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6-22 (일) 12:49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20-1(최동진).hwp (64KB) (Down:248)
ㆍ추천: 0  ㆍ조회: 2921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최동진

마음을 깨끗하게

말씀/ 마태복음 15:1-20
요절/ 마태복음 15:19,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오늘 말씀에서는 전통의 형식을 중시하는 종교지도자들과 본질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충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떡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음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영적 지도자로 부름 받은 우리가 진정으로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1-9)
  1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허물을 찾아내기 위해 파견된 종교경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분개하면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2)” 손을 씻는 습관은 좋은 것입니다. 특히 여름철에 급증하는 식중독이나 장티푸스, 유행성 결막염 등의 질환은 주로 손을 통해 전파되고 감염되기 때문에 손만 깨끗이 잘 씻어도 감염율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있어서 떡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전통은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가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야 하는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성문법인 모세오경 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구전 율법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기록된 계명은 원리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세세하고 복잡한 현실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부터 유대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 자료들을 중심으로 세세한 생활 규칙들을 정비하여 집대성한 것이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한편 B.C. 300-A.D. 800년 사이에 이런 구전 율법을 문서화한 것이 탈무드입니다. 탈무드는 내용상 율법의 세부 규정을 담은 미쉬나와, 미쉬나를 해석한 게마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쉬나는 총 63권으로 구성된 광대한 분량으로서 농업, 절기, 결혼, 법, 예배, 정결의식 등 삶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님의 규례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규례를 철저히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 물이라면 장로들의 전통은 포도주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음식 먹기 전에, 또 외출하거나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손을 씻는 결례예식을 행하였습니다.(막7:4) 이는 부지중에 부정한 것에 접촉하여 더러워진 것을 씻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전통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고자 애쓰는 열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식사 전에 손을 씻건 말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제자들은 복음역사를 섬기느라 항상 배가 고프고 바빴기에 손을 씻을 겨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들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바리새인들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불경건한 죄를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한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더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음을 깨우쳐주셨습니다. 곧 전통으로 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계명은 십계명과 각종 율례를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 전통이란 본래 계명을 잘 지키려는 선한 동기로 만들었으나 그들은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대표적인 예로 ‘고르반’전통을 드셨습니다. 고르반 전통은 본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먼저 섬기고자 하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출21:15)”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부딪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고르반은 이런 상황에서 십계명의 가장 상위법인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법에 먼저 순종하도록 함으로 질서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핑계를 대며 부모에게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르반 전통을 악용하여 부모에 대한 의무를 회피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지켜야 할 사람이 지키지 않거나 잘못 지키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은 희미해지고 외형적인 형식을 중시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장로들의 전통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섬기는 척도가 되어 자기 의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런 오류에 빠져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기 위해 만든 전통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역효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이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근본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7-9절을 보십시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부르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란 위선자란 뜻으로서 배우가 연기하듯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헛되이 경배한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였지만 전통의 형식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여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겉으로는 부지런히 손을 씻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경건한 모습을 하였지만 내면은 온갖 탐욕과 방탕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만 신앙생활 하는 전형적인 구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게 종교지도자들은 영적 도덕적 높은 수준을 요구받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냥 넘어 갈수 있는 작은 실수나 허물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비난을 받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외식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핑계대고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전통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고 있는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경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전통을 따라 손을 씻기보다 마음을 씻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지 못할 때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이 시대 영적지도자로 부르심 받은 자로서 내면을 더 살피고 내적 성장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임 가운데에도 많은 좋은 전통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1대1 말씀공부와 소감 쓰기와 일용할 양식 먹기입니다. 우리는 “내 양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양을 먹여왔습니다. 우리가 없는 시간을 투자하여 1대1로 양을 먹이는 이유는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들의 생명보다 1대1 몇 팀 했는가를 더 중요시한다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소감을 쓰는 목적도 말씀 앞에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회개하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말씀을 내 속에 심기 위한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도 매일 아침 첫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한 마디 말씀을 영접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순종함으로 믿음의 삶을 살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래 의미가 변질되어 형식적으로 소감을 쓰고 일용할 양식 횟수를 채우는 데에 급급해 한다면 형식만 남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전통이 우리를 구원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내용이 빠진 채 형식만을 지킬 때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본질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가 늘 살펴야 합니다. 소감을 쓰거나 일용할 양식을 먹을 때에도 한 마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데에 초점을 두고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절대 기준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전과 소망을 덧입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기에 힘쓰고 말씀을 통해 생명력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II. 손보다 마음을 깨끗이(10-20)
  예수님은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신 후 무리들을 불러 듣고 깨닫도록 말씀하십니다.(10) 11절을 보십시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에 기록된 대로 부정한 음식이 사람 입으로 들어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럽게 한다는 것은 저속하게 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부정한 음식에 대한 율례를 주신 것은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먹는 문제에 얽매여 아무것이나 막 먹는다면 저속하게 보이고 좋지 못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연단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건강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부정한 음식을 먹는 자체로 불경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유다이즘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루는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비몽사몽이 되어 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레위기에 기록된 부정한 짐승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즉각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반응하였습니다.(행10:10-14) 그는 무의식에서조차 부정한 음식 먹기를 거부할 정도로 뼛속깊이 유대의 전통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부정한 것을 먹는다는 것은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오랜 기간 흘러 내려오면서 형성된 전통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통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는가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또 청정 무공해 자연식을 먹는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 깨끗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고급 호텔에 가서 값비싼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올라가거나 고상해지지 않습니다. 정말 문제되는 것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을 가리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타락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잘못된 인격에서 나온 말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고 걸림이 되었다는 것은 화가 나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리새인들을 화나게 한 것으로 인해 걱정하였습니다. 그들이 화가 난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의 전통에 도전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그들이 중요시 여기던 전통을 깔아뭉갠 것이었습니다. 당시 전통을 지키는 것은 유대 사회를 움직이는 막강한 힘이었기 때문에 이에서 벗어나거나 반역하는 것은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과 비슷하지만 사람이 만든 것이지 하나님이 심으신 것이 아닙니다. 손을 씻는 전통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만든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 전통은 아닙니다. 손을 씻지 않는다고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다음 세대에 가면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것, 곧 사람이 심은 것은 역사 속에서 뿌리가 뽑히고 결국 그런 전통은 사라지게 됩니다. 내용이 없는 전통, 본래 정신이 빠진 전통,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전통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으신 말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약해보이지만 절대로 뽑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는 핍박을 받을수록 그 뿌리가 점점 깊어지게 됩니다. 결국 다른 것은 다 뽑히고 진리의 복음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우리가 캠퍼스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지만 보이는 열매가 적어서 거대한 세상 세력에 눌려 헛수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친히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전통보다 그 뿌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말씀만이 영원함을 믿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맹인이 스스로 눈을 뜰 수 없듯이 오랜 기간 전통에 매여 살던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복음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베드로가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아직 깨달음이 없느냐(16)” 책망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 그 의미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뱃속에 들어가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고 뒤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육신의 건강에만 영향을 미칠 뿐, 마음과 인격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예배 후에 점심식사하시기 전에 손 씻으시는 분 계십니까? 조금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고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손을 깨끗이 씻고 먹는다고 사람이 깨끗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음식이든지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집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깨끗이 정제된 후에 나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은 십계명의 6에서 9계명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내면세계의 현주소를 나타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하였습니다.(렘17:9)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그 마음은 부패하여 이렇게 더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부패하고 더러우면 자기의 영혼도 더럽히고 다른 사람들도 오염시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또한 이는 한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캠퍼스와 사회 전반에 끼치는 해악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더러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잠언 4:23절에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삶을 통해 얻은 체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솔로몬은 영육간에 누구보다도 큰 축복을 받고 풍요를 누렸지만 마음을 지키지 못했을 때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락하여 후손들에게 비극적인 역사를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손이 더러워지면 물로 씻으면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더러운 것은 손을 씻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겉으로 거룩한 척 하고 손을 열심히 씻어도 더러워진 마음까지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23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또 시편119:9절은 말씀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우리가 과거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거짓된 마음을 가진 본질상 진노의 자식에서 구원받고 거듭나게 된 것이나, 또 구원받고 난 후에 우리의 내면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깨끗하게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장로들의 전통을 엄격하게 지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을 때 구신자가 되어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 나의 더러운 마음을 살피고 죄를 고백함으로 죄 씻음 받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롬3:10) 그 누구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손을 씻는 것 이상으로 열심을 내어 마음을 깨끗케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자신의 죄 문제를 예수님 앞에 들고 나가 진실되게 회개함으로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이 본성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히브리서9:14절은 말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의 보배 피는 어떤 몹쓸 죄인의 죄도 없이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나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만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셋째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디도서3:5절은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의 더러워진 마음이 깨끗케 되는 것은 지은 죄를 잊어버리거나 감춘다고 되지 않습니다. 나의 죄는 늘 나의 양심을 찌르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므로 죄의식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지하여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면, 이제까지 늘 나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듯이 이제도 나를 받아주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캠퍼스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부르심 받은 자들로서 원하던 원치 않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지도자로서 많은 십자가를 맡고 여러 가지 일에 얽매이다보면 전통과 형식을 지키기에 급급하여 나도 모르게 외식하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회개하기에 용감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보혈로 죄 씻음 받음으로 마음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 내적인 투쟁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나의 내면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고 믿음의 향기가 드러나게 되고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제가 외적 투쟁은 잘하지만 내면적인 투쟁에 힘쓰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시니어 목자의 체면 때문에 소감을 감당하고 일용할 양식도 주 7회 횟수를 채우기 위해 감당하고 양식을 먹었다는 자체로 만족해하였습니다. 그럴 때 말씀이 내 안에 살아있지 못하고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 주인노릇 할 때가 많았습니다. 몸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마음은 세상으로 향하여 있었고 세상 욕심을 좇아 행하곤 하였습니다. 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음식을 절제하고 식단에 신경을 쓰며 운동에 열심을 내었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영적인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생각을 절제하고 회개하고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고자 투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저의 삶에서 경건의 능력이나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 시대 캠퍼스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부르심 받았지만 마음을 살피기보다 외적인 것에 더 신경쓰며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았음을 이 시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제가 간절한 마음으로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회개하기에 힘쓰며 마음을 성결히 지키는 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구체적으로 한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말씀의 인도함을 받으며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많은 전통들의 본질을 지키면서 계속 이어지게 하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들로 성숙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전통의 형식주의를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주십니다. 손보다 마음을 씻는 진실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우리를 포장하고 있는 외식과 위선과 거짓된 모습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배피로 정결케 되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원을 붙들고 말씀을 지키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적 지도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가운데 죄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53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3강]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관리자 2016-01-24 2968
552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5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관리자 2014-08-03 2965
551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1강]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리스닝 2010-07-25 2961
550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6강]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관리자 2015-11-01 2960
549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3강] 온전한 사람 관리자 2012-02-05 2959
54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8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리스닝 2010-07-04 2959
547 다니엘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2강] 뜻을 정한 다니엘 관리자 2015-08-23 2951
546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8강] 바벨탑 관리자 2013-05-12 2951
545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4강]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관리자 2017-07-16 2944
544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2강]이방의 빛으로 삼아 관리자 2011-01-16 2944
543 이사야 [2014년 신년 제7강] 이방인을 예물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4-02-23 2939
542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9강] 너는 복이 될지라 관리자 2013-05-19 2939
54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관리자 2019-07-14 2936
540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1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6-01-10 2928
539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10강]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5-12-27 2928
538 마태복음 [2015년 성탄 메시지] 내 백성의 목자가 되리라 관리자 2015-12-20 2924
53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4-06-22 2921
536 이사야 [2014년 신년 제5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1 관리자 2014-01-26 2920
53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6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서삼문 2011-10-16 2918
534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5강]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사가.. 관리자 2011-02-06 2910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