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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3-02 (일) 12:3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5강-1(이사가랴).hwp (30KB) (Down: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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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5강] 소금과 빛
2014년 마태복음 5강                                                                       이사가랴

        소금과 빛

말씀: 마5:1-16
요절: 마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새 학기에 목표한 일들이 잘 이루어져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5-7장은 예수님께서 산위에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행복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자로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쳐야하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에서 신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찾게 되길 기도합니다.

1. 진정으로 복 있는 자(1-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앉으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나아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깊이 따르며 배우고자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배경으로 하여 제자들에게 첫 설교를 하십니다. 여덟 가지 복 즉, 팔복을 가르쳐주십니다. 어떤 자들이 복이 있습니까?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
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우리는 복 받은 자라면 뭔가 많이 소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야 될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동양사상에서는 오복을 중시했습니다. 즉, 오래 살고, 재물이 많고, 건강하고,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슬하에 자식을 많이 두는 것을 ‘오복’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자 특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영적으로 부족함을 알고 채우고자 하는 자입니다. 처절하게 부족하여 영적 파산지경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지 못할 것을 느끼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간절하게 됩니다. 보통 때는 이런 영적 갈급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 심령이 가난하게 될까요? 형제들은 군대훈련 받으며 주일예배도 못 보다가 몇 주 후에 예배를 보게 될 때 눈물이 날정도로 감격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감동이 되지 않던 말씀이 그 자체가 은혜가 됨을 깨닫습니다. 또 분주한 낮 시간보다는 조용한 새벽시간에 심령이 가난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꿀보다 달게 받기도 합니다. 또한 환난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심령이 가난하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어려움 속에서 심령이 가난하여져서 많은 시를 쓰고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대석학도 주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자아발견하게 되자 자신이 얼마나 곤고한 자인가 깨달아 주님을 새롭게 만나고 감격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행복의 첫째 계명입니다. 제자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능력이나 경험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천국이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심령이 부유하여 뭔가 많이 안다고 생각할 때 천국을 소유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자는 웬만한 주일메시지에도 감동이 없고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황을 어렵게 하여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기 전에 먼저 앞서서 영적으로 간절한 자가 되고 겸손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애통하는 자
4절을 읽겠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다’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통회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고 자기 연민 때문에 또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때 아주 애통해합니다. 또한 많은 수고를 하는데도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고 애통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애통은 아무리 많이 해도 복되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불행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심각한 죄 문제에 대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죄에 대해 무감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공부하고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었으며,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는 자신으로 인해 애통하게 됩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때에 정욕의 죄를 짓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충신 우리야를 죽이고 거짓말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뼈가 썩는 고통을 맛보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침상이 젖도록 애통하였을 때 심령에 참된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애통해 할 때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도 슬퍼하며 고통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목자들이 죄 가운데 있는 캠퍼스 양들을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죄로 인해 눈물이 시내처럼 흐를 만큼 애통해 했습니다.(애3:48) 예수님은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이런 눈물은 얼마나 귀한 눈물입니까? 이렇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참된 눈물이 메마른 시대입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해 졌으며, 힘든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은 점점 더 죄악된 심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죄를 합리화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해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주십니다. 죄에 대해 애통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시며 변화의 열매를 맺는 놀라운 위로를 주십니다. 양들의 죄로 애통해 하며 중보 기도하는 자에게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 위로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시34:18) 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주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계21:4) 우리도 점점 힘든 시대, 힘든 양들, 힘든 십자가를 지다보니 심령이 메마르고 각박해집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애통하는 마음을 주사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온유한 자
5절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라” 온유한 자는 무능한자 또는 연약한 자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잘 배우고 본받는 자입니다. 혈기 많고 감정적인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훈련받게 되자 온유한 목자 바울로 변하였습니다. 성숙할수록 온유하게 되고 절제하게 됩니다. 이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삭은 온유한 자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고 양보하고 밀려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싸워서 쟁취할 수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믿고 믿음으로 양보한 것입니다. 온유함은 내적인 실력입니다. 자아가 깨어지고 순종을 배울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변화될 때 가능합니다. 이런 온유함이 없다면 형제의 허물을 참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백성들이 불평하고 감정적이 될 때 백성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감정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우리는 손해를 안 보려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온유한 자는 사람들과 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고통스런 마음을 쏟아놓습니다. 새벽기도시간에 하나님께 모든 하소연을 쏟고, 철야기도시간에 밤새도록 쏟아 놓아야겠습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됩니다. 온유한 이삭이 백배의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절을 보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서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 또는 ‘옳은 것’을 뜻합니다. 진리에 기초해볼 때 옳은 것에 목말라하고 주린 자들입니다. 이런 자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의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이런 자는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세상적인 것에 주리고 목말라합니다. 물질이나 인정이나 자기영광에 목말라합니다. 세상에는 육신의 쾌락이나 물질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얻으면 만족할 것 같지만 얻을수록 더욱 더 주리고 목이 말라 새로운 것을 찾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야곱은 악착같이 노력하여 명분과 하나님의 복과 사랑과 많은 자녀들, 많은 재산을 얻었지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했을 때 늘 불안하고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게 되었을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고자, 하나님 앞에서 의를 이루고자 투쟁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하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추구하고 의를 추구하는 푯대를 잃어버리고 형편 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이상과 계획에 따라 무리 없는 즐거운 신앙생활만 하고자 한다면 그는 분명 의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을 배울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늘 피곤하고 성장이나 영적인 체험이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믿음의 법을 세우기 위해 애쓰는 자를 통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믿음의 영향력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속화되어 허물어진 하나님의 의를 다시 회복하고 세울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자
7절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긍휼히 여기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타인에 대하여 머리로만 알지 아니하고 그들의 삶에 동참할 때, 또한 깊은 관심 가질 때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역사 초기에 양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해가 저물어 가자, 들에 있는 많은 무리들에게 각자 알아서 사먹도록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해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며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부모의 심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양들을 자식으로 여기고 돌보는 부모의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여섯째, 마음이 청결한 자
8절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청결하다는 것은 불순물이 없이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이중적이지 않고 정한 마음, 곧 일편단심을 뜻합니다.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오락가락하면 마음이 이중적이 되고 청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받은 초기제자들의 마음상태는 청결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배와 그물을 버리고 순수하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힘든 세상을 살다보면 죄에 오염되어 처음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목표도 희미해지게 됩니다. 우리도 신앙초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수하게 살고자 결단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하고 안정을 이루다보면 세상 죄에 오염되어 청결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청결해지기위해선 우리의 노력이나 열심엔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아야합니다. 십자가 앞에 죄를 내려놓고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면 성령께서 청결한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선 마음이 혼탁한 자에겐 얼굴을 가리시지만 마음이 청결한 자에겐 그 얼굴을 보이십니다.
일곱째, 화평하게 하는 자
9절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사람들 간에, 가정에서, 국가 간에 평화를 이루어주는 자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되어야 사람들과도 화평하게 합니다. 세상에서는 힘으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고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자만이 화평케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경우에는 각자에게 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때는 각자 죄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도록 도와야합니다. 그러기에 화평케 하는 자에겐 자기희생이 있어야합니다. 자기를 비우고 다른 사람들 감당해 주어야합니다. 여기엔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목자요 성경선생이 된다는 것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 신입생들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가 화평의 복음을 영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덟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10절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믿음으로 살 때 여러 가지 박해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박해나 경제적인 손실 또는 사회적인 박해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하였습니다. 이런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1)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박해받고 욕먹고 별다른 이유 없이 악한 말을 들을 때 억울하고 분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고 슬퍼합니다. 또 이런 외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슬퍼하며 할 수 있는 데로 회피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이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어려움을 얼마나 당하느냐’는 곧 ‘하늘의 상급이 얼마나 크냐’와 직결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 하늘에 상을 쌓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핍박은 하늘의 상급과 함께 내 속에 있는 모든 세상의 헛된 희망을 없애주고 하나님 나라의 참된 소망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이상에서 팔복은 제자의 내면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복이 좋기는 한데 전제조건이 너무나 엄청나서 부족한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이라 아예 처음부터 포기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두신 예수님의 희망이요 삶의 목표입니다. 팔복은 모두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할 때 복 있는 자가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내면적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매사에 예수님을 본받고자 애쓸 때 우리의 내면에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지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진정으로 복 있는 자가 됩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소금과 빛(13-16)
13-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떠나 깊은 산 속에서 독야청청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하시므로 제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부패한 세상을 개혁하는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첫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13)
1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제자들은 세상에서 소금입니다. 소금 즉 염화나트륨(Nacl)은 음식의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소금이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짠맛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지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살 맛 나는 신나는 세상으로 변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자에게 짠맛은 복음신앙을 지키며 분명히 하나님 편에 서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자라 하면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사람들로부터 짓밟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소금이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려면 반드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녹아서 내부에 침투해 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자기희생을 뜻합니다. 소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소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소금과 같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영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영향력을 잃은 신자는 맛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소수라 할지라도 영향력 있는 신자가 있으면 하나님 나라가 급속히 확장됩니다. 이 시대 우리들 성경선생은 소수에 불과하여 역부족인 게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도 바닷물을 짜게 하는데 3%정도로 가능하듯이 세상을 부패에서 방지하고 맛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많은 신자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소수라 할지라도 복음신앙으로 무장된 참 제자가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렇게 소수정예로 키우셨습니다. 공생애기간에 12제자에 집중하여 가르치고 함께 하셨습니다. 아직 어리고 초보제자들인데도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자로 보셨습니다. 소금은 잘 나건 못나건 짠 맛을 낼 수 있으면 쓰임 받게 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타락하고 죄악됩니다. 그러나 세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은 언제나 죄가 넘칠 것입니다. 소금이 없어 짜게 하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제자양성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질적으로 짠맛을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키우는 제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이런 제자로 부르셨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향력 있는 신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짠 맛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짠 맛을 잃지 않으려면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신앙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둘째,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14-16)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빛은 계속 비추어야 밝게 해줍니다. 등불은 자기를 태우면서 주위를 밝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신자는 소금과 빛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감당해야 합니다. 실천하는 신앙이 있어야합니다. 자기를 불태워드리는 희생과 헌신으로 구원역사가 일어난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시대 소금과 빛으로 소망두시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빛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주위 사람들에게 비추는 자들입니다. 빛을 비춘다는 것은 빛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신자의 말보다 그 생활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하기에 앞서 실제 삶에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빛된 생활을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씀의 빛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둡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바로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의 어두움이 물러가고 희망찬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소금과 빛에 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같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희생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기위해 녹아야하는데 이는 자기형체가 사라지고 고체가 액체로 바뀌는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등불도 마찬가지로 빛을 내기위해선 심지가 타고 들어가는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30여년 전 대학생 때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는 너무나 감격하여 전도하며 양을 치는데 기쁨으로 시간과 정열을 드렸습니다.10여년 양들 섬기면서 말씀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 성경다독과 독서에 힘쓰며 내면을 성숙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럴 즈음 현재 우리가 있는 성전건축을 위한 매일저녁기도가 시작되어 절대적으로 참여하면서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가 이루어지는 체험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언제인가 한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가장 관심있는 것은 본국 동역자들의 소식이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를 듣고 선교사님들에게 센타의 소식을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선교사님들의 반응이 너무나 좋아 선교사님들과 센타 사이의 연락담당자가 되어 세계선교에 쓰임받게 하시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힘으로 다시 제자양성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의 신앙교육이 중요함을 알고 시작하게 된 JBF역사도 이제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2세들의 순진무구함에 빠지며 같이 웃고 지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러는 사이 두 아들이 장성하며 믿음을 계승시켜 나아가게 도우시어 감사드립니다. 최근에는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으로 영적인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며 단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이 시대 소금으로 영향력 끼치게 도우시어 감사드립니다. 또한 말씀으로 양들에게 빛을 비추이게 하시어 감사드립니다. 새학기들어 어제 피싱을 나가며 양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려보이는 양들이지만 양들 역시 우리 목자들을 어리게 보는 눈치였습니다. 만만치 않는 양들, 이들의 수준으로 낮아지고 마음이 녹아지며 새해 변함없이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진정으로 복 있는 자는 존재 자체가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은 영적인 사람이 되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본받는 가운데 진정으로 복 있는 자요, 또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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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0강] 듣고 행하는 자 관리자 2014-04-06 2098
32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9강]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14-03-30 2757
32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8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14-03-23 3188
324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454
32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6강]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관리자 2014-03-09 2836
322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5강] 소금과 빛 관리자 2014-03-02 2136
321 이사야 [2014년 신년 제7강] 이방인을 예물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4-02-23 1687
320 이사야 [2014년 신년 제6강]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관리자 2014-02-16 2134
319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4강] 사탄아 물러가라 관리자 2014-02-09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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