합당한 육체를 가졌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들이 있고 땅에 속한 형체들이 있습니다. 그 형체들마다 그만의 영광이 있는데 다 다릅니다. 해는 강렬함이 있고 달은 그윽함이 있으며 각 별들마다는 각자의 영롱함이 있습니다. 이상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비슷한 모습의 씨를 뿌리지만 하나님이 각 종자마다 다양한 형체를 주시듯이, 또한 하늘과 땅에 속한 형체들이 다 다르고 그 영광들이 다 다르듯이, 하나님은 그처럼 부활의 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일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씨가 죽으면 하나님이 새로운 형체를 주시듯,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 할 때 어떠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까?
첫째, 썩을 몸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썩을 몸입니다. 여기서 ‘썩는다’는 원어는 ‘파멸, 파괴, 부패’라는 뜻입니다. 지금 나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갑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여기저기 고장이 납니다. 엔트로피 법칙처럼, 젊음도 아름다움도 혈기 왕성함도 한 때입니다. 때가 되면 죽어서 묻히고 썩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부활할 때에는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영원히 변함없는 신령한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몸이 우상인 시대입니다. 온통 건강, 외모, 아름다운 몸을 만들고 가꾸는 것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꾸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세월이 지나면 다 망가지고 결국 없어지게 됩니다. 썩을 몸은 우리의 소망이 아닙니다. 지나고 나면 과거는 한 장의 사진의 추억일 뿐이듯이, 지금 우리의 이 몸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 우리는 늙지 않고 병들지도 않고 쇠하여지지도 않는 영원히 썩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둘째,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욕됩니다. ‘욕되다’는 말은 ‘불명예, 수치, 치욕’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오욕칠정에 얽매여 있는 몸입니다. 죄의 욕망에 종노릇합니다. 온갖 부끄러운 일을 행하고 배설하고 병들면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으나 내안에 있는 죄의 욕망이, 육체의 욕망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사랑하고 싶으나 미워하고 시기심에 사로잡히고, 거룩하고 싶으나 더럽고 추한 정욕의 욕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 할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게 됩니다.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 몸을 입게 됩니다.
셋째,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흙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몸은 약합니다. 그러기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병에 걸립니다. 작은 바이러스에 앓아 눕고 심지어 죽기도 합니다. 마음의 병, 정신의 병에도 걸립니다. 병원마다 아픈 환자들로 가득차고 있습니다. 지금은 젊음을 자랑하지만 점점 갈수록 아픈 곳이 생기고 고통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에 강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병들지 않는 몸, 죽지 않는 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몸,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예수님의 부활의 몸처럼, 더 이상 아픈 것이 없는 몸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1:3,4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넷째,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육의 몸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의 몸입니다. 그러나 장차 부활하게 될 때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육체를 ‘묻는다’ 하지 않고 ‘심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심는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심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도 씨를 묻는다 하지 않습니다. 씨는 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썩을 몸을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심지 않고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에 드렸습니다. 바울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존재였습니다(롬7:18,19). 그는 죄를 짓는 자신을 가리켜 사망의 몸이라고 말하였습니다(롬7:24). 그는 그런 자신의 몸을 가꾸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전하는데 전부 다 드렸습니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는 죽을 것도 각오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전 생애를 예수님을 알아나가고 나타내는 데 심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의 육체는 비록 초라해지고 죽었지만, 그의 존재는 영광스럽게 되었으며 많은 영적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몸을 아무리 아끼고 아낀다 하더라도 결국은 죽고 썩어 버립니다. 육체는 죄악 되어서 육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욕심대로 살다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또한 육체는 약하여서 온갖 병에 걸려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 육신을 잘 아끼고 보존한다고 하더라도 때가 되면 생명이 사그라들어 죽게 되어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육의 생명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 안에 심으면 장차 영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 썩을 생명을 심으면 썩지 않을 생명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처럼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것을 위해 심을 줄 아는 가치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바라보며 날마다 예수님 안에 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알아 나가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사는 신자들이야 말로 이 땅에서 가장 올바르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지혜로운 자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45-49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대조하며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a living being)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2:7).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a life giving spirit)이십니다. 첫 사람 아담은 육의 사람이고 마지막 아담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즉 흙에서 만들어 졌으니 흙에 속한 자이고 둘째 사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습니다. 흙에 속한 자들, 즉 지금 육의 몸을 입고 있는 우리는 저 흙에 속한 자, 첫 사람 아담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 즉 부활의 몸을 입게 될 우리는 저 하늘에 속한 이인 예수님과 같게 됩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는 것 같이 또한 장차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으로서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무기력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도 생명력을 줍니다. 현재 이 땅에서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야 할 자들은 청년들일 것입니다. 이 청년들에게 세상을 잘 살아가는 처세술을 가르쳐 주고, 최근에 관심을 끌고 있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같은 능력을 탑재한다 하더라도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흙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한계적이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life-giving spirit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life-killing spirit인 사탄을 만나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캠퍼스에서는 거짓의 영을 교묘하게 전하는 세력들이 득세하여 순수한 영혼들을 미혹하며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어린 영혼들은 아직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눈 먼 양과 같이 유혹하는 대로 이끌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캠퍼스 영혼들을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를 캠퍼스 목자들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열심히 돕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책임감을 갖고 도와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교수님이나 선배들, 부모님조차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합니다. 우리도 과거에 목자님들을 통해 캠퍼스에서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을 만나 살아나고 이제는 예전의 나와 같은 자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번 주부터 캠퍼스 영혼들을 위한 귀한 봄학기 성경 학교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임에 진리를 몰라 방황할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초청하도록 명하십니다. 이번에는 특히 교수 목자님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잘 알아듣기 쉽게 강의 형식을 도입하여 아주 이해가 잘 되게 말씀을 전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임을 사명감을 갖고 잘 섬겨 한 영혼이라도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모임을 위해 간절히 합심기도하고 적극적으로 학생 양들을 초청하여 풍성한 생명 구원 잔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최후의 승리(50-58)
  사도 바울은 ‘어떻게 다시 사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하기에 앞서 변화되어야 할 필연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지금 혈과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구에서 살도록 된 몸을 가지고 우주 공간에서 살 수 없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려면 혈과 육인 우리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납니까? 5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바울은 마지막 날, 즉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일어날 비밀(mystery)에 대하여 말합니다. mystery(비밀)는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신비스러운 것을 뜻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일은 신비스러운 일이요,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다가는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만이 간직할 수 있는 비밀 그 자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스러운 것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밝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재림의 때 어떤 이들은 죽어 잠자고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살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순식간에 홀연히,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변화됩니다. 곧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 먼저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우리도 변화됩니다. 이 날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바울은 이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이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한 확신을 말합니다. 5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이 약하고 욕된 썩을 몸은 반드시 강하고 영광스러운 신령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망입니까! 그 때 어떤 말씀이 이루어집니까? 54,5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 때에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은 이사야서 25:8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삼킨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괴물과 같습니다. 그 어떤 대단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권세 앞에서는 벌 벌 떨 수밖에 없습니다. 비참하게 그 권세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모든 인생들이 결국은 죽음에 삼킨바가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의 그 날에는 사망이 삼킨 바가 됩니다. 바울은 호세아서 13:14절을 인용하여 죽음에 대한 승리를 노래합니다. 다함께 큰 목소리로 55절을 외쳐 보겠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늘 인생들 위에 승리자였습니다.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그날 우리는 쓰러진 원수를 밟고 승리를 외치듯이 그렇게 승리를 외칠 것입니다. 사망의 쏘는 독화살은 아주 강력합니다. 사람이 이 사망권세에 찔리면 맥을 못 춥니다. 사망권세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벌벌 떱니다. 깊은 허무와 무의미 염세주의에 빠져 죽은 자와 같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사망의 쏘는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믿음과 소망이 충만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망권세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영광스러운 소망과 확신가운데 바울처럼 사망권세를 향해 승리를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절을 보십시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죄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찔러서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쏘는 것입니다. 로마서 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온갖 죄에 쏘이고 찔려서 병들고 고통하며 살다가 결국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에 있습니다. 율법이 있기에 죄는 죄인을 정죄하고 죽음과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죄에 종노릇하는 삶을 살다가 사망에 이르고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속량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의 약속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을 뭉개버리셨고, 죄의 권세를 무력하게 하셨고, 사망을 정복하셨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사망에 대하여 승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크신 은혜에 대하여 예수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 같이 5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첫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부활이 없다는 자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소망과 쾌락을 좇아 사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고 나도 좀 세상과 타협해서 인생을 즐기며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속지 말고 부활신앙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부활의 믿음과 소망위에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둘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의 뜻을 좇아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몰라 사탄에게 종노릇 하며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 주님의 일을 섬기느라 많은 수고와 아픔을 감당합니다. 특히 새벽잠을 부인하고 일찍 나와 기도하는 일은 수고롭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내가 드린 수고가 헛되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확신 있게 증거합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됩니다. 한번 뿐인 인생과 젊음인데 이렇게 희생하고 순종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기에, 부활의 영원한 미래가 있기에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신앙을 마음에 품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 삶에서 부활신앙이 없이 살았던 제게 이번 말씀을 허락하셔서 말씀을 준비하며 큰 은혜를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2011년 신년 수양회를 기점으로 하여 저는 날마다 새벽 기도를 한 시간 이상하기로 결단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기도 응답의 체험을 한 후 더욱 큰 소원을 가지고 저녁에도 한 시간 기도하고 낮에도 틈틈이 기도하기를 시도함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체험하는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약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될 법도 한데 날마다 자기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약한 죄의 부분에 대해 회개기도하며 능히 이길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데도 막상 실제 삶에서는 반복하여 같은 죄를 짓는 약한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치과에서도 하나님을 잘 믿는 원장으로서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온유와 겸손과 친절로 잘 섬기려 마음 굳게 먹지만 진상 환자만 보면 속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올라 감정대로 행할 때가 많았고 직원들의 작은 실수와 허물도 참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막내 직원 고은진 위생사가 마음고생이 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도 팀 동역자들과 잘 동역하며 이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면서 합심 동역의 그릇을 잘 이뤄보고자 하였지만 못마땅한 부분이 보이면 감당해 주기보다 무관심하여 내 할 일만 잘하고자 하여 동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의 약한 육의 몸의 상태를 잘 깨닫게 되었고 현재는 육의 몸을 입고 있어 모든 것이 다 약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니 정죄감에서 해방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비록 부족한 자이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안에 저의 삶을 심고자 할 때 장차 부활의 소망가운데 하늘나라에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만이 참된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이 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몸은 점점 더 약해지고 썩게 될 것이지만 제가 부활의 소망을 간직할 때 이 땅에서 조금 더 잘 지내보고자 하는 것에 점 점 미련이 없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지금까지 제가 드렸던 기도의 투쟁이나 주의 일을 감당했던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앞으로 제가 이 부활신앙을 굳게 붙들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한 번 뿐인 인생을 예수님 안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흙에 속한 우리가 살려 주는 영이신 예수님 안에 심겨질 때 이 땅에서도 생명력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며 장차 마지막 날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갖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더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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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6강] 로마의 셋집에서 관리자 2016-09-25 1850
45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5강]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관리자 2016-09-18 1624
45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4강]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서삼문 2016-09-11 1677
45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3강]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관리자 2016-09-04 1635
44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2강]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관리자 2016-08-28 1860
44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1강]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관리자 2016-08-21 1737
44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0강]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관리자 2016-08-14 1606
446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9강]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바울 관리자 2016-08-07 1611
445 요한복음 [2016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김태영) 관리자 2016-07-31 2028
444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8강]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니.. 관리자 2016-07-24 2152
44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7강]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16-07-17 2094
44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6강]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관리자 2016-07-10 1698
44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5강]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16-07-03 1941
44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4강]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관리자 2016-06-26 2112
43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3강]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관리자 2016-06-19 1957
43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2강] 이방의 빛 관리자 2016-06-12 1941
43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1강]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관리자 2016-05-29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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