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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4-20 (일) 12:47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11강-1(한아브라함).hwp (28KB) (Down: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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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11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2014년 마태복음 제11강                                                                   한아브라함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말씀/ 마태복음 8:1-17
요절/ 마태복음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여러 병자들을 고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고 베드로 장모를 비롯하여 여러 병자들을 치료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특별히 놀라는 일이 감동받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둥병자를 통하여 저자 마태가 놀랐습니다. 백부장을 통하여 예수님이 놀라고 감동 받으셨습니다. 베드로 장모의 나음을 통하여 베드로가 감동 받았습니다. 병든 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선한 목자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옵니다. “내가 원하노니”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베드로 장모의 손을 잡고” 오늘 말씀처럼 놀라움과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사건이 성경에 다시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감동과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나병환자를 깨끗케 하신 예수님(1-4)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은혜로운 산상수훈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에 관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을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나병은 어떤 병입니까. 세상에 병도 많지만 나병만큼 더럽고 추해보이는 병은 없을 것입니다. 피부가 썩어 고름이 나오고 코, 귀가 뭉개지고 손, 발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아름답게 창조된 인간이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하늘의 저주를 받은 병으로 인식되어서 격리시켰고 사람에게 나올 수 없었습니다. 50미터 밖에서 입을 가리고 “부정하다” 외침으로 자신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자신을 꼭 밝혀야 했습니다. “나 병자요.” “나 병이요.”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많은 무리를 뚫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2절 앞에 헬라어 원어에는 이두! 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보라 놀랍지 아니한가.” 라는 말입니다. “보라 놀랍지 아니한가. 문둥병자가 무리를 뚫고 나오다니.” 저자 마태가 이 나병환자로 인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저자 마태뿐 아니라 무리들이 모두 놀랐을 것입니다. 무리를 뚫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놀라 뒷걸음치는 무리들 사이로 쉽게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오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을까요. 그는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나병은 불치의 병이고 하늘이 벌을 내려서 걸린 병이라 나을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 예수님도 이 더러운 병 만큼은 고쳐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이 절망을 극복했습니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소위 자아발견이 되어있었습니다. 나음 받아야겠다는 강렬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자신을 깨끗케 하실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여 원하시면.” 그냥 고쳐달라고 하지 왜 주여 원하시면 이라고 하였을까요. 이 나병환자에게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겉보기 에는 육신의 병이 심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병이 더 깊었을 것입니다. 그는 고독했을 것입니다. 보통 병에 걸리면 주변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다가옵니다. 위로와 격려를 해줍니다. 중병에 걸리면 넘치는 사랑과 위로를 받습니다. 저도 건강문제가 생겨보니까 동역 자님들로 부터 분에 넘치는 위로와 사랑, 기도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요? 나병이 걸리는 순간 친지들이 떠나갑니다. 가족들과도 이별입니다. 집나간 탕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버지의 마음도 죽은 아들을 위해 통곡하던 어머니의 눈물도 나병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떠나야 합니다. 교회도 떠나야 합니다. 평생 홀로 고독을 씹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는 이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주여 원하시면 이라고 물어봅니다. “주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셨죠? 이 저 문둥병자도 해당됩니까?” 물어보는 것입니다.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말씀으로 고쳐 줄 테니 더 이상 가까이 오지마. 제발 거기 좀 서 있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한다. 간절히 바란다. 네가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료되기를 진심으로 바래.”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피고름 범벅이 된 그에게 대셨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손을 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 따스했던 어머니의 손길이 늘 그리웠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그에게 터치되자 손을 타고 치료의 광선이 그의 온 몸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러자 더럽고 추한 육신이 깨끗케 되었습니다. 고독으로 깊게 파인 내면의 상처도 말끔히 치료되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도록 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도록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Total 힐링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병은 죄와 닮았습니다. 나병이 사람을 더럽고 추하게 하듯이 죄도 사람을 더럽고 추하게 합니다. 나병이 감각을 마비시키듯이 죄도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켜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게 합니다. 사단이 스마트 폰, 인터넷 매체 등을 이용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병 균 같은 죄를 퍼트려 이 사회를 병들이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정신세계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나병 같은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인생을, 망가진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까. 깨끗케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만이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이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죄 사함 받기를 원하십니까? 고질병에서 나음받길 원하십니까? 나의 죄, 나의 고질병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깨끗함을 받으십시오.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눈같이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고질병도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2. 백부장의 믿음을 축복하신 예수님(5-13)
초라한 나병환자와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건장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당시 백부장은 백 명의 로마 군인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군인은 잔인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당시 하인은 짐승이나 물건 취급 받았습니다. 중풍 병들어 쓸모없고 오히려 짐이 된 하인은 갖다 버리면 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쓸모없이 되어버린 병든 하인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같이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에게는 하인이 마치 같이 싸우는 전우요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목자의 심정, 인간애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위해서는 열심히 뜁니다. 아랫사람을 위해서 이처럼 몸부림치는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아랫사람의 아픔과 슬픔, 굶주림과 헐벗음을 기억하는 주인이 참된 주인이요 목자입니다. 백부장의 인간애, 목자의 심정이 감동으로 다가옴을 고백합니다. 저는 양들을 도울 때 처음에는 이게 왠 양인가 싶어 열심히 돕습니다. 그러나 잘 변화되지 않고 소망이 없어 보이면 소망을 끊어버리길 잘했습니다. 영적으로 중풍병자같이 되어버린 양들을 쉽게 마음으로 정죄하고 기도제목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백부장에게는 목자의 심정이 차고 넘쳤습니다. 백부장을 바라볼 때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제가 목자의 심정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백부장의 이 목자의 심정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얘들아 뭐하니 귀한 분이시다. 모셔야지.” 이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예수님을 집 앞에 세워두고 말씀만 하라니 이 무슨 오버입니까. 설마 집안 청소를 안 해놓아서 일까요? 아니죠. 일찍이 누구도 이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삭개오도 마리아와 마르다도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싶어 했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사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로마 황제보다 더 권세 있는 왕 중의 왕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 때문에 자기 집을 들어오심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요 말씀 한마디로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낳겠나이다.” 이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하인의 중풍병도 깨끗이 나음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9절을 보십시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의 믿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군대생활의 경험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남의 수하 즉, 로마 황제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로마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 걸고 전쟁을 치룹니다. 그는 로마 백부장으로써 명령의 본질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 순종하는 것이 군대입니다. 그래서 말 안 듣던 사람도 군대에 가면 변화됩니다. 휴가 때 나오면 군인정신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을 시키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순종합니다. 제대하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잘하지만... 백부장은 로마 군대 지휘관이 되기까지 많은 훈련을 통하여 상관에게 절대복종,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세계적인 대제국이 된 것은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쟁터로 나간 로마 군인들 가운데는 등에 화살을 맞고 죽은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아무리 화살이 쏟아지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이 절대복종의 원리를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병마를 복종시킬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말씀의 권세를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놀라셨습니다. 그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이스라엘사람들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져주셔야 나음 받지 만져 주시지 않으면 낳는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는 그런 수준의 신앙이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예수님이 직접 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손을 잡거나 머리에 안수해야 낳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어떠합니까?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이만한 믿음, such great faith” 이런 위대한 믿음이라고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한 종들을 택하시고 귀하게 쓰셨습니다. 솔로몬 왕이 초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했습니다. 그 때 강성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을 때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다시는 합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형통케 되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생각할 때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이 생각납니다. 러시아 개척 초기 때는 러시아역사를 직접 섬기셨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국제 수양회를 앞두고 공항에 양들과 함께 환영하러 나갔습니다.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을 처음 보는 러시아 양들이 말로만 듣던 선교사님이 어떤 분인가 호기심 반, 설래임 반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나오셨습니다. 양들이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선교사님의 인도로 다 같이 찬송가 크리스천 soldier,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를 힘차게 부르고 신자들은 군인처럼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고 설교하셨습니다. 군인정신 fighting spirit이 충만한 이종의 절대적인 믿음을 본받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주님의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세계 곳곳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서한국과 세계선교 역사 가운데 백부장과 같은 이종의 믿음을 크게 축복하셨음을 믿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또 너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이라고 무조건 천국에 앉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만진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로 능히 질병을 고치시는 전능자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입니다. 반면에 본 자손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은 다 쫓겨나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그의 믿음대로 하인이 나음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하고 감동시켰던 백부장의 삶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잘 모르지만 그의 믿음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쯤 와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가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믿은 대로 될지어다.” 지금 나의 장래 일은 모르지만 나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백부장과 같이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믿음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예수님 (14-17)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직접 심방 가셔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왜 열병에 걸렸을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후, 가족들에게 소홀히 하여 열 받은 것일까요?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어떤 원인으로 연약해지고 면역이 떨어져서 병이 생긴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연약해진 여인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녀는 지난 세월동안 그 손으로 많은 수고를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손을 만지심으로 베드로 장모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의 가족의 어려움을 결코 외면치 않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복음만 전하고 가족들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큰 기쁨과 확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베드로 장모는 열병이 떠나가고 벌떡 일어나 회복된 손으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저물자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치열하게 영적싸움을 싸우신 것입니다. 베드로 장모가 금방 열병에서 일어나고 많은 귀신들린 자들, 병든 자들이 나음 받은 것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의 연약한 것을 친히 감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보고 이사야서 53장 4절 말씀을 떠올리며 인용하였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을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만일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였거나 중한 병에 걸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던 차에 어떤 고마운 분이 나타나 조금이나마 짐을 나누어진다면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연약함을 극복하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고 우리의 병을 죄의 짐을 조금 나누어지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연약함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죄에서 왔습니다. 인간은 원래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스리는 강한 존재였는데 범죄함으로 일생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살며 흙이니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연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사 우리 연약함을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일생 우리의 연약함을 섬겨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 실수와 운명을 친히 담당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해 주십니다. 예수님께 연약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병든 내면이 나음 받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해 주시는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찬송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은혜 받게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와서 몸이 아픈 곳이 여러 군데 생기면서 병원과 센터에서 쉼 없이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쉬고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고자 했습니다. 그럴 때 이상하게 스피릿이 빠지고 군기 빠진 예비군과 같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백부장을 통하여 도전받고 백부장의 목자의 심정과 믿음을 새롭게 배우고자 결단케 되었습니다. 제가 백부장과 같이 목자의 심정이 충만한 믿음의 종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선한목자 예수님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양들에게 잘 전하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감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선한 목자입니다. 나병환자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백부장의 목자의 심정과 믿음을 보시고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감당하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잘 배워 우리도 양들의 연약함을 감당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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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4강] 사탄아 물러가라 관리자 2014-02-09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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