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7-06 (일) 12:57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22-1(오정훈).hwp (64KB) (Down:238)
ㆍ추천: 0  ㆍ조회: 2562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22강] 그의 말을 들으라
2014년 마태복음 제22강                                                               오정훈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마태복음 17:1-20
요절/마태복음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16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견고한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가 가야 할 길을 영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 받고 죽임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난다고 하시는데 능력과 인격을 가지신 분이 왜 그런 길을 가야하는 것일까요? 능력 없는 자들이 가야할 길을 간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돕고자 변화산으로 데려가셔서 변형되신 본래의 모습을 수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이 시간 변화산으로 올라가 영광스럽게 변형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진정한 영광에 이르는 삶 살게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첫째, 변형되신 예수님(1-4)
  1절을 보십시오. 엿새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여기서 ‘엿새 후’란 예수님께서 메시야의 길 곧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지 엿새 후를 가리킵니다. ‘죽음과 부활’, ‘죽고 다시 살아난다’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다가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자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리스도이긴 하신데,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죽음으로써 구원을 완성하는 그리스도시라니 제자생활에 혼돈이 왔습니다. 계속해서 이 예수님을 따라야 할지 회의가 들어왔습니다. 제자 공동체의 분위기가 무겁고 침통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한 계기가 필요함을 아시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사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영화 트랜스포머에서처럼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분으로 변형되셨습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셨더라.”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얼마나 빛이 나는지 마치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 비칠 때에, 눈을 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났습니다. 또 예수님의 옷은 얼마나 희어졌는지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새 하얗게 되었습니다(막9:3). 빨래에는 옥시크린인데 그런 세제를 넣어서 빨은 옷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옷이 새하얗게 광채가 났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본래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이신지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1:3)”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까지 한 번도 보여주신 적이 없는 이런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하나님 아들로서의 본래의 영광을 보라는 것입니다. 평소 제자들이 보던 예수님은 양들 돌보시느라 제때 식사도 하지 못하시고 잠도 푹 주무시지 못하셔서 마른 넝쿨과 같으신 분이셨습니다. 성전에서 화려한 가운을 입고 섬기는 제사장들처럼 그런 화려함도 없으신 예수님은 별로 흠모할 만한 것이 없으셨습니다.(사53:2)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래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할 영광 가운데 계신 만왕의 왕, 영광의 주가 되십니다. 이 영광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이 가시는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 허무한 실패의 길이 아니요 진정한 승리의 길이요 영광의 길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 가운데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영광 중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인도한 인도자요 율법을 전수받아 이스라엘에게 가르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또 엘리야는 아합시대 불같은 심정으로 백성의 불신앙에 도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한 불의 선지자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기 위해 죽을 만큼 고난을 받은 고난의 종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과 아합과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나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뼈 빠지게 수고하고 헌신하다가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면 장차 천국에서 우리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천사도 흠모하는 놀라운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를 믿고 풀의 꽃과 같은 세상 영광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힘써 주와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둘째, 그의 말을 들으라(4-13)
  베드로는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평소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불쑥 말하고 말았습니다. 4절입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야 하리이다.” 무의식중에 본심이 나온다고 이는 베드로의 평소 생각이요 신앙관이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는 여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문제 많은 양들도 없고 세상 근심도 없으며 째려보고 괴롭히는 바리새인도 없는 여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산이라는 환경이 좋은 것보다 사랑하는 예수님과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초막 셋을 짓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말은 ‘주께서 원하시면’인데 사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32평 아파트도 아니요 풀옵션 원룸도 아니지만 초막, 요즘으로 치면 전원주택을 지어서 예수님과 오순도순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문제 많은 세상 산 아래로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신앙을 초막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신앙은 베드로에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이런 베드로의 마음, 베드로의 신앙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 또 고난과 수고가 뒤따르는 현실을 회피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재밌고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초막을 지어서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초막신앙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중세의 수도원은 경건과 목양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도피처가 되어 은둔적 신앙생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통한 영광이라는 복음신앙을 상실하고 현실 도피적 신앙생활을 추구할 때 수도원은 타락하여 온갖 죄악의 온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난이 없는 곳이 좋을 것 같은데, 실상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온상이 됩니다. 또한 초막신앙으로는 자기는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도 없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도 없는 여기에 거하고자 하는 초막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초막을 치워버리고 대신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베드로가 여기 있으면서 초막이나 짓겠다고 하자 구름이 그를 덮고 소리가 나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는 지금 그런 자기 의견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들으라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가 가야 할 길, 십자가의 길, 그에 대한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길을 가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라면 그런 끔찍한 고난이나 죽음이 없어야 할 것처럼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자, 내 기뻐하는 자라고 다시금 인쳐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여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가야 할 길에 대한 믿음,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심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잘 듣고 영접하야 하는데 그들은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귀를 막고 안 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잘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묻기도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초막을 짓겠다는 엉뚱한 소리나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그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씀만 들으려 합니다. 위로의 말씀, 축복의 말씀, 치유의 말씀, 은혜의 말씀만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듣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고 낳고 키우는 역사는 다 십자가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생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아이들이 듣지 않아서 성장하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갑니다. 들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데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옛말에도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함에는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믿음이 생기고 생명의 길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초막에 거하려는 초막신앙을 회개하고 그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복음신앙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말씀을 힘써 듣고 순종하므로 한 사람을 구원하고 키우는 예수님의 제자의 영광스러운 인생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9절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올 때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십니다. 산에서 본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라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 제자들 마음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서기관들은 말라기 4장 5절 말씀에 기초해서 당시 메시야가 오기 전에 불병거 타고 승천한 엘리야가 와서 모든 악을 쓸어버리고 메시야의 나라를 예비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벌써 엘리야가 왔어야 하는데 엘리야는 어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엘리야는 영광의 엘리야, 권능의 엘리야였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죽어버린 엘리야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엘리야가 와서 과연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고 하십니다. 엘리야는 무엇을 회복했습니까?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 곧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그 사명을 힘써 감당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사람들은 주의 선구자로 온 영적 엘리야 세례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여 함부로 죽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임의로 대우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고 메시야가 가야할 길입니다.

셋째,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14-20)
  산에서 내려오니 곧 바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간질에 걸려 불과 물에 자주 넘어지는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산 아래 있던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였습니다. ‘능히 고쳐주지 못하더이다’ 이 아버지의 말은 능히 고쳐줄 줄 알았는데 전혀 고쳐주지 못하였다는 말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능히 고쳐주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수제자들은 빠지고 2군 제자들만 남아서 였을까요? 아니면 산에 따라가지 못해서 이참에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인간적인 혈기로 덤비다가 그렇게 되었을까요? 어쨌든 그들은 간질 걸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고 그래서 무능력한 제자들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제자라고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못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고쳤다는 것입니다. 전도여행 하던 시절에는 한 능력했는데 지금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간질에 걸려 발작하는 한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아버지, 무능력한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보시고 무엇이라 하십니까?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란 말씀에서 예수님의 분노, 예수님의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답답하게 패배한 한국축구의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무능하고 실력 없는 세대여’ 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탄식하셨습니다. 패역함이란 ‘붙들렸다’는 뜻으로 정도를 가지 않고 비뚤어진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치지 못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대 병든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결국 믿음을 가진 자, 정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고쳐줄 수 있습니다. 악한 세력에 붙잡혀 있는 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세력, 악의 문제와 싸우고자 한다면 믿음을 덧입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도를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시므로 아이를 고치셨습니다. 자신들 9명이 붙어서 소리지르고 난리를 쳐도 꿈쩍도 않던 귀신이 예수님에 쫓겨나가자 그런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여졌습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20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는 믿음이 작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큰 믿음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믿음입니다. 그렇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은 모든 것을 갖춘 온전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도 소망을 심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엄청난 믿음, 많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 눈꼽 만한 믿음만 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온전한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겨자씨처럼 작지만 온전한 믿음이 있는 자는 태산 앞에서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도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을 받으시고 친히 태산을 옮겨주십니다. 산은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을 때는 콧바람에도 날려가지만 한번 굳어진 마음, 딱딱해진 마음은 그 무엇으로 밀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닫혀진 양들의 마음을 볼 때 그래서 절망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겨자씨 같이 작지만 분명한 믿음 곧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태산같은 마음을 움직여 주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능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을 때 낙망치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수양회에 이 겨자씨 한 알 같은 작은 믿음으로 도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수양회 참석하게 하여 말씀을 받는 ‘태산을 움직이는’ 놀라운 믿음을 체험케 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말씀을 보며 듣고 싶은 말씀만 들으며 초막에서 자기만의 쉽고 편한 신앙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평소 신념은 ‘무자식이 상팔자’였는데 아들을 이미 셋이나 낳았으니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모토 ‘무양이 상팔자’란 신념을 가지고 살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비우고 겸손히 한 양을 섬기고자 캠퍼스에 도전하기보다 3층 기도실에 거하며 사마천의 사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으며 유유자적하였습니다. 가끔 저녁에 캠퍼스에 올라갔지만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축구경기를 보다가 돌아오기를 잘하였습니다. 수양회를 앞두고 한 사람이라도 초청해야 하는데 자기부인하고 나가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안해도 누군가 한다며 여기가 너무 좋다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시간만 나면 3층 기도실을 초막삼아 지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의 내면에 관한 말씀 ‘마음을 씻으라’ 이런 말씀만 귀 기울이고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말씀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왠지 초라해 보이고 세상 영광만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며 진정한 영광은 고난을 통한 영광이며 그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예수님에게만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초막에 거하며 십자가 고난 없이 쉽고 편하게 살고자 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의 말을 듣기에 힘쓰므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고난 뒤에 반드시 영광이 있음을 믿고 여름 수양회를 힘써 섬기며 이 가운데 한 사람을 초청하는 역사 섬길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에 힘쓰므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통해 진정한 영광에 이르는 삶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작지만 겨자씨 한 알 만한 온전한 믿음을 덧입어 이 시대 병든 영혼들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태산을 옮기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01 누가복음 [2011년 여름수양회 제6강]하나님의 그리스도-문대범 리스닝 2011-08-17 2633
500 마태복음 [2015년 성탄 제2강]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관리자 2015-12-13 2628
499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9강]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관리자 2011-11-06 2623
49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5강]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16-07-03 2615
497 로마서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4강] 거룩한 산 제물 관리자 2015-09-06 2612
49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관리자 2011-09-11 2612
495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9강] 너는 복이 될지라 관리자 2013-05-19 2605
494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관리자 2014-05-18 2601
49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관리자 2016-04-24 2598
49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20강]내가 왕이니라 리스닝 2010-07-18 2593
491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590
490 누가복음 [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리스닝 2011-08-01 2589
489 요한일서 [2014년 요한1서 제1강] 성도의 사귐 관리자 2014-09-28 2587
488 누가복음 [2014년 성탄 제1강]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관리자 2014-12-07 2585
487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관리자 2017-12-03 2582
486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4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17-02-26 2582
485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7강]하나님과 결혼한 시온 관리자 2011-02-20 2582
484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9강]예수님의 기도 리스닝 2010-07-11 2579
483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17-07-02 2578
482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7강]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관리자 2015-05-03 2574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