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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2-20 (일) 09:2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0년_성탄_제2강-1.hwp (32KB) (Down: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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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성탄 제2강]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2020년 성탄절 제2강(이종하)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말씀: 누가복음 2:1-20
요절: 누가복음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영화의 오마하 해변 장면 일부가 흐리게 나오는데, 당시 상륙부대와 함께 해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떨리는 손으로 찍은, 한 종군기자의 사진을 참고한 것이었습니다. 이 종군기자가 로버트 카파입니다. 라이프지는 그 사진에 대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고 실었으며, 세계적인 특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카파는 그 후 전쟁의 실상을 담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리고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 도중 지뢰를 밟고 사망합니다. 생사의 귀로에서 현장의 사진을 통해 진실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은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장의 소중한 사진 그 순간 포착을 위해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카파의 모습에서, 한 마리의 어린 양을 구원하기 위해, 잃어버린 자녀를 다시 찾기 위해 이 땅에 구유까지 낮아지신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고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2020년 한해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연일 온 백성에게 걱정과 두려움을 주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를 기쁘게 하는 소식은 없을까요? 오늘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는 예사 아기가 아닙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으로 가서 천사들의 메시지를 들어 봅시다.

1, 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다스리던 때’,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 저자 누가는 세계사 편에서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제정 로마시대의 최초 황제이며,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로,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실제적인 제 1인자가 되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은 이런 그에게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고 로마에 평화를 가져온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수여하고 황제의 자리에 등극시켰습니다. 그는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허용해 주었으며, 풍습과 종교 신념도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룩하려고 힘쓴 결과, 세계는 오랜 세월 동안 전에 없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는 군대의 힘으로 이룬 평화였으며, 로마 시민의 풍족한 삶 이면에는 수많은 노예들의 희생이 있었던 가짜 평화였습니다. 이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는 거역할 수 없는 법령이 되어서 로마 제국 방방곡곡에 하달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식민지 백성의 인구와 재산을 파악해서 인두세를 징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5절까지 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당시 로마의 인구 조사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등록하는 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지역마다 예외를 허용해주었는데, 유대의 경우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각 족속의 원적지로 가서 신고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목수 요셉도 가이사의 호적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만삭이 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45Km 거리였습니다. 건장한 사람이라도 힘든 길인데 만삭이 된 마리아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렇게 마리아가 힘들게 베들레헴에 오고 여기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가이사의 명령에 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BC 700년경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미 5:2). 따라서,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가이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의 절대 권력을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로마의 황제가 주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시기에 봉건주의, 계급주의가 타파되고 근대사회로 진입하도록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이 조선에 뿌리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로 통했던 환락의 도시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었습니다. 1930년대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많은 성도들이 조직적으로 거부운동을 벌였는데, 이로 인해 투옥된 이는 2,000여 명에 이르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 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난을 통해 한국 교회가 순수 복음 신앙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 후 영육간에 복을 주셔서 말세의 때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강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서적인 역사관을 가질 때, 세상의 흐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6,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요셉 일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의 산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당황한 요셉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다급히 방을 구했으나 호적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차서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으로, 본래 인정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이사의 통치 아래 사는 백성들은 산모에게 방 한 칸 양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할 수 없이 짐승들이 거하는 외양간으로 가야했습니다. 짐승들은 산모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비천한 그 곳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원자가 탄생하셨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없었고 반짝이는 장식용 전구도 하나 없었습니다. 첫 번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오는 여관 옆 초라한 외양간에, 갓 태어난 한 아이가 구유에 뉘어져 있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별들만 높이 빛나고 잠잠히 있으니 저 놀라운 빛 지금 캄캄한 이 밤에 온 하늘 두루 비춘 줄 너 어찌 모르나” 온 세상 모든 사람들 잠자는 동안에 평화의 왕이 세상에 탄생하셨도다!!
현대는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편리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삭막한 현실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 분노, 경쟁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한 순간도 마음의 평화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슬픈 환경 가운데서 탄생하셨습니다. 그 분이 이런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슬프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이해하고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예수님 앞에 나갈 때 어떤 누구도 위로받고 회복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첫 번 성탄의 소식은 베들레헴 주민이나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에게 먼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뜻밖에도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4-11월)에 가축을 이끌고 밀 추수가 끝난 농경지에 들어가, 남아 있는 밀 밑동을 먹이고 밭 정리를 해주며, 주인에게 보수를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밖에서’는 바로 이 농경지 들판(agricultural field)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밖에서 도둑이나 다른 짐승으로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번갈아가며 밤새워 보초를 섰습니다. 그러면 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목자들에게 성탄의 복음이 가장 먼저 전해졌을까요? 첫째로, 그들은 성탄의 소식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었습니다. 또 밤낮으로 양 떼들을 지키는 충성된 자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수하고 겸손한 자들이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성안 사람들이 배척하는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이 무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수하고 밤에도 자기 양떼를 지키는 충성스러운 이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무관심했지만 하늘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났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비추었습니다. 눈부신 빛 때문에 목자들은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소식은 ‘온 천하로 호적하라’는 가이사 명령과 완전 대조가 됩니다. 가이사의 호적명령 소식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가져온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유앙겔리온)’은 바로 복음입니다. 당시 좋은 소식이라 함은 황제가 아들을 낳았거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백성들은 모든 재산을 약탈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승전보는 이런 상황에 처한 온 백성에게 미치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B.C. 490년경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와 페르시아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병력수로만 보면 아테네 1만명과, 페르시아 20만의 싸움이라 처음부터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테네의 지휘관 밀티아네스의 뛰어난 전술로 예상을 뒤엎고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을 궤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자 아테네의 연락병 필리페네스는 42.195km를 쉬지 않고 단숨에 달려, 절망 중에 있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우리가 이겼다’는 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이었던지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서 ‘나셨다’는 것은 과거시제이고,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현재시제입니다. 따라서 과거 한 시점의 성탄절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그날 이후 늘, 오늘 현재 계속 그리스도 주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구주 탄생의 소식은 언제나 듣고 들어도 기쁘고, 마음에 평강이 임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구주로 오셨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운명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좀 안정되었다고 생각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옵니다. 우리에게 공통된 가장 큰 슬픔의 나쁜 소식은 죽도록 수고하다가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 땅이 꺼질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이후에는 영원한 심판이 기다립니다. 누가 이런 고통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누가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습니까? 어떤 백신이 나를 살릴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세우신 자란 뜻입니다. 또 ‘주’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힘없는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외양간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이 한 아기 예수님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죄인들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마침내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생명의 구주가 되실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감사 찬양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는 당연히 궁궐에서 빵빠르가 울리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하게 탄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은 가장 가난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구유’는 짐승의 먹이통으로, 지저분하고 냄새가 납니다. 이런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그리스도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표적(sign)’이란 표시, 신호, 상징이란 뜻이며 기적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군대의 상징은 독수리이며, 화려한 세상나라를 나타내었습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의 상징은 구유에 누인 연약한 아기였습니다. 그러면 인류의 구주가 왜 이런 방법으로 탄생하신 것입니까? 왜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나셨습니까? 황제로 오셨으면 더 쉽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세상의 방법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본문제는 백성들의 죄문제로, 하나님은 사람의 피를 요구하셨습니다. 어떤 누가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다른 이를 구원하고자 하겠습니까? 설사 그럴지라도 전 인류를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스스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창에 찔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이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고 믿는, 모든 이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받고 세상이 포기한 약자나 병든 자도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목자들처럼 비천한 사람들, 사람들에게 버림받아서 상처가 많은 사람들도 가장 낮고, 가난하며, 운명적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위로와 생명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고, 이기적이고 교만한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겸손과 섬김과 희생의 모습으로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13, 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외면하고 배척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노래하였습니다. 이런 장엄한 광경을 목자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의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중에 평화’였습니다. 구주 성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땅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평이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군인만 약 1 천만 명이 전사한 끔직한 전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2-3개월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참호 속에서 끝없는 소모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어느 듯 1914년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눈보라 속에서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오전 11시쯤 독일군 참호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때 영국군들도 같이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순간 전장은 합창 소리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독일군 한 병사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한 손에 쥐고 노래를 부르며 영국군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 군사들은 잔뜩 긴장하였지만 그가 캐럴을 부르기에 누구도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참호 속에서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독일 병사들도 몰려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인사하고 껴안았습니다. 먹을 것을 나누며, 서로 크리스마스선물을 주었습니다. 또 이발도 해주며 가족사진을 돌려 보았습니다. 급히 시신을 정리하여 축구장을 만들고 축구를 하며 뒹굴었습니다. 당시 한 영국 병사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어머니, 몇 시간 전 우리는 원수들처럼 싸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수백 명이 서로 참호에서 나와 서로 웃고, 서로 악수하고, 서로 먹을 것을 나눠며 메리크리스마스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앞으로 3년 반이나 더 진행되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잔인한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하나가 되었습니까?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으로 가능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갈등과 미움 가운데 있는 이 세상 가운데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유사무엘 선교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3월 경, 대구 군의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습니다. 예기치 않게 만났는데, 같은 UBF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거의 매일 합심 기도하고, 그 분의 초청으로 대구센타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분은 저에게 아프리카 선교사로 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교 병원에 들어가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훈련이 끝나자 그분은 군대로, 저는 무의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2년 아프리카로 나가기 직전에 저희 센타를 들렸는데, 제가 우수 인턴상으로 받았던 청진기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후 유선교사님은 아프리카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다 주사바늘에 찔리고, 결핵이 옮아 늑막염으로 한참 고생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큰 딸이 뇌염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에티오피아에서 방 한 칸에 거주하며 복음역사 섬기고 계십니다. 저는 이분이 아프리카에서 28년간 선교사로 사셨고, 다들 은퇴하는 나이인 지금도 선교사로 살고 있는 것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헌신과 수고를 알기에 숙연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이 분의 life testimony를 찾아보았는데,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 이 땅에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을 구원하신 것이 너무 감사하여서 그런 삶을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리틀 지저스(little Jesus)로서 지금도 묵묵히 아프리카 영혼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1982년 12월 24일 저녁,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고향 도립병원 병실 복도에 서있었습니다. 회복할 기미가 없는 저의 부친을 생각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동생이 셋이나 있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둔기로 맞은 것처럼 머리는 멍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하게 창밖을 쳐다보았는데, 교회 건물에 크리스마트리처럼 장식된 작은 전구들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작게나마 캐럴소리가 저의 귓가에 들렸습니다. 저의 마음과는 반대로 그 곳은 잔잔한 평화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마음에도 저 평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나에게 절망뿐인 이 날에 그들은 어떻게 잔잔한 평화스러운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지 너무 부러웠습니다. 속으로 ‘나에게도 저 평화를 주세요’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 후 10개월쯤 지났을 때 주님은 저를 ubf 창세기 아카데미로 불러주셨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주님은 이 기억과 은혜를 늘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럴 때 매년 9월쯤 시작되는 저의 우울증이 끝났습니다. 이 시간 제가 가장 절망적이고 슬플 때 먼저 임마누엘하시고, 지금껏 보호하시며, 키우시고, 높이신 은혜를 감사 찬양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들밖에 있는 목자들같이 순수하고, 항상 깨어있게 하셔서 제가 보고 느끼고 들은 성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이번 성탄절에 목자들과 같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깊이 만나고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호적 명령처럼 산만하고 혼란스럽지만, 이런 가운데 목자들처럼 순수하게 주님의 탄생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우리 구주 예수님과 함께 희망 찬 한 해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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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제40강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관리자 2021-01-24 257
681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39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21-01-17 288
680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3강]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관리자 2021-01-09 320
679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2강]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관리자 2021-01-03 346
678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1강]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관리자 2020-12-27 374
677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2강]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관리자 2020-12-20 276
676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1강]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관리자 2020-12-13 301
67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8강]양과 염소의 비유 관리자 2020-12-06 362
67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7강]착하고 충성된 종 관리자 2020-11-29 362
67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6강]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관리자 2020-11-21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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