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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11 (토) 19:18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1년_성탄_제1강-1.hwp (29KB)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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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성탄 제1강]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2021년 성탄 제1강                                                        한아브라함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1장 1-25
요절: 마태복음 1장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고 놀랄만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타임지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위대한 발명품으로 몇 가지를 선정했습니다. 바퀴의 발견 즉 획기적인 운송수단의 개선입니다. 문자, 컴퓨터와 인터넷 등을 들었습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파스퇴르가 병원균을 발견하고 이 병균을 이길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한 것 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개발한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가장 놀랄 만한 획기적인 일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인류는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드디어 인류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예수의 탄생 이전 BC 와 예수 탄생 이후 AD로 역사는 나눠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2021년 성탄에 임마누엘의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제1 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1-17)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계보란 족보 또는 기원(genesis)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족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고 모처럼 성경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합니다. 생소한 이름, 반복되는 ‘낳고, 낳고’에 그만 성경책을 놓고 맙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족보는 중요하고도 아주 친근합니다. 족보가 눈에 확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과 다윗 이 두 사람을 족보의 기둥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혈통적 정통성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3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세기 22장 18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서 온 세상에 미칠 구원의 축복 구원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이 되고 복을 나누어주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법적 정통성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왕으로 세워 그 왕위를 견고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무엘하 7장 12-13). 당시에 주변 강대국들, 특히 로마제국에 눌려 살던 이들은 다윗 왕 같은 성군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이스라엘 국기가 다윗을 상징하는 별 모양이죠. 다윗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다만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영적인 메시아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닌 왕으로 오셔서 우리 모두를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낳고 낳고가 계속 됩니다. 창세기 5장 아담의 족보는 죽고 죽고가 반복됩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가 죽고 죽는 내과 복음 이라면 마태복음은 낳고 낳고 즉 산부인과 복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는 낳고, 낳고 즉 생명이 탄생하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당시는 남성위주의 사회로서 족보도 당연히 남성위주였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이름이 등장함으로 정통성이 회손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죄가 많은 이방 여인을 족보에 포함시켰습니다. 따라서 이 족보는 믿음의 족보인 것입니다. 다말을 보십시오.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관계를 맺고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말은 남편이 죽자 계대결혼을 통해서 대를 잇고자 했는데 시아버지인 유다가 이를 회피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대를 이은 것입니다. 다말은 유다 집안을 다 말아먹을 여인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대를 잇고자 하는 그녀의 믿음을 귀하게 받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음 세대에 믿음의 대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찌 정신을 가진 다말 같은 믿음의 여인이 필요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라합은 가나안 여인이었고 여리고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여행객들을 통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소문과 그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문을 통해서도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 편에 서서 정탐꾼을 숨겼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나님 편에 굳게 서는 믿음을 배웁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비록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편에 굳게 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을 좇았습니다. 늙은 시어머니를 위해서 자기 젊음을 인생을 희생하는 것은 요즘 가치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 정신인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헤세드의 믿음입니다. 긍휼, 자비, 인애의 정신이죠.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베푸시는 사랑도 헤세드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헤세드의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사랑인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섬기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기이한 사랑입니다. 이런 룻에게 하나님은 헤세드의 사랑으로 보아스를 보내시고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축복을 선사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새는 다윗 왕을 나으니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우리아의 아내는 밧세바를 가리킵니다. 저자 마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귀히 여기는 다윗왕의 간음죄, 살인죄 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렇게 하는 회개 하였을 때 용서하시고 다시금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시는 온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비천한 나사렛 출신이요 무명의 시골처녀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계집종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온 생애를 바쳐 순종하고자 결단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순종했습니다. 이상에서 저자 마태가 일부러 이방 여인들을 메시아의 족보에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을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6-11절 보십시오. 다윗으로부터 왕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시작서부터 죄의 역사도 시작되었습니다. 왕들의 면면을 보면 히스기야 요시아 같은 성왕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도 부족했고 대부분의 왕들은 너무나 죄악 되고 결국 죄 때문에 멸망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간 왕들은 실패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마침내 요셉에까지 이어졌고 드디어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열심 으로 이루어 가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쓰임 받는 축복된 인생인 것이죠. 12-16절을 보십시오. 바벨론 포로기로부터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는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암흑기였습니다. 강대국들의 지배를 연이어 받았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는 400년 동안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 꺼져버린 등불과 같고 베임 당한 나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암흑의 시기에도 낳고 낳고의 역사는 계속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이십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가장 어두운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 2장, 임마누엘 예수님 (18-25)

18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지금까지 낳고 낳고의 역사와는 다른 특이한 경이로운 신비한 역사입니다. 이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비로움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것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당시 유대 결혼 풍습은 결혼 1년 전에 정혼을 했습니다. 정혼을 하면 법적인 부부가 됩니다. 1년 동안 동거 하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결혼 준비를 하고 정혼 기간이 끝나면 혼인 예식을 치루고 함께 살았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신비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잘 믿지를 않아요. 그런데 작고하신 코미디언 구봉서 씨는 동정녀 탄생을 못 믿겠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임마! 당사자인 남편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데 네가 왜 못 믿어.’ 이 말을 듣고 믿음이 생기더라고 합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면 믿음의 세계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알게 되고 순종하면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인류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은 죄 없는 상태로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내지만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이 기간 요셉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요셉은 목수인지라 신혼에 필요한 가구들을 직접 만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손재주가 좋은 요셉의 손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뜨고 있었겠죠. 그런데 어느 날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 한 후 3개월간 신앙의 선배 엘리사벳에게 갔었습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상의 한마디 없이 3개월간 어디 갔다 오더니 임신하였다고 하니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실망감 배신감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요셉이 혈기가 많은 보통 사람이었다면 처갓집에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19절을 보십시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 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만일 율법을 앞세우는 바리새인이었다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율법의 의를 뛰어넘는 즉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택하신 것입니다. 회개한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한 구약의 요셉과 약혼자 마리아를 용서한 신약의 요셉은 예수님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마리아의 허물을 덮어주고 마리아를 보호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끊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의로운 요셉과 순결한 마리아를 보호 하셨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이 일을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 놀라운 성탄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 마리아가 말했던 것과 똑같이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더욱 놀라운 말을 전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요셉이 얼마나 놀라왔을까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천사가 요셉에게 전한 소식을 통하여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이지요. 구약 시대의 구원자들은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습니다. 로마 압제 하에 있는 백성들도 당연히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오직 세례요한만이 예수님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감격하여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즘 사람들도 누구나 구원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제는 어디로부터의 구원인가 하는 것이죠. 정치적인 구원 경제적인 구원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등이죠. 요즘 젊은이들은 가난, 상대적 빈곤으로부터 구원 받기를 바랍니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정의롭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겠죠. 그러나 집을 소유한다고 부자가 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마태가 이를 경험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 베이스는 근본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인간은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행복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과 분리된 것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이 죄입니다. 요즘 우리가 배우고 있는 민수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문제의 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불신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요 심판이요 지옥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천국 지옥을 고리타분한 개념으로 여기고 있죠. ’지옥은 없어‘ 애써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있듯이 심판과 지옥은 반드시 있습니다. 요즘 지옥이라는 영화를 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지옥을 인정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죠. 지옥을 모르니까 구원의 필요성도 모르는 것이죠. 만일 1박 2일로 지옥 체험 코스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죄 문제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루신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 예수님을 묵상하다가 아름다운 시를 썼죠. 제목은 ’예수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한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둘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28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끝이 납니다. 22절부터는 저자 마태의 해석입니다. 자기가 은혜 받은 것을 기록한 것이죠. 마태는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한 사건을 이사야서 7장 14절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 했습니다. 처녀는 바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기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지금도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내 옆에 내 안에 계시고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심각한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나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병들면 가난해지면 친척 친구들은 떠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 떠나가십니다. 함께 하심으로 어떤 축복을 주십니까? 함께 하심으로 우리 내면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십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말씀하십니다. 코로나 팬텀이 길어지고 델타 변이보다 무서운 변이 오미크론이 우리와 함께 하려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임마누엘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올겨울 대유행이후 집단면역 형성이후에 정상복귀가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장래문제로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best way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참 쉼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11장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단한 우리네 인생길에 함께하심으로 참 쉼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한 함께하심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그 어떤 인생도 다 변화됩니다.

마태는 과거 세리레위였습니다. 돈만 아는 물질주의자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열심히 살아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고독 했고 허무 했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일방적인 은혜로 예수님을 만났고 3년간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했을 때 그는 온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긍휼이 풍성한 목자요 마태복음을 쓴 성마태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사람은 근본적으로 잘 변화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동행 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주 안에서 모든 것이 변화 되죠. 좋게 쓸모 있게 변화 되죠. 그 누구도 나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임마누엘 주님만이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 정국입니다. 사람들은 함께 하지 말고 떨어져 있으라고 거리를 두라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청년들은 핸드폰을 벗 삼아 집에서 홀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리두기를 하되 양들과의 거리는 좁혀야 하겠습니다. 물론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요. 이번 성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새롭게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움과 고독 삶의 무게에 눌려있는 있는 양들과 함께하며 임마누엘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4-25 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았죠. 왜 하필 우리 가정이냐고 항의하지 않았죠. 아무런 조건 없이 마리아를 데리고 왔고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록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인정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계획이 내 계획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길에 개입 하십니다. 신나고 멋진 계획을 준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의 꿈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복 됩니다. 저는 과거 학과공부에 대한 부담감 시험에 대한 두려움 장래불안으로 모든 것이 자신 없고 인생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기만 했습니다. 이런 자를 주님이 친히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새 인생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거듭난 이후 주님은 줄곧 저와 임마누엘 하여 주시고 저의 내면의 모든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올 한해 코로나 시국에도 주님은 부족한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와 함께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의 사랑과 은혜 감사 찬송 드립니다. 부족한자가 은혜 받은 자로서 다음세대의 젊은이들과 말씀과 기도와 섬김으로 함께 하는 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덧입고 임마누엘의 주님의 은혜를 덧입고 우리도 그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 양들과 함께함으로 풍성해지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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