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3-30 (일) 12:39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9강-1(고영훈).hwp (29KB) (Down:312)
ㆍ추천: 0  ㆍ조회: 2758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9강]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2014년 마태복음 제9강                                                      고영훈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말씀 / 마태복음 7:1-12
요절 /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오늘 말씀은 산상수훈의 최종 결론의 전반부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가 다른 사람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홀로 살 수 없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다보면 서로 간에 인간 갈등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 갈등 문제는 거의 대부분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기보다 서로 요구하고 판단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인간 갈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눈을 밝히사 말씀을 통해 영적 깨달음을 얻게 도우시고 성숙한 신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충만히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비판하지 말라(1-6)
  1절을 보십시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비판하지 말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건설적인 의견 개진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목자가 양을 잘 돕기 위해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양의 실수와 허물을 지적하는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에 기초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해 건설적인 비판, 사랑의 지적은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비판’은 자신이 판결자의 입장에서 사사로운 감정에 기초하여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을 찾아 정죄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사랑 없이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된 상태에서 판단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관계성이 파괴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들이 왜 남을 비판하기 좋아 합니까? 우선 남을 비판하면 속이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또한 남을 비판하면 자기는 그 비판에서 제외되고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을 비판하게 되면 인간 상호간의 관계성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이 역사하여 공동체가 분열되는 어려움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사소한 문제로 서로 비판하게 함으로써 나중에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관계성을 파괴시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2절은 우리가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남을 비판하게 되면 우리 자신도 남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뒤에서 남의 흉을 보고 남을 깎아 내리면 다른 사람도 내가 안보는 데서 내 흉을 보게 됩니다. 결국 남을 비판하는 것은 본인이 누워서 침 뱉는 격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남의 약점보다 장점을 보기에 힘써야 하고 비판에 앞서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길러야 합니다. 비판은 내 입장에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비판하는 마음보다 이해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으로서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큰 죄가 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1-3절에서 이를 잘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형제를 비판해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막상 그 형제의 약점을 보면 비판하는 마음이 속에서부터 올라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형제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내적 힘을 주십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 사랑의 마음, 겸손한 마음,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신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눅23:34)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용서 못할 사람이 없고 화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3,4절에서 우리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음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들보’라는 것은 집을 짓는 데 있어서 가장 길고 큰 재목을 말하고, ‘티’는 들보에서 어쩌다 떨어져 나온 작은 톱밥이나 먼지를 뜻합니다. 이 비유에서 들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범한 죄이며, 티는 인간 사이에 범한 실수와 허물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범한 죄는 일만 달란트 빚진 것에 해당되고, 형제가 우리에게 지은 죄는 100데나리온 빚진 것에 불과함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며, 한 데나리온은 일꾼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한 노동자가 일만 달란트를 벌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해도 약 16만년이 걸립니다. 반면 백 데나리온은 석 달 열흘의 품삯으로서 약 천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큰 죄는 잘 보지 못하고 남의 약점과 실수는 잘 찾아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족집게를 가지고 남의 눈의 티를 빼고자 애를 쓰다가 티는 빼지 못하고 상처만 남겨줍니다. 우리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고자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빼주고자 할 때 외식하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만일 내 눈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감히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고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내 눈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들보를 빼 낼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 많은 나를 불쌍히 여기셨는가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에게 진노를 쏟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감당하시므로 아무 값없이 오직 은혜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크신 용서의 사랑을 덧입을 때 비로소 형제를 바로 도와 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매 주 말씀공부를 할 때 성경지식을 얻기 위해서 한다거나 또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다면 외식하는 바리새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공부할 때 먼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가르치기에 힘쓰고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비추어 보기에 힘쓴다면 내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들보를 빼내고자 노력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서 들보와 같은 죄를 발견하고 회개할 때 영적인 눈이 밝아져 남의 눈의 티를 뺄 수 있게 될 것입니다(5).
  요한복음 8장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와서 ‘이 더러운 것, 당장에 돌로 쳐 죽여라’하며 정죄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 먼저 자신들을 살펴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정죄의 돌을 내려놓고 하나씩 하나씩 물러갔습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신앙이 미숙하다는 증거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대신 남의 허물과 실수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관대합니다. 우리는 남을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을 받는 당사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엄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후 분명하게 분별해야 할 것이 있음을 깨우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자 힘쓰다보면 아무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로 인해 영적 질서나 복음의 절대성을 잃고 교회가 인간 중심의 세속적인 모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면서 당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거룩한 것이나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하고 온전케 합니다. 또한 복음에는 각종 진귀한 영적 보화가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에 개나 돼지는 복음을 세상 즐거움이나 먹는 것보다 못하게 여기는 세속적인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개는 썩은 고기나 먹고 토한 것을 다시 먹는 동물로서 부정한 짐승의 대명사였습니다. 돼지는 먹기를 탐하고 자기가 배설한 곳에 드러눕는 욕심 많고 지저분한 동물로 여겼습니다. 만일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면 다가와 냄새를 맡아보고 먹을 게 아니므로 짜증을 내며 발로 짓밟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돼지 같은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랑은 잘 받아먹지만 정작 진주와 같은 복음은 안 받아들이고 목자에게 상처를 주고 도망 가 버립니다. 이런 자들은 절대적인 복음주의를 훼손시키고 상대화하여 교회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복음의 원수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복음을 무조건 전할 것이 아니라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신중히 대해야 합니다.

II.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7-12)
  우리가 남을 비판하지 않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남을 돕고자 할 때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영적 투쟁을 해야 할 것인가 가르쳐 주십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ask)'는 것은 자기에게 결핍된 것이나 부족한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부족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인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이 부족합니다. 목자의 사랑과 능력, 리더쉽이 부족합니다. 이런 부족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찾으라(seek)‘는 것은 말로만 구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라(knock)'는 것은 구한 것을 찾았는데 열릴 때 까지 인내하고 더 적극적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현재형이고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계속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이 사실을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가 여행 중에 몹시 굶주린 상태로 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그 때가 한 밤중이라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그는 배고픈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때문에 떡을 구하지 않고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로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에 있던 친구는 할 수 없이 자다가 일어나서 떡을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11:8).”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기도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약점은 쉽게 포기하거나 쉽게 영적 소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는 안이한 자세로 요행만을 바라며 주저앉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기까지 열심을 다하여 구하라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십니다. 현재 우리에게 많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에 응답해 주시기까지 새벽부터 시작하여 주야로 열정을 다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기도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9-11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가 되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죄 많은 인간일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달라고 떼를 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한 때에 공급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절대적인 신뢰를 가질 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은 모든 윤리 교훈의 최고봉이요 천국 시민이 가져야 할 내면성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 부릅니다.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성경의 가르침의 결론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공자에게 한 제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한 마디의 말을 가지고 평생토록 행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이 때 공자 가라사대 ’네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게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는 최고의 도덕률이지만 소극적이고 다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하심으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마다 각 각 자기중심적이라 남을 대접하고자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대접 받기를 원하는가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존귀한 자로 대접받기를 원하고 인정과 칭찬받으며 사랑받고 섬김 받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황금률은 다른 사람을 존귀한 자로 대접해주고 인정하고 칭찬해주며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는 그대로 먼저 남에게 해주는 것이 최선의 대접이요 최고의 이웃 사랑입니다. 본인이 인정받기를 원하면 먼저 남을 인정해 주십시오.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남을 사랑해 주십시오. 기도 받기를 원하면 먼저 기도해 주십시오. 인간관계는 마치 되돌아오는 메아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줄 때 결국 메아리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고 풍성한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그 곳에는 천국 시민들이 모여 사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먼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접해 주기를 기다리는 곳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왜 지옥과 같이 사랑이 메마르고 미움과 시기, 증오, 갈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까? 서로 먼저 대접 받고 사랑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나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동역자 사이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형제들끼리도 먼저 대접 받고 사랑 받고 위로 받고자 하기 때문에 벽이 생기고 오해가 생기고 판단하는 마음이 생기고 지옥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자존심 때문에, 체면 때문에 먼저 대접 받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give and take' 즉, ‘주고받기 식’의 사고에 젖어서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또 사탄은 우리에게 먼저 대접을 받아야 높은 사람, 선배,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라 속삭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 받고 인정받기 원하지만 서로 각자 버티고 남이 먼저 해주기를 기다립니다. 자기를 내세울 때 서로 메마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나로부터 위대한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나 한 사람을 천국 역사의 주인으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남을 대접하면 천국이 임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구체적으로 이에 순종하고자 할 때 선뜻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요 현실입니다. 어떻게 이 황금률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의 정체성을 수 없이 여러 번 깨우쳐주셨습니다. 곧 제자들의 정체성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천국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아무 자격 없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주시고, 대접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제자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먼저 우리를 대접해주심으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부족함이 없도록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이를 깨달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받고자 사랑 깡통을 차고 다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바 크신 사랑과 많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사실을 잘 깨닫고 12절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딸들로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것들을 받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남들로부터 받고자 하던 데서 먼저 대접하는 종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말씀 앞에서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모임 안에서 자신의 들보는 잘 깨닫지 못하면서 남을 비판하기 잘 하였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의로운 심정으로 동역자들의 작은 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판하였던 죄를 깊이 회개합니다. 제가 먼저 자신의 들보와 같은 죄를 늘 발견하고 회개하기를 힘쓰며 남을 비판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으로 잘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임 안에서도 시니어 목자요 사회에서도 치과 원장이요 가정에서도 가장으로서 자연스럽게 먼저 대접하기보다 당연히 먼저 대접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자세가 있을 때 모두가 저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슬 슬 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앞으로는 말씀에 순종하여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센터의 동역자들, 저의 섬김이 필요한 양들과, 가정에서 사랑하는 동역자와 자녀들을 먼저 대접하는 성숙한 주님의 종으로 변화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들보와 같은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성숙한 주님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이 천국과 같이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모임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 구원 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38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4-06-22 2116
33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9강]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14-06-15 1986
33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8강] 천국은 자라고 퍼져나갑니다 관리자 2014-06-08 2025
33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7강] 말씀이 열매를 맺는 사람 관리자 2014-06-01 1768
334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6강]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관리자 2014-05-25 2681
33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관리자 2014-05-18 2059
332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4강] 두려워하지 말고 전파하라 관리자 2014-05-11 1978
331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3강]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관리자 2014-05-04 1948
330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2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4-04-27 1774
329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1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14-04-20 2092
328 마태복음 [2014년 부활절 수양회 주제2강]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관리자 2014-04-13 2142
32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0강] 듣고 행하는 자 관리자 2014-04-06 2098
32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9강]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14-03-30 2758
32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8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14-03-23 3189
324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454
32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6강]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관리자 2014-03-09 2836
322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5강] 소금과 빛 관리자 2014-03-02 2136
321 이사야 [2014년 신년 제7강] 이방인을 예물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4-02-23 1687
320 이사야 [2014년 신년 제6강]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관리자 2014-02-16 2134
319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4강] 사탄아 물러가라 관리자 2014-02-09 1781
1,,,21222324252627282930,,,37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