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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23 (토) 14:26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1년_민수기_제4강-1.hwp (31KB) (Dow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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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민수기 제4강]속죄소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2021년 민수기 제 4 강                                                                                                   이 종 하

                                                    속죄소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 / 민수기 7:1-8:26
요절 / 민수기 7:8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수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온갖 부도덕한 행위로 축제를 즐겼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의 첫째 계명을 어기는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만큼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셨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구름이 성막 위를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시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 불과 연기와 우레 가운데 계시던 그 범접할 수 없던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 진영에 있는 성막에 임재하심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셨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출애굽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은 큰 감동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각 지파 모두 똑같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들의 헌신과 한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새롭게 깨닫고 마음에 감사로 충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예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미 우리를 기뻐하신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사로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제 1장, 성막을 위한 봉헌 예물과 하나님의 응답

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제단과 그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출애굽 한 지 만 1년째가 되는 제 2년 1월 1일에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성막, 그 안의 모든 것 그리고 제단의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바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기름 바름은 성막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세상일에는 사용하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공간이 비어 있다고 회의 장소로 사용하거나 결혼식장, 축제장소로 이용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바쳐진 하나님의 영역임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날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지휘관들이 두 차례에 걸쳐서 자발적으로 헌물을 드렸습니다. 열두 지파의 지휘관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를 대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헌물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성막 봉헌에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6장을 보면 성막과 성막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자원하여 필요한 재료들을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와서 모세가 가져오는 것을 금지시킬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도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물로 그들의 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이니 지휘관 두 사람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지휘관 한 사람에 소가 한 마리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 각 지파의 지휘관들은 성막을 위해서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를 하나님께 헌물로 준비하였습니다. 수레는 지휘관 두 사람이 한 대씩, 소는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드렸습니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광야를 진군할 때 성막을 운송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헌물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 봉사에 사용하게 하십니다. 성소와 성막 뜰에 있는 천막을 옮기는 일을 맡은 게르손 자손에게 수레 2대와 소 네 마리를 주었습니다. 무거운 기둥과 쇠 받침을 옮기는 므라리 자손에게는 수레 4대와 소 여덟 마리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 등잔, 성소의 제사기구 등 가장 거룩한 물건을 운반하는 일을 맡은 고핫 자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막의 성물을 고핫 자손으로 하여금 반드시 직접 어깨로 메고 옮기도록 한 것입니다. 힘이 좋은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도 안되고, 수레에 실어도 안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일을 잘못하여 큰 낭패를 본 사람이 있는데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후에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다윗성에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중심에 모시고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언약궤를 옮길 때 블레셋 사람들처럼 수레에 실어서 옮겼습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 소들이 놀라 뛰는 바람에 언약궤가 떨어지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손을 내밀어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셔서 웃사를 쳐서 죽이셨습니다. 그날에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삼하 6:1-11). 고귀한 사명일수록 ‘어깨로 지는 책임’을 요구합니다. 예수님도 직접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손쉬운 방법으로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하셨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수고와 고난 없이 감당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자주 이 일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조용히 묵상을 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증거임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나름대로 하다가 실패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 고핫 자손으로 중보기도와 말씀 사역을 직접 어깨에 메고 열심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제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지휘관들은 이제 제단의 봉헌을 위하여 헌물을 가져와서 제단 앞에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지휘관들이 하루 한 사람 씩 봉헌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두 12지파이고 각 지파 당 1명의 지휘관을 세우셨으므로 봉헌 행사는 12일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헌물 순서는 진군 시 각 지파의 진영이 위치하는 순서를 따랐습니다.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드렸습니다.

12-83절은 각 지파가 바친 제단 봉헌물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자신의 봉사날에 드린 헌물은 130 세겔의 은반(은접시) 1개; 70 세겔의 은바리(은주발) 1개; 이 두 그릇에 기름 섞은 고운 가루로 채운 소제물; 10 세겔의 금 그릇 1개; 여기에 담은 향; 번제물로 수송아지 1마리, 숫양 1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 속죄 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 화목제물로 소 2마리, 숫양 5마리, 1년 된 어린 숫양 5마리 등이었습니다. 12지파 모두 어떤 차이도 없이 똑같은 내용의 헌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봉헌 예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소제물, 번제물, 속제제물, 화목제물로 되어있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 나아가려면 번제단을 통해야 하는데, 이는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드린 제사에는 크게 5가지,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있는데, 오늘 봉헌에는 그중에서 네 가지가 나옵니다. 먼저 ‘번제(burnt offering)’는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을 나타내었습니다. ‘소제(grain offering)’는 곡식을 곱게 갈아서 소금을 넣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드리는 제사인데,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충성의 표시였습니다. ‘속죄제(purification offering)’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였고, ‘화목제(peace offering)’는 죄로 인해서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열두 지파의 지휘관들은 제단을 처음 사용할 때 이 네 가지 제사를 드림으로 가장 먼저 자신들의 죄를 속함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정결하게 된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였습니다.

둘째, 정성스럽고 최선을 다한 봉헌 예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헌물들을 아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것은 당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적이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는 74,600명으로서 가장 많았고, 므낫세 지파는 32,200명으로 가장 적었는데, 그런데도 똑같은 예물을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모두 같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이하동문’(以下同文)이라고 간단히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자 모세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어느 지파가 무슨 예물을 드렸는지 12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헌물을 일괄적으로 받으신 것이 아니라 각 지파 별로 인격적으로 받으셨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헌물이나 헌신은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라”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수고와 헌신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여 섬기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8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12지파의 봉헌이 끝나자 모세는 성막에 들어가서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을 보고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지성소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드린 예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막의 지성소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데서 성막의 존재목적이 나타납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뢰는 곳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성막에서 말씀을 통해 그 백성을 친히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 사함의 축복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이나, 앞으로 싸울 가나안 족속보다 훌륭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성막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거룩한 장소인 것은 건물이 화려하거나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복음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도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하며 주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신자는 겉만 화려한 바리새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을 주시고 인도하시며 거룩한 족속으로 삼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가 결코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은혜를 늘 기억하고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음란, 탐심, 염려, 불신, 교만, 시기심을 날마다 입으로 시인하여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속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제 2장, 레위인의 정결 의식

8장 1절에서 4절은 성소 안에 등불을 밝히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등잔대의 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막 안은 네 개의 천막으로 덮여 있고 창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등불이 없으면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등잔대는 어두운 성소를 밝히는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이 등잔대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그 양식을 모세에게 보여주어서 만든 것으로, 순금 한 달란트 (약 40kg)에 달하는 금을 쳐서 만들었습니다. 나뭇가지 모양을 한 일곱 개의 줄기에 끝에는 살구꽃 모양의 등잔대가 달려있어서 등불을 켜면 굉장히 밝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등잔불을 켜는 직무를 대제사장 아론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요일 1:5). 등불을 켜서 밝히는 것은 하나님이 성막 안에 계시고 일하심을 나타내었습니다.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등잔대 앞의, 열두 덩어리의 떡이 놓여 있는 떡상이 환히 드러났습니다. 이 떡상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등잔대 앞으로 비추는 것은 빛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로 향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중요한 직무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밝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제사장인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잘 밝혀서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어둠과 죄의 소욕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 즉 산 위의 빛나는 도시는 산 위에 있기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산 위 동네가 빛을 비추면 그 산 아래 사는 사람들도 밝게 될 것입니다. John Winthrop은 캠브리지대 출신의 법률가로 미국 개척기의 지도자였습니다. 철저한 청교도였던 그는 신대륙에 성경에 기초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에 불탔습니다. 그는 1629년 천여 명의 청교도들을 다섯 척의 배에 태우고 신대륙을 향하여 가던 중 선상에서 ‘기독교의 사랑의 모델’이란 제목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세울 공동체가 ‘언덕 위의 도시(a city on the hill)’가 되어 지상의 모든 국가와 교회가 우러러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들의 이민이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맺게 되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계약에 충실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 되어 그들로 새 땅에서 성공하게 할 것이며, 계약을 무시하면 진노를 발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교는 장차 다가올 미국의 건국이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우상 숭배와 샤머니즘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C, 많은 선교사와 순교자들을 통해 복음의 빛이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기독교 신자 수는 전체 인구의 20%, 해외파송 선교사는 세계 2위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임은 60년 전 이사무엘 목자님, 배사라 선교사님의 기도와 비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캠퍼스 복음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놓고, 많은 제자를 세우며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이제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본주의, 물질주의, 혼합신앙 등의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했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공동체 미국을 꿈꾸었던 John Winthrop처럼 다시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받고 감당하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5절부터는 성막 봉사를 위해서 레위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요제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정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정결예식을 통해서 먼저 레위인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 예식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속죄의 물을 뿌리고 전신을 삭도로 밀며 의복을 빨아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송아지 한 마리를 번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소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드려서 자신의 죄를 속하였습니다. 시편 24편 3, 4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오직 정결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9-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정결예식에 앞서서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인에게 안수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레위인은 수송아지들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을 레위인이 대신하고 레위인을 수송아지가 대신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즉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레위인을 통해 속함 받고, 레위인은 자신들의 죄를 수송아지를 통해 속함 받는 것이었습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그다음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하나님께 요제로 드렸습니다. 요제는 '흔들어 드리는 제사'라는 뜻으로, 제물을 들고 앞뒤로 흔드는, 제사의 한 형태였습니다. 앞으로 흔드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뒤로 흔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돌려주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제로 드린 제물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요제를 통해 레위인은 먼저 하나님께 바쳐졌다가 다시 제사장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본래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노역의 땅 애굽을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인 유월절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의 그림자가 애굽 전역을 휩쓰는 와중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장자들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에 대한 소유권을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레위인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그 들로 하여금 오직 당신만을 섬기도록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레위인의 이중적인 지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맏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고 요제를 통해 하나님께 바쳐졌다가 제사장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직무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봉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즉 레위인은 성소에서 제사장을 도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휘장 문에서 섬기며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대하 31:2). 또 율법책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읽어 주었습니다(느 8:8).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 레위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원한다고 무조건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인이 하나님께 나아왔을 때 정결 예식을 한 것처럼 우리도 정결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정결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먼저는 레위인이 속죄의 물로, 삭도로, 옷을 빨아 몸을 정결하게 하였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날마다 죄를 씻음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레위인이 요제를 통해 성소의 직무를 담당한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간구하고 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려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레위인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23-26절은 레위인의 직무 연한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의 봉사기간을 25세에서 50세까지로 정해주셨습니다. 25세부터 30세까지 수습기간을 보내고, 그리고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활력이 넘치는 때인 30세부터 50세까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긴 후에 50세부터는 맡은 직분을 내려놓고 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쉰다고 해서 완전히 은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든 일을 하지 않을 뿐이지 성전 비품 관리, 견습생 교육 등을 담당하며 전심으로 섬겼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레위인과 같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충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의 헌신과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자신도 적극적으로 레위인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거룩한 이 시대의 제사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본성은 잘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직장에서 인내하지 못하였으며, 다른 이를 판단하기를 잘하였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살고자 하는데 기쁨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씀이 절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갑갑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해주십사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레위기 11장 45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근본 해결책은 ’거룩‘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세상 잔재미로 인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은 제가 구체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 정결예식을 통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 저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해주시도록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다음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예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이 은혜요, 주님이 되갚아 주실 것을 믿음으로 열정, 시간, 물질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저를 이 시대 영적 지휘관이요 레위인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의 종, 기도의 종으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교회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동체가 되도록, 또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 성소가 되도록 거룩하게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자신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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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6강]탐욕스러운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관리자 2021-11-06 346
727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5강]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21-10-30 383
726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4강]속죄소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21-10-23 313
725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3강]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관리자 2021-10-17 333
724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2강]레위인을 택하신 하나님 관리자 2021-10-09 386
723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1강]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하라 관리자 2021-10-02 458
722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4강]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관리자 2021-09-25 367
721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3강]그리스도를 알고자 관리자 2021-09-19 328
720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2강]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관리자 2021-09-11 382
719 빌립보서 [2021년 빌립보서 제1강]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관리자 2021-09-05 502
718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6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21-08-28 410
717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3강]진리의 왕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1-08-22 482
716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22강]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21-08-15 460
715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 21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21-08-07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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