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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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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10 (일) 12:28
분 류 히브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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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히브리서 제11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2016년 히브리서 제11강                                                            이인구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말씀/히브리서 11:23-40
요절/히브리서 11: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유명한 전도자인 ‘디엘 무디'는 모세의 일생을 40년씩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처음 40년, 애굽의 궁중에서 왕자로 있을 때를 “i am somebody"시대 즉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청년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 40년은 광야에서 이름 없는 목동으로 쓸쓸히 살아가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I am nobody"시대 즉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에 쓰임 받는 노년의 모세로 “I am God’s body"시대입니다. 모세는 각 인생의 시기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의 믿음과 세상을 이기는 각종 선진들의 믿음에 대해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은 지극히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점점 늘어나는 히브리사람들로 인해 위기의식을 느낀 애굽 왕은 히브리인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시대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강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살아남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3달 동안 숨겨 키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난 아이인데, 평생 부모가슴에 못을 박을 아이인데 어떻게 아름다운 아이로 볼 수 있었을까요?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아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행7;20)임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는 어두운 시대 믿음으로 모세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크신 소망의 역사와 비전을 보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식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가문을 세우고 내 꿈을 이룰 내 자식으로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자녀가 우연히 주어진 나만의 자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 귀한 생명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부모에게 맡겨진 아름다운 생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식을 볼 때 고통과 슬픔을 주는 아이가 아닌, 아름다운 아이로 볼 수 있습니다. 모세 부모는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아이임을 깨달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천하보다 귀한 이 생명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믿음으로 세상 왕 바로의 명령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3달 동안 숨겨 키웠습니다. 또 나중 모세가 바로 공주의 아들로 궁중에 들어간 후에도 유모로서 모세를 키우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믿음의 가치관을 가르쳐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가운데 모세가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부모의 믿음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어리석은 부모는 자식에게 물질을 물려주고 똑똑한 부모는 지식을 물려주고 현명하고 믿음이 있는 부모는 신앙을 물려준다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믿음의 삶을 보여주고 물려주는 것은 자녀의 인생의 축복을 보장하는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이런 믿음의 부모의 영향력으로 자란 모세는 어떤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먼저 그는 거절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춘기가 와서 거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 왕자 자리를 거절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과 배경으로 보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로의 공주(핫셉슈트)는 무남독녀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이가 없어 고민했는데 생산의 신으로 믿고 있었던 나일 강에서 모세를 얻은 후 모세를 애굽의 왕자로 최고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모세는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탁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애굽과 에티오피아 사이에 전쟁이 났을 때 모세는 왕을 대신해서 애굽의 총사령관으로 출전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뛰어났던 모세는 나중 태양신인 왕의 자리에 올라 모든 권세와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장성하여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no라고 해야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뛰어난 사람들과 역사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거절할 것을 거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전에 ‘불의 전차’라는 영화로도 나왔던 육상선수 ‘에릭 리틀’의 실화입니다. 그는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영국선수로 100m 경주에서 가장 유망한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00m 경주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경주가 있던 날이 주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 예배를 포기하고 경기에 임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입니다. 영국의 많은 사람들과 언론은 그를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위선자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끝까지 신앙양심을 버리지 않고 결국 경기에 불참함으로써 세상 금메달의 영광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선 그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영국정부는 그가 뛰어난 선수라서 며칠 뒤에 그의 주 종목은 아니었지만 400mm경주에 출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400m에 첫 출전한 그를 들러리로 여겼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모세가 세상의 엄청난 특권을 거절한 것은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선택한 더 좋은 것은 노예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장성함에 따라 자신의 내면 속에 2개의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하나는 어릴 때 유모 즉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적 자아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하면서 바로 공주의 아들로 얻은 큰 세상영광을 체험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육신적 자아였습니다. 육신은 자신을 위해 왕이 되어 많은 영광과 쾌락과 안정을 얻기 바라지만 영혼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장성하면서 그에게는 믿음의 결단을 내릴 때가 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택한 선민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는 과거 믿음의 조상 요셉을 예로 들어 왕궁에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가 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그들을 위해 임대주택을 지어주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교육과 의료 시스템도 갖추어 줄 것을 공약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과거 총리 요셉의 높은 권위아래 적은 수의 야곱의 가족은 애굽에서 보호받고 큰 민족으로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과 모세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은 달랐습니다. 믿음은 자기 뜻과 생각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선 요셉에게 적은 수의 야곱의 가족을 애굽에서 보존하고 한 민족으로 번성시키는 사명을 주셨지만 모세에게는 그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장성하면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믿음의 눈으로 애굽 궁전의 죄악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밑에서 올려다 볼 때는) 지극히 화려하고 고상해 보이지만 그 내부는 온갖 음모와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궁이었습니다. 모세는 커갈수록 자신보다 어린 다른 왕자(투트모스3세)와의 피할 수 없는 정적관계를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무너뜨리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음란과 거짓이 판치는 곳이 왕궁생활이었습니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 태양처럼 영원히 힘과 낙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세는 믿음의 눈으로 잠시 죄악의 낙이 지나가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함께 하며 고난 받을 때 잠시의 고난이 지나가면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영원한 보화를 얻을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공주의 아들이 아닌 노예백성과 함께 하는 고난 받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천지를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선택은 보통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여론조사에서 고교생 56%가 10억을 가질 수 있다면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물질과 권력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까지도 배신하는 세상입니다. 여러분이 모세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은 것은 그리스도가 받는 수모에 비유됩니다. 모세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그림자로서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모세의 삶은 예수님의 삶의 예고편입니다. 예수님은 죄악된 인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모세가 부인했던 바로의 권위와는 비교되지 않는 하늘의 권세를 부인하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더럽고 누추한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또 모세의 어릴 때 사건도 예수님의 체험을 그림자로(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유대인의 왕, 메시아 탄생을 두려워한 포악한 헤롯왕은 2살 이하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부모는 믿음과 순종으로 모세를 보호해준 애굽으로 예수님을 피신시켜 목숨을 보존시킬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함으로 예수님께서 완성하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미리 체험하고 그 길을 예비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결국 거절과 선택이 인생이요 삶이요 믿음입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모세처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영접함으로 죄악된 길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하는 진실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모세와 같은 선택상황이라면 어느 길을 택했을까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왕이냐 노예냐의 극단적인 선택의 순간은 오지 않아 감사하지만 매일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육신의 본성을 따를 것인가? 의 선택상황은 자주 생깁니다. 새벽에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그냥 잘 것인가의 갈등은 매일 지속되지만 거의 육신의 본성을 따를 때가 많았습니다. 애타는 기도를 해야 할 만큼의 인생의 위기를 오지 않아 감사했지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묻지 않고 자기 생각과 습관대로 사는 삶 자체가 큰 위기임을 깨닫습니다. 최근 개업가 현실은 갈수록 악화되고 아이들은 본격적인 입시경쟁시스템으로 들어가는데 더욱 말을 듣지 않고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계속 나이만 먹어 내면에 알 수 없는 어둠이 임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아직도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불안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모세처럼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로 믿음으로 온전히 하나님 편에 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 위해 공주의 아들임을 부인한 모세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모세는 믿음으로 결단한 후 한 애굽 병사가 쇠약한 노예에게 무자비하게 채찍질하는 것을 보고 동족에 대한 연민과 정의감으로 한 방에 그를 쳐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백성들이 그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목숨 걸고 반란을 일으키고 하나님께선 강한 권능으로 (바로군대를 꺾고) 모세를 바로보다 높은 지도자로 세울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바로공주 밑에서 금수저로 식사했던 그를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고 모세는 살인사건이 탄로나 바로를 피해 광야로 도피하게 됩니다. 드러난 사건만을 보면 바로 왕에 대한 두려움과 백성들에 대한 배신감 속에서 광야로 도망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건을 믿음으로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를 도피하게 한 것은 바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의 인도자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위기의 순간에 도피하지 않고 인간적 의리와 혈기로 애굽에 버티고 있었다면 바로에 의해 처형당했을 것이고 그러면 그의 운명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역사도 큰 차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 몇 번에 걸쳐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피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자로서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성취해야 할 때가 왔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잔인한 고소자들 앞에 나서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도피한 후 40년 동안의 광야연단가운데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습니다. 모세가 인간 기초 없는 노예백성들을 출애굽시켜 40년 동안 거칠고 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선 인내의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모세의 인내의 믿음은 40년 광야생활가운데 체험한 것입니다. 왕궁에서의 40년은 지도자로써의 인간적 기초를 쌓는 과정이라면 광야에서의 40년은 하나님의 영적 지도자로써의 인간적 생각과 감정을 버리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차있는 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자신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고 오직 간절함과 인내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선하신 인도하심을 찾고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면 그것은 우선 먼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인생의 환란의 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 근원적인 불신에 빠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확신할 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의 시작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선 바로 왕에 대한 마지막 재앙으로 죽음의 사자가 장자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애굽을 돌아다닐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들은 그대로 넘어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전까지 양의 피를 뿌려서 구원받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한낱 어린 양의 피가 강한 죽음의 사자를 막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백성들에게 어린 양의 피를 뿌림으로 구원받도록 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제사 지낸 그 밤은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로부터 자유를 얻는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이 상징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지배아래 있던 노예백성들을 어린양의 피로 출애굽 시킨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노예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문설주에 뿌려진 어린양의 피가 애굽의 장자들이 죽어가는 밤에 유대인들을 보호했는데, 우리 마음에 뿌려진 예수님의 피는 어떤 죄인이라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모세와 백성들은 노예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 앞에는 시퍼런 홍해, 뒤에는 서슬퍼런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진퇴양란의 상황에 갇히게 됐습니다. 백성들이 믿음을 잃고 아우성쳤지만 모세는 담대히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모세가 믿음으로 지팡이로 바다를 치고 발을 내딛자 홍해바다 가운데 길이 열렸습니다. 반면에 애굽 사람들은 ‘노예백성들도 건너는데 우리 같은 훈련 받은 군대가 못 건너겠는가?’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홍해사건은 믿음 있는 자와 시험하는 사람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신자에게는 생명의 길이 불신자에게는 죽음의 길이 된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퉁이 돌이십니다. 그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지만 불신자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되십니다. 또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신자의 인생의 길을 여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막힌 길에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십니다. 이 길을 열 수 있는 내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이 길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바다에도 길을 내시고 하늘에도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고민하기보다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찾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저자는 이제까지 믿음의 선진들을 정리해보다가 앞으로 더 써야 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편지지도 부족하고 팔도 아프고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는 믿음으로 행한 일들을 총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2절에 언급된 믿음의 용사들은 대부분 사사들입니다.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타작 하던 두려움 많은 청년이었지만 큰 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도전했을 때 300명의 정예부대로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미디안 군사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바락은 여선지자 드보라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두려움에 떨던 마마 보이, 소심한 자였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을 때 담대한 믿음의 용사가 되어 드보라와 동역하여 큰 승리를 이루어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로 엄청난 힘을 가진 용사였지만 정욕으로 눈이 멀어 여우 같은 자매에게 마음을 빼앗겨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블레셋의 수많은 무리를 무너뜨린 용사로 쓰임 받았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요 서자 출신이었지만 나라의 위기의 때에 믿음으로 민족을 구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실수와 단점이 많은 보통사람들이었지만 믿음으로 운명과 인간조건들을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생 환란 앞에서 피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환란을 이기도록 도우셨습니다. 믿음이 그 인생을 변화시키고 내면과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놓고 환난과 고난에 대한 자세를 바꾸어놓았습니다. 33,34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행한 역사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고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하게 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음으로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하므로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창조하는 믿음의 용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어떻게 태어 낳느냐가 내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할 뿐입니다.  
 35-38절은 또 다른 믿음의 승리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들은 인생에서 상급을 받지 못했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고난에 굴복하지 않음으로 내적 싸움에서 승리한 믿음의 용사들의 역사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대하24;20b) 메시아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 등 놀랍도록 생생한 많은 예언을 한 이사야 선지자는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광야와 산과 땅속무덤에서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칼날을 피한 사람도 있지만(34) 또한 믿음으로 칼에 죽임을 당한 이도 있습니다.(37)
 일제 강점기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처절한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일본경찰은 그를 거꾸로 매달아 채찍질하고 콧속에 고춧가루 물을 붓고 손톱, 발톱 사이에 대나무 바늘을 쑤셔 넣는 등 참혹한 고문으로 위협했고 그래도 안되니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했습니다. 1939년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일제의 위협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주기철 목사님은 ‘주님 가신 길이 십자가 길이온데 제가 어찌 그 길을 피하겠나이까?’ 하며 참혹한 고문 속에서 순교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의 고문을 눈앞에서 본 그의 어린 아들은 60년 동안이나 그의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뿐 아니라 현재도 북한이나 중동지역 등 복음이 없는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합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보면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요, 세상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믿음을 지켰지만 결국 믿음의 상급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 모세는 간절한 믿음으로 노예백성을 출애굽시키고 그들을 이끌고 40년 동안 거칠고 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앞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그 땅을 멀리서 보며 모압 땅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럼 모세는 실패한 것입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증거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이 세상의 타락한 표준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므로 세상은 그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쫓아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악된 세상에 합당하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더 좋은 부활을 주실 것을 믿고 그 생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부활을 주실 것을 믿은 그들은 죽음까지도 극복하는 믿음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네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39,40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선진들은 각자의 다양한 인생길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지만 약속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즉 그들이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던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더 좋은 것 즉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은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살았으며 신약의 신자들은 오신 메시아를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구약의 선진들의 믿음과 신약의 우리의 믿음이 합하여 온전함을 이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한 선진들은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실현을 바라보고 이를 멀리서부터 환영하면서 믿음으로 살았으며 믿음 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메시아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한 우리가 믿음의 중심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우리가 하늘의 천성문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긴 시간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은 죄악되며 광야같은 이 세상을 통과하여 가는 우리는 순례기간 동안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궁극적이고 영원한) 목표이자 상급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순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가 옛 성도들이 오직 기대 속에서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예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마지막 주자로서 우리의 순례 길을 완주하고 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승리가 보장된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써 구원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례의 길을 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목표이자 상급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순례 길을 완주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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