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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2-07 (일) 08:38
분 류 골로새서
첨부#1 2021년_신년_제4강-1.hwp (33KB) (Down:36)
ㆍ추천: 0  ㆍ조회: 252      
IP: 61.xxx.145
[2021년 신년 제4강]주께 하듯 하라
2021년 신년 4강                                                                                                          이 인구

                                                                주께 하듯 하라
말씀/골로새서3;18-4;1
요절/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톨스토이는 인생말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세가지 질문’이란 단편을 통해 말했습니다. 한 왕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즉 가장 중요한 때와 가장 중요한 사람과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깊은 의문에 빠졌습니다. 고민 끝에 깊은 산에 사는 지혜롭다는 현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현자는 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밭고랑을 파고 있고 왕은 그를 도와 같이 땅을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땅만 파는 것이 화가 났지만 지혜에 목마른 왕은 기다렸습니다. 그런 중 심하게 다친 사람을 만났는데 왕은 현자와 그를 도와 목숨을 살렸습니다. 깨어난 자는 자신은 왕에 대한 원한으로 죽이려 잠복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왕은 나오지 않고 기다리다 맹수에게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왕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자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구해준 왕을 용서했고 왕도 그를 용서하면서 왕은 가장 중요한 3가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입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이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 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신자들이 지금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생활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신자로서 가정과 사회에서 지금 함께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선을 행할 것인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아내와 남편
18,19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로마 인본주의와 유대율법주의 거짓이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믿음을 지키며 전 인생을 바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남의 가정,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까?

1100년경 한 무명의 수도사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나라를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사는 마을에 초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을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내 가족만이라도 바꾸어 보려고 했습니다. 이제 나는 노인이 되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오래전에 내 자신을 먼저 바꾸었더라면, 내 가족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나의 가족은 우리 마을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나라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항상 모든 세상문제의 해결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내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가정이 무너질 때 사회가 흔들리고 나라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도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가정으로 가야하고 다음으로 내가 속한 사회와 나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페미니즘사상이 자연스러운 현대인에게 큰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이 말씀을 읽는 사람은 그 위대함을 충분히 깨닫지 못합니다. 유명한 학자 AW 버랄은 고대 문명이 무너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을 낮추어 본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뿐 아니라 로마인들도 여성을 매우 낮게 여겼습니다. 여자는 아무런 법적인 권리를 갖지 못했고 남편의 소유물이며 남편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된 헬라에서도 여자들은 마음대로 외출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특권은 남편의 것이고 모든 의무는 부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에(복음) 기초해서 처음으로 남여간 ‘상호의무의 윤리’를 증거하였습니다. 천대받던 아내에게뿐 아니라 모든 특권이 있는 남편에게도 동등한 의무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아내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는데 남편에게는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쉬워 보이는 의무를 주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불만을 제기합니다. 만약 자신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복종할 수 있지만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함부로 대하는 남편에게 어떻게 복종하느냐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절대 복종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사건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아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럼 복종과 사랑 중 무엇이 더 어려운가요? 아니 무엇이 더 쉬운가요? 바울은 아내가 남편하게 복종하는 것이 주안에서 마땅하다 증거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서뿐 아니라 에베소교회를 위해 에베소서를 비슷한 시기에 저술했습니다. 두 서신의 후반부는 비슷한 부분이 많고 바울은 에베소서에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한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5;22-23)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가정의 머리인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몸은 머리의 뜻에 복종합니다. 그 이유는 몸이 머리보다 열등하고 머리가 몸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몸 없이 머리가 있을 수 없고 머리 없이 몸만 있을 수 없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이 최초로 여자를 남자의 머리로 만들지 않았던 것은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고 발로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그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고 갈비뼈로 만든 것은 아내가 언제나 그의 마음 가까이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복종은 헬라어 ‘휘포탓세스데’로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복종이 아니라 교회가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 같은) 자발적인 복종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열의 차별이 아닌 질서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에게도 쉽지 않은 의무를 주셨습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19) 이 말씀은 괴롭게 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좀 더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옙5;25) 남편들은 예수님께서 교회신자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흔한 에로스적 사랑, 육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헌신적인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종하라는 의무보다 사랑하라는 의무가 훨씬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보통 허니문기간이라는 짧으면 3개월 길면 3년이 넘어가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허물이 보이고 성격차이가 나타나면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안에서 사랑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동역자를 주셨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내에게는 복종하라, 남편에게는 사랑하라 다른 의무를 주신 것입니까? 어떤 이는 이 말씀은 남녀가 유별한 당시에는 꼭 필요한 말씀이지만 남녀가 동등한 현재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합니다. 최근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서 행복해 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큰 죄로 감옥에 들어가고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그런 의무를 주셨습니다. 여성은 감성적이어서 사랑받고 이해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반면에 남성은 이성적이어서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몇 년전 KBS TV (주부시대)에서 남편과 아내를 대상으로 상대방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내는 1위가 “사랑해요!” 다음이 “고생했어요”, “고마워요”로 나타났고 남편은 1위가 “나에게 당신이 전부예요!”로 나타났습니다. 아내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을 바라고 남편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세워주는 것을 바랍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유전자의 차이이고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한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운전하다 길을 잃었습니다. 갈 길을 찾았지만 갔던 길로 계속 다시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이런 남편을 답답하게 생각하고 “왜 자꾸 잘못된길로 뱅뱅 돌아요? 저기 다른 쪽 길로 가요!”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남편은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고집했습니다. 화가 난 아내는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내의 말을 잘 듣는 남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부부간의 다툼은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까? 남편의 권위와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면서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역사 섬기느라 많이 피곤하시죠? 하지만 저는 당신을 믿어요! 오늘 안에만 들어가면 되니 조급하지 마시고 저쪽으로도 한번 가보시면 어때요!” 그러면 남편은 순한 양이 되어서 아내의 말에 순종했을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한 여자가 20년 동안 키워놓은 남자를 한 여자가 20분 동안에 망가뜨려 놓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2 여자는 어머니와 아내입니다. 가정에서 어머니보다 아내의 영향력이 더 큽니다. 사실 남편보다 아내가 더 분별력이 있고 영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세상적인 남편에게 어떻게 복종할 수 있는가 의문이 생깁니다. 바울은 남편에게 복종 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편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으면 복종하지만 어긋난다면 남편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남편이 설사 부족해도 아내가 성숙한 믿음의 여인이라면 지혜롭게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담에서 선악과를 주어 인류의 원죄를 만든 하와처럼 아내가 영적이지 못하면 부부가 같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담이 범죄한 이후 남편들은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들 위에 군림하고 권위를 부렸습니다. 남편들은 자신이 가진 힘과 권위로 아내를 괴롭게 할때가 많습니다. 화를 내거나 함부로 하며 심지어 손찌검도 하며 외도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폭력은 오히려 남편의 권위를 무너뜨립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성도를 위한 사랑처럼 남편의 권위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증거합니다. 남편이 설사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라 할지라도 그 내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오래 참는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아내는 그 사랑에 감동해 자발적으로 남편의 권위에 복종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주안에서 사랑하고 복종할 때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녀들도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아내가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기쁨으로 사랑하는 가정 교회가 설 때 교회가 회복되고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2. 자녀와 부모
20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20)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신 말씀으로 순종할 때 땅에서도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옙6;2,3)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세상질서에 대해 순종하기 어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 나를 세상으로 보내셨는데 부모의 은혜를 모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부모에게도 순종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입니다. 창세기 홍수심판이 끝나고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안일과 정욕의 죄에 빠져 벌거벗은 몸으로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본 3아들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함은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공개적으로 퍼뜨리며 허물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고 뒤로 가서 옷을 덮어드렸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허물을 보였지만 자신들을 세상의 극한 죄악 속에서 지켜주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은혜를 잊지 못했습니다. 어떤 부모는 죄악된 세상, 무한경쟁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 자녀들에게 율법적이 되고 감정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부모에게 상처받은 자녀들은 순종하기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나 부모편에서 생각할 때 부모님을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인간이기 때문에 죄의 세력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자녀는 부모가 잘못해준 것만을 생각하고 쓴 뿌리를 품기보다, 잘해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삭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며 자신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산위에서 칼로 자신을 죽여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평생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불신하며 반항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때 아버지가 하나님말씀에 절대 순종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신까지 바치려는 순종의 믿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보고 자라며 자신도 아버지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불신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말라” “기도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라” 하며 악을 강요한다면 당연히 순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순종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이때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은 부모님보다 먼저 주님께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유교적인 효의 전통대로 부모님께 순종해 하나님을 떠난다면 같이 망하는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불순종했어도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라면 결국 부모님도 구원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럼 아버지에게 주신 의무가 무엇입니까?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21) 최근 이슈화되는 ‘정인이의 죽음’은 자녀를 어떻게 키울것인가 사회에 큰 경종을 일으켰습니다. 양부모는 둘 다 교회다니는 자칭 신자들로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자 한 아이를 입양했지만 양육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감당하지 못해 잔인하게 학대해 죽였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잘 양육하도록 보내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부모는 충성된 청지기로서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서입니다.(옙6;4) 감정적으로 화난 상태에서는 어떤 교훈과 훈계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목자는 ‘자녀는 양처럼 양은 자녀처럼’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양육에 정답은 없지만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또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처럼 자녀에게 칭찬과 책망을 병행해야 합니다. 자녀양육의 문제는 부모가 자기 경험이나 판단에 기초하여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관대한 것은 무관심으로 어떤 부모는 먹고 살기 위해 자녀들을 방치합니다. 방치된 아이들은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독이 든 일용할 양식을 먹고 내면이 황폐화되며 사회의 어둠이 됩니다. 또 지나치게 엄격해 심하게 통제한다면 자녀들은 노하며 삐뚤어지든지 아니면 낙심해 무기력해집니다. 현재 자녀의 모습을 보며 믿음이 생기지 않을지라도 자녀를 보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부모들의 공통점은 책망보다 칭찬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칭찬보다는 부모의 율법으로 책망을 많이 합니다. 책망 할 때도 분노에 사로잡혀서 감정적으로 합니다. 그때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맞는 말이라도 분노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적절한 칭찬과 격려의 말은 자녀뿐 아니라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유명한 낭만주의 화가 ‘벤야민 웨스트’는 자신이 화가가 된 이유를 말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어린 여동생을 맡기고 외출하셨는데 심심해서 집구석에서 발견한 물감으로 동생을 그렸습니다. 너무 열심히 그리다가 동생과 자신뿐 아니라 온 집안이 물감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그는 혼날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더러워진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을 보고는 “동생을 예쁘게 잘 그렸네!” 하며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키스가 자신을 화가로 만들어 주었다 고백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예수님과 교회신자의 관계를 상징하듯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신자)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어떤 피조물도 감히 하나님을 대신할 상징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대신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대리자의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사랑을 체험하고 권위와 순종을 배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권위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권위가 무너진 시대’라고 합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짐으로 사회의 권위뿐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인 자녀들을 사랑과 진리로 양육함으로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이름권세를 드러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에게 가정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20년전 심각한 건강문제가운데 부족한 학과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한 저는 당시 병원에서 수련 받는 신실한 동역자를 만나 노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저 혼자 생계를 책임지지만 하나님께서 역사에 헌신하는 동역자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부족함 없이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동역자는 부족한 저를 남편이요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고 주안에서 저의 뜻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또 자녀들에게도 앞에서 본을 보이기보다 힘든 세상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뒤에서 푸시하며 책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불확실한 장래를 바라보며 조바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현실의 한계 앞에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과거의 아쉬운 시간들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지금 나와 함께 하는 동역자와 자녀들을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로 사랑하며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매일 말씀을 기초로 기도하면서 우리가정가운데 두신 예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며 열매 맺는 가정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3. 종과 주인(상전)
바울은 신자의 가정에서의 의무를 전한 후 이제 사회에서의 의무를 증거했습니다. 사회에서 종과 주인의 상호의무에 대해 증거합니다. 로마에서 농업도구를 3가지로 분류했는데 그것은 농기구같은 도구와 가축과 그리고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우연히 말을 하게 된 가축으로 도구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었고 결혼도 주인 허락 하에 이루어지고 낳은 아이도 주인소유가 되고 일할 수 없는 노예들은 폐기처분되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종들도 주인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와 또한 권리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후 동물들처럼 힘이 지배하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된 후 힘과 지위에 관계없이 (예수님을 영접한)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회복하게 됐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런데 바울은 종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 섬기는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예전처럼 꾀도 부리지 말고 더욱 성실하게 섬기라고 합니다. 바울이 상류계급의 바리새인이자 로마시민권자라서 그런 겁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예수님을 온전히 배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세상적 지위와 지식을 배설물로 버렸고 지금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감옥에서 탈출하지 않고, 감옥 안에서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편지로 교회신자들을 도왔습니다. 물론 그도 감옥에서 사슬에 매인 것이 안타까웠지만 어디에 있든지 주를 위해 살고자 했습니다. 현재 그가 있는 그곳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립보서1;20) 그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 감옥 안에서 당시 엘리트인 로마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로마복음화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고 또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을 통해 기독교신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종이든 주인이든 무슨 일을 하든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 하듯’ 일하는 것입니다. 당시 종들은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주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는 종들은 가축처럼 주인이 시키는 것만 대충 하면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주인이 보든 안보든 또 주인이 신자든 불신자든지 순종하며 ‘주께 하듯’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왜냐면 육신의 주인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생명의 진정한 주인인 하나님을 위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이든 주인이든 아내이든 남편이든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위해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인생의 존재의미이고 목적입니다.

종이 주인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평생 종으로 살다 죽으라는 운명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더 높은 곳에서 쓰임 받을 수 있고 또 마틴루터처럼 사회의 거짓에 대항하는 용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세우신 세상질서가운데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주께 하듯’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로 인해서 또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으로 인해 불평하며 상사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자에게 직장은 생계수단을 넘어 연단 받으며 예수님을 배우는 곳이고 또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명암을 달고 일하면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께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가 이 땅에서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고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거짓된 신자들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시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를 섬기든지 주께 하듯 성실과 충성으로 감당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4장 1절을 보십시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상전(주인)의 의무는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데 그 대리자로 상전들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상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종들 위에 갑질하며 자신의 소유라고 함부로 대합니다. 상전은 자기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인간의 상전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상전에게 많은 권세를 주신만큼 많은 열매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직분을 감사히 여기며 자기에게 맡겨진 종들을 의와 공평으로 베풀며 하나님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가정과 사회에서의 신자의 윤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의무의 윤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요구하기보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요구하기보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섬길 때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성이 이루어집니다. 또 신자의 윤리는 ‘주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관계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지만 가정과 직장의 주인으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안에서’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 되면서 대면만남이 금지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과 고독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본래 인생은 고독한길이고 특히 믿음으로 천성을 향해 가는 신자의 순례 길은 더욱 외롭고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길 가운데 인생의 동역자와 자녀들과 또 직장 사람들을 만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들 때문에 때로 힘들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며 인생의 열매를 맺도록 주 안에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며 섬기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지금 함께 하는 동역자와 자녀와 직장 사람들을 ‘주께 하듯’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께 하듯’ 주 안에서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인생길을 갈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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