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04 (일) 12:28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13강-1(고영훈).hwp (28KB) (Down:268)
ㆍ추천: 0  ㆍ조회: 1949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13강]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2014년 마태복음 제13강                                                                        고영훈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말씀 / 마태복음 9:18-38
요절 / 마태복음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가 연이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시고, 한 관리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며, 말을 못하게 된 자가 말을 하게 된 사건들은 각각의 믿음을 기초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 믿음대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한 관리의 믿음과 혈루증 앓는 여인의 믿음(18-26)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통한 새 역사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간청했습니다.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이 관리는 마가복음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를 가리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고 재판을 했으며 교육도 받았습니다. 회당은 그야말로 유대인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책임자로서 예배를 주관하고 재판을 담당하였습니다. 회당장은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회당장은 율법적이고 완고하여 새 포도주와 같은 예수님의 교훈을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예수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 난 딸이 있었는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신음하다 방금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갑자기 이런 변을 당했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중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살아있을 때는 소망이 있지만 일단 숨을 멈추고 죽게 되면 누구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립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예수님이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놀라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와 방불한 중풍 병자를 자리에서 일으키시고, 나병환자와 각종 병자들을 고치는 권능을 보면서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 예수님이시라면 죽은 딸을 능히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적용시킬 수 있는 살아 있는 창조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믿음을 보시고 죽은 자를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한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몰래 그 겉옷 가를 만진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손을 꼭 잡은 것도 아니고 뒤로 와서 겉옷을 살짝 만진 것이 예수님께 그만 감지되고 말았습니다. 여인의 행동은 지극히 미미했지만 그 마음에 그 옷만 살짝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하는 놀라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혈루증은 계속 출혈하는 부인병인데 이 여인이 열두 해를 앓았으니 그 모습과 고통이 어떠했겠습니까? 마가복음에서는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5:2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가 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많이 받고 시달림을 받았는가를 말해줍니다. 또한 율법에서는 유출병이 있는 자는 부정한 자로 보았습니다.(레15장) 이 고질병은 여인의 아름다움과 꿈과 행복을 앗아갔습니다. 여인은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더러운 나병환자도 깨끗케 하시고 몹쓸 중풍병자도 일으켜 세우셨다는 소문을 듣고 이 예수님이시라면 자기의 불치병도 능히 고쳐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인은 인간의 의술에 절망하고, 사람들에게 절망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절망하였지만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을 만지는 것도 실제로는 제약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에서는 부정한 병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몰래 예수님께 나올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 뒤로 가서 겉옷 가를 살짝 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진 것은 실로 큰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보시고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그 믿음을 축복하셔서 “딸아, 안심하라” 하시며 영접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율법을 어기고 부정한 손으로 몰래 손을 대었다고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딸로 영접해 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칭찬해주시고 축복해주시자 즉시로 고질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 가에 손만 대어도 고질병이 깨끗하게 나음 받는 믿음의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괴롭히는 고질병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끊으려 해도 못 끊는 죄악된 습관에 중독되어 영적 생명력을 잃게 되는 고질적인 죄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영육간의 고질병을 해결 받지 못하면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마음에서부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놀라운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고질병을 치유 받으려면 마음에서부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히는 고질병을 예수님께 들고 나가 기도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 절망감을 극복하고 한마디 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나갈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비록 이와 같은 투쟁은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전기코드를 콘센트에 꼽는 순간 불이 들어오듯이 이런 믿음의 행동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곧바로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가 10년 이상 오래 되었을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터치하면 반드시 고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짐으로 고질병이 깨끗이 나음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혈루증 앓는 여인으로 인해 시간이 급한데 지체되자 회당장은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겠습니까? 믿음으로 인내하고 드디어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가시자 그 곳은 이미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로 인해 죽음의 분위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권세에 굴복 당하여 슬피 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는 죽은 소녀도 자는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수고를 그치고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14:13절에서는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비밀스러운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기 때문에 잔다는 말씀을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신으로 가득 찬 이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자들과는 함께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야이로와 몇몇 제자들을 데리고 소녀에게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딸의 생명을 살리는데 야이로의 믿음을 귀히 쓰셨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나아올 때 가졌던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오는 도중 혈루증 앓는 여인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될 때나, 죽음권세에 압도당하여 슬피 우는 집안 분위기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야이로의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죽었던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났습니다. 메시아의 생명의 손이 닿자마자 소녀의 생명이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창조주시오 생명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오늘날 캠퍼스 현장을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마치 죽은 것처럼 절망적으로 보는 자들이 많습니다. 캠퍼스의 지성인들은 영적인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육신주의와 쾌락주의에 깊이 빠져 있고 또한 취직 준비에 온 관심을 쏟고 있어 이런 곳에서 복음 역사가 일어나고 제자들이 양성 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지성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으로 보십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살아날 것으로 보십니다.(요5:25) 그러므로 우리가 캠퍼스 양떼들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이 있고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속에 있는 부정적인 말, 불신의 말, 의심의 말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예수님이 역사하실 믿음의 환경을 예비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가운데 캠퍼스 영혼들이 살아나서 예수님의 제자로 서는 역사가 흥왕히 일어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II.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27-34)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때에 두 맹인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오며 합심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맹인이 눈을 뜬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맹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 말하는 것을 통해 볼 때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로 알고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맹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를 한 번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소원과 믿음으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못 들으셨는지 그냥 집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 대해 오해하거나 불신하지 않고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소리 지르며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간절하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그들이 이렇게 열심히 쫓아왔는데 예수님께서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는 그들이 먼저 믿음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단순히 눈만 뜨기를 원치 않으시고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문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맹인들은 확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이 믿음의 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축복해주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29)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육신의 눈을 뜨고 믿음의 눈을 뜨게 되는 온전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하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 하시는 분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믿음도 있어야 하지만 인간적인 능력이나 타이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겸손히 믿음을 배우고자 하기보다 자신의 인간 조건 개선에 더 힘을 씁니다. 그러나 이렇게 노력하여 자신의 조건이나 형편이 좋아져도 믿음이 없으면 큰일은 둘째 치고 자기 문제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자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학식과 율법에 능통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나 그런 인간 조건 때문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의지하여 살았을 때 교만하여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과 자기자랑을 회개하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하였을 때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81:10절에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기 원한다면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 겨자씨같이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 때 영적인 눈을 뜨는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우리는 힘든 문제를 만날 때 문제 해결에 급급하여 이리저리 허둥대며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0:38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현실이 어렵다고 뒤로 물러나면 결코 믿음을 배울 수 없습니다. 어찌하든지 앞으로 전진하고자 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 있고 더 큰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나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히10:39) 믿음으로 전진하고 도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열매에 따라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열매가 없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믿음을 배웠다면 그 보다 더 값진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가 이 시간 이에 믿음으로 화답하여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나갈 때에 이번에는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 왔습니다. 그는 입이 있으나 귀신이 입술을 꼭 잡고 있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였겠습니까? 그런데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자 귀신이 쫓겨나고 곧 그의 입이 열려 즉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을 본 무리들은 놀랍게 여기며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반면에 같은 사건을 보고도 바리새인들은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하며 악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내면이 비뚤어져 하나님의 역사를 악평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처럼 메시아 사역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비난하고 악평을 하는 자들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III.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35-38)
  35-38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과 기도제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악평에도 개의치 않으시고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셨습니다. 문제가 많은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나 병들고 죄악이 만연하여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함을 아시고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니라” 예수님은 이 병든 세상을 보며 상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세상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은 병든 자들을 돌보아 줄 참된 목자가 없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세상을 추수할 밭으로 보셨습니다.
  37,3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추수할 것이 많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추수할 일꾼이 적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시며 제자들이 아직 어리고 부족하지만 이들이 추수할 일꾼이 되어 온 세상을 먹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세상에 죄악이 만연하여 일어난 복합적인 사건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나 죄악되고 문제가 많아 소망을 두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입니다. 추수할 일꾼들이 예수님의 마음과 소망과 사랑을 덧입고 일할 때 세상이 조금씩 알곡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할 것이 많다고 생각할 때 열심히 일 할 의욕이 생겨나며 또 일꾼들이 서로 품앗이 하며 동역하여 신바람 나게 일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소망을 잃고 게을러서 추수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이단들이 다 빼앗아 가 버릴 것이요 그대로 놔두면 다 썩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제일 먼저 나 자신을 추수할 일꾼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유능한 성경선생으로 성장하여 캠퍼스 추수할 밭에서 열심히 추수를 감당할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 가운데 추수할 일꾼들을 많이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유능한 성경선생 200명을 세워달라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분들이 유능한 성경선생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 열심히 추수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이 세상은 알곡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온 통 사람들의 죄악으로 가득차서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무고한 대학생들이 대형 참사로 죽고, 또 이번에는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어린 고등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의 죄악으로 또 어떤 대형 참사가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 너무도 불안합니다. 그리고 이런 참사 앞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음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오는 자는 그 어떠한 자도 영접해 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복 주시는 분임을 배웠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추수하게 된 밭으로 보고 그의 일꾼이 되어 열심히 추수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도 더 간절히 하고 무엇보다 유능한 성경선생으로 성장하여 캠퍼스와 제가 처한 곳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겠습니다. 제가 이제는 무엇보다 믿음을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이 믿음으로 생명을 살리고 생명구원역사를 섬기는 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 고백하며 믿음을 배우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에 우리 모두를 추수할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과 소망과 사랑을 덧입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세상에서 열심히 추수하는 주님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38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4-06-22 2116
33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9강]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14-06-15 1986
33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8강] 천국은 자라고 퍼져나갑니다 관리자 2014-06-08 2025
33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7강] 말씀이 열매를 맺는 사람 관리자 2014-06-01 1768
334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6강]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관리자 2014-05-25 2681
33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관리자 2014-05-18 2059
332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4강] 두려워하지 말고 전파하라 관리자 2014-05-11 1978
331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3강]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관리자 2014-05-04 1949
330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2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4-04-27 1775
329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1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14-04-20 2093
328 마태복음 [2014년 부활절 수양회 주제2강]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관리자 2014-04-13 2142
327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0강] 듣고 행하는 자 관리자 2014-04-06 2099
32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9강]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14-03-30 2758
32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8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14-03-23 3189
324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454
32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6강]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관리자 2014-03-09 2836
322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5강] 소금과 빛 관리자 2014-03-02 2136
321 이사야 [2014년 신년 제7강] 이방인을 예물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4-02-23 1687
320 이사야 [2014년 신년 제6강]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관리자 2014-02-16 2134
319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4강] 사탄아 물러가라 관리자 2014-02-09 1781
1,,,21222324252627282930,,,37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