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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3-23 (일) 13:04
분 류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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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8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2014 마태복음 제8강                                                                         최동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19-34
요절/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지난 시간에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의 예로 천국시민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물질생활을 중심으로 천국시민의 일상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신자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의식주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들과는 다른 물질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삶에서 우선시 하는 것도 달라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올바른 물질관과 분명한 영적 질서를 배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데에 물질을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한 믿음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19-24)
  19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물은 24절에서 말하는 재물 즉 돈을 가리킵니다. 땅에 쌓아둔다는 것은 세상에 소망을 두고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돈이 자신의 행복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재테크에 관심이 많습니다. 적금이나 보험에 가입하기도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 땅에 돈을 쌓아 놓고자 애를 씁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비단이나 가죽, 금이나 동전 같은 것이 대표적인 보물이었는데 사람들은 땅을 파서 이런 보물을 묻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잘 묻어두어도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알고 땅을 파서 훔쳐갑니다. 좀과 동록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가 아끼는 보물들을 조금씩 부패시킵니다. 여러분들이 보물처럼 아끼는 최신형 핸드폰이나 노트북컴퓨터, 자동차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구형 중고품이 되어버립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집니다. 돈의 가치도 떨어지고, 지식이나 명예나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애써 쌓아놓은 보물을 탈취해 가는 약탈자들이 많습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은행이 하루아침에 망해 애써 모은 재산을 써보지도 못하고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금융정보가 유출되어 누가 내 통장에서 돈을 빼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일생 모아 놓았던 재산을 한 번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땅은 어디에 보물을 쌓아두어도 안전하지 못하며 나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자기를 위해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무리 귀한 보물도 쌓아놓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물질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쓰는 것만이 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자기를 위한 일에 마구 쓰면서 낭비한다면 그것도 현명한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기쁨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잠간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귀한 것을 영원히 가치 있는 일에 잘 사용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20)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하늘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벧전1:4) 이보다 더 확실하고 안전한 투자처는 없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누가복음12:33a에서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소유를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베풀고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팔고 물질을 팔고 젊음을 팔아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구제하며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사용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투자인 셈입니다. 하늘에 쌓아둘 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고 더불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머리로 계산해서는 절대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경영학입니다. 그러므로 손해의식이나 피해의식에 빠져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보물을 하늘에 쌓고자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하는 이유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어디에 사용하는가를 보면 그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은 하루 종일 주식에 대한 생각만 합니다. 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축구와 연관해서 해석합니다. 우리는 부해질수록 보물을 하늘에 쌓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게 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데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도대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재물을 쓰는 것입니다. 돈을 자기를 위해 쓰면 그냥 없어지지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쓰면 하늘에 쌓아두는 것과 같아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헌금할 기회가 생기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십일조를 절대적으로 드리는 것도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시간과 젊음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사용할 때 후회하지 않는 값진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2,23절에서 예수님은 보물과 눈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은 몸의 등불로서 인생을 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건전한(healthy) 관(point of view)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눈이 성하면 모든 것을 밝히 제대로 보고 멀리 있는 것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성한 눈을 가진 자는 올바른 분별력과 가치관을 가지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 목매달지 않고 젊음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투자합니다. 눈이 성한 사람은 당장에 유익을 주는 것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바로 눈앞에 있는 세상과 현실만 보며 세상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세력에 붙잡혀 마음이 땅의 것을 귀히 여기고 땅의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한 보물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성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학생 시절, 아직 젊은 날에 모든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갖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성한 눈을 가지려면 진리의 말씀을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영안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의 눈을 밝혀주고 온 몸을 밝게 해 줍니다. 말씀에 기초한 가치관, 역사관, 결혼관, 세계관, 인생관과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지고 살 때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진리에 기초한 밝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느냐 땅에 쌓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임을 말씀하십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보물 중에서도 재물의 위력을 문제시 하십니다. 재물과 하나님은 어느 한 가지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자 양다리 걸치는 좋은 길이 없나를 열심히 찾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신자로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하나뿐인 인간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절대 비중을 두고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으면 재물이 주인처럼 우리를 지배합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어느 정도 모은 다음 그것으로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기면 하나님 역사에도 좋고 자기에게도 좋지 않은가 편리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이 재물의 주인이 되어 그 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이 재물에 소망을 두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재물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어 재물의 충실한 종으로 삼아버립니다. 재물은 맘몬(mammon)으로서 오늘날의 가장 강력한 우상 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로서 재물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물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성서적인 물질관을 배웠습니다. 성경은 물질을 경시하거나 중시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성경은 물질을 가치 있는 곳에 쓰도록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버는 연구를 많이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쓸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주님께서 맡기신 물질을 주님의 뜻대로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사용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0세기 최고의 투자가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1세에 주식 투자에 입문하여 70년간 주식투자를 통해 60조원이란 부를 쌓은 전설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그의 투자 비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의 투자 원칙은 돈 자체보다 미래성과 경제성을 따져서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치 투자에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돈을 잘 벌기도 하지만 검소한 생활과 통 큰 기부의식 등 돈을 잘 쓰는 지혜를 갖추고 있어서 존경받는 부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어디에 투자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대박을 칠 수도 있고 쪽박을 찰 수도 있습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우리가 물질을 다스리고 하나님을 섬겨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25-34)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부친을 버렸고, 보물을 하늘에 쌓기 위해 이제껏 주와 복음 역사에 헌신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마음에 장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예수님만 따른다고 과연 먹고 살수나 있을 것일까?” “대책없이 예수님만 따르다가 망하는 것은 아닌가?” 마음에 온갖 염려가 들어오면 은혜와 기쁨이 사라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세상 염려를 물리치고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일상생활에서 최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목숨이나 몸은 존재에 관한 것이요, 음식이나 의복은 소유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6)” 말씀하심으로 소유보다 존재가 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존재에 대해서는 깊이 상고하지 않고 덜 중요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일상의 염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큰 소원과 뜻을 두시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나의 모습은 이런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은 일상의 염려에 사로잡혀있는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어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공중의 새가 어떻게 먹고 삽니까? 새는 심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새는 잘 먹고 삽니다. 이는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공중의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한 존재입니까?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염려하는 것은 하늘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불신하는 죄가 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저는 밤낮으로 염려할 것입니다. 또 ‘키’란 헬라어로 생명의 길이를 의미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목숨을 한 시간이라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염려하면 오히려 위장병, 신경쇠약, 심장병, 고혈압, 암 등 각종 질환이 생겨 생명이 단축됩니다. 염려는 분열을 의미합니다. 염려는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아 불안하게 하여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합니다. 확실히 염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소화도 잘 되고 잠도 잘 오기 때문에 건강해집니다. 믿음은 만복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의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생각하여보라’는 말씀은 무조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자기 생각이나 경험에 기초하여 장래에 대해 염려를 많이 합니다. 내일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 걱정, 결혼 걱정을 하고 결혼한 후에는 자녀에 대한 염려를 합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교육문제, 대학 진학 문제로 걱정합니다. 요즈음 개원 의사들은 원격 진료가 허용되면 망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에 사로잡혀 있고 얼마 전에는 파업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며 섬세하게 돌봐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여기서 백합화는 ‘아네모네’라는 들풀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데도 황량한 들판에 아름답게 우뚝 피어있습니다. 이 꽃의 형태와 무늬, 색깔과 향기를 곰곰이 살펴보면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납니다. 솔로몬의 영광이 사람이 만든 최고의 영광이라면 백합화의 영광은 하나님이 주신 영광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쌓고 세상 영광을 다 얻는다 해도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영광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는 완전무결하고 신비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솜씨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그의 사랑하는 자녀를 입히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오, 신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로서 세상 무엇보다도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염려해도 아무 유익이 없는 줄 알면서도 왜 여전히 염려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이런 염려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염려는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당연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십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책임지고자 하는 불신과 교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끊임없이 염려하며 조건이 개선되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건이 개선되더라도 염려에서 해방 될 수 없습니다 염려는 근본적으로 사탄이 심어주는 것입니다. 사탄은 장래의 불확실성을 틈타서 마음에 염려를 심고 염려에 사로잡혀 제자의 삶,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내버려두면 염려의 가시로 인해 영적 생명이 질식하게 됩니다. 이런 염려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습니까? 염려를 불신의 죄로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전폭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 비유에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친히 기르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니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 일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하셨지 전봇대에 앉아 놀고 있는 새를 보라 하시지는 않습니다. 공중의 새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날아다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나는 새에게 먹이를 제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염려하지 말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하였습니다. 염려가 밀려올 때 내 힘과 의지로 극복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염려제목을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염려가 많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우리는 염려하기보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방인들은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로 먹고 마시고 입기 위해 일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연히 먹고 마시는 일을 염려하게 됩니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풍성한 부자들은 염려가 없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오히려 더 크고 많은 염려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현재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염려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이방인들은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과 똑같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라고 하면서도 불신자와 똑같이 염려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 아시기에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으신 후에 그들이 정말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십니다. 3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구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도록 구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도록 복음 전파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먼저’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일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삶의 질서와 가치관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할 일 많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학과공부나 직장 일, 가정 일, 부모님 일 등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일’을 올바로 설정하지 못하면 첫 단추를 잘 못 끼는 것처럼 질서가 어그러지게 됩니다. 저자 마태는 먼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먼저 그렇게 했을 때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의리도 잃고 양심도 잃고 젊음도 잃고 행복을 잃었습니다. 인생의 존재의미를 잃고 죄의식과 절망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먼저 예수님을 좇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구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생목적으로 삼고 열심히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되 열렬히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먹는 음식이 다른가요? 입는 옷이 다른가요? 생김새가 다른가요? 아닙니다. 인생목적과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좀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좀 더 좋은 차를 타고, 좀 더 잘 먹고, 좀 더 잘 입기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철저하게 자기 영광과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를 위해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만이 우리가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최우선적으로 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내 일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염려가 또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염려가 끊이지 않는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는 신실하신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앞으로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믿고 현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순종할 때 실제 삶에서 그 약속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인생 목적과 방향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센타에서는 시니어목자로서 늘 하나님의 역사를 살피고 기도하며 거의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센타에 나와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맡은 직분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 동시에 물질의 우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자라나는 자녀들의 뒷바라지와 품위 있는 노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도 어느 정도 보물을 쌓아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에서의 나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자 할 때 물질이 나의 중심에 들어와 주인노릇 함으로 마음이 분산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순간 순간 찾아오는 불신과 염려를 회개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덧입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는 대게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의 장래는 어떻게 될 거인가? 염려합니다. 염려는 왕성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상황을 만들어내어 염려와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한 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는 것은 내가 내일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내일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도록 맡겨놓고 우리는 오늘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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