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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9-29 (일) 12:28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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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2013년 창세기 제21강                                                                  최 동 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말씀 / 창세기31-33장
요절/  창세기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은 에서를 피해서 온 밧단아람에서 에서보다 더 강한 적수 라반을 만나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두 명의 아내와 열두 자녀와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삶을 통해 원하는 모든 축복을 얻었으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여전히 형 에서로 인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축복해달라고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과 씨름해주시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진정한 복을 받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라반의 손에서 벗어난 야곱(31장)
  야곱은 20년간 서러운 타향살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자녀를 얻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처남들이 야곱에 대해 뒷담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아 거부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재산 중 자신들이 상속받을 몫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안색도 예전 같지 않고 불편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방향을 주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3).”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데 라반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에서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에서를 떠날 때는 홀몸이었지만 이제 야곱에게는 두 명의 아내와 열두 자녀와 많은 재산과 가축 떼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과연 아내들이 집을 떠나려 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라반이 자신이 떠나는 것을 내버려 둘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방향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두 아내를 불러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5).” 그는 먼저 매 순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야곱은 지난 20년간 힘을 다하여 라반을 섬겼지만 라반은 야곱을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도와주셔서 온 양떼가 점 있는 것, 얼룩무늬 있는 것을 낳게 하심으로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 야곱의 것이 되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벧엘의 서원을 기초로 그곳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야곱의 말을 들은 아내들은 아버지 라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야곱과 함께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라반이 양털 깎는 날을 D-day로 잡아 조용히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양털 깎는 행사는 정신없이 바쁜 축제일로서 큰 잔치와 함께 여러 날 지속되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도망가기에 적기였습니다. 이때 라헬은 도망가기에도 바쁜 와중에 아버지의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드라빔은 대대로 가정의 수호신으로 여기던 우상이었습니다. 이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재산 상속의 합법적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라헬에게 자기를 지켜줄 수호신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아버지의 합법적인 상속자가 되기를 원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였습니다. 밧단아람에서 길르앗 산까지 거리는 약 640km로서 아내들과 어린 자녀들과 수많은 짐승들을 거느리고 10일 만에 이 정도의 거리를 주파했다는 것은 야곱이 라반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야곱이 떠난 사실을 3일 후에 알게 된 라반은 즉시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맹렬히 추격하여 7일 만에 야곱 일행을 따라잡았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야곱을 보호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라반은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며 따졌습니다. 라헬이 슬쩍 가져온 라반의 드라빔으로 인해 문제가 다시 꼬이게 되었습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야곱은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32a)" 당당히 말하였습니다. 라반은 먼저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서 뒤졌습니다. 다음에는 레아의 장막과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가 소지품들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라헬의 장막에 들어갔을 때 라헬은 드라빔을 약대 안장 아래 숨기고는 그 위에 앉아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동방의 여러 지역에서 여성의 생리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종교의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라반은 양털 깎는 축제 기간 중 여인의 부정으로 인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또 설마 가정의 수호신을 생리중인 여자가 감히 깔고 앉아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야곱을 20년간이나 속여먹은 라반이었지만 이번에는 자기 딸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조마조마했던 야곱은 라반이 드라빔을 찾아내지 못하자 대 놓고 라반을 책망하였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야곱은 아무 죄도 없는 자신을 죄인 취급하며 쫓아온 라반에게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놓았습니다. 가장 서운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이나 그를 위해 봉사한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법에 따르면 목자가 양을 치다가 맹수의 공격을 받아 불가항력적으로 양을 잃어버린 경우 주인에게 보상할 필요가 없었지만 야곱은 그런 경우에도 라반에게 물어주었습니다. 자신이 손해를 볼지언정 라반에게는 조금의 손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했는데 외삼촌은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며 자신의 것을 빼앗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야곱이 부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라반이 야곱을 해하려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막으심으로 야곱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야곱의 말을 들은 라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야곱에 대해 두려움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무더기를 세우고 화친 조약을 맺었습니다. 라반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순진하게 하나님만 믿고 살다가는 망할 것처럼 생각되어 악착같이 싸우기 쉽습니다. 그런다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마6:3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반드시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야곱이 하란 땅에 지팡이만 가지고 와서 고생하다가 마침내 큰 부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 은혜의 하나님은 지금도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늘 함께 하셔서 보호하시고 이날까지 안전하게 살게 하셨지만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염려와 불신에 빠질 때가 많음을 회개하고 장래문제에도 항상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야곱에서 이스라엘로(32,33장)
  야곱은 20년간의 서러운 타향살이를 마치고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큰 부자가 되어 처자식들과 수많은 가축 떼들을 이끌고 금의환향하는 그의 모습은 그 동안의 모든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자기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을 형 에서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로 구성된 군대를 보내어 지켜주고 계셨습니다. 야곱은 이를 보고 ‘마하나임’이라 하였습니다. ‘마하나임’이란 두 떼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대로 수많은 천군 천사들을 보내어 그를 전후좌우로 호위하며 강력하게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사람들을 형 에서에게 보내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며 에서의 동정을 살피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소식은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환영하러 오는 것인지 치러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를 치러 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많은 가족들과 가축 떼를 이끌고 어디로 도망할 수도 없었으니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어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 떼는 피하여 반이라도 건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래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자 그는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시고 은혜를 베풀리라 하신 말씀과(9)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신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책임져 달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 에서의 손에서 자신과 자기 처자들을 건져내시고 보호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형 에서가 자기와 처자들을 치고 죽일까 겁이 났습니다. 20년간 애써 모은 것을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이 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그 대상을 만난다고 생각할 때 형의 복을 가로챘다는 죄의식과 두려움은 20년 전보다 더 증폭되었습니다. 여전히 두렵고 불안한 야곱은 2단계로 이번에는 에서를 위해 엄청난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이로써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암염소 200, 숫염소 20, 암양 200, 숫양 20, 젖 나는 낙타30과 그 새끼, 암소 40, 황소 열, 암나귀 20과 그 새끼 열 마리 도합 550마리를 세 떼로 나누어 각각 거리를 두게 하여 시간차로 형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예물들을 앞 서 보내고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그의 소유를 다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건너지 않고 홀로 남았습니다. 아니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홀로 남은 야곱의 내면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고 미치도록 고독했습니다. 그의 괴로움은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내면 문제였습니다. 그가 왜 이토록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입니까? 그의 문제는 에서가 해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20년 전에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데서 오는 야곱 자신의 죄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 문제는 형 에서와의 문제이기 이전에 야곱 자신과 하나님과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에서에게 범죄 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에서와 화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화해해야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죄가 주는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그의 의지와 성실도 바닥이 나고 자기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부딪혀 있는 야곱을 하나님은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어떤 사람은 야곱을 도와주기 위해 천사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찾아오셔서 함께 씨름해주셨습니다. 이는 야곱에게 임한 놀라운 성육신의 은혜였습니다. 천사는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야곱은 모태로부터 쌓아온 실력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는 아직도 그의 성실과 의지로 버티며 그의 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어느 덧 날은 새어오고 있었지만 싸움은 결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이에 야곱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허벅지 관절은 그의 몸을 지탱해주는 힘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의지하고 지탱하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의 의지와 성실, 재능과 소유, 강한 인간성은 무너지고 하나님께 굴복한 새로운 자아가 탄생된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야곱을 쓰러트릴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천사도 야곱을 쓰러트릴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스스로 굳게 서서 힘든 고난을 너끈히 이기고 자기가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얻었습니다. 그는 강한 환도 뼈를 가진 자였습니다. 자신을 의지해서 서 있을 때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붙들려면 자기가 의지하던 것을 놓아야 합니다. 자기 성실과 자신감, 인간적인 능력과 학벌과 라이센스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누리며 변화된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허벅지 관절을 맞은 후 야곱의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이 강한 자아를 깨어주셨을 때 그는 비로소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되고 하나님께 축복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가 구한 복은 영적인 복, 내면적인 복이었습니다. 호세아서 12:4절에서는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그의 간구는 절실하였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살았으나 이것은 진정한 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많은 소유가 내면의 죄와 죽음 문제, 불안과 두려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이제 소유에서 존재로, 외적인 것에서 내면적인 것으로, 인간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정한 복을 갈구하였습니다.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먼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전인격과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이 질문은 “네가 어떤 존재냐?”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름을 물으심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자아 발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는 “야곱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야곱이란 속이는 자, 싸우는 자, 빼앗는 자란 뜻입니다. 야곱은 이때까지 자기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비참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나는 야곱이니이다” 고백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 즉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자란 뜻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방백(Prince of God)"의 의미도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람과 싸우고 힘든 여건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하나님의 방백으로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과 싸워 이기고 빼앗는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며,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요,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고자 하신 진정한 축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영적 소원이 생긴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고 말씀하시며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인생 문제가 시원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세상은 조금도 바뀐 게 없는데 세상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절실한 내면 문제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나온 자들을 대면하여 주시고 그 내면이 해같이 밝고 빛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신령한 복을 담을 그릇으로 변화되기까지 오랜 기간 기다리시며 훈련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을 얻기 위해 싸우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추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 목적과 가치관이 변화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역사에 쓰임 받으며 많은 영적 열매를 맺는 복의 근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차원 높은  진정한 복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이 말씀은 변화된 그의 내면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은 비록 절고 있었지만, 그 내면은 고통과 절망의 밤이 지나고 기쁨과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내면의 죄 문제가 해결됨으로 모든 불안과 두려움, 허무와 죄의식이 사라지고 은혜와 평강과 기쁨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에서와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눈을 들어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여종과 그 자식들을 전진 배치시키고, 레아와 그 자식들을 그 다음에 두고,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은 제일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에서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야곱이 지난 날의 자신의 잘못을 진실되게 회개하면서 모든 성의를 다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한 것이었습니다. 에서는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고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울었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형 에서의 뜻밖의 친절로 인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그를 죽일 것 같은 원수로 보이던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로 보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이는 단순히 에서의 마음을 얻기 위한 아부성 발언이 아니었습니다. 형의 얼굴에 나타난 따뜻한 친절과 호의가 마치 하나님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그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조금 전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남은 야곱이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 어느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야곱의 인생문제가 눈 녹듯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형 에서에게 강권하여 건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증거합니다. 형 에서와 감격의 재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아내와 많은 자녀를 두게 된 것과 많은 재물을 모은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저희가 매순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앞으로도 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음으로 내가 받은 것들을 자신 있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세겜 성읍에 이르러서는 그 성 앞에 밭도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서원을 받으시고 역경 가운데에서도 지켜주시고 무사히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야곱은 벧엘의 서원을 기억하고 마땅히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단을 쌓고 서원을 갚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야곱과 동행하시며 훈련하신 것은 그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숙곳에 머물러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숙곳은 벧엘에 조금 못 미치는 곳입니다.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현재 야곱은 매우 지쳐있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삼촌의 집에서 피곤한 종살이를 하다가 탈출하여 도망하다가 얍복강에서 씨름하고 형 에서와 만나 극적인 화해를 이루기까지 야곱은 조금의 쉼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에서와의 문제도 해결되자 현실에 안주하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숙곳에 머물 때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벧엘에 올라감으로 끝까지 온전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과거 어릴 때부터 의사가 꿈이었던 저는 야곱과 같이 자기 성실과 의지로 자기만을 위해 살던 자였습니다. 의사가 되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저의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경희의대에 들어온 후 치열한 경쟁 속에 지쳐있을 때 하나님께서 1:1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삶을 살도록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꾸리는 삶을 살던 자가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셨습니다. 인정받고 섬김 받는 데에 익숙하던 자가 양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학생시절부터 의대생과는 스타일이 다른 음대 양들을 섬기면서 자기 성실을 깨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레지던트 때에는 한 교수님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함으로 제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자인가 발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는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저는 눈앞에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급급하여 정신없이 지내왔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저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혜경 동역자와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가정교회로 쓰임 받게 하시고 영육간에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역사에 여러 모양으로 쓰임 받게 하시고 아무 자격 없는 자를 가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힘들어지는 캠퍼스 분위기를 생각하면 매주 가대를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가는 것이 얍복 강을 건너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소원 없는 양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두려웠고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 싫어서 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며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에 있는 것임을 새롭게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저의 인생목적과 가치관과 존재 자체가 온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경쟁이 치열한 이 시대에 살면서 세상에서 더 많이 소유하고 높아지기 위해 투쟁하는 야곱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캠퍼스 영혼들에게 나누어주는 이스라엘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의 영적 씨름을 힘써야 합니다. 저희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한 기도의 싸움을 싸우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야곱의 인생에서 이스라엘의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야곱의 인생을 사는데 목매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날마다 정신없이 일하며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얍복 강가에 남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는 기도의 시간이요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내면에 해가 돋고 양들의 얼굴이, 동역자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로 보이고 기쁨을 나누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복된 목자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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