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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1-21 (일) 10:37
분 류 야고보서
첨부#1 2024년_야고보서_제1강-1.hwp (86KB)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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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야고보서 제1강]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024년 야고보서 제1강                                           최바울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말씀/ 약 1:1-27
요절/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AD 60년경에 쓴 서신서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는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행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종교개혁자 루터는 행함을 강조한 야고보서에 대해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보혈로 구원을 받았는데 행함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야고보는 은혜로 구원 받았으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이자 열매로 행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잠언이라 일컬어지는 야고보서 공부를 통해 행함이 있는 믿음, 성숙한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1장 말씀은 믿는 자가 겪게 되는 시련과 말씀을 받는 자세에 관한 내용입니다. 믿는 자에게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며 은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12)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는 예수님 살아생전에 믿지 않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으로 소개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격이신 예수님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의 핍박과 스데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성도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이방 땅으로 흩어진 성도들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지, 자녀들은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을 것이고 차별도 당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하고 안됐습니까? 그러나 이들을 향해 야고보는 뭐라고 말합니까?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의 시험은 trials로서 ‘시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싫어합니다.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시련을 피해가고자 합니다. 혹 시련이 닥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속히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고대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시험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consider it joy)’ 그것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그들이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첫째는 이런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고 인내는 성공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것들은 대부분 인내의 산물입니다.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에디슨은 만 번에 가까운 실험을 했습니다. 조선팔도 구석구석을 재현해낸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 낸 역작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성도들에게도 인내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내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내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인내가 마치 조개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이 시련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자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인내를 통해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하고 구비하여 진다는 것은 “be mature and complete..”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이 쓰실만한 성숙한 사람이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시련을 겪게 되면 혹은 시련을 겪어야만 자기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부활의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죽음 권세에 휩싸이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붙들고 사는 줄 알았는데 세상 소망이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자신의 부족함에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부족함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그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성숙하게 하시고 좀 더 온전해지도록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갑작스런 재난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사람의 아이큐가 원숭이 아이큐 정도까지 내려가서 판단력과 분별력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련의 때에 생각이 많아져서 우왕좌왕하거나 생각이란 것이 없어져서 뭘 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련의 때에 인내와 더불어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시련에 대한 소극적 자세라면 지혜를 구하는 것은 시련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그럼 어디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11:2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 되십니다. 지혜가 부족할 때 아무리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도 원숭이 아이큐 정도의 머리에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내는 내가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후하게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몇 년이나 했는데 그것도 모르냐고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지난 번에 구해 놓고 또 구하느냐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주십니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2024년 새 양들을 맞이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낯선 이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양들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지혜가 필요합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지혜를 구할 때 어떤 자세로 구해야 합니까? 6-8절을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두 가지의 생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원이 분명하지 않고 방향이 분명하지 않고 결단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기도대로 하고 걱정은 걱정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다른 의지할 만한 것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될 때는 믿고 어려워지면 의심한다는 뜻입니다. 의심하는 마음은 이처럼 정함이 없고 불안정합니다. 바람에 밀려 요동 하는 바다 물결 같이 흔들립니다. 우리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으려면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확정하고 단마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후히 주시고 여러 가지 시험을 온전히 인내하도록 도와주십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가난은 시련을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낮은 형제’는 가난한 사람, 사회적인 지위가 낮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이방 땅에서 자리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낮은 위치에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가진 게 없을 때 자존감이 사라지고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말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쉬운 우리말 성경에는 “만일 가난하거든 하나님께서 자기를 영적인 부자로 만드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땅에서는 비록 가난하게 산다고 해도 장차 천국에 들어갈 때 그들이 존귀한 자 될 것을 믿고 그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부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10) 이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물질을 맡기고 부하게 하신 것은 그가 겸손히 섬기는 위치, 곧 낮은 위치로 내려가 그 물질로 사람들을 섬기게 하신 것이니 이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난하다 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고, 부자라 해서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라면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다 주 안에서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에서는 경쟁에서 승리한 한 사람에만 면류관을 줍니다. 세상은 인색하고 치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롭게 인내로 시험을 잘 견디어 믿음의 길을 끝까지 완주해 낸 모든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새 학기에 성경선생이요 목자로 살고자 할 때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흩어진 성도들처럼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각자에게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우리가 그  시험들을 기쁘게 여겨서 성숙에 이르고 주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 참고 견뎌서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2.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13-27)
  지금까지의 시험은 test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의 의미가 있었지만 앞으로 나오는 시험은 사단이 주는 유혹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니느라”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도 고난의 때에 그 원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여기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던 사람이 꼭 그럴 때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일은 자기 탓이고 나쁜 일은 하나님 탓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의 주관자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never. 절대로 아닙니다! 13절에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왜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사람이 유혹에 빠지는 것은 ‘욕심’ 곧 evil desire 악한 욕망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에 대한 목마름을 보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미끼를 던집니다. 그런데 그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 안에 죄의 소욕이 작아 보인다고 회개하지 않고 둥지를 틀도록 방치하면 반드시 다음 단계로 발전해서 후에 커다란 비극을 낳게 됩니다. 쾌락에 대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서 동성애자, 마약중독자가 되기도 합니다. 물질에 대한 작은 욕심을 회개하지 않았을 때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생의 자랑에 끌려가다 결국 미혹되어 성공을 위해 양들과 사명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 주위를 빙빙 돌면서 유혹의 미끼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사단은 속이는 자입니다. 사단은 아주 좋은 선물을 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것만 얻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이 우리를 속입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본성대로 살면 참 자유한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착각하게 합니다. 내가 불행한 것은 남보다 못 가져서고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권력과 명성을 손에 쥐면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이 따라올 거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살다가는 이 좋은 것들을 다 잃어버릴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단으로부터는 결코 좋은 것이 오지 않습니다. 좋은 것은커녕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면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한없는 후회만이 찾아옵니다.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 가장 귀한 것은 누가 주십니까?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죄사함와 영생의 확신을 주십니다. 참 평안과 기쁨과 만족을 주십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믿음의 가정을 주십니다. 일생 감당할 사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듯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그림자조차도 회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어떠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우리를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부모가 첫째에게 최고의 관심과 정성과 사랑이 쏟아 붓듯이 우리에게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련의 때에 사단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시험을 당하면 튀어 나오는 본능들이 있습니다. 듣기보다 말하고 성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흩어져 고생하는 성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듣기를 속히 하라고 합니다. 이는 마땅히 들을 말을 빨리 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다보면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목자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속히 들어야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주의 말씀을 듣는데 늑장을 부리면 안 됩니다. 다음에 좀 상황이 좋아지면 듣겠다고 미루면 안 됩니다. 둘째로, 말하는 것을 더디 해야 합니다. 특히 시련을 겪다보면 과장된 말, 악한 말, 불필요한 말들을 마구 내뱉기 쉽습니다. 아무말 대잔치를 하기 쉽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할 때에 진실인지, 선한 말인지, 필요한 말인지 따져본 후에 말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성내는 것도 더디 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수록 감정적이 되어 성내기 쉽습니다. 마음껏 성내면 일단 속이 후련해지긴 합니다. 하지만 성내고 나면 상대방이 상처받는 것은 물론이요 성낸 사람의 내면도 함께 망가져버립니다. 잠언의 지혜자는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말했습니다(잠12:6). 성내는 것을 더디 하면 또 다른 유익이 있습니다. 저처럼 툭하면 성내는 자가 성을 내면 ‘또 성질부린다’고 하고 양용민 목자님처럼 웬만하면 성내지 않는 분이 성을 내면 ‘오죽하면 저럴까’ 이해와 공감을 받습니다. 바울도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목자가 성을 내면 사람들을 잃습니다. 목자가 사람들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20).
이상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사단의 시험에 속지 말고 물리쳐야 함을 배웠습니다. 잘 들어야 하고 말을 조심해야 하고 성내지 않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비워야 될 게 있고 채워야 될 게 있습니다. 첫째, 먼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서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작곡자는 곡을 쓰기에 앞서 아무것도 듣지 않음으로 귀를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눈을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먼저 우리 마음 속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서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동안 그 때 그 때 닦아내지 않고 버리지 않아서 찌들고 넘쳐나는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멀리 내다 버려야겠습니다. 진실된 회개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말씀을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둘째, 깨끗하게 비웠으면 이제 그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합니다. 성경학자 윌리엄 에드윈은 이 말씀을 가리켜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선하게 여기고 의심하거나 맞서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다보면 말씀에 대한 온유한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맞서 싸우거나 다투기 쉽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말씀들을 심어주셔도 불신과 교만과 반발심 때문에 깊이 영접하지 않을 때 심겨진 말씀들이 능히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과 베드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젊은 시절부터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풀타임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러 가지 고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런 그에게는 수제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자 하셨던 예수님께 해서는 안 되는 거친 말도 쏟아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성을 내며 칼을 휘두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심어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선하게 여기지 않고 맞서 반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 하시며 자기 소원을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시고 자기를 부인하시며 자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토달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형편, 내 계획과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말씀은 온유함으로 받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제 나이 50이 될 때까지 대단한 성공도 없었지만 큰 시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생 후반부에 들어서 여러 가지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둘째가 잘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재수를 했던 딸이 또다시 수능을 망쳤습니다. 그 와중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도 치료할 단계는 아니어서 안심하고 있던 동역자 몸속의 암세포가 늘어나서 결국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평온했던 인생에 여러 가지 시험이 연달아 찾아왔습니다.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기는커녕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내면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처럼 흔들렸습니다.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양들과 자녀들에게는 함부로 말했습니다. 퇴근하고 밤늦게 입원해 있는 동역자를 심방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카데미 소감강사를 세워달라는 치대 사모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참지 못하고 버럭 성을 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인내도 없고 지혜도 없고 세상 욕심만 가득한 천박한 내면이 드러나 절망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영혼을 능히 구원할 말씀들을 심어주셨습니다. 마음이 병든 자녀들에 대해서 막11: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을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육신이 병든 동역자에 대해서 요11:4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말씀을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영육간에 병든 자신에 대해서는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말씀을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시련을 통해 부족함을 드러내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 앞에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회개했을 때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던 둘째가 마음을 정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삼수를 시작한 한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내라는 것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동역자의 건강도 회복이 되어 이전처럼 복음역사와 양들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제 내면에 구하는 자에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도록 하셨습니다. 올 해 제 앞에 놓인 시험은 말씀 전파와 제자 양성입니다. 집 안 일 핑계로 나 몰라라 했던 전도의 직무를 감당해야 하고 직장에서 여러 가지 시험 당하고 있을 흩어진 평신도 학사 형제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온유와 겸손으로 받아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말씀전파와 제자양성의 시험을 잘 감당하여 제 안에 인내와 지혜와 믿음과 경건의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성숙한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절 심포지움을 감당하며 저희들 마음 속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회개하게 하시고 좋은 밭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년 말씀을 통해 시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복 있는 사람” 마가복음 “하나님을 믿으라” 디모데후서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저희들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심겨진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능히 구원하는 신령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소감 쓰고 끝나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겸손하게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깊이 영접한다는 것은 내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믿고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 생각과 좀 달라도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희들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일수록 마음에 심겨진 말씀을 붙들어야겠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깊이 영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말씀대로 행해야하는 줄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22). 또한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는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성경을 덮은 뒤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23,24)
26,27을 보십시오.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면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을 넘어 경건하게 살게 됩니다. 자기 혀에 단단한 재갈을 물려서 말보다 행하는 자가 됩니다. 환난 중에도 고아와 과부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2024년 새해 저희들이 각자 흩어져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혹 시험을 만나더라도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 인내를 배우고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드리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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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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