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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1-12-26 (월) 15:58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1년_성탄_제3강.hwp (25KB) (Down:111)
ㆍ추천: 0  ㆍ조회: 3316      
IP: 122.xxx.117
[2011년 성탄 메시지 제3강]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2011년 성탄 3강(최베드로)
말씀 : 마태복음 1:18-25
요절 : 마태복음 1:2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메리 크리스마스! 임마누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옆사람과 구주탄생을 기뻐합시다. 눈으로만 인사하지 말고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힘든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임마누엘! 성탄메시지가 그들에게 참된 위로와 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시체를 부패되지 않도록 처리하여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안한 것이지요? 김일성과 김정일이 북한 인민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다음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시체와 함께 하는 북한 주민이 불쌍합니다. 사람들마다 불안한 인생길에서 함께 하며 의지하려는 것들이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돈과 함께 하며 힘과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힘을 얻고 안정감을 얻고 구원의 확신을 얻습니까! 이시간 마태가 증거하는 성탄의 메시지를 통해 참된 위로와 힘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했습니다. 1-17절의 낳고 낳고의 역사는 사람의 혈과 육의 역사, 허물과 죄가 뒤섞인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신비로운 역사입니다. 성령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예수님의 탄생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약혼하면 법적으로 부부입니다. 마리아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기 전까지, 요셉은 행복했습니다. 결혼식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 중에 수철목자만큼 요셉의 심정을 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보약을 먹지 않아도 얼굴에서 광채가 났을 것입니다. 그저 마리아만 생각하면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꿈은 증권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늑한 전셋집을 얻어 사랑하는 마리아와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리아의 배가 점점 불러오기에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임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리아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요셉, 오해하지 말아요, 이것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랍니다!’ 그러면 요셉이 ‘아멘! 할렐루야!’ 했겠습니까? 어떤 변명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화가 났을 것입니다. ‘아무리 핑계대고 싶어도 그렇지, 어떻게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어!’ 약혼기간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당연히 파혼입니다. 율법대로 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약혼자 마리아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법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공의를 행하는 길, 그것은 가만히 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감당하기 힘든 일, 고통의 문제 앞에서 감정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성탄의 복음은 의로운 요셉에게 가장 먼저 임했습니다. 고통과 번민중에 잠든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찾아와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은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불륜의 씨앗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혈과 육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다윗은 시편 51:5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가 자라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은 무늬만 순수합니다. 시기하고 경쟁하고 잔머리 굴리고 훔치고 빼앗고 암투를 벌입니다. 아이들의 세계에도 정치가 있습니다. 창세기의 에서와 야곱을 보면 뱃속에서부터 경쟁했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사람의 힘과 의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제도와 모임도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부패하고 타락하고 새로 개혁해보고자 하지만 또다른 문제를 낳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체사상으로 북한인민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백성들에게 가난과 독재를 남겨주었습니다. 김정은 후계자도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문제없습니까!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했으나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얼마전 통계에 의하면 이 나라의 49%가 스스로를 하층민으로 여기며 불만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구원자가 될 수 없고 사람이 만든 제도나 모임이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뿌리깊은 나무라 할지라도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들은 결국 썩고 쇠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는 성령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되십니다.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셨고 영의 일을 하십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예수님은 세상 위인과 다른 일을 하십니다. 사람이 만든 나라는 잠시 흥하였다가 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사람이 만든 것들은 잠시 한 시대를 유행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인류역사를 관통하여 흐르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들은 생명을 주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셨음을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감사제목입니다. 우리는 세상 만민에게 이를 증거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백성을 저희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세상에는 심각한 현실문제가 있고 저마다 바라는 구원이 있습니다. 가난으로부터의 구원,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전쟁으로부터의 구원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죄 문제는 피부로 와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죄로부터의 구원보다 현실문제에서 구원받기를 소망합니다. 현실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죄인으로 살아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마태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가난에서 구원받기 위해 유대사회의 공인된 죄인, 세리가 되었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걸리적거리는 것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신앙 양심, 율법, 도덕률, 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긁어모으고 또 긁어모았습니다. 부자만 된다면 다른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바라던 대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고 돈만 있으니,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까 행복지수도 최고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독했고 무의미했습니다. 그의 직장 동료들은 자기처럼 이기심과 욕심으로 똘똘 뭉친 세리들이었습니다. 그들속에 섞여 살면서 이기심의 죄가 사람을 얼마나 아프고 힘들게 하는지 뼈져리게 체험했습니다. 돈이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에서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버렸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으로 살았고 너무나 돈만 밝히며 살았습니다. 마태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마태에게 새 인생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좇으라” 예수님은 이기심과 욕심의 죄에 푹 빠져있던 마태를 건지사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마태의 병든 내면이 치료되었습니다. 상한 갈대와도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은 자가 죄인을 살리는 생명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면서도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몸으로 친히 인생들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가 나셨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한 그때부터 죄로부터 구원할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인류역사의 근본문제는 죄문제입니다.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참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대학생복음역사를 섬기면서 이를 무수히 경험합니다. 대학생들이 머리가 나빠서 방황합니까? 젊음이 없고 건강이 없어서 고통합니까!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황하고 망가지고 생명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죄인도 능히 구원하사 새 사람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죄인들에게 임한 큰 빛입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죄의 세력이 더 깊어질수록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큰 희망을 봅니다. 나같은 죄인에게도 큰 소망이 있음을 봅니다. 정죄하고 절망하기보다 하나님의 긍휼과 소망을 봅니다. 소망둘 수 없는 죄인들에게 큰 소망이 있음을 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죄하고 판단하지 아니하고 인내하고 섬기는 성탄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임마누엘의 증거입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여년전 전쟁공포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입니다.(사7장) 유다는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아람의 침략을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징표를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하던 아하스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지라도 아람과의 전쟁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는 것보다 강대국 앗수르가 함께 해주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앗수르와 동맹맺기에 주력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어떻게 한 아기의 탄생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가 됩니까!
사람들은 어디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는 사랑을 봅니까! 어떤 분은 성적이 잘 나왔을 때, 하나님의 함께 하는 사랑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별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장학금을 받았거나 몇 개 찍어서 공부했는데 거기서 다 나왔을 때, 하나님이 확실히 나와 함께 하심을 알겠다고 합니다. 일이 잘되거나 돕는 양이 영적으로 무럭무럭 성장할 때,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사랑을 느낍니다. 결혼문제가 해결되거나 건강을 회복할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연약한 우리들에게는 이런 사랑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기도 하고 여전히 인생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문제, 인간갈등문제에 빠질 수도 있고 상처받고 양들이 모두 떠날 수도 있습니다. 뿌리깊은 죄문제로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녀 마리아가 낳은 아기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처녀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영광과 권세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잠시 관광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과 함께 하고자 오셨습니다. 이보다 크고 놀라운 희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보다 뜨겁고 간절한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복음 2장 10-12절은 말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저는 날씨가 추워지면 캠퍼스에 올라가기가 싫습니다. 후문까지 300m도 안되지만, 날씨도 추운데 양들에게까지 찬바람 맞는 것이 싫습니다. 그저 따뜻한 3층에서 조용히 책이나 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찬바람 이는 겨울철이 되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희생과 겸손에 놀라고,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놀랍니다. 예수님은 몇백미터 잠시 심방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죄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반발할 때 인내하셨고, 누가 크냐 서로 다툴 때 발을 씻기시며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해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믿음을 심으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섬기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시고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임마누엘! 이는 인생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가 죄인들을 위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줄 수 있습니까! 아들은 고사하고 조그만 희생을 앞두고도 우리는 얼마나 몸사리고 움츠러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곳에서 e-mail 주고받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을 낮추고 직접 찾아가서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마태는 임마누엘 메시지가 가장 가슴에 부딪혀 왔습니다. 아무도 함께할 수 없는 자신을 알았고, 그런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이는 마태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유대인들이 겉으로는 고상한 척 했으나 얼마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들, 이기적인 자들입니까! 모세오경을 좀 안다고 해서, 안식일과 장로들의 유전을 조금 잘 지켰다고 해서 잘난체 하고 뻐기는 자들입니다. 저들이 어떻게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들 각자에게도 주어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목자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 힘과 의지로는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음을 절감합니다. 갈수록 세상은 이기적이 되어가고 내가 받은 축복의 기억들은 희미해집니다.

그럴지라도 희망을 놓칠 수 없는 것은 임마누엘!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세상이 더욱 삭막해질수록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절망적인 현실문제에 부딪힐수록 임마누엘,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절감할수록 임마누엘, 주님께로 나아가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롬8:32)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환난이나 위험이나 박해나 그 어떤 어려움입니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임마누엘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감사찬양을 드립시다! 임마누엘!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2012년 새해에도 힘차게 믿음으로 출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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