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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3-06 (일) 08:26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2년_민수기_제17강-1.hwp (61KB) (Down: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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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2022년 민수기 제17강                                                        오정훈
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말씀/민수기 33-36장
요절/민수기 33:51-5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오늘 말씀은 민수기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40년 지나온 모든 노정이 나옵니다. 처음 들어본 지명도 있고 많이 들어본 지명도 있습니다. 그들의 노정은 불신과 원망으로 점철되어 거의 실패의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사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신실하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이 시간 이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고 나의 인생 여정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이스라엘의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음을 배우고 주신 계명과 규례를 절대적으로 지킴으로 복을 받는 하나님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3장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난민이나 유랑민족처럼 무질서하게 애굽을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서 대오를 갖추고 당당하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들이 행진하여 온 노정을 다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시 노정을 기록한 것은 그들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40년간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40년 전 첫째달 곧 니산월 15일에 라암셋을 떠났습니다. 유월절 죽음의 사자가 바로의 장자로부터 미천한 여종의 장자를 모두 침으로 장사지내느라 정신이 없는 때였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미 열 재앙으로 애굽의 우상들에게도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신지 깨닫고 이스라엘을 속히 내보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애굽 사람들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 들어간지 430년만의 일로서 진정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스라엘의 노정은 세 단계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라암셋에서 시내 광야까지입니다. 5-8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라암셋을 떠나 숙곳과 에담을 지나 비하히롯 앞에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을 쳤습니다. 이때 마음이 강퍅해진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보낸 것을 후회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추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등지고 있었기에 애굽 군대가 나타나자 아비규환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밤새 동풍이 불게 하시므로 이스라엘로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놀라운 권능을 체험했지만 사흘 동안 물을 구하다 마라에서 겨우 얻은 물이 써서 먹지 못하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엘림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그토록 그리던 샘물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광야는 만나를 먹으며 걷기 시작한 곳이요 (출16장) 르비딤은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곳이며 또한 아멜렉과의 전쟁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출17장). 시내 광야에 3월 1일에 도착해서 다음해 2월 20일에 이곳을 떠나게 됩니다.(민10:11). 약 1년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전수 받고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을 지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동행하는 백성들로서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입니다.(16-36) 민수기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를 두 번 당도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한 번은 정탐꾼을 보냈을 때였고(14:25), 다른 한 번은 광야 유랑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습니다(20:1). 그런데 33장에는 한 번만 기록하였는데 이는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이르는 길을 성공적인 행진으로 전하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브롯핫다와는 이스라엘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탐욕을 부리다 탐욕의 무덤에 묻힌 곳이었고(11:4-35), 하세롯은 이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대적하다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발했던 곳이었습니다(11:35; 12:16). 이 기간 동안 출애굽 세대는 대부분 광야에서 죽고 광야 세대는 일용할 양식 훈련, 안식일을 지키는 훈련,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믿음 훈련 등을 받으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만한 백성들로 빚어지게 됩니다. 셋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입니다(36-49). 38,39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 세였더라” 애굽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왔던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아론이 죽은 후 얼마 안 있어 모세도 아비람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죽게 됩니다.(47) 이처럼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지도자는 죽지만, ‘떠나고 진을 치는’ 이스라엘의 삶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분은 모세나 아론과 같은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지명들은 출발지인 라암셋과 도착지인 모압평지를 빼면 모두 40곳이 됩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40년이 걸렸으니 평균 1년에 한 번씩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지리적으로 보면 라암셋에서 모압평지까지는 1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그런 거리를 40년이나 걸려서 오게 되었다니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요? 이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을 많이 먹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대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광야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떠나고 진을 치는’ 역사를 반복하시며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훈련을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광야 기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신명기 8장2절에서 말씀하였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알고자 하신 것은 그들의 마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고 순종하는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 40년간 ‘떠나고 진을 치는’ 역사를 반복하셨습니다. 사실 광야 40년은 그들의 불신과 원망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끄러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참으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므로 마침내 모압평지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광야 기간 동안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여정 가운데 늘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영광의 때에도 함께 하시고 고난과 시련의 때에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하십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지 시험하십니다. 우리의 목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지만 하나님의 목표는 고난을 통하여 믿음과 순종의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떠나고 진을 치는’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하십니다. 우리가 이 크신 소망을 알고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까지 ‘떠나고 진을 치는’ 역사를 감당하므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50-5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가게 되면 그 땅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조금의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그들의 눈에 가시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라는 것은 당장에 죽게 하지 않지만 아주 괴롭혀서 다른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가나안 우상을 완전히 깨뜨리고 헐고 몰아내서 조금이라도 남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스다롯은 물질주의와 육신주의의 화신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삼도록 만듭니다. 한번 돈을 맛보고 쾌락을 맛보게 되면 기거서 빠져서 나오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거스리는 육신의 소욕과 싸워야 합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입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육신주의 물질주의 세력과 싸우므로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4장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땅의 경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남쪽 경계는 에돔 곁 신광야로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애굽시내를 지나 바다 곧 지중해가지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애굽 시내는 현재 중부 시나이 반도의 바란 고원에서 가자(GAZA) 남쪽의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와디 엘아리쉬’로 추정됩니다. 이 남쪽 경계는 나중에 이민족의 침입이 많은 곳이 되고 시므온과 유다 지파가 이곳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광야에서 죄로 인해 그 수가 급감하여 실제는 광야행군 중에 항상 선봉에 섰던 유다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고 또 남쪽 경계를 지키게 됩니다. 서쪽 경계는 대해 곧 지중해입니다. 북쪽 경계는 대해에서 호르산에 이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이르고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샘의 촌락)에 이르는 선이 북쪽 경계가 됩니다. 여기서 호르산은 아론이 죽은 호르산이 아니라 페니키아 성읍 비블로스 북쪽 16km 지점에 있는 산을 가리킵니다.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요단강 수원지)에 이르고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는 부분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서(창15:18) 그 경계가 굉장히 넓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거저 주지 않으시고 치열한 싸움을 통해서 쟁취하도록 하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도전해서 승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땅을 모두 차지하지 못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땅의 절반도 되지 않는 땅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왕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정해주신 땅을 쟁취하여 솔로몬 시대까지 통치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군사력 경제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볼 때 현재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을 때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누리고 또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습니다.
13절은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하게 된 르우벤, 갓, 므낫세 반쪽 지파를 제외한 아홉 지파 반이 제비를 뽑아 가나안 땅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단 서쪽에서 땅을 기업으로 나누기 위해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필두로 각 지파별로 지휘관 열명을 친히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하고자 하십니다. 출애굽 세대의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신과 반역으로 이끌었지만 2세대 열두 지파 지도자들은 새로운 땅을 쟁취하는데 쓰임 받게 됩니다. 또한 이들을 직접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은 땅을 분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알려주는 것입니다.
35장은 레위인이 거할 성읍과 도피성에 관한 규례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이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땅을 따로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지파에게 레위인이 거주할 성읍과 초장을 주라 명하십니다. 레위인이 거할 성읍은 성을 중앙에 두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2000규빗 (900m)을 측량하여 레위인들의 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레위인들에게 48개의 성읍을 주되 땅을 많이 받은 지파는 많이 주고, 적게 받은 지파는 적게 주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26장 62절을 보면 레위인의 숫자는 장정만 23,000명으로 전체 인구는 8만 내지 9만 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계산에 기초하면 한 성읍에 2,000명 정도 거주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땅의 소유권은 레위인들이 아니라 성읍은 나누어준 각 지파에게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레위인들은 남의 땅에 얹혀사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레위인들이 각 지파 가운데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창세기49장7절에서 야곱이 유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야곱의 저주대로 시므온은 유다 지파에 속하여 흡수되었고, 레위인은 열두 지파 속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흩어져 살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성경 선생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잔해하는 칼로써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였지만 금송아지 사건 때 회개하므로 그들의 칼은 이제 희생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저주가 회개를 통해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에게든지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일어나서 쓰임 받는 역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도피성을 맡기시고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을 보호하도록 하십니다. 35장 11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너희를 위하여’라고 하신 것을 보면 도피성을 만드시는 목적이 이스라엘을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살인이 살인을 부르는 악순환을 막음으로서 이스라엘을 성결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피한 자는 회중 앞에서 판결받기까지 죽지 않도록 목숨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요단강 동편에 세 곳(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골란), 요단강 서편에 세 곳(갈릴리 게데스, 세겜, 헤브론)을 정하게 하심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하루 안에 도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으로 피한다고 모두 다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철 연장이나 사람을 죽일 만한 돌,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그는 반드시 죽이라 하십니다. 뉴스를 보면 어떤 사람은 흉기로 사람을 찌르고 골프채로 사람의 머리를 쳐서 죽입니다. 또 벽돌로 사람을 내리치거나 야구방망이로 사람의 머리를 쳐서 죽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들로서 생명의 속전을 받아서도 안 되고(35:31) 반드시 죽이라 하십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미워하는 까닭에 사람을 밀쳐서 죽이거나 무엇을 던져서 죽이거나 손으로 쳐서 죽이면 그도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거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그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핑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안 그럴 수도 있다는 미필적 고의로 인한 살인도 엄연한 살인죄입니다. 음주운전 하는 사람들은 전부 한 잔만 마셔서 아무 문제가 없다 말합니다. 그러나 음주운전자로 인해 온 가족이 죽거나 한 가족의 가장이 허무하게 죽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의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는 도피성으로 피하였더라도 피의 보복하는 자에게 내어주어 친히 그 살인자를 죽임으로 그 죄 값을 치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의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정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물건을 던져 사람을 죽게 한 경우 회중은 친자와 보복하는 자 사이에 판결하여 과실치사한 자를 도피성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도피성에 있는 동안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기 거기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를 어기고 도피성 바깥으로 나갔다가 피를 보복하는 자가 그 살인자를 만나서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게 됩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보호처인 도피성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인 대제사장의 죽음은 그 살인자를 위한 대속의 죽음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도피성 제도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지어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잘 알려 줍니다. 첫째, 구원의 길은 쉽고 가까우나 반드시 그 길에 들어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알게 모르게 죄를 지어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인생들의 진정한 도피성이 되셔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우리가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안에 있으므로 자기 죄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참된 위로와 소망을 덧입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40년 광야 노정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 가운데도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 신앙의 여정이 40년까지는 안되지만 30년은 조금 넘었습니다. 어떤 때는 승리와 영광이 있었고 은혜와 축복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의 노정은 대부분 교만과 반발심 불신으로 실패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예수님은 저의 도피성이 되어주셔서 죄인을 감당하여 주시고 다시 믿음으로 서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덧입었지만 거룩한 소원을 갖지 못하고 항상 저의 눈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세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 소원에 사로잡힐 때마다 ‘그곳을 떠나 다시 진을 치는’ 광야 훈련을 주셨습니다. 양들을 통해, 자식을 통해, 환자들을 통해 저를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이 어떠한지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지 시험하셨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저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영원한 가나안 땅 곧 하나님 나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떠나고 진을 치는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이 크신 소망을 붙들고 떠나고 진을 치는 역사를 믿음으로 감당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빚어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6장은 슬로브핫의 딸들로 인해 생긴 여인들의 상속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27장 1-11절에서 하나님은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경우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딸들이 다른 지파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그 기업이 다른 지파에게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이 희년이 되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율법에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므낫세의 후손인 길르앗 자손들은 슬로보핫의 딸들을 예를 들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도록 나왔습니다. 모세도 그들의 주장이 옳다 하고(5) 슬로보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갈 수 있지만 오직 그 조상의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을 가므로 기업을 지키도록 방향주셨습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은 다섯이었는데 그 중에는 다른 지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키고자  자기 지파 곧 숙부의 아들들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들은 조상의 기업을 지키기 위해 결혼까지 헌신한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땅의 기업과 하늘의 기업을 받았습니다. 땅의 기업은 이 땅에서 우리가 힘써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이 기업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 결혼도 같은 믿음과 사명관을 가진 사람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땅의 기업을 지키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만일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가볍게 여긴다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처럼 언젠가는 후회하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는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규례니라.” 민수기의 결론은 이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온 계명과 규례의 결과라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곧 그들이 계명과 규례에 순종했을 때는 승리와 영광을 체험했지만 불순종했을 때 무서운 진노와 징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현재의 교훈을 얻고 미래의 방향 또한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또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가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런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의 40년간 노정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가 배워야 합니다. 그 결론은 여호와께서 주신 계명과 규례를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우리 2세대의 미래도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규례를 얼마나 잘 지키고 따르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떠나고 진을 치는’ 인생광야 훈련을 잘 받음으로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빚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잘 누리며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기업을 잘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계속해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상으로 민수기 말씀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신실하게 말씀을 공급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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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5강]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관리자 2022-04-10 589
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355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387
74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강]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리자 2022-03-20 391
74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강]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22-03-13 523
745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관리자 2022-03-06 376
744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6강]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관리자 2022-02-27 339
743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5강]절기와 제사 관리자 2022-02-20 388
742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4강]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한 비느하스 관리자 2022-02-13 395
741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3강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하나님.. 관리자 2022-02-06 443
740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2강]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관리자 2022-01-30 422
739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1강]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와 아론 관리자 2022-01-22 566
738 민수기 [2021년 민수기 제10강]붉은 암송아지의 재 관리자 2022-01-15 353
737 누가복음 [2022년 신년 제3강]열 둘을 택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1-08 364
736 출애굽기 [2022년 신년 제2강]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관리자 2022-01-01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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