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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09 (토) 19:18
분 류 골로새서
첨부#1 2021년_신년_제3강-1.hwp (30KB) (Down:38)
ㆍ추천: 0  ㆍ조회: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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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년 제3강]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2021년 신년 제 3 강 (오정훈)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말씀/ 골로새서 3:1-17
요절/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코로나로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새로운 힘을 덧입고 감사와 찬송을 부르며 승리하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찾으라’, ‘죽이라’, ‘입으라’, ‘풍성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그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신자가 실제 삶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 투쟁과 성화의 과정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우리 안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므로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넘치게 함으로 승리하는 한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위의 것을 찾으라(1-4)
1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죽을 병에 걸려 다시 살아나면 제 2의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자 결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죄와 불법으로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가 십자가 은혜로 다시 살게 되었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위의 것을 찾으라’ 명령합니다. ‘찾으라’는 것은 몹시 바라고 간절히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를 보면 위의 것에 마음을 고정시키라((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 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동물다큐멘터리에서 동물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며 카메라를 동물이 자주 다니는 곳에 설치해 놓고 줄기차게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렇게 위의 것을 찾고 거기에 마음을 완전히 고정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당장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을 찾고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TV만 봐도 ‘맛있는 녀석들’, ‘노는 언니’등 다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또 요즘 부동산 주식 등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재테크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이 땅에 받을 딛고 있는 이상 이것에 매여 있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땅의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한마디로 위의 것을 찾는다는 것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배우고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낙심되고 절망하기도 마라톤 경주하듯이 위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천성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92년도 바로셀로나 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는 마의 마지막 오르막 코스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달리므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건강이 나빠지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며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아 슬프고 절망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나의 삶이 별 것 없어 보여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여전히 하늘에 있고 그곳에 진정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으로 향한 우리 마음과 눈을 돌이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자와 함께 하사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새해에도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2절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결국 위의 것을 놓쳐 버리게 되고 맙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로 인해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 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당시 헬라인들은 사람이 죽어 장사지낸다는 것을 통속적으로 땅속에 감추어졌다고 표현했습니다. 또 영지주의자들은 지혜가 감추어져 있는 책 ‘아포크뤼태인’을 보배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을 빗대어 우리의 옛사람이 세례를 통해서 죽었지만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합니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앙상하던 가지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듯이 예수님 안에 있던 우리의 생명이 주께서 재림할 때 영광스럽게 부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하고 욕되고 썩을 몸이 강하고 영광스럽고 신령하고 썩지 않는 몸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를 생각하며 인내하고 위에 것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11)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사도 바울은 ‘위의 것은 찾으라’ 말씀하고 ‘땅에 있는 지체는 죽이라’ 말씀합니다. 죽이라는 것은 좀 혼내주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변화되기 전 좀 과격했지만 ‘죽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강력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죄의 유혹에 시달리는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요 이것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사로잡혀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도 조세형은 부자 집만 털다가 감옥에 갔는데 회개하고 신학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국에 간증을 하러 다니고 또 사업도 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아내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또 남의 집 담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두번째 세번에 또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가서 또 큰집을 털었습니다. 그가 목사가 되었지만 탐심과 도둑질의 죄악된 본성을 죽이지 않았을 때 다시 그것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묵인하면 오히려 그 세력에 잠식당해서 멸망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고 죄와 싸워서 이것들을 죽여야 합니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음란’은 음탕함, ‘부정’은 불륜을 뜻하며, ‘사욕과 악한 정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쾌락을 채우고자하는 죄악된 욕정을 가리킵니다. 요즘은 이런 죄악된 문화가 TV인터넷 스마트폰에 넘쳐 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이런 것에 사로잡혀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런 타락하고 추한 죄성을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소방관 출신인 김인호 형제님에 의하면 잔불 정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잔불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라도 바람이 불면 그 불씨가 다시 살아나 다시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이 죄악의 불씨를 완전히 죽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하여 더욱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유한 것에 대해서 만족할 줄 모르고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으로 여기서 모든 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탈무드에 보면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들은 없고 오직 상속자만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돈 없는 집에 효자 있지 돈 있는 집에는 효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집의 장례식에 가면 자식들이 싸웁니다. 톨스토이는 "돈이 없는 사람은 매우 슬프다. 그러나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두 배는 슬프다” 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조금 더 가지려다 보면 결국 돈이 우상이 됩니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아야 하는데 욕심부리다 돈에 미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많든 적든 주시는 대로 만족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내 속에 있는 탐심을 죽이고 돈의 우상에서 자유할 수 있게 됩니다.  

골로새 성도들도 전에 그런 죄악된 본성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달라야 합니다. 8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과거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이제는 과거의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벗어버리라는 말은 동사명령과거형으로 단번에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입었다 벗었다 하므로 벗은 건지 입은 건지 헷갈리게 하지 말고 확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곧 마음의 분노와 악의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마음에 분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노 때문에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고 보복운전 위협운전을 합니다. 그리고 악한 마음으로 남을 비방하고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음담패설을 내뱉습니다. 이런 것은 절대로 몸에 걸치고 있으면 안되고 무조건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거짓말해서는 안됩니다. 거짓말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남의 명예를 갉아먹는 무서운 죄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삶과 말로서 그 진실됨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옷을 벗는 사람은 옷의 장신구도 벗어버립니다. 이처럼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그것을 장식하던 모든 행위를 벗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음란과 더러운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벗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벗은 후에는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10절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새 사람을 입었다’는 것은 단지 거지가 목욕하고 왕자 옷만 입는 외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요즘 말로 소위 ‘뼛속까지’ 완전히 새롭게 하심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벗고 입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죽이는 것, 벗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매일 빨래하고 발 씻고 세수하듯이 매일매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끊임없이 회개하고 믿고 순종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통하여 거룩하여 질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스구디아인은 미개인 중에 미개인으로 여겼습니다. 요세푸스는 야수와 별다름이 없고 하며 세계문명을 위협한다고 했습니다. ‘종’은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도구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동일한 천국 백성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자매가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계실 뿐입니다.

3.새 옷을 입으라(12-17)
이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들의 신분에 걸맞은 옷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신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옷도 거룩하고 특별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명품 옷을 입어야합니다. 곧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심을 가리킵니다. ‘자비’는 친절을 말하고 ‘겸손’은 우쭐대지 않고 타인과 자신에 대해서 존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온유’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이요, ‘오래 참음’은 화를 돋우는 사람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거역하는 자들을 다 참으셨습니다. 세상에는 옷은 신사 숙녀처럼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는데 입이 거칠고 교만하며 분노를 참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땅콩을 집어던지고 지하철에서 사람을 밀치고 상스러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내면에도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13절 보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아무리 신자가 거듭났어도 서로 부족하고 허물이 있기 때문에 서로 불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축구를 해도 불만이 생기고 또 비오는 날 분명 내가 우산을 가져와서 센터 입구 우산통에 꽂아놓았는데 목자님이 내 우산이랑 비슷한 것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용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도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고대 세계에서 모든 옷은 띠로 묶어야 흘러내리지 않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의 아주 훌륭한 옷을 입어도 사랑이라는 허리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곧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이 모든 것이 행해지고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기 '주장하게 하라'는 말은 운동경기에서 나온 말로 경기 중의 어떤 문제가 생겨 심판이 결정을 내릴 때 쓴 말입니다. 나의 마음을 사람들의 생각과 평가, 또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맡기지 말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면 마음에 평강이 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이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평강은 문제가 해결될 때 잠시 얻는 조건적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평강한 듯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별로 평강하지 않습니다. 확진자 수가 1000명 아래면 좀 마음이 놓이는데 1000명을 넘어서면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은 바다의 저류와 같이 우리 내면 깊은 곳에 흐르는 참된 평강입니다. 죄 사함을 통해 하나님과 화평한데서 오는 본질적인 평강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안하고 밤에 잠을 잘 자며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바랄 수 있게 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설교가이자 목회자인 영국의 메튜 헨리는 어느날 평소 다니던 골목길에서 소매치기 당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둘겨 맞고 말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니 이제껏 15년 동안 그 길로 다녔지만 한번도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매치기가 되지 않고 소매치기 당한 사람이 된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자세의 문제입니다. 요셉은 종이 되고 죄수가 되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수라도 감사하면 수도사가 됩니다. 그는 감옥에서 수양이 되고 인격이 성숙해집니다. 우리는 나중에 좀 형편이 좋아지면 감사해야지 하는데 그러지 말고 오늘이 최고로 행복한 날이다 하며 오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종하 목자님은 새벽에 3층으로 올라올 때마다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것은 그 안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의 마음은 뭔가로 채워지고 마련입니다. 게임과 유투브 동영상 등 세상 잔재로 채워지기도 하고 재테크에 대한 열망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어딜 가지 못하니 여행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자의 내면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히 채워져야 합니다. 말씀이 풍성할 때 개인 뿐 아니라 모임에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게 됩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통찰력과 분별력이 생겨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며 믿음에 굳게 서게 됩니다. 또 말씀이 풍성할 때 내면에 은혜와 기쁨이 넘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결국 앞의 ‘위의 것을 찾고 땅의 지체를 죽이고 새 옷을 입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가능합니다. 말씀이 내안에 또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풍성히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치열하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합니다. 암송까지 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럴 때 말씀의 향기 말씀의 힘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충만하게 되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17).
2021년도 코로나로 인해 작년처럼 답답하고 힘든 삶이 계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땅에 것에 매여서 위의 것을 찾지 못하고 답답한 현실로 우울하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써 위의 것을 찾으며 열심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내면에 풍성히 채우면 주께서 우리에게 힘든 시대를 이길 힘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이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깨닫고 피차 권면하며 가르치기에 힘쓰므로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새해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내면에 풍성하게 채우므로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풍성한 승리하는 한 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작년 성경2회독을 목표로 출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잘 감당하고 말씀으로 인한 은혜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시편121편 말씀이 늘 심령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계속되고 집안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손에는 늘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고 하였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스마트폰에는 제가 원하는 스포츠 전쟁 역사 코미디 음악 등 모든 것이 다 있어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성경읽기 앱도 있었지만 잘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상 잔재미에 빠져 지내니 자연스럽게 말씀에서 멀어졌습니다. 말씀이 심령에 없으니 위의 것을 찾지 못하고 땅의 것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이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물질을 많이 얻으면 기뻐하였지만 많이 얻지 못하면 불평하였습니다. 전에는 주시는 것으로 감사하였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탐심의 노예가 되어갔습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힘들고 특히 경제가 힘드니 땅의 것에 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로 위의 것을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땅의 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들에 의해 제가 죽게 됨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가 이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임으로 새해에는 위의 것을 찾기에 힘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번 양식책에서 ‘어부에게서는 바다냄새가 나고 목자에게서는 성경말씀냄새가 나야 한다’는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의식 가운데 치열하고 깊이 있게 말씀공부하며 작년과 같이 성경 2회독에 도전하므로 말씀이 심령에 풍성히 거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피차 권면하고 가르치기에 힘쓰고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므로 힘든 코로나 시대를 이기고 승리하는 한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위의 것을 찾는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면에 풍성하게 채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이 풍성히 거할 때 죄와 싸우고 땅에 지체를 죽이며 거룩한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또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을 때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힘들고 어두운 시대에 낙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령을 풍성히 채워 서로 권면하고 가르치기에 힘쓰므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넘치는 한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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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1강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11 362
66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0강]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10-04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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