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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1-12 (일) 12:51
분 류 디모데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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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 제3강]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2014년 신년 메시지 제3강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 디모데후서 3:1-4:8
요절: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맡아 섬기는 디모데에게 주는 마지막 당부의 말씀입니다. 평소에 부모의 말씀을 잘 안 들을지라도 마지막 유언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명합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과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하는 절대 절명의 명령임을 밝혀두고 있습니다. 이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 시간, 주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3:1-17)
  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이것을 알라’는 말씀은 말세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 나타날 현상들에 대해 분명히 알고 대처하라는 뜻입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옵니다. 고통 한다는 것은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인 고통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문명의 혜택을 많이 누리면서 인생을 즐기며 멋있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시대에 ‘고통 하는 때’ ‘terrible times’ 곧 극심한 고통의 때가 이르렀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내면에 예수님의 형상이 조각되고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자라나게 합니다. 반면에 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일 뿐입니다. 이런 죄로 인한 고통은 사망권세가 주는 죽음의 고통입니다.
  사도 바울은 2-5절에서 고통 하는 말세의 현상을 19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자기사랑, 물질사랑, 쾌락사랑입니다. 사람이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 대신에 자기사랑에 집착하고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 죄에 흡수되어버린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질서가 파괴되고 기본질서가 뒤바뀐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부모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도 모두 파괴됩니다. 인격이 파괴되고 육신적인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경건해야 할 신앙생활의 모습도 최악이 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이들은 경건해지고자 힘쓰지도 않고 경건의 모양만 내는 외식주의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명하십니다. 이런 자들과는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이들 중 거짓교사들은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려 뭔가 배우고자 열심히 찾아다니지만 끝내 진리와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또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말세지 말’인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곧 자신에 대하여는 자기사랑, 돈사랑, 쾌락사랑이요, 이웃과 부모에 대하여는 거역하고 무정하고 감사치 않고 배반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는 외식하며 반발하며 믿음을 저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고통스런 현상 앞에 사람들은 저마다 말세라고 탄식하며 희망을 포기한 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내리막길을 마구 달리는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특히 연약한 디모데에게 주시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엇입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아마 디모데는 기본 질서가 파괴된 시대에 목회자로서 큰 혼란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영적으로는 완전히 반대로 치닫고 있는 죄악된 세력을 극복하기에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받은 고난과 구체적인 행적을 예로 들어 닥쳐올 박해에 담대하게 임할 것과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설 것을 간곡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자생활은 박해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박해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우리는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면 기쁨 충만, 은혜 충만, 인정 충만한 천국생활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이익을 당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미움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힘이 빠지고 신앙생활이 너무 유별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흑암의 권세 아래에 있어서 빛과 진리를 배척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부담스러워하고 이유 없이 핍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죄악상을 다시 한 번 지적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진리의 말씀이 없는 죄악 된 사람들의 상호관계는 한마디로 속고 속이는 관계입니다. 이런 악한 세상에서 디모데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슨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흔들리지 말고 복음의 일꾼으로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명합니다. 박해가 있다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켜나가라 하십니다. 박해가 심할수록, 세상 살기가 힘들수록,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디모데만큼은 흔들리지 말고 사도 바울로부터 배워온 복음진리와 하나님이 역사하신 말씀사역을 끝까지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성경을 배웠고 거짓이 없는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딤1:5) 청년 시절에는 목자 바울로부터 성경공부를 통하여 도전과 개척신앙을 배우며 지도자 훈련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 출신 신자들 중에는 거짓교사들의 악영향으로 율법주의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고 이방인 출신 신자들 중에는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 믿음을 잃어버리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의 일꾼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고전9:27) 말세지 말이 되면 더욱 유혹과 미혹과 속임수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의지하기보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굳게 거함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곳은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까이 할수록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터득하여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구원자로 만나 그를 믿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성경이 이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에서 나온 세상 지혜나 지식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뜻을 인류에게 계시해주신 영감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1400년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40여명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때와 장소와 저자가 다르지만 한결같이 메시아 되신 예수님이 중심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 앞에 나올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영혼은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지고 영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D.L. Moody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타락한 미국과 영국을 살리는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이 우리의 실제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16b,17절을 보십시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영혼 구원뿐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의 성숙과 성화에 필요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줍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에서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깨우쳐서 죄악된 삶에서 돌이키도록 가르쳐주고 책망도 하고 고쳐주고 훈련시켜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는 종이 되도록 장비를 갖추게 도우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뭔가 잘 안된다고 해서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화끈하게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찾아다니거나 그렇게 보이는 사역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Back to the Bible!" 우리는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혼란한 시대에 성경에 기초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고 성경선생으로 준비된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가 사역을 감당하던 당시에는 영지주의에 기초한 금욕주의, 쾌락주의 세력과 율법주의자들의 주장과 세속주의자들의 비난과 핍박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물질주의 육신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질서 속에 사람들은 인간의 근본 존재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거센 세상 죄의 파도에 휩쓸려 멸망의 길을 가며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우리는 어떤 삶을 살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Ⅱ. 말씀을 전파하라(4:1-8)
  이제 사도 바울은 혼란에 빠져 있는 양들을 도와야 할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4: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엄히 명합니다. 여기서 ‘엄히 명한다’는 것은 전쟁을 앞둔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 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명령이 바울 자신이 개인적으로 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심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는 명령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명령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청년 디모데는 이런 많은 문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보였고 여러 가지 구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말씀전파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성경말씀을 통해 이들이 구원을 얻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소식은 구원에 이르는 소식입니다. 사람이 병으로 죽어 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특효약입니다. 이 약을 먹기만 하면 산다고 할 때 누가 다른 것을 원하겠습니까? 죄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특효약은 구원을 주는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말씀을 듣고 살아나서 새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성경말씀을 전하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는 나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엄히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어떤 자세로 전해야 합니까?
첫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때를 얻을 때는 물론이요 때를 못 얻어도 미루지 말고 항상 준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는 언제 어떤 경우라도 항상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be prepared)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살든지 죽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실상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은 복음을 전하기에 항상 out of season이었습니다. in season이 오기를 기다리면 한 번도 말씀을 전파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자녀문제, 물질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등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어쩌다 때를 얻으면 이번에는 내 안에 있는 안일과 세상 정욕, 이기심의 죄성으로 때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생겨도 충분히 말씀을 준비하기보다 미적거리고 세상 잔재미로 허비할 때도 많습니다. terrible times에 오직 말씀을 전하기로 결단하고 준비된 자만이 말씀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말씀전파에 최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유사시 출동하는 1분 대기조처럼 언제든지 말씀을 전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항상 말씀을 전파할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아시아를 넘어 빌립보에 왔을 때 그곳은 예배드릴 장소조차 찾을 수 없는 미개척지였습니다. 바울은 절망치 않고 안식일 기도처를 찾으러 나갔다가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만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 때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라 하는 자매가 말씀을 듣고 바울을 따르므로 유럽 개척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면회 오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주고, 각 곳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는 편지로 끊임없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주옥같은 옥중서신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전파에 최우선을 두었기에 그에게는 언제나 말씀을 전할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에는 힘을 쓰지만 정작 말씀 전파하는 일에 힘을 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엄한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계적인 생각으로 순종치 못한 것을 회개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준비되어 말씀전파에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파함으로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하라 하십니다. 경책(correction)은 죄와 허물을 깨우쳐줌으로써 바로 잡아주는 것이요, 경계(rebuke)는 다분히 고의적이고 완고한 죄에 대해 책망하는 것이요, 권함(encourage)은 위로하고 격려하여 힘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전파를 통해 사람들은 경책을 받고 때로는 책망을 받는가 하면 위로와 권면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공부한다고 사람이 곧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범사에 오래 참아야 합니다. 또한 섬세한 관심을 가지고 잘 가르치고자 해야 합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데도 열 달을 기다려야 하고 해산의 고통을 참아야 하듯이 한 영혼이 거듭나는데도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거듭나서 유능한 성경선생으로 성장하기까지 또한 목자의 오래 참음(great patience)과 섬세한 가르침(careful instruction, NIV)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기도를 통해 힘을 얻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 한 사람의 구원과 변화를 통해 말씀전파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합당한 목자의 자세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목자의 직분에 충성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말세의 때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바른 교훈보다 재미있는 말, 하나님 말씀이라도 부담스럽지 않는 말씀, 자기가 듣기 좋은 말씀만 들으려 합니다. 또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말을 듣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럴수록 디모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그러나 너는...’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디모데 너만은 진리의 길을 가라는 뜻입니다. 개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씀공부보다는 이적과 신유 은사에 매달리고 신비한 체험을 중히 여겨도, 그러나 디모데는 말씀전파에 승부를 걸라는 것입니다. ‘신중하라’는 말은 힘든 상황을 경계하며 자신을 절제하라는 뜻입니다. 고난을 견디며 전도인으로서의 일을 하며 역사를 섬기는 모든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없는 사람은 힘든 일이 생기면 단번에 모든 삶의 기본 질서가 흐트러져서 자기 직분을 버려두고 무책임하게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은 전도자로서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전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진리의 길을 지키고 자기 직무에 충성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제 6-8절에서 한 위대한 전도인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의 마지막 의식으로 부어지는 포도주에 비유합니다. 전제(drink offering)는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치기 전 마지막으로 그 위에 붓는 포도주를 가리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양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거룩한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남은 생명을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죽음을 떠난다(departure)고 말씀합니다. 이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로 향하여 떠나는 새 출발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죽음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소망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7,8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는 자신의 삶을 마라톤 경주에서 완주한 경기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싸우는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였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몇 차례 죽을 것 같은 고통의 고비를 넘긴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고 완주한 자에게 승리의 면류관과 함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 예비 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최후의 승리를 확신합니다. 그의 삶에는 고난은 많았지만 주님으로 인하여 승리와 영광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면류관은 바울 자신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실 것을 믿었기에 디모데에게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울 것을 간곡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말세의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절대 절명의 사명이 말씀전파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고 달려온 그의 영광 된 삶을 통해 진정한 승리자의 믿음과 소망을 심어주십니다. 우리는 현재 무엇에 힘쓰고 있습니까? 복잡한 생각, 흐트러진 자세를 새롭게 하고 올 한해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아름답고 영광된 삶이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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