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03 (일) 13:23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25강-1(고영훈).hwp (54KB) (Down:231)
ㆍ추천: 0  ㆍ조회: 2974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25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2014년 마태복음 제 25 강                                                                     고영훈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말씀 / 마태복음 20:1-16
요절 / 마태복음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께서 이번 여름 수양회를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풍성한 말씀을 듣게 하시고 잘 깨닫게 도와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고백하게 하시고 이 예수님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의 도리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제자의 도리를 잘 감당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19:30절 말씀의 뜻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주신 포도원 품꾼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특히 부자 청년과 비교하며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자랑하는 제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형태로 복음역사에 사람들을 부르시고 각 각 인격적으로 합당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시간 복음의 일꾼이 가져야 할 부르심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끝까지 잘 감당하는 주님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1-7)
  1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당시 이스라엘의 하루 일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열두 시간이었습니다. 주인은 기름진 땅에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든 후 일꾼들을 찾으러 아침 일찍 나갔습니다. 당시 일꾼들은 장터에서 자기들을 써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나온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찍 나온 이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또 조금 있다 제 삼시, 즉 아침 9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금 게으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에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늦잠을 자다가 부랴부랴 장터로 나왔습니다. 주인은 이들에게도 상당한 품삯을 주리라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제 육시(낮 12)에 나온 사람들은 인생을 좀 방황하다가 나온 사람들이었고 제 구시(오후 3시)에는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아무런 열매도 없어 늦은 시간에 혹시나 하고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은 이들도 똑 같이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십일시(오후5시)에도 나가보니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물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하며 놀고 있는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고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때 이 사람들은 분명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다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부족한지, 아니면 성격 장애가 있어 사람들과의 화합이 잘 안되었는지, 전과자로 낙인이 찍혔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직장에서도 이들을 써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한 창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나를 써 줄 사람이 없다’는 고백처럼 비참한 말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뽑을 때 능력, 학벌, 외모, 인맥, 나이, 과거 경력, 건강, 성격까지 일일이 까다롭게 따지며 특별한 사람을 골라 채용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은 이런 인간조건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나 다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고 초청합니다. ‘아무나 누구나 와도 좋소’ 주인이 마지막 일꾼에게 한 시간만 일을 시키고 하루 품삯을 다 준다는 것은 분명 손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하루 종일 놀고 서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기 포도원에서 일을 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주인이 일꾼을 부르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단지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일꾼을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이들을 부른 것도 아닙니다. 일꾼들이 열심히 포도원에서 일을 함으로써 인생에 행복을 누리도록 그들을 위해 부른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사명인의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할 일 없이 놀고 지내면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불안과 허무에 시달려 괴로운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사명을 감당 할 때 사는 보람을 느끼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창1:28) 그러나 죄로 타락한 사람들은 인생을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놀고먹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믿는 자들조차 사명인의 삶을 살지라도 남들보다 좀 더 편안하게 덜 힘든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은혜 받은 인생이라고 오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들은 당장에는 편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을 결산할 때보면 이런 삶은 저주받은 삶이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행복하고 복 받은 인생이란 일생을 바쳐 감당할 사명이 있는 인생,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일을 하겠다 하는 그런 귀한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 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캠퍼스 개척역사는 복음 역사 가운데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합니다. 캠퍼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년들의 집합소요 인력저수지입니다. 이 귀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 구원에 이르게 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여 장차 지도자로 키우는 사명이야 말로 참으로 귀한 직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귀한 사명을 우리에게 친히 맡겨 주셨습니다. 캠퍼스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입니까?
  저도 과거에 학창시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캠퍼스에서 이리 저리 방황할 때 하나님은 저를 친히 찾아와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제주도 고씨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장차 집안의 대소사를 앞장서서 섬기며 고향에서 조용히 살 자였습니다. 이곳에서 치과를 차리고 주변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소시민적으로 그럭저럭 살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캠퍼스에서 조금 이른 시간인 대학 2학년 1학기에 찾아오사 캠퍼스 포도원에서 하나님을 배우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사명인의 삶이 힘들고 고단하여 왜 하필 이렇게 십자가가 많은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며 불평할 때도 많았습니다. 집안의 거센 핍박과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격려하시고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더욱 더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제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니 사명인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 드리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50이 넘으면 인생에 아무런 낙이 없이 처한 현실에 순응하며 서서히 황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젊은 시절부터 감당해 온 고귀한 사명이 있어 지금도 청년처럼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며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이 번 여름 수양회를 준비할 때도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로 역사 환경을 만들며 수양회 역사를 앞장서서 섬길 때 영혼의 참 만족을 느끼며 사명인의 삶이 참 행복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또한 수양회 기간 동안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우리 목자님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예수님 앞에 죄를 내려놓고 신앙 고백하며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하였을 때 참으로 사명인의 삶에 대한 보람과 긍지와 감사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이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혼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남은 여생도 힘이 있어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 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캠퍼스 포도원에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비천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캠퍼스 포도원에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불러주신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젊은 시절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열심히 감당하도록 고귀한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II.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8-16)
  날이 저물자 주인은 약속한대로 품삯을 계산하고자 품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8) 그런데 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 온 자로부터 품삯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품삯은 단순히 일한 대가라기보다 은혜로 받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청지기는 이들에게 약속한 대로 각각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9) 여기서 품삯은 ‘구원’에 해당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의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인이요,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라고 자기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만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를 믿는 자는 누구나 은혜로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요3:16)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야 말로 평생 잊어서는 안 될 감사제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먼저 온 자들이 볼 때 한 시간만 일한 자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에게는 분명 품삯을 더 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기들에게도 한 데나리온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한 시간만 일한 자들과 이른 새벽부터 수고와 더위를 견디며 하루 종일 일한 자기들을 똑같이 대우한다고 주인을 원망하였습니다.(12)
  이들에 대한 주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주인은 먼저 온 자들에게 본래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기 때문에 다른 일꾼들과 비교하여 손해의식으로 주인을 원망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나중 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줌으로써 손해를 보아도 주인이 본 것이지 먼저 온 일꾼들은 전혀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포도원에 들어온 자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주인의 마음이요 주인의 선한 주권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는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은 자기 소유를 주인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은혜 베푸는데 똑같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주권적 은총’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먼저 온 자들은 선하신 주인, 즉 너그러운(generous) 주인의 마음을 모르고 악하다고 시기(envious)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중 온 자들과 비교하며 속이 좁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먼저 온 자든, 나중 온 자든 단지 은혜로 품삯을 받은 것입니다. 먼저 온 자가 품삯을 적게 받았다고 불평을 할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먼저 온 자는 일찍 좋은 주인을 만나 좋은 포도원에서 열심을 다하여 일하므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먼저 불러주신 주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나중 온 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서 아무도 써주지 않는 자격 미달인데도 선하고 너그러운 주인을 만나 좋은 일터에서 훌륭한 선배 일꾼들과 동역하며 일하였으니 두말 할 것 없이 큰 은총을 받은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서로 간에도 은혜를 주고받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먼저 온 자들이 더운 낮에 땀 흘려 수고한 것이 사실이지만 막판에 지치고 피곤하여 힘이 다 하였을 때 나중 온 자들이 함께 동역하여 일을 잘 마무리 해줌으로써 책임을 완수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역사는 처음에 개척자들의 수고와 땀으로 기초가 놓이기는 하지만, 이어서 나중 온 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잘 동역함으로써 계승 발전되는 것입니다. 개척자들은 개척하느라고, 또한 마무리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수고하며 애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가 잘 동역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일찍 나온 성실한 사람이든, 막차를 탄 지각생이든, 부지런한 사람이든, 게으른 사람이든, 악한 자나 세상에서 방황하던 자든지 인간조건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나오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먼저 된 자’는 분명 한번 뿐인 인생을 촌음을 아껴 의미 있는 일을 위해 헌신하고자 길을 찾아 나선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들이 늦잠 자며 인생을 허비할 때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부인하고 일찍 일을 찾아 나섰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주인을 만나 좋은 관계성을 맺고 포도원에 들어와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지도 않고 끝까지 견뎌낸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시간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았으나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하나님과 멀어져서 나중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는 더 많은 삯을 받아야 하고 인정받고 대우 받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가장 오래 신령한 교제를 나누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신앙의 선배요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된 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품고 나중 온 자들을 잘 섬겨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성숙한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중 된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르심에 대한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중 온 자는 아무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불러주신 그 자체가 감사하여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먼저 온 자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대낮에 땀 흘리며 고생스럽게 일하다보니 자기 의가 생겨서 부르심이 은혜가 되지 못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잘 나서, 부지런하여서, 성실해서, 능력이 많아서 택함 받았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기에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자기 의를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자기 의가 생겨날 때 감사보다 불평과 원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먼저 온 자들도 손해 본 것 없이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무 자격 없지만 일방적인 부르심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요, 부족하지만 이날까지 해고당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은혜였습니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주인과 교제하며 배우는 은혜와 특권은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개척 사명을 감당하느라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하며, 배고프고 헐벗고 자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처럼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이런 수고도 오직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15:10) 바울은 힘든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범사에 감사하였습니다. 먼저 부르심 받은 자가 범하기 쉬운 죄가 바로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기 자랑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의 은혜는 자기 자랑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를 늘 간직하고 감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처음 부르심 받았을 때의 은혜와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르신 그 부르심의 의미를 잊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할 일 없이 되는 대로 비참하게 살 자를 일방적인 은혜로 불러 주셔서 아름답고 광대한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하신 은혜를 늘 마음에 간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먼저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그 동안 땀 흘려 고생하며 사명을 열심히 감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왜 더 많이 고생해야 하느냐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여 부르심의 은혜를 잘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르심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항상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처음 주인이 부르셨을 때는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이들이 주인과의 관계가 좋았을 때는 한 낮에 땀이 비오듯 하며 일할 때에도 입으로는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일을 했고, 일이 힘들고 지칠 때에도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고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꾼들이 계속 새롭게 들어오면서 늦게 들어온 이들과 비교하다보니, 포도원에 들어온 시간을 비교하였고, 수고하며 흘린 땀의 양을 비교하고, 결국에는 주인과 약속한 품삯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다른 일꾼들과 비교의식에 완전히 사로 잡혔을 때 모든 것을 품삯으로만 계산하게 되는 물질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먼저 온 개척자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힘들어지는 경우를 살펴보면 나중 온 자에 대한 비교의식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반발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개척자로서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는데 나중 온 자와 똑같이 대우 할 수 있는가 하며 자신을 특별대우 해주지 않는 것을 불평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형은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순종하여 다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아버지의 사랑을 간섭으로 여기며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재산을 미리 달라 하여 먼 나라로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재산 다 탕진하고 거지꼴로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때 큰 형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 집에서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해 왔건만 한 번도 융숭한 대접을 못 받았는데 창기와 함께 아버지 재산을 먹어버린 동생에게는 큰 잔치를 베푸는 것이 도저히 영접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맏아들을 부드러운 음성으로 잔치에 초청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31,32)
  하나님은 나에게 최고의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나중 온 자에게도 그와 약속한 최고의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개척자는 개척자대로, 중간에 들어온 자는 그들대로, 막차 타고 들어온 자는 그들대로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자 인격적으로 그에게 합당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와 비교의식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르심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서 먼저냐, 나중이냐 순서를 따지지 않고 모두가 ‘먼저 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와 그 동안 베푸신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주님 안에서 먼저 된 자가 받은 복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캠퍼스 포도원에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포도원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며 이 땅에서도 인생의 풍성한 열매와 행복을 주는 일터입니다. 우리는 이 포도원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자신도 행복한 삶을 누리며 진정으로 복된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5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5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관리자 2014-08-03 2974
552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1강]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리스닝 2010-07-25 2974
551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3강]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관리자 2016-01-24 2973
55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8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리스닝 2010-07-04 2970
549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3강] 온전한 사람 관리자 2012-02-05 2966
548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6강]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관리자 2015-11-01 2963
547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8강] 바벨탑 관리자 2013-05-12 2963
54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관리자 2019-07-14 2961
545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4강]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관리자 2017-07-16 2959
544 다니엘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2강] 뜻을 정한 다니엘 관리자 2015-08-23 2953
543 이사야 [2014년 신년 제7강] 이방인을 예물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4-02-23 2952
542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2강]이방의 빛으로 삼아 관리자 2011-01-16 2951
54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9강] 너는 복이 될지라 관리자 2013-05-19 2947
540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1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6-01-10 2939
539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10강]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5-12-27 2938
538 마태복음 [2015년 성탄 메시지] 내 백성의 목자가 되리라 관리자 2015-12-20 2930
537 이사야 [2014년 신년 제5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1 관리자 2014-01-26 2927
53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4-06-22 2925
53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6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서삼문 2011-10-16 2923
534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5강]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사가.. 관리자 2011-02-06 2919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