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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2-06 (일) 09:14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38강-1.hwp (28KB) (Down: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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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38강]양과 염소의 비유
2020년 마태복음 제38강(한아브라함)
                          양과 염소의 비유
말씀: 마태복음 25;31-46
요절: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질 것과 인류 종말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말세에 깨어 준비하는 삶이 무엇인가 비유를 통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의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등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양과 염소 비유는 종말론의 최종 결론이고 또한 마태복음 전체의 최종 결론이기도합니다. 마지막 때 영의 양식을 잘 먹고 기도에 힘쓰며 깨어있으라 하셨죠. 그러면 깨어 있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것이죠. 믿음의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서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돌보라는 것이죠. 아주 구체적인 것이죠. 마지막 때는 현실도피적인 신앙에 빠지거나 이기적인 기복신앙으로 흐르기 쉬운데 구체적으로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작은 자 한 사람을 돌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른편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인자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이들과 함께 하시며 쓸 만한 자들로 키우셨습니다. 죄인들을 섬기는 삶 병자들을 고치는 삶을 사시며 일생 머리 둘 곳 없이 사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은 모든 천사들을 대동 하시고 큰 나팔 소리 와 함께 영광 가운데 오십니다. 심판 주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십니다. 32절 보십시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 하는 것 같이 하여’ 그날에는 역사 이래로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 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복음 5장 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지막 심판 날의 모습이 장관일 것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는 심판의 대상이 모든 민족이지만 양과 염소 비유는 교회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3절 보십시오.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선 악간에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그 심판의 기준이 정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능처럼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야 최소 10 등급으로는 나눠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양과 염소 딱 두 그룹으로 나눌 뿐입니다. 중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회색지대를 좋아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중간지대에 머무르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겼지만 바알도 섬겼습니다. 하나님도 섬기지만 재물 풍요의신 바알도 섬겼습니다. 그만 섬기라 하나님만 섬기라는 선지자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다가 망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살기 쉬운데 양다리는 없습니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에서는 양과 염소를 같이 키웠습니다. 따로 키우는 것보다 여러 가지 잇점이 있는 것이죠. 염소는 양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지 않게 합니다. 이리가 습격하면 양만 있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염소가 있으면 염소가 이리와 맞서 싸움으로 목자가 달려올 시간을 법니다. 낮에는 같이 지내다가 밤이 되면 털이 없어 추위에 약한 염소는 우리 안쪽으로 털이 많아 추위에 강한 양은 바깥쪽으로 분리합니다. 양과 염소를 분리하는 것이 당시에 익숙한 상황인 것입니다. 양은 성격이 온순하고 목자의 말을 잘 듣습니다. 반면에 염소는 고집이 세고 말을 잘 안 듣고 난폭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양떼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염소라고 하지 않았어요. 예수님도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지 내 염소를 먹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도 양과 염소가 섞여 지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나누십니다. 마치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같습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라지와 알곡이 잘 구분이 안 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죠. 추수 때 알곡은 열매의 무게가 나가므로 고개를 숙입니다. 가라지는 자기가 강하기 때문에 꼿꼿하게 위로 길게 자랍니다. 추수 때는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쉽게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했습니다. 영어로 라이트 오른쪽이라는 말도 있지만 옳다라는 뜻도 됩니다. 즉 우편은 올바르고 의로운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분하시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염소가 아니라 양이 되어야 합니다. 갑자기 염소가 양으로 바뀔 수 없는 것이죠. 평소에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 걸치지 말아야 합니다. 네가 어느 때까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외쳤던 엘리야 선지자의 책망을 오늘 우리는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야 할 것입니다. 34절 보십시오. ‘그때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임금이신 예수님은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라고 감탄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 곧 천국을 상속 받으라고 하십니다. 천국이라 할 때 막연하게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올라서 내 집 마련이 어려운데 ‘그곳에 가면 좋은 집을 거저 얻을 거야’ 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는 것입니다. 이곳은 천지창조 인간 창조 때부터 예비 된 곳입니다. 에덴동산보다도 훨씬 더 완벽한 천국입니다. 생명수 강물이 흐르는 곳, 생명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곳,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평화로운 곳, 양에 속한 자들이 그곳에서 영생을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만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35,36 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왜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습니다.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되 말로만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삶 속에서 섬기는 수고를 감당하였습니다. 그럴 때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 사랑은 막연할 수 있지만 형제 사랑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우리가 나에게 100데나리온 빚을 진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37절-39절 보십시오. 의인들의 대답이 이상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그런 일을 했느냐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며 되물었습니다. 그냥 아무 말 안 하든지 아니면 예 제가 ‘한 선행’ 하지요 하며 으시댈수 있지만 그렇게 안 했습니다. 굳이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라고 여기고 잊어버렸습니다. 이들은 무익한 종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큰일을 하였어도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한 일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이고 작은 선행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한 것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고 칭찬 하십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자 높아지고자 투쟁 합니다. 가난한 자 어린 자 낮은 자를 업신여깁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높아지기라도 하면 낮은 자를 업신여기고 갑 질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과 거꾸로 가야 합니다. 특히 작은 자를 선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 믿는 작은 자 한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40절 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 이니라‘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맹렬히 핍박하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4절-5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예수님 자신을 핍박하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가리킵니다. 세계 선교 현장에서 고난을 받으며 요즘 같으면 코로나로 인한 3중 고난을 받으며 영육 간에 지치고 병들어 도움이 필요한 선교사님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또한 넓은 의미로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즉 사회적 약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한 결 같이 가난한 자들을 병든 자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입니다.

사라 베리 선교사님은 한국 전쟁으로 파괴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에 오셔서 가난하고 헐벗은 한국 백성들, 특히 한국 대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고 잘 살았다면 이분은 한국인과 같이 허름한 단칸방에 거하며 김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당시 아무도 돌보지 않던 병든 한 청년을 돌보았고 예수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 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이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신학을 공부해서 광주지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마더 베리 선교사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이분은 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찾아왔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광주 신학대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김 정중 목사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캠퍼스 양들이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이들은 겉보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 이들은 지극히 작은 자들입니다. 불확실하고 어두운 장래문제로 인해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영적으로 더욱 주리고 목말라 하며 나그네와 같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깊이 병들었습니다. 죄에 포로 되어 갇혀 있습니다. 캠퍼스 양들에게 영의 양식을 잘 먹이며 이들을 돌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작은 자 한사람을 섬기는 인생은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는 인생입니다. 작은 예수로 사는 인생입니다.

 41절을 보십시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임금 되신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자들을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 지옥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한 뜻 가운데 창조된 인간이 영원한 불 못, 지옥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2절 43절 보십시오. 예수님은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모른 척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펄적 뜁니다.’자신들이 언제 그랬냐고 언제 어려움에 처한 예수님을 공양 하지 않았냐고‘ 그러자 예수님은 똑같이 말씀하시죠.’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어디서 이런 심각한 오해가 생긴 것일까요?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수도 있습니다. 영의 양식도 잘 먹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드리고 ’주님 사랑해요‘ 찬양도 뜨겁게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관심이 오직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죠. 신앙생활도 자기만족을 위해 했습니다. 작은 자 한사람을 돌보는 일에는 무관심 했습니다. 오히려 바로 내가 지극히 작은 자인데 내가 누구를 섬길 수 있겠는가 생각합니다. 누가 영적으로 나쁜 사람입니까? 오직 관심이 나뿐인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왼편 사람들에게 ’나를 박대 하였으니 지옥에 가라‘고 하자 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을 잘 대접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도움이 필요한 성도의 모습으로 올 때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박대 하였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나사렛예수 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잘 대접해 주었겠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라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톨스토이 단편소설 중에 구두장이 마틴 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마틴은 낮에는 지하 단칸방에서 열심히 구두수선을 하고 밤에는 열심히 성경을 읽는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어느 날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틴 내가 내일 너를 찾아 갈 것이다.‘ 다음날 마틴은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주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창문밖에 추위에 떨며 거리를 쓸고 있는 늙은 청소부를 보고 자기 방으로 데려와서 따뜻한 차를 대접합니다. 아기를 안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인을 대접하고 우유 값으로 얼마를 줍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사과를 훔쳤다가 주인에게 들켜 매를 맞는 소년을 도와줍니다. 밤12시가 되었지만 주님이 안 오신 것을 아쉬워하며 성경을 폈는데 마태복음 25장 40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잠시 후 자신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그들 배후에 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들이 바로 나였느니라.‘ 주님은 소자 한사람의 모습으로 마틴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작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소원 없어 보이는 캠퍼스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십니다. 때로는 도음이 필요한 선교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힘든 교회 동역자의 모습으로 나에게 오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잘 못 대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후회 하는 왼 편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믿음을 주셨다면 믿음이 없는 자들을 도와주기 위함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부를 주셨다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건강을 주셨다면 병든 자들을 돌아보기 위함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달란트를 주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달란트를 사용하여 드리라는 뜻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한사람을 돌 본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지만 지극히 작은 자 한사람을 돌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결론이 무엇이죠?’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 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91년도 5월에 저와 같이 러시아 선교사로 갔던 네 명 중에, 한 분은 위암으로 한 분은 심장병으로 소천 하셨습니다. 또 한 분은 정신이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안타까움이 늘 있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와서 병원을 개업했는데 병원으로 찾아오시는 건강검진이 필요한 선교사님들 주의 종들을 성심성의껏 돌보고자 했습니다. 영적전쟁에서 부상당한 도움이 필요한 부상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찾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선교사님들과 주의 종들을 망우동 주민들을 검진하고 치료할 수 있는 큰 병원을 자격이 없는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제가 이 은혜를 계속해서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힘든 양의 모습으로 찾아오셨던 주님을 박대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돕다가 힘들어지며 세상으로 가는 이들을 끝까지 돕지 못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적 도움이 필요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심히 찔리고 도전 받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양의 모습으로, 힘든 교회 동역자의 모습으로 아픈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종으로 변화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불법이 성행하며 사랑이 식어갑니다. 이런 현실은 곧 목자에게는 할 일이 많아지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이웃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외면하면 천국의 상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라 하십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지양하고 주님의 목자의 마음을 잘 배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고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실천함으로 장차 오른편에 서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나라를 상속 받는 저희들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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