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14 (일) 17:43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5_요한복음_제13강-1(최바울).hwp (64KB) (Down:249)
ㆍ추천: 0  ㆍ조회: 2828      
IP: 211.xxx.7
[2015년 요한복음 제13강] 나는 선한 목자라
2015년 요한복음 제13 강                                       최바울

나는 선한 목자라

말씀/ 요한복음 10:1-18              
요절/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장은 9장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9장에서 예수님은 불쌍한 맹인 거지에게 진흙과 침을 이겨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도록 해서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이 일을 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죄인 취급했습니다. 그들은 눈 멀었던 자가 눈을 떠서 빛을 보고 새 생명을 덧입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출교시켜 버렸습니다. 이들을 보신 예수님은 너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참된 목자는 누구인가? 선한 목자는 어떤 자인가? 예수님이 왜 선한 목자가 되시는가?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Ⅰ. 양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1-6)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왕과 백성, 아비와 자녀, 목자와 양떼 등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기 백성들을 위해 대리자를 세워 목자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왕을 목자로 세우시고 종교지도자들, 선지자들을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목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타락했을 때 목자는커녕 절도가 되어 백성들의 것을 빼앗고 강도가 되어 백성들의 생명을 해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를 일으켜 그가 당신 백성들의 영원한 목자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절도요 강도같이 변해버린 당시 종교지도자를 깨우치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참 목자 되심을 선포하십니다. 참 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사랑하므로 마음에 걸릴 것이 없어서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가십니다.
반면 양은 어떠한 존재입니까? 양은 좋게 말하면 온순하고 나쁘게 말하면 맹합니다. 시력이 나빠서 코앞에 늑대가 나타나도 알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립니다. 다리가 짧아서 넘어지거나 웅덩이에 빠지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서지도 나오지 못해서 목자가 반드시 일으켜 세워주고 꺼내주어야 합니다. 미련도 많아서 목자가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버립니다. 온순하지만 이기적이어서 자기 양이 아닌 다른 새끼 양에게는 절대로 젖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양이 말이나 잘 들으면 그나마 도와주기가 쉬울텐데 양은 고집도 아주 셉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아주 고집 세고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사람한테 ‘이런 양 같은 인간아!’하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양 같은 인생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말 안 듣고 고집 세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생들의 본성을 아시기 때문에 짜증내고 화내기보다 이해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여 먹이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러면 참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첫째, 목자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어 인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목자가 잠시 맡긴 양을 찾으러 가면 동네 공동 우리를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목자를 위해 문을 열어줍니다. 이때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어 인도합니다.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려가며 뒤에서 몰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서 인도합니다. ‘14번 양’, ‘35번 양’처럼 번호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붙여주고 이름을 불렀는데 ‘각각’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목자가 한 양 한 양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격적인 사랑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목자는 양의 외모 뿐 아니라 성격과 장점 단점 등 양의 모든 것을 알고 그 특징을 따라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때 양은 목자가 자기를 부르는 이름을 알아듣습니다. 자기를 부르는 목자의 음성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깊은 존재 의미를 느낍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양들의 이름에는 관심이 없이 누구 우리가 더 큰가, 누구 우리에 더 양이 많이 들어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양들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도와 강도가 되어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양을 뺏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양 한 양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셨습니다. 양들의 내면문제를 이해하시고 영혼의 고통을 헤아리시며 그 이름을 불러 치료하시고 사랑하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바람둥이라는 낙인이 찍혀 남들 눈을 피해 우물가를 방황하던 사마리아 여인의 진짜 이름이 ‘목마름’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녀가 영생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반복되는 실패로 절망에 빠진 38년 된 중풍병자의 진짜 이름이 ‘의존심’이라는 것을 아시고 남 탓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짠돌이 삭개오의 진짜 이름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한 끼 식사를 같이 하셨습니다. 나 잘난 맛에 살던 니고데모의 이름이 ‘교만’이라는 것을 아시고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거듭나 그가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 나라를 얻기까지 씨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들이 잘 모르고 나 스스로도 잘 몰랐던 나의 이름을 아십니다. 시편139장2절은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지금 무엇으로 마음고생을 하는지, 내가 무엇 때문에 기쁜지 잘 아시고 우리의 이름을 각각 부르시며 나의 슬픔과 고난,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십니다. 나를 잘 아시고 내 이름을 부르시며 함께 동행하고자 하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둘째, 목자는 앞서 갑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목자는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갑니다. 목자가 앞서 가는 이유는 양들에게 본을 보여서 양들을 옳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양들은 스스로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양들은 지독한 근시에다 분별력이 없어서 조그만 장애물 하나 건너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늘 양들 앞에 서서 위험한 것들을 치워주고 그들이 자기를 잘 따라오도록 길을 만들어주고 장애물들을 치워줍니다. 양은 앞서가는 목자가 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목자가 목양에 관심이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가면 양도 여기 저기 한눈 팔면서 갑니다. 목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양무리를 섬기면 양들도 어린 새끼 양들을 돌보며 열심히 목자를 따라갑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말만 잘했지 본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들에게 지시만 할 뿐 뒤로 호박씨 까는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앞서가시며 본을 보이셨습니다. 기도의 본, 섬김의 본, 사랑과 희생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친히 씻어 주심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가룟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인내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 용서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도망간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서 믿음과 사명을 회복하게 하심으로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사람은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셔서 어떤 길이 진리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 가장 잘 아시는 선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 이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죄의 길에 빠지지 않고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양의 문 되신 예수님(7-10)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양의 우리에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해 양들이 드나듭니다. 이 문을 드나들며 꼴을 얻고 또 쉼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할 때 이 문은 ‘생명의 문’, ‘은혜의 문’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양은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을 드나들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양의 문 되시는 예수님을 드나들면서 얻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율법이 구원의 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곧 양의 문이요 이 문을 통해 들어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왜 꼭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제단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번제단에서 대속제물이 되는 짐승의 피를 뿌리고 고기를 태워야만 죄를 속하고 정결케 되어서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바로 그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곧 번제단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7,8절은 말씀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도 아니요 선인도 아닌 쓸모없는 이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이 유일한 양의 문,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0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입니다. 사단은 내가 우리를 벗어나면, 하나님을 떠나면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하지만 이는 내 믿음을 도둑질하고 영적 생명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공부할 것도 많은데 거기다가 예수님까지 믿고 살려면 경쟁에 뒤지고 인생에서 낙오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 우리의 성공은 우리 노력을 통해서 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행복을 늘 생각하십니다. 인간을 만드시고는 에덴에 낙원을 만들어 인생들을 축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였을 때는 어떠하셨습니까? 심판의 계획을 짜지 않으시고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구원의 계획을 짜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의 보좌를 뒤로하고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우리 인생들을 섬기시고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사명을 감당토록 하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양들을 섬기고 여름수양회 역사를 섬기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더 풍성해 지기를 기도합니다.

III.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11-18)
그러면 죄인인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당신을 ‘선한 목자’로 선포하시며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말은 영어로 ‘lay down’ ‘내려 놓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누구에나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생명을 ‘내려 놓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구체적으로는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는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했기 때문에 에덴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배반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체가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은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함께 변덕을 부리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로 쓸모없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스럽고 순결한 독생자를 죄로 쓸모없게 되고 냄새나고 험악해진 이 땅에 사람이 되게 하여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냄새나는 마굿간에서 나시고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인간과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거친 곳에서 함께 잠을 자셨습니다. 사람들이 죄인들을 멀리하고 흉보며 수군거릴 때 예수님은 죄인들 곁에 앉으셨습니다. 마주 앉아 식사도 하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한 죄수의 이야기를 죽는 순간까지 들어주셨습니다.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자기 방어를 위해 하실 수 있는 말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의 수치와 고난을 조용히 감당하셨습니다. 거짓되고 사악한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 갑자가 돌변해 ‘십자가에서 못박게 하소서’ 외치는 무리들에 대해 분노와 심판의 칼을 드실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 열두 영이나 되는 천군을 불러 그런 무리들을 일시에 심판하시고 자신을 보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모든 권리와 힘을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 모든 죄 값을 치루시고자 자기 생명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손과 발에 못 박히는 고통을 겪으시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과 존귀와 특권을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들의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들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삯군은 자기 것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챙깁니다. 자기를 희생하기는커녕 양을 희생시켜 자기를 지키고 부요하게 하고자 할 뿐입니다. 우리는 1년 전 물속에 잠겨 죽어가는 어린 학생들을 두고 혼자 도망쳐 나와서 물에 젖은 돈을 말리고 있던 세월호 선장의 삯군과 같은 모습을 보며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한 심리학자는 사람들의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세월호 선장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기 위한 자기 변명의 표출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을 싫어합니다. 우리도 캠퍼스를 오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칩니다. 그들은 복음을 알지 못해 죄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난민입니다. 이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해야 합니다. 때로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심지어 목자생활을 하다 보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가 옵니다. 이때 우리는 주저하게 됩니다. 나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나의 장래와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희생을 통해서 죽어가는 양들의 생명이 살아나게 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삯군의 스피릿이 아니라 선한 목자의 스피릿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우리가 나의 소중한 시간과 물질을 바쳐 헌신할 때 죽어가는 양들의 생명이 살아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과거 죄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우리가 목자님들의 관심과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죄의 바다에 빠져 구원을 기다리는 양들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펼칠 때입니다. 이런 자세로 여름수양회를 섬길 때 주님께서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안에 들지 못한 죄인을 우리 안에 들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 예수님은 제가 실족하여 넘어졌을 때, 깊은 절망의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일으켜 세우시고 손 내밀어 꺼내 주셨습니다. 인터넷 초장에서 독초를 먹고 신음할 때 생명의 말씀의 꼴로 치유토록 해 주셨습니다. 제가 죄로인한 수치심과 죄의식, 심판의 두려움으로 우리를 떠나 자기 길을 가고자 했을 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자신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우리 안에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제가 일생 양이 되어 그 음성을 따르고 본받아야 할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저에게 삯군 목자의 자세가 있습니다. 늑대처럼 변하기도 하는 양들 앞에서 저와 저희 가정이 희생하며 섬기는 것이 싫어서 양들을 잘라 버리고자 했음을 회개합니다. 저와 저희 가정이 양의 이름을 아시고 신실하게 꼴을 먹이시고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안에 들지 못한 양들, 우리 안에 있지만 기도와 돌봄이 필요한 양들을 섬기는 사명을 일생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양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당신의 양들을 늘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목자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어 생명의 풍성한 꼴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종들을 지금도 세계 곳곳에 보내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만민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얻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17,18) 예수님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자발성을 가지고 희생할 때 본인도 기쁘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광야와 같은 험한 세상에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살아갈 때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문제는 참된 목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양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참된 목자입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본받아 양들을 위해 헌신하는 좋은 목자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13 시편 [2018년 추수감사예배] 주의 은택을 감사하나이다 관리자 2018-11-18 2837
51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관리자 2016-04-24 2837
51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7강]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16-07-17 2835
510 출애굽기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5강]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관리자 2015-09-13 2828
509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3강] 나는 선한 목자라 관리자 2015-06-14 2828
508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관리자 2017-12-03 2825
507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4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17-02-26 2817
506 디모데전서 [2017년 신년 제2강]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관리자 2017-01-08 2816
50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4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9-01 2814
504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3강]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관리자 2017-07-09 2813
50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9강]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관리자 2011-11-06 2811
502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17-07-02 2803
50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3강] 꿈꾸는 요셉 2 관리자 2013-10-13 2800
500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8강]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관리자 2017-08-13 2798
49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9강] 벧엘의 하나님 관리자 2019-07-21 2794
498 누가복음 [2011년 여름수양회 제6강]하나님의 그리스도-문대범 리스닝 2011-08-17 2794
497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7강]하나님과 결혼한 시온 관리자 2011-02-20 2787
496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관리자 2013-09-29 2786
49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관리자 2011-09-11 2781
494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777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