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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1-29 (일) 10:52
분 류 베드로전서
첨부#1 2023년_베드로전서_제1강-1.hwp (128KB) (Down: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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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베드로전서 제1강]산 소망
2023년 베드로전서 제1강                                                                         함바나바
                    산 소망
말씀 베드로전서 1:1-25
요절 베드로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가 네로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소망을 심고 격려하기 위해 쓴 서신입니다. 베드로전서 본문에는 고난이라는 단어가 15번 나옵니다.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구원의 도리를 기억하고 믿음을 견고히 하여 승리하도록 돕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본받아 끝까지 믿음으로 성결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였습니다. 곧 고난 저 너머에 있는 영화로운 구원을 바라보게 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 서신은 ‘소망의 서신’, ‘격려의 서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참된 희망이 무엇이며, 이 희망을 가진 자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제 1장, 산 소망(1-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여기에 나오는 지방들은 주로 소아시아 지역, 즉 현재 ‘튀르키예’로 나라 이름을 바꾼 옛 터키의 서쪽 지역 절반에 해당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사도 야고보의 순교 이후에 흩어지면서 이들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들이 되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이 현실적으로 보면 나그네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 곧 성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성령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로 말미암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임을 깨우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에 있지만 성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주목하신 사람이며, 성령의 거룩한 손길로 함께 하는 사람이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을, 영적으로 큰 복을 받은 영적인 정체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3절을 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시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당시 성도들은 여러 가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흩어져 고향을 등진 것도 힘든 일인데 박해에 직면해 있으니 얼마나 위로가 필요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인간적인 위로를 하지 않고, 오히려 처음부터 “찬송합시다”는 말로 편지의 본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찬송해야 할 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듭나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많은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거듭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부활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산 소망이란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고 성취의 확실성이 100%이며, 거듭난 자의 마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말 그대로 산 소망을 가리킵니다. 이 산 소망은 소망 자체에 생명을 주고, 거듭난 생명을 유지해 주는, 그야말로 살아 역사하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요 거듭난 자만 간직하고 누릴 수 있는 소망입니다. 사람에게 소망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참된 소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삶에 의욕을 갖게 하고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줍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을 넘을 때 기진맥진한 군사들에게 ‘알프스 산 너머에는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여인들과 막대한 재산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며 희망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기만적이고 거짓된 희망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신기루와 같아서 우리를 실망시키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의 삶에 역경을 만나더라도 도전정신을 불어넣어줍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순수하게 하고 진실되게 하며 고상하게 합니다. 이 희망은 사탄의 달콤한 유혹을 능히 물리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구체적으로 이 소망이 무엇입니까? 다 함께 4절 말씀도 읽으시겠습니다. 시작.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세상의 어떤 나라, 어떤 기업, 어떠한 성공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유업은 썩지 않습니다. 창세전부터 준비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으로 완성되었으며 세상 끝 날까지 자라갈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끝나지 않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유럽과 땅 끝으로 퍼져나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고 그 나라에 들어갈 소망이야말로 썩지 않는 산 소망입니다. 또한 더럽지 않는 유업입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근본적으로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영광입니다. 이쪽에서 웃으면 다른 쪽에서는 탄식하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세워진 나라입니다. 희생과 사랑, 용기와 진리, 온유와 자비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은혜와 진리를 주심으로 빛의 자녀로 살 힘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산 소망은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값없이 은혜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택하신 자들을 성령으로 함께 하사 끝까지 믿음의 길에 서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유업은 산 소망의 내용 또는 본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유업은 그리스도인이 현재 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주어지고, 또 하늘에 간직하신 것을 가리키며 이때 성령은 미래에 성도들에게 반드시 주실 것에 대한 보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 그 자체를 찬양할 수 없지만,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확실하게 주어질 유업을 바라볼 때 찬송할 수 있고 또한 고난은 하늘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통로임을 믿을 때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셋째로, 믿음의 연단을 받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온전하게 성취될 완전한 구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미 얻어 향유하고 있는 구원의 종말론적 차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주심으로 끝까지 믿음으로 살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6절에서 7절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시험은 영어로 trial, 시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시련은 성도들을 잠깐 근심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삶 속에서 시련은 잠깐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걱정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럴지라도 장차 누릴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당할 때, 힘들지만 잠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은 시련을 만나면 크게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연단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이라는 말은 ‘순수한 것으로 입증된 것’이라는 뜻으로 본래 금, 은, 철 등을 불 속에서 제련하여 순수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보통 1톤의 광석에 금 2g만 섞여 있어도 금광석으로 쳐준다고 합니다. 이 금광석을 3500도의 용광로 속에 녹여 불순물을 걸러내고, 여러 단계의 제련 과정을 거쳐 나머지 불순물도 다 걸러 내면 비로소 2g의 순금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금도 결국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환난으로 단련된 믿음은 이런 금보다 더 귀합니다. 환난을 통해 세상에 붙은 모든 거짓 희망을 털어버리게 되어 우리의 믿음은 정금과 같이 순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얻게 될 것을 믿음으로 오히려 크게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고난을 견디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고난 받기를 거부한다면 어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묵묵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사도 베드로는 그들이 믿음으로 받은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간절히 연구하고 살펴서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주실 때,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였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태어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깨닫고 예언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최후 심판주로 재심하실 그리스도를 연구하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영광을 알기 원했고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의 시므온도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고자 열망하였습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구약시대 어떤 선지자들, 하나님의 종들보다 축복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 어떤 하나님의 종들도 명확히 알 수 없었던 구원의 비밀을 무지한 우리들에게 알게 하신 은혜를 진정 감사 찬송드립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과 영광 받으심에 대하여 예언하고 상고한 것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된 것은 하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자들이 성령을 힘입어 알려준 것입니다. 복음은 비밀이어서 머리가 좋아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이라도 알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계시로 알게 하셔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 전하는 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비밀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고난과 시련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예언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할 만큼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여러 시련을 당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시련을 통해 믿음이 연단되고, 연단된 믿음으로 죄인들에게 가장 값진 선물, 영혼의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제 2장, 거룩한 삶(13-25)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는,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살아야 합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마치 출애굽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 장자재앙에서 유월절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을 때, 허리를 동이고 5분 대기조처럼 준비하였듯이, 영적 긴장을 풀지 않고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주실 영원한 상급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근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순종하는 자식이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자녀로, 아버지께 순종하며 그의 성품을 배워가는 자들입니다. 사욕이란 evil desire, 즉 사악한 욕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들은 과거의 삶,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그 자녀들도 마땅히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본받아 모든 부정한 것들과는 멀리해야 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목자님은 3마리의 쥐를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3G gold, girl, glory로 우리는 돈과 이성문제와 자기 영광 구하는 것에서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레위기 11:45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속하신 것은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함에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신자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고자 투쟁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바다에는 0.4%의 소금 때문에 거대한 바닷물의 부패를 방지해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실한 신자가 0.4%만 있어도 사회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천만 성도 수를 자랑하지만 사회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원인은 소금의 짠맛을 잃고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믿고 실제 삶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거룩한 사람을 살지 않고 이기적인 구복신앙에 빠진다면 사회에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 자신부터 가정과 캠퍼스와 사회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과 소금이 되어 경건주의 운동이 확산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경외심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사람들이 볼 때만 조심한다면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에 누가 보든, 안보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는, 형제 사랑입니다.
18절과 1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과 같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였습니다. 과거 대부분의 노예는 돈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아닌 예수님의 피로 죄의 종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값비싼 피의 대가로 죄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얻은 값비싼 은혜를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자가 되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진실한 자가 되어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거짓 없이 형제 사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죄와 싸우는 사랑은 사람을 살립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내어주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온갖 허물을 덮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3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양들은 알아서 은혜를 받고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하고 말씀을 주면 순종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캠퍼스에서 고생하며 양들을 데려와도 이상한 분위기를 귀신같이 감지하고 떠나갈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가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저희 모임에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다섯째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또한 우리가 거듭난 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이 썩지 아니할 씨,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항상 있어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실 뿐 아니라, 계속해서 이 말씀 안에 거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보배로운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24절과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성전이 무너졌을 때, 크게 절망했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또 한 번 절망했습니다. 으리으리한 바벨론 도성은 영원할 것 같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향해 바벨론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하십니다. 말씀대로 바벨론의 영광은 잠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제국의 박해도 잠시입니다. 세상의 영광이 영원하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 주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역사 속에서 그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복음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음이 준비되었고,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복음에 따라 구원을 받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이 영원한 생명을 주고 복음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산 소망 팀의 팀장목자이면서도 산 소망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음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죄인이 거듭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망각하고 산 소망이 희미해져 갈 때, 고난 중에 기뻐하고 찬양하기보다 재벌 집 막내아들로라도 태어나지 못한 것을 원통해 하였습니다. 이런 제게 오늘 말씀을 맡기시고 다시금 산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 찬송드립니다. 죄인이 이 소망 가운데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올해도 계속해서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로, 부활의 권능으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거듭난 우리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이어갈 산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정금보다 더 순수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지만, 산 소망을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세토록 있는 복음에 순종하는 삶,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며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구별된 삶을 사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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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7강]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스데반 관리자 2023-04-23 439
808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생)]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199
807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351
806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말씀 제1강(학생팀)]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329
805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1강]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294
80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관리자 2023-04-02 387
80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366
80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4강]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관리자 2023-03-19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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