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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25 (토) 19:20
분 류 빌립보서
첨부#1 2021년_빌립보서_제4강-1.hwp (31KB) (Dow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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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빌립보서 제4강]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2021년 빌립보서 제4강                                                     이사가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말씀; 빌립보서 4:1 –23
요절;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믿었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4장을 쓰면서 몇가지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4절 말씀은 빌립보서 전체의 요절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권면하는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형편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 시간 바울의 권면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접하고, 실제생활에 적용하여 사도바울과 같이 항상 기뻐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주 안에서 기뻐하라 (1-7)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부르면서 ‘사랑한다, 사모한다,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쉽지 않은 호칭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함 받아 개척한 유럽의 첫 교회가 빌립보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형제들이라 각별한 정이 있었습니다. 현재 바울이 감옥에 있었지만 가장 보고 싶은 사람들이 빌립보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사모한다’는 말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표현하는 단어로 생각되는데, 바울은 그 만큼 빌립보 성도들을 마음깊이에서 그리워하며 사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서라’는 ‘stand firm;견고하게 서있으라’는 뜻으로 ‘진지를 사수하라’는 군대용어입니다. 죽기 살기로 버티어서 믿음을 사수하라는 뜻입니다. 빌립보교회에 어떤 핍박이나 손해가 있더라도 복음신앙을 지켜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는 시기인 서기62년경부터 본격적인 빌립보교회의 박해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이런 박해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신앙과 말씀을 지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stand firm;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늘 암송하는 말씀입니다. 서 있으려면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두 다리를 굳게 주님께 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이렇게 주안에 서있으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전도를 받은 첫 양 루디아자매를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높았습니다. 개척 조상 루디아의 열심과 열정을 후배 자매들이 본받아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 있고 정열이 넘칠 때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할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바울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을 부르며 권면하는 것을 볼 때 이들은 영향력 있는 자매님들임이 분명합니다. 유오디아는 복음역사를 유유히 흘러가듯 섬기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음식도 유부초밥을 좋아했습니다. 반면 순두게는 순간적으로 번뜩이게 일을 진행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음식도 빨리 조리되는 순두부를 좋아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이 두 사람이 대립하게 되었고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이 두 자매들을 권하면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견을 같이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다투는 마음, 토라진 마음, 벌어진 마음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비록 자신의 주장이나 성격이 다른 사람과 다르더라도 교회에서 사역의 방향이 결정되어지면 의견을 같이하여 한마음으로 역사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 모임도 봄학기 아카데미, 여름 수양회, 가을 제자수양회와 추수감사절, 겨울 성탄예배와 신년수양회 등 주요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고, 좀 더 새롭게 좀 더 풍성하게 하고자 마음을 쓰기도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결정이 되고 프로그램이 나오면, 그 방향에 의견을 같이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개인의 역량이나 정열을 하나님역사에 집중하고 모으는 자세를 가질 때, 다른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한 뜻으로 복음역사가 이루어나갈 것입니다. ‘주 안에서, 말씀 안에서’ 자신을 비추어보면 자기의 부족과 허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나도 부족한 사람이고 상대방에게도 나보다 좋은 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동역자 한사람 한사람의 중요성을 알고 믿음의 동지들을 귀하게 여기며 함께 하는 역사 이루어가길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은 멍에를 같이 하였던 믿음의 친구에게 이 문제를 부탁하며 저 여인들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복음역사를 섬긴 동역자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며 잊지 않고 돕고자하는지 그의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훈련시키거나 징계하지 않고 잘 돕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이 직접 갈수 없기에 친구를 통해서라도 돕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이 현재는 문제가 있더라도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으며,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자들이요,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함께 할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애쓴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기며 도와주는 성숙한 목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도 바울이 반복하여 기뻐하라고 강조합니다.‘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하는 것은 어딘가 모순같이 들립니다. ‘항상’ 기뻐하라‘보다 ‘가끔씩 기뻐하라’ 또는 ‘종종 기뻐하라’고 인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항상 기뻐하라’하며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명령입니까? 우리가 사는 현실은 녹록치가 않아서 기쁜 일은 거의 없고 대개가 안 좋은 소식들로 가득합니다. 코로나 감염이 더욱 심해진다는 소식, 이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파탄난다는 소식, 집값이 상승하여 청년층이 집구하기 힘들다는 소식,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최하위여서 100년 후에는 국가가 소멸 가능성 있다는 얘기...우리가 이런 세상의 소식을 계속 듣다가 보면 기쁨을 잃고 인상을 쓰고 욕하고 흥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불평, 불만이 나와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권면은 어떠합니까? 다시 한 번 4절 읽겠습니다.‘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이 말씀은 현재의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의학적으로 웃으면 여러 가지 유익함이 있습니다. 뇌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나 엔돌핀 그리고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우울감이 사라지고, 수명이 연장되고,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웃으면 혈액순환이 개선되면서 심장보호 효과도 있다는 최근 연구발표도 있습니다. 20년 동안 웃음을 연구한 리버트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웃는 사람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NK(Natural killer)세포가 활성화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일노 일노, 일소 일소’ 라는 말과 같이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웃음연구가인 홀덴박사에 따르면 1분 동안 크게 웃으면 10분 동안 에어로빅, 조깅, 자전거 타기 등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치과 원장님인 고영훈 목자님 연구에 의하면 웃으면 안면근육이 활발해지면 잇몸으로 혈액순환이 잘되어 치아가 건강해지고 타액분비가 증가하면서 충치발생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웃음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웃음치료사라는 직업이 생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웃음의 중요성을 알기는 하는데...항상 웃는 것, 항상 기뻐하는 것은 역시 쉽지가 않습니다.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고 할 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는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 안에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인생의 슬픔과 고난의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일생 괴롭힐 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유황은 화산폭발하면서 흘러내리는 노란색 액체물질인데 온도가 매우 높고 냄새가 독하여 잠시라도 노출되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고 죄 짐이 풀어지고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주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사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대의 관심 기울이시고 능력으로 보호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권세를 받은 황태자들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주 안에서’ 이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와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 있다고 해서 기쁨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군사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군사들은 전투에서 승리할 때 기쁨이 넘칩니다. 영적 군인들은 또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여 탈취물을 나눌 때 기쁨이 있습니다. 농부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농부들은 봄에 눈물로 씨를 뿌려서 요즘과 같은 가을에 수확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기쁨을 얻기 위하여 때로는 눈물이 있어야하고 때로는 수고함이 있어야하고 때로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스바냐 3;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나의 어떤 점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일까요? 내가 잘 나서 기뻐하는 걸까요? 내가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기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능력이 많다고 기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최고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시고 기뻐하시었습니다. 우리가 나를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기쁨을 앗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해자, 손해 끼치는 자들 이런 자들 만나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5절을 보십시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서 관용이란 다른 이에게 넓은 아량과 호의를 갖춘 마음의 덕을 말합니다. 관용은 박해자에 대한 온유한 마음이요, 자기를 중상하는 자에 대한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손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또는 정의가 벗어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 관용을 베풀어야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렇게 관용을 베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관용하는 자세로 살아야합니까? 5b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주님, 흰옷 입으신 아름다운 주님이 재림하시면 선악간에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십니다. 이 때 주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괴롭히고 손해를 끼친 자들을 친히 정죄하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진심이 드러나고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가운데 현재의 우리는 박해자나 손해 끼치는 자들에게 관용하는 자들 되길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기도를 가르쳐줍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세상 살다보면 어느 누구도 염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침에 기상하면 염려할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의 듣는 일, 직장일, 가정일, 사람간의 만남과 대화 등 할 일을 생각하면 스트레스와 염려가 슬며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합니다. 염려거리가 있더라도 ‘염려에 빠져들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머리에 염려의 새가 앉을 수는 있지만 새가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수 있겠느냐’(마6;27)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커지는 게 아닙니다. 염려는 오래되면 또 다른 염려를 낳고, 우리 마음을 이리저리로 분산시켜 버립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염려가 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6b절을 보십시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대신 기도해야합니다. 염려제목을 기도제목으로 바꾸어서 간구해야합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내가 믿음이 없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는 염려가 있을 때 이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뿐 아니라 건강이나 물질이나 취업, 자녀교육, 학과공부 등 다른 모든 일에도 간구해야합니다. 간구하되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행하실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7) 이 평강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초월하는 평강으로, 어떤 역경과 시련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누릴 수 있었던 평강입니다. 이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때 모든 염려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시절인 1983년도 11월 제기동에 있는 안암센터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지하 연탄난로 피는 붉은 벽돌집이었는데 창세기 아카데미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여러 목자님들과 사모님들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크고 환한지 긴장하고 조심스레 나갔던 저는 한순간에 감동이 되었고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기쁨으로 주와 복음역사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 고비가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신앙생활 그리고 전혀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겹치면서 기쁨이 사라지고 근엄해지고 딱딱해져갔습니다. 젊은 날의 단테가 영적으로 꽉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장면이 저의 삶에도 찾아온 것입니다. 단테는 그런 위기의 때 신앙서적 신곡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기의식 속에 요한 아른트의 ‘진정한 기독교’ 서적을 차분히 읽어가면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경건주의의 중요성이 떠올랐고 외적 성장이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경건함이 없었음을 알고 새롭게 힘을 얻고 기쁨을 회복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이나 영적 부흥을 주도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경건주의 신앙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건함에 이르기 위하여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 먹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소감도 주일 오후에 깊이 있게 쓰면서 내면에 위로와 힘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새벽미명에 보는 말씀의 달콤한 맛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하면서 하루의 방향을 잡고 마음엔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학창시절, 같이 믿음의 훈련을 받은 믿음의 동지들이 선교지로 나아갔는데 이들을 사모하며 간간이 메일을 보내며 소식을 주고받고 기도하며 전 세계를 품는 비전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코로나 블루가 이어지면서 기쁨 대신 염려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체력이 점차 약해지고 알러지성 비염이 더 심해지면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건강에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장남인 요한 가정이나 차남 세한이나 장래를 위하여 계속 기도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오늘 말씀을 준비하고 묵상하면서 사도 바울의 명령 ‘항상 기뻐하라’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감사함으로 기뻐해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목자의 소망 가운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고자 기도합니다.

제 2장. 자족하기를 배웠노라(8-23)

8절을 보십시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이제 사도 바울은 마지막 당부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해야 될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한 것이 대개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스럽고, 거룩하고, 덕을 세우는 것인가를 마음속에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선함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비슷하게 나열되어 있어서 빌립보 성도들이 받아들이기에 애매함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본 받으라고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도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 바울 그리고 서신서에 나타나 바울의 삶을 잘 배워야겠습니다. 세계선교하는 바울의 열정과 열심을 배워야겠습니다. 미지의 땅에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도전정신과 스피릿을 배워야겠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순수복음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나 믿음의 선진들 그리고 사도들이 보여준 믿음을 본받아 믿음의 행실을 지켜 나갈 때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만이 누리는 영적 비밀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서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선물을 하려는 생각이 그들 가운데 다시 싹이 나서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자 바울을 돕고자하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 동안 선물할 마음이 있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사랑으로 변호해주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궁핍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는 사도 바울의 체험신앙입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 속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말은 어떠한 변화무쌍한 환경과 풍부와 궁핍 속에서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만족을 알고 감사를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바울은 인간적으로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절망스런 형편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역경이나 시련도 바울을 위축케 하거나 낙담하고 절망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굳센 믿음과 불굴의 소망을 꺾을 수 없었으며 그에게 있는 감사와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풍부에 처하거나 좋은 환경에서는 자족해 하지만 물질이 없고 취직이 안 되고 핍박이 있을 때 등 비천해지면 자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는 경우에 처하든지 자족함을 배우고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바울이 무슨 신기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13절을 보십시오.‘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궁핍할 때나 비천할 때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환경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덧입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자족하며 변함없이 주와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14-23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물질적이 도움이 얼마나 향기로운 제물인가를 깨우치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양들이 드리는 헌금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그들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피차 문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하면서 빌립보서를 마쳤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일체의 부요함이나 궁핍함의 비결을 배우고 항상 기뻐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므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변함없이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는 영적인 장군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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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4강]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관리자 2021-09-25 372
721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3강]그리스도를 알고자 관리자 2021-09-19 333
720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2강]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관리자 2021-09-11 386
719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1강]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관리자 2021-09-05 506
718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6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21-08-28 413
717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3강]진리의 왕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1-08-22 488
71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2강]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21-08-15 465
71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 21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21-08-07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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