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2-27 (일) 08:42
분 류 골로새서
첨부#1 2020년_신년_제1강-1.hwp (32KB) (Down:44)
ㆍ추천: 0  ㆍ조회: 342      
IP: 61.xxx.145
[2021년 신년 제1강]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2021년 신년 제1강 ( 김반석)
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말씀 / 골로새서 1:1-29
요절 /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A.D.62년경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3년 동안 말씀을 가르쳤을 때 에바브라가 복음을 듣고, 골로새로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개척되었습니다.(1:7,4:12) 이곳은 동서 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상업 활동이 활발했을 뿐 아니라 각종 사상, 이단들이 난입해 들어와 있어 사상적으로 좀 복잡하였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아 골로새 교회에는 유대 율법주의, 천사숭배 사상, 영지주의 등이 침투하여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다른 것을 가르쳐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 이런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가르치므로 혼합주의적 이단 사상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고, 교회를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세우고자 서신을 보냈습니다. 오늘날도 각종 이단과 혼합주의 세력이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교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자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시선이 따갑고 비관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원주의, 인본주의 문화로 기독교도 상대화 되었는데, 교회마저 공격을 받으니 왠지 기독교가 무력하게 느껴지고 우리의 마음도 위축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 골로새서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해 깊이 배우고, 예수님께 견고히 뿌리를 내리므로 2021년에도 힘 있게 복음 역사를 섬기는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흑암의 권세에서 속량하신 예수님(1~14)
1,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또한 디모데와 골로새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한 가족이 되어 사랑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복음의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3~6절은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4~5a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첫째,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는 철학 사상이나 이단에 빠지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섰습니다. 에바브라를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고, 양들이 진리를 분별하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은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둘째, 성도들 간에 사랑이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소수였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에게 관심을 갖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섬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17) 어려움 가운데서도 양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있다는 소식은 바울에게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셋째,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믿음과 사랑을 소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늘에 소망을 쌓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건설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에 어떤 소망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스타일이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 것들을 얻는 데 인생을 바칩니다. 요즘과 같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노후를 보장해 줄 풍족한 물질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소망은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참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소망은 행복을 줄 것 같지만 우리를 실망시키는 거짓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쌓아둔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 소망을 간직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갈 성도들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이런 소망은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는 데서 생깁니다(5b). 골로새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인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간직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성도 간의 사랑이 식어 심령이 메말라 가고, 세상 소망의 유혹에 빠질 때 말씀을 듣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믿음은 듣는 데서 생기고,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롬10:17)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 힘쓰므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한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12절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양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기도해야 됨을 배웁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다 함께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사람들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지식들로 채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 지식이 많아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죄악된 삶을 살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이단 사상에 말려들어 믿음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질 때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원문에 보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 인내하고 오래 참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유혹과 핍박과 멸시 등 고난을 만나게 되지만 기쁨으로 참고 견딜 때 성령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강하게 어떤 유혹과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기도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감사하기보다 불평과 원망과 비방의 말을 내뱉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까? 다 함께 13,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여기서, 흑암의 권세란 죄와 사탄의 권세를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 죄와 사탄의 종이 되어 흑암에 행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몰라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 무기력 등 사망 권세에 사로잡혀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지옥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복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우는 것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계21:4) 나를 괴롭히던 죄의 세력도 사탄의 유혹도 없습니다. 어둠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온갖 진귀한 보석과 순금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빛나는 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흐리고, 강 좌우의 생명나무에서는 사시사철 맛 있는 과일이 열려 의식주 문제로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계22:1,2)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계22:5) 와~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요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독생자를 보내 속량하시고 하늘 나라에 합당하게 하신 이 은혜를 늘 잊지 말고 감사하기를 원하노라하고 말한 것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으로 정상적인 삶이 망가져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미국의 3인조 여성그룹 애비뉴 비트(Avenue Beat)가 발표한 ‘F2020’이라는 노래에는 2020년을 한탄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전염병이 내 인생을 빼앗아갔어. 올해는 진짜 꽝이야. 외롭고 우울하고 미쳐가는 중이야. 엿 먹어 2020년. 여전히 슬프고 돈도 없어. 난 이제 끝난 것 같아. 제발 2021년으로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얼마나 힘든 한 해였는지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속량 곧 죄사함 받은 은혜를 기억할 때,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이 나음을 받았지만 오직 한 명만이 와서 예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보시고 나머지는 어디 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슬프시게 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다른 것은 부족할지라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자기 진심을 드려 사랑하고 충성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다. 우리가 새해에는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먼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업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먼저 감사하며 섬겨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Ⅱ. 만물보다 먼저 계신 예수님(15~23a)
지금까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들을 위해 속량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말해 줍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믿음이 견고해지고, 감사도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세계와 인간의 내면에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내재적 욕구을 통해 우리가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일반계시) 하지만 일반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계시해주셨습니다.(특별계시)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결정적인 것 하나를 더해주셨습니다. 15a절을 보십시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형상’이란 헬라어로 ‘아이콘’이라는 뜻입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아이콘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보여주는 도구로서, 어떤 아이콘을 클릭하면 그 아이콘이 가진 기능과 속성이 나타납니다. 인터넷 아이콘을 클릭하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연결되고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줌 아이콘을 클릭하면 멀리 떨어진 사람과 비대면으로 모임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콘을 보면 그것의 기능과 역할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아이콘이신 예수님을 더블 클릭하면 거기서 하나님의 속성 일체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바람과 파도를 말씀으로 잔잔케 하시는 말씀의 권세,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변화의 능력도 나타납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맹인의 눈도 뜨게 하시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엄위하심이 있고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한없는 자비와 크신 사랑,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고 섬기시는 겸손한 사랑, 죄인들을 구하고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는 대속의 사랑도 있습니다. 또한 사망 권세를 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이제 곧 영광 중에 재림하실 영광의 왕, 심판의 주의 모습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이라는 형상을 통해 자신을 다 보여주셨고, 예수님도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겸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엎드려 경배해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예수님을 알고 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곁에 오셔서 은혜와 권능으로 함께 해주시고, 대화해주시고 보여주시고 겸손히 섬기시며 깨닫게 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둘째,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15b~17절을 보십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과 만물과의 관계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왕권들은 우주적인 권세를, 주권들은 천사들을,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이방인들의 수호신을 가리킵니다. 당시 이단들은 천사나 황제를 예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고 숭배하게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세계는 악하다고 믿었고, 하나님이 악한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육체로 오지 않았고, 영적인 세계만을 통치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까지도 예수님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려 질서 있게 유지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다 함께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교회는 이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은 죄와 사탄의 종된 삶을 살다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고, 각각 그 몸으로 행한 대로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9:27,고후5:10)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능력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의 주로 항상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인 동시에 예수님이 만물의 으뜸이 되심을 증명해 주는 사건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으뜸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이단들이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모든 충만을 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과 존재, 권세와 능력 즉 하나님의 전부가 거하십니다. 또한 의와 지혜와 은혜와 복이 충만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부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고, 구원을 받는 데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서 ‘충만’은 ‘완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분이 아니라 아무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가 되는 분이십니다. 이단들의 주장대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부족하고 무엇이 더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충만이 거하시기 때문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하여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빌2:9,10a) 예수님을 만물의 으뜸이시오, 모든 것이 충만한 분으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게 되고,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때 예수님으로부터 참된 위로와 사랑을 덧입게 됩니다. 참된 마음의 쉼과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 생활하면서 예수님만으로는 무엇인가 2% 부족하다고 느끼고, 다른 것들로부터 그 부족함을 채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만으로 부족하다며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통해 채우고자 합니다. 이성의 사랑, 게임, 스마트폰을 통해 부족함을 채우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죄를 짓고 죄의식과 공허감에 시달리고, 삶은 피폐해집니다. 우리가 만물의 으뜸이 되신 예수님을 놓아두고, 무익한 것들을 붙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기에 힘쓰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충만함을 덧입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하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신 분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천지만물을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심판과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육체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목적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거하고, 예수님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누리게 될 완전한 구원)이 흔들리지 않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23a)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Ⅲ. 복음의 일꾼 바울(23b~29)
23b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 된 것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훼방하던 죄인 중에 괴수를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불러주시다니! 이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맡은 일꾼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직분이 영광스럽지만 여기에는 책임과 고난과 고통이 따릅니다. 다 함께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복음 전파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고난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고난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난을 기뻐하고, 자기의 몸으로 채워갔습니다. 물론 이 고난은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각종 위험으로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배고픔과 추위와 헐벗음 등 수많은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고후11:23~28) 에베소에서는 제자 양성을 위해 3년이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각 사람을 훈계하며 섬겼습니다.(행20:31)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직분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기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달려갈 길을 마친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딤후4:7,8) 그래서 그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특별히 그는 이방인들 중에서 이 비밀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일을 계속해서 감당해 나갔습니다. 각 사람에게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며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나갔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그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도 바울의 투철한 사명관을 배우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저는 목자로서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기는 고난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인생을 희생하며 섬기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말을 잘 듣고 따라 주면 좋으련만 험한 말로 상처를 주고 속을 썩이는 양들을 보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메시지가 기독론을 다루고 있어서 이론적이고 너무 딱딱하여 메시지를 여러 번 고쳐도 은혜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GBS, 1대1, 특공대, 성탄 아카데미 소감 강사 말씀 공부와 소감 체크의 십자가 등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지자 불평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며 흑암 가운데서 받은 구원과 부르심의 은혜를 놓치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과 기쁨으로 주님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우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맡겨주신 양들을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훈계하며 섬겨,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고난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고난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성장하기 위해 기도와 말씀 사역에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계2:10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과 제 인생 요절(행20: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을 붙들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속량하신 구주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선한 주권과 섭리 가운데 인간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물의 으뜸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은 새해에도 변함없이 만민구원역사를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악해도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한 세상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를 속량하시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합니다. 우리가 새해에는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기쁨으로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워가며 믿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성도 간에도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85 디모데후서 [2021년 디모데후서 제1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관리자 2021-02-14 238
684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4강]주께 하듯 하라 휴화산 2021-02-07 205
683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제42강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관리자 2021-01-28 243
682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제40강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관리자 2021-01-24 226
681 마태복음 [2021년 마태복음 39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21-01-17 258
680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3강]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관리자 2021-01-09 279
679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2강]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관리자 2021-01-03 311
678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1강]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관리자 2020-12-27 342
677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2강]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관리자 2020-12-20 251
676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1강]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관리자 2020-12-13 266
67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8강]양과 염소의 비유 관리자 2020-12-06 328
67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7강]착하고 충성된 종 관리자 2020-11-29 330
67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6강]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관리자 2020-11-21 392
672 하박국 [2020년 추수감사절 특강]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관리자 2020-11-15 326
67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5강]화 있을진저 관리자 2020-11-08 312
67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4강]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관리자 2020-10-31 347
66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3강]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관리자 2020-10-25 295
66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2강]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관리자 2020-10-18 320
66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11 362
66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04 389
12345678910,,,37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