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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13 (일) 12:46
분 류 창세기
첨부#1 2013창세기23강(오정훈)-1.hwp (56KB) (Down: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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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23강] 꿈꾸는 요셉

2013년 창세기 제23강                                                     오정훈

꿈꾸는 요셉

말씀/창세기37,38장
요절/창세기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사람은 흔히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합니다. 이는 꿈이 있을 때 사람이 살아있게 되고 비전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꿈이 있어서 그 삶이 아름다워진 한 사람 요셉이 나옵니다. 이 요셉의 삶을 가리켜 흔히들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하고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 사람에게도 꿈을 주시고 이를 이루는 귀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이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하고 꿈을 이루어가는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사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37장은 야곱의 족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이 말씀은 이제부터의 말씀이 야곱의 아들들에 관한 말씀임을 알려 줍니다. 특별히 37장은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17세의 소년으로 형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마 레아의 아들들인 이복형들은 이런 요셉을 상대를 해주지 않아서인지 그는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있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복형제들 틈에 끼여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면 내면이 비뚤어지거나 엇나가기가 쉬웠습니다. 형들에게 못된 것을 배워 치기어린 행동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이 양을 치던 형들의 과실을 보고 곧이 곧대로 아버지에게 일러바칠 만큼 좀 고지식하고 좋게 말하면 순수하였습니다. 보통 17살쯤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눈치가 생기는데 눈치 없이 보는 대로 말해버리는 요셉은 형들의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기다가 아버지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로 형들은 요셉을 지독히도 미워하고 시기하였습니다. 보통 아들만 있는 집 애들은 큰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둘째가 입고 그렇게 해서 막내까지 입는 것이 보통입니다. 아마 르우벤이 입던 옷을 시므온이 입고 그 다음 레위가 입고해서 열한 번 째인 요셉에게 내려왔을 때쯤에는 여기 저기 꿰맨 누더기가 되기 십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늘 산뜻한 새 옷, 최신 유행하는 신상만 입고 다녔습니다. 3절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요셉은 야곱이 늙으막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요셉을 사랑하여 그에게는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보통 옷 위에 걸쳐 입는 긴 옷으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남들과 달라 보이는 옷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이런 야곱의 편애로 인해 채색 옷을 입고 있는 요셉을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에게 편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편하게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인사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샬롬 이렇게 인사해야 하는데 그게 되지가 않았습니다. <야 너 조심해, 까불다가 다치는 수가 있어!> 거친 말만 튀어나왔습니다. 형들도 나이만 많을 뿐이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만큼 동생을 미워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요셉 가정의 불행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요셉을 쓰시기 위해서 그에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어떤 뜻을 두고 계시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역사하고 계셨습니까?

첫째로, 요셉에게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6,7절입니다. “내가 꾼 꿈을 들이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러자 형들이 화가 나서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하며 그 꿈과 그 말을 인해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형들의 꾸지람을 듣고 요셉은 이것이 한낱 어린 소년이 꾸는 개꿈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같은 내용의 꿈을 또 꾸었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던데요” 아버지 야곱도 그 꿈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너의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친과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네게 엎드려 절하겠느냐?” 하였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요셉은 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이나 꾸었습니다. 이는 그 꿈이 단순한 개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에게 보여주신 미래였습니다. 이 꿈은 형들의 해석대로 지도자가 되는 꿈이요 다스리는 자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은 남위에 군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은 후에 칠 년 기근 동안 애굽과 주변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나누어주고 그들을 돕고 살리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런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 각 사람에게도 많은 사람을 돕고 살리는 그런 꿈을 주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실 요셉의 나이 17세로 이런 원대한 꿈을 갖기에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냥 높은 데서 떨어져서 키가 크는 꿈, 길에 떨어진 돈이나 줍는 그런 꿈이 어울려 보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이 이런 엄청난 꿈을 꾼 것은 요셉의 생애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꿈이 요셉을 힘든 역경 가운데 지키고 꿈을 이루는 아름답고도 위대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노예로 전락하고 죄수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분노와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비굴해지고 자기비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17세 때 꾸었던 꿈을 잊지 않았고 자신이 지도자가 될 꿈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비참함에 빠지거나 세상 유혹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꿈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감당해 낼 수 있었고 그 꿈으로 인해 그의 삶은 언제나 밝고 희망찼습니다. 이를 볼 때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꿈이 없는 것이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역경을 이기고 그 꿈을 이루어 나가는 위대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될 꿈을 가졌었기 때문에 망명생활의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길에서 채소를 주어다가 아들을 먹였는데 어머니를 그렇게 고생시키는 백범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민족 해방의 꿈이 있었기에 그런 아픔을 감당해 낼 수 있었습니다.
흔히 이 시대를 가리켜 ‘꿈이 없는 시대’라고 합니다. 개인주의 시대가 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꿈은 사라지고 꿈을 성공을 위한 열쇠, 야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청년들의 꿈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삼성에 들어가는 꿈을 꾸며 삼성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3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임원이 되면 연봉100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꿈은 자기만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거위의 꿈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꿈, 비전을 덧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할 때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까? 수시로 잠을 자고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회개한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행2:17) 말씀을 심령으로 깊이 받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비젼을 덧입을 수 있게 됩니다.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을 통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선교사요 위대한 성경선생의 꿈을 주셨습니다. 이 비젼은 우리를 깨어 있고 하고 살아있게 하며 위대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학생시절 이런 비젼으로 불타오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에게 주신 이 꿈이 점점 약해져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힘든 현실과 소시민적인 삶에 빠져 이 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도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가 어떻게 이루겠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꿈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이 위대한 꿈을 새롭게 붙들고 이 꿈을 이루어 나가는 종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이 살아나고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라나는 꿈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요셉의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그 형들과 양떼가 잘 있는지 요셉에게 보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디나 사건 이후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기에 안부를 알아보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요셉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에 상당히 먼 곳이었지만 형들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곳에 없었고 도단에 있었습니다. 헤브론에서 도단까지는 100km정도로 5일정도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고 반겨주지도 않는 형들을 이렇게까지 찾아 헤맬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가서 다 잘 있다고 그냥 말해도 될 법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충성심과 책임감이 남다른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단까지 따라가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가 괜히 편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셉을 바라보는 형들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18-20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멀리서 딱 봐도 긴 채색 옷을 입고 오는 것은 그 꿈 얘기를 늘어놓는 재수 없는 요셉이었습니다. 시기심과 미움에 사로잡힌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자 하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만 이스라엘 조상들은 형제가 꿈을 꾸면 배가 아픈 인간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요셉을 죽이면 요셉의 꿈도 깨어질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서 요셉을 팔았는데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데 공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결코 하나님의 주신 꿈을 깰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이 형들의 왕이 되고 그들의 다스리는 자가 되는 꿈은 요셉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내적으로 보면, 형들의 요소, 곧 시기와 미움 사나움 죽임이 요셉의 요소, 곧 하나님의 함께 하심, 섬김과 용서, 온유에게 절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나중에 미움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던 형들은 요셉의 용서의 사랑에 의해 치유되고 회복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서 사람들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꿈은 사람이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므로 사람이 깰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결국 이루어지게 됩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장자 르우벤은 동생들의 적개심도 어느 정도 채워주고 아버지를 생각해서 요셉을 빼돌려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눈에 가시 같던 그 채색옷을 벗기고 물 없는 구덩이에 요셉을 던져 넣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25-28절입니다. 유다는 형제들을 선동하여 동생에게 손을 대지 말고 상인들에게 팔아버리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의 손에 의해 노예하나에 해당하는 은20개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이 요셉의 모습은 유대인들의 시기심과 무지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내어준 예수님이 그들의 구원자가 되듯이 형들이 판 요셉이 형들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은 요셉이 없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비통에 빠졌습니다.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그러나 르우벤의 비통은 아비 야곱의 슬픔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적시고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였습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야곱이 요셉에게 준 채색 옷이었습니다. 거기에 붉게 물든 피를 보았을 때 야곱은 비통함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33,34절입니다.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야곱은 자신이 심부름을 보냈는데 그것 때문에 아들이 짐승에 찢기고 죽었다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였습니다. 그 고통은 도저히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야곱을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편애하는 아들,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 훈련은 나중에 베냐민을 내려놓는 데까지 계속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붙드는 사람으로 연단하고자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이 비통한 눈물은 아들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아버지를 보며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십자가의 예수님이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중에 베냐민을 데리고 갈 때, 유다는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못하면 자신이 대신 종살이 하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더 이상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누구의 위로도 받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위로로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이 부딪혀 끔찍한 갈등과 고통이 있을 때 애매하게 고통당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어야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애굽에서, 야곱은 가나안에서 열 명의 아들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요셉이 애굽 사람의 노예로 팔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채색 옷만 입고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받는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노예요 종으로 떨어지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섬기고 감당하는 자로 빚으시고자 하십니다. 이를 통해 형들의 죄를 감당하고 변화시키는 목자요 구원자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 편에서 볼 때 현실은 꿈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형들에 대한 배심감과 분노, 노예로 추락한 충격적인 사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개꿈으로 치부해버리고 불신과 완악함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이제 하나님이란 분, 그것은 헛된 망상이었어! 결심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셉도 나중에 아들 이름 짓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크신 뜻을 다 알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꿈을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형들을 만났을 때 꿈을 생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붙들고 인생의 훈련을 감당하므로 형들과 같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지도자로 세움 받게 되었습니다. 때로 우리 현실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꿈은 고사하고 살아남기도 어려울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 꿈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전깃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는 수 천 번의 실험이 행해져야 했습니다. 우리는 꿈을 이루는 것도 마치 꿈꾸듯이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혹독한 연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요셉처럼 노예요 죄수로 밑바닥까지 낮아져서 각종 죄인들을 감당하고 섬기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목자가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사람들의 죄로 인한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헤쳐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꿈은 눈물과 아픔을 먹고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과 소원 가운데 현재 고난을 감당하므로 우리에게 주신 꿈을 이루어나가는 종들로 쓰임 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3년 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비행공포증이 극심한 저는 가지고 간 우황청심환의 힘을 빌려 겨우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수양회에 참석하여 인생소감을 발표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샘전 선교사님을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핵폭탄(nuclear weapon)이 되도록 한마디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평소 별 생각없이 살던 저에게 정말로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핵폭탄이 되고자 하는 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해 마가복음 말씀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을 깊이 받고 주가 쓰시도록 자신을 드리고자 방향 잡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목자님과 함께 새벽 양식발표훈련을 받게 되는데 평소 양식 먹는 것이 항상 어렵던 저에게 조금씩 말씀의 세계를 알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세계에 조금씩 나가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양들을 보내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음대 성악과 양 3명이 저와 말씀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그 외에도 4명의 양이 저와 말씀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피싱한 사람은 2명 뿐이었는데 나머지 양들은 어떻게 해서 말씀공부를 하게 됐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핵폭탄이 되어가는 듯 했고 그렇게 열심히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꿈이 그냥 고상한 방법으로 말씀만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꿈은 사람들의 내면문제 감당해주고 죄와 싸우는 아픔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성악가로서 인정받고 싶고 출세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사람들에게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구름에 달 가듯이 살면 되지 뭐 그렇게 성공하려고 하는가 또 악으로 깡으로 살면 되지 뭐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하고 겁을 내나 생각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했을 때 1,2년이 지나고 양들이 한 명 두 명 군대로, 세상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일장춘몽이냥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더니만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하였습니다. 이제 도망가지 못하는 양 김바울 형제만 요회에 남자 저는 더 이상 복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변화시키는 핵폭탄이 되고자 하는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검을 갈기보다 고전과 소설을 읽으며 언어가 가진 미묘한 뉘앙스로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춘추전국시대 유세가들이 하는 방법을 익히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방법이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먹히기도 하였지만 제게 있는 말씀은 무디어지고 힘이 없어져 복음의 핵폭탄은커녕 수류탄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대는 갈수록 힘들어져지고 이들을 감당할 힘은 없어지는데 요구는 많아지자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님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하는 탄식이 자주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저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잃어버리고 비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의 검을 날카롭게 갈며 양들을 먹이고 섬기므로 변화시키는 복음의 핵폭탄이 되고자 하는 꿈을 붙들게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꿈이 없어 무기력한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다시 붙들므로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목자의 인생 살게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38장은 유다의 죄악과 그 가운데 이루시는 긍휼의 역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엘과 둘째 오난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마땅히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를 며느리 다말에게 주어야 했으나 그도 죽임당할까 두려워 다말에게 수절하고 친정에 가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유다는 정욕을 좇아,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에게 들어갔습니다. 며느리 다말인줄 몰랐던 유다는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형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자기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정조를 지키지 않은 다말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이 끌려가면서 보여준 약조물을 보고 유다는 다말이 옳았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어찌하든지 대를 잇고자 한 다말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이로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으므로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이 사건을 통해 육신적이 감정적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죄악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모습이요 요셉이 감당해야 할 형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이 시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캠퍼스 영혼들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이를 섬기고 감당하기 위해서는 아픔과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인생을 살기 원하면서도 눈물 흘리기는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유다와 같은 자를 감당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다스리는 자의 꿈, 지도자의 꿈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은 어린 나이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하므로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꿈을 이루는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에게도 동일한 꿈을 주시고 이를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것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목자요 위대한 성경선생의 꿈과 비젼입니다. 우리가 힘든 시대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굳게 간직하므로 이를 이루어나가는 아름답고 고귀한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름아이콘 KimHJ
2013-10-13 21:45
제목은 꿈꾸는 요셉인데 첨부파일은 창세기 일강입니다 ^^
   
이름아이콘 관리자
2013-10-17 18:50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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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출애굽기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5강]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관리자 2015-09-13 2827
509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3강] 나는 선한 목자라 관리자 2015-06-14 2827
508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관리자 2017-12-03 2825
507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4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17-02-26 2817
506 디모데전서 [2017년 신년 제2강]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관리자 2017-01-08 2815
50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4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9-01 2814
504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3강]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관리자 2017-07-09 2813
50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9강]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관리자 2011-11-06 2811
502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17-07-02 2803
50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3강] 꿈꾸는 요셉 2 관리자 2013-10-13 2800
500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8강]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관리자 2017-08-13 2798
49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9강] 벧엘의 하나님 관리자 2019-07-21 2794
498 누가복음 [2011년 여름수양회 제6강]하나님의 그리스도-문대범 리스닝 2011-08-17 2794
497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7강]하나님과 결혼한 시온 관리자 2011-02-20 2787
496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관리자 2013-09-29 2785
49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관리자 2011-09-11 2781
494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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