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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2-27 (토) 19:36
분 류 디모데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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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디모데후서 제3강]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2021년 디모데후서 제3강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 디모데후서 3:1-4:22
요절/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말세에 나타날 세상의 타락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런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복음 진리에 거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영적, 도덕적 타락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성경 말씀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하게 하는 유일한 소망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3:1-17)
  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디모데가 마음에 새기고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는 것입니다. ‘말세’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의 때까지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 말의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고통하는 때’는 ‘terrible times(NIV)’, ‘perilious times(KJV)’, ‘difficult times(NASB)’로서 말세가 될수록 험하고 위험하고 힘들어집니다. 첨단 과학 문명의 발달로 점점 더 풍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고통스러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인간의 죄악이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2절부터 5절까지 말세의 현상을 19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를 더욱 사랑합니다.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리고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 만날 기회가 점점 사라지면서 온라인 상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데에 익숙해짐에 따라 사람들과 멀어지고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돈이 있으면 사랑도 사고 명예도 사고 권력도 살 수 있습니다. 돈이 자신의 미래를 지켜주고 안락하고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돈을 사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돈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은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은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나 사랑할 대상이 되면 안 됩니다.
자랑(boastful)은 지나치게 자화자찬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해외여행 사진이나 명품 사진을 올려서 자기 과시하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사는 것으로 만족과 희열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고 있지도 않은 명품 사진을 올리고 허세를 부리다가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교만은 남을 멸시하고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비방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희화하며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거룩하지도 아니합니다.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3,4)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말세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신실한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그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죄인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가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겸손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쾌락을 즐기며 죄악된 삶에서 떠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경건한 삶을 외면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마저도 부정함으로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이 되어버립니다. 바울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Have nothing to do with them)’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열된 악덕에서 온전히 돌아서서 신자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들과는 관계를 맺는 것조차 피해야 합니다. 6,7절에서는 거짓교사들의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당시 여자들은 공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사설 철학자들을 집으로 초빙하여 교육을 받았습니다.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들을 미혹하여 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이단들의 방식과 흡사합니다. 이런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아무리 많이 배워도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영적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우리를 진리의 지식, 곧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8절에 언급한 얀네와 얌브레는 출애굽 당시 모세를 대적한 마술사들 중 대표적인 인물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이름이 구약 성경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대 문헌이나 구약의 아람어 역본 등에는 자주 나온다고 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였을 때 이들도 똑같은 이적을 행했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대적하면서도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도 어느 정도 진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분별력이 없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잘 먹혀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언젠가 진리 앞에서 그 정체가 다 드러나고 결국에는 복음 진리가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오직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영어 성경에서는 “You, however”, 즉 “그러나 너는”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타락했을지라도 그러나 너는 그런 삶을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목자 생활을 했는지를 상기시키며 자신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교훈(teaching)은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서 그 안에 삶의 지혜를 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행실(way of life)은 삶의 방식으로서 바울은 복음을 이론적으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의 삶을 통해 본을 보여줬습니다. 의향(purpose)은 삶의 목적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회의 목표를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복음 역사를 섬겼습니다. 또 복음 역사를 섬기며 많은 박해와 고난을 받았습니다.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쫓겨났고(행 13:50) 이고니온에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돌에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행14:5,6) 디모데의 고향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은 것 같이 되어 성 밖으로 버려지기도 했습니다.(행14:19) 바울은 이런 박해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따라다니며 그의 가르침을 듣고 그가 어떻게 복음역사를 섬겨왔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면 늘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한 천국생활이 이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받지 않아도 될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애매하게 따돌림 당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조차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의 신앙생활이 너무 유별나거나 잘 못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빛과 진리보다 거짓과 불의를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합니다. 목자 생활의 주된 사명은 이런 세상 죄악과 싸워서 양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 받고 박해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미움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18,19) 죄악된 세상에서 편안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기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온 힘을 다해 복음 역사를 섬기다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지만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이는 사도바울이 전 생애에 걸쳐 복음역사를 섬기면서 깨닫고 확신하게 된 신앙 간증입니다. 경건한 생활에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합니다.(마10:22-24) 우리들이 받을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의 선생이요 상전이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받으신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도 복음 역사를 섬기면서 박해를 당할 때 당연히 여기고 기쁨으로 경건한 삶을 지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13절에서 사도바울은 그 시대 사람들의 죄악상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13)” 믿음이 없는 죄악된 세상 사람들의 상호관계는 속고 속이는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악해져서 점점 지능적이고 고차원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불신은 점점 팽배해져서 자기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속이는 자들이 많을지라도 그들에게 말려들지 말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명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이란 성경말씀을 가리킵니다. ‘거하라’는 것은 계속해서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진리를 배웠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오늘날 인본주의, 물질주의, 편의주의가 심해지면서 신자들까지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책들이 있지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은 오직 성경 밖에는 없습니다. 말세의 고통하는 때일수록 성경 말씀을 굳게 붙들고 복음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영적 자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지키고 믿음의 후손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쳐서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첫째,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16a)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God-breathed)’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약 1600년 동안 40여명의 각기 다른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일관되며 내용에 있어서 모순이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그렇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가 자신이 보지도 못한 창조의 역사를 어떻게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을 어떻게 알고 자세하게 예언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두 하나님이 계시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책의 권위는 그 책의 저자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경의 저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하는 구절이 수없이 반복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경은 가장 권위 있는 책이요, 진리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책입니다.
둘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16b)
우리의 삶에 성경만큼 많은 교훈(teaching)을 주는 책은 없습니다. ‘책망(rebuking)’은 죄를 깨닫게 하고 잘못된 교리나 오류에 빠진 자들을 견책하여 바로 잡는 것입니다. ‘바르게 함(correcting)’은 추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로서 신자들을 죄의 길에서 돌이켜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하는 지혜와 힘이 있습니다. ‘의로 교육함(training in righteousness)’이란 의롭게 살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성경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매주 소감을 꾸준히 감당하는 것도 죄악된 세상에서 의롭게 살게 하는 좋은 훈련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 모든 일을 하기에 유익합니다.
셋째,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 전도자를 가리킵니다. 성경의 최종적인 목적은 모든 신자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완전히 적합한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쓰임 받고자 하는 소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무디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질문했습니다. 이에 무디는 “성경이 그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나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고 성서적 가치관을 확립했습니다.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 중에 ‘미국을 사랑했던 사람들’(The American Patriot's Handbook)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링컨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 공부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성경을 읽고 또 읽어(He read and reread the Bible)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링컨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성경 이야기가 귀에 쟁쟁합니다. 어머니는 나를 성경으로 키워 주셨습니다.” 성경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성경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은 말세지 말의 시대로서 성경선생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1대1 성경선생이야 말로 이 고통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경 선생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중요한 자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배운 말씀에 거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성경을 열심히 가르침으로 유능한 성경선생으로 쓰임 받고 2041년까지 우리 가운데 200명 성경선생들을 세우는 역사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II.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4:1-22)
  4장은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 교훈으로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바울의 비장한 마음과 고백이 담겨 있어 엄숙함과 더불어 큰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바울은 엄위하신 하나님과 심판주로 곧 오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하여 말씀을 전파하라고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말씀 전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절대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가 주어지든지 주어지지 않든지, 조건이 좋든지 나쁘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기 좋은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없으면 때를 만들어서라도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요즈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끝나도 상황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어떤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 보면 언제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세월은 흘러 나이가 많아져서 말씀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는 날이 오게 됩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 생각하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말씀을 전파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현재 학생들 가운데에 개학을 앞두고 특공대 말씀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공대란 어떤 악조건에서도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된 정예부대입니다. 훈련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사람만이 결정적인 순간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성예진 자매님은 벌써 자기가 배운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침으로 은혜와 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훈련을 잘 받아서 말씀의 실력을 갈고 닦아서 새 학기 양들이 몰려 올 때 준비된 성경선생으로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려면 수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한 사람을 오래 참고 양육하셨듯이 우리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죄를 지적하며 뼈저리게 회개하도록 경책해야 합니다. 또 죄를 짓기 전에 미리 경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밥 먹기 싫어한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부모는 없습니다. 엄마들은 때로는 어르기도 하고 상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야단을 쳐보고 협박도 해가면서 밥을 먹이기 위해 별짓을 다합니다. 우리도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 별짓을 다해야 합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듣지 않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3,4) 허탄한 이야기란 당시의 근거 없는 신화나 전설을 가리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 속에서 각종 정보와 지식과 재미를 얻습니다. 유튜브로 원하는 영상을 클릭해서 시청하기 시작하면 알고리즘이 관련된 영상을 계속해서 제공해줍니다. 그래서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편향된 지식과 가치관을 갖게 되고 진리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양들을 돕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목자는 포기하지 말고 전도자의 직무를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죽음을 앞둔 바울은 이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전제란 구약의 제사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어린 양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사르기 직전에 그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 포도주 역할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떠날 시각(departure)으로 표현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의 피를 통해서 양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거룩한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남은 인생을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그에게는 죽음을 앞두고도 조금의 슬픔이나 후회나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죄와 사탄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하고도 고귀한 싸움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유혹이나 박해가 있어도 결코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라톤 선수가 42.195km 경주를 완주한 것처럼 길고 험한 사명의 여정을 완수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의 모습은 힘들고 치열했던 싸움을 마치고 승리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개선장군과 같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감사와 감격과 소망과 승리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도 이런 인생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몇 가지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합니다.(9) 사명을 마치고 떠나는 사도바울의 곁에는 누가 외에는 다 떠나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아들 디모데를 더욱 그리워하였습니다. 바울은 습기 차고 냉기가 도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두터운 겉옷을 가져오도록 부탁하였습니다.(13) 겉 옷 외에도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서이거나 바울이 쓴 편지 혹은 구약 성경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과 함께 했던 소중한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 오네시보로에게 안부를 전함으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해 세상 가치관을 좇아 자기만 위해 살던 자를 학창시절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창세기 1대1 말씀 공부를 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주와 복음을 위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한 강을 배우면 몇 자 적지 않은 노트를 들고 캠퍼스로 나아가 피싱을 하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동역자님들이 다 그랬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많던 시절이라 그렇게 전한 말씀에도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전하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열기로 인해 캠퍼스에는 연일 데모가 이어졌고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말씀을 붙들고 캠퍼스를 누비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경성센타역사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말씀을 공부하며 거친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노트북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매주 말씀노트를 정리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파일만도 어느 새 1,000개가 넘었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어떤 말씀도 가르칠 수 있는 완벽한 무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현실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핑계로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소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 전파는 나의 형편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구원 역사는 신앙 경륜이 많거나 말씀 노트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말씀이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과 현실을 앞세우고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지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말세가 다가올수록 성경선생의 역할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성경선생으로 부르심 받은 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생명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세의 고통이 심해져 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성경선생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살 때 당하는 고난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말씀을 굳게 붙들고 확신 가운데 경건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병사의 스피릿을 덧입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의 사명에 충성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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