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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03 (일) 19:53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4강-1.hwp (149KB) (Down: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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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2022년 누가복음 제 4 강                                                     김베드로선교사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 / 누가복음 5:1-11
요절 / 누가복음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함을 취하리라 하시니”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의 제자요,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르심의 은혜와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5:1-7)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본격적인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며 주님이 이 땅에서 하실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시고  ‘메시아 미션 선언문’을 먼저 낭독 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61장 1,2절) 이 말씀을 통해서 주의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셨고 이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셨습니다. 온갖 세력에 사로잡혀 눌려사는 인생들에게 은혜의 해, 자유의 해, 해방의 해를 선포 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와 통치권을 사단에게 넘겨 주었습니다.(눅4:6)   이후 죄와 사단의 지배아래 들어간 인생들과 온 인류를 향하여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귀신에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롭게 해주시고, 각종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해주셨습니다.  마침내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이 땅에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구속사역에 함께 동참하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동역할 제자들을 부르시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12 제자중 수제자라 일컬어지는 시몬 베드로를 부르신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이제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통하여 ‘저분은 어떤 병이라 할지라도 치유하신대! 어떤 귀신의 세력도 저분 앞에서는 고꾸라지신대! ’  소문이 나며 가시는 곳마다 예수님께 나오고자 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죄로 포로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눈 먼자를 보게하며 온갖 더러운 세력들로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시는 메시아로서의 권능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온 말씀으로 구원의 기쁜소식, 즉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선포되는 복음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요 그 복음(메시지)의 내용은 메시아되신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앎으로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기를 무엇보다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온갖 귀신과 마귀의 역사와 뉴스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은 온 마을들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무리들에 둘러싸여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계실 때 옆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밤새 고기를 잡아서 아침이 되면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런 후에 집에 가서 아내가 정성들여 준비한 아침 해물탕으로 식사를 하고 휴식 하였습니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고기를 잡아야 했으므로 얼마나 피곤이 몰려 왔을까요?  그들은 빨리 그물을 씻어 둔 후 집에서 푹 쉰후 다음 고기잡이를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 났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많은 무리에 둘러싸여 계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배에 오르시더니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기 시작 하셨습니다.  즉 뜻밖의 선상 아침 수양회가 열린 것입니다.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의 아침햇살을 배경으로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마치 선상의 아리아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멸시받는 약소국의 백성들이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이 시간 만큼은 어떤 민족 그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은 천국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으며 자유함과 해방의 기쁨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목소리로 노래했을 것입니다.  ‘갈릴리 마을 그 강가에서 주님 우릴 해방시키셨네~ 해방되었네~~해방 되었네~~죄와 사망의 법에서~~’  ‘예수님 찬양~예수님 찬양~’ 이 얼마나 즐거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가요?  그들은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과 양무리들과의 행복한 수양회도 아쉬움을 남긴채  폐회 메시지로 마감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때 무슨 일을 하십니까?  놀랍게도 제자삼는 역사를 바로 시작 하십니다. 손으로는 열심히 그물을 씻으며 한쪽 눈과 귀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던 어부들, 특별히 시몬이라는 한 사람을 집중하여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를 제자삼기 위함이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특별히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시몬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만드신 후 주님은 시몬에게 말씀 하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사실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시몬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말씀이자 방향이었습니다. 아침 시간은 고기들이 모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고기들이 모이는 밤에 열심을 다해 그물질을 했어도 빈 그물이었는데  아침에 그물질을 한다는 것은 뻔한 헛수고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주님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 하시는 것일까요?  첫째,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지식과 상식 그리고 경험에 기초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뛰어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적세계에 대하여 눈을 뜨도록 돕기 위함이셨습니다.  갈릴리에 갇히고 현실에 갇혀 살아온 그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의 틀을 깨고 그의 시야를 넓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크고 광대한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철저히 인간중심의 물질세계나 정신세계를 가르칩니다.  인간이 주인이고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다스린다고 가르칩니다.  이와같은 진화론적 세계관은 인간이 주인이고 이 세상은 강한자가 약한자들을 잡아먹는 약육강식과  강한 자들에 의해 약한 자들이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런 법칙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이런 포식의 법칙과 약육강식의 원리를 신봉하는 자들에 의해 세상은 갈등과 분쟁, 살육과 전쟁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진화론적 유물론에 바탕을 둔 무서운 공산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지금도 이런 원리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한 민족주의와 패권주의로 세상은 고통당하고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약소국의 건장한 남자로서 식민지 지배 체제 하에 있던 시몬에게도 생활인으로서 고달픈 삶도 힘들었지만 마치 로마가 세상을 다스리는 듯한 모습에 더 힘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시몬을  주목하시고 먼저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라는 믿음을 갖도록 도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바다속 물고기를 다스리는 분도 예수님이심을 체험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얕은 이성과 경험 그리고 고정관념에 갇혀 살아가는 시몬에게 말씀 하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러면 이에 대한 시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시몬 베드로의 이 대답속에는 자신의 노력과 성실에 대한  깊은 현실적 고민이 묻어 있습니다.  사실 베테랑의 어부들이 익숙한 갈릴리 바다에서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다면 어느정도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밤은 신기할 정도로 밤이 새도록 수고들을 하였지만 잡히는 물고기가 없었습니다.  정말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다 싶은 밤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밤새 손발은 부지런히 그물을 내리고 끌어 올리고는 있었지만 아마 그는 고달픈 삶의 문제와 민족 문제를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이 들어 고기잡이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우리 또한 이 시몬의 고민어린 대답속에 뭔가 공감하는 심정이 생기지 않습니까?  시몬과 같이 고민하며 함께 울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시몬의 고민어린 이 대답속에 우리들의 고민 또한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인생을 함부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많이 배우고 화려한 도시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고기잡이로서의 주어진 생업을 밤이 새도록 수고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 안드레이의 말을 따라 예수님께 나간것을 보면 참된 것을 찾고자 하는 열정 또한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장모님의 열병을 치료하고자 예수님께 부탁한 것을 보면 가족들에 대한 책임의식도 남달랐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에 따른 큰 보상과 열매가 주어져야 당연 한 것 아닐까요?  그런데도 그의 그물은 빈 그물이었습니다. 빈 그물은 내 힘과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삶의 한계 또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으되” 저희들의 인생 가운데도 이런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열심을 내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 문제들로 마음이 무너지고  실패감이 몰려 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저도 이번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겪으며 32년간의 선교생활이  빈 그물로 돌아 간 듯한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며 제자양성하며 선교하는 삶에 가족과 나의 모든 것을 드렸는데...잠시 낙망하는 마음과 함께 무력감으로 인한 실패감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한숨과 실패감의 자리에 마냥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에게 바로 그때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야 하는 때”라고 말씀 하십니다.  현실의 문제에 코박지 말고 좀더 깊은 말씀의 세계, 영적인 세계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더욱더 깊은 영적인 세계, 말씀의 세계로 나가서 새롭게 도전하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한  인생(생번충의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절망의 때가 하나님께는 가장 소망의 때이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빈그물인 것 같을 때,  빈 들에서 나홀로 서 있는 것 같을 때, 그 광야 같은 때가 바로 하나님의 때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라는 것 입니다.  저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이번 전쟁만큼 무력감과 실패감을 안겨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니 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때도 없었습니다.  자라기도 벽촌 시골에서 자라고 지금도 시골 촌놈 같은 제가 많은 유수의  언론과 방송에서 서로 인터뷰를 하고자 하고 한국의 교계 및 우리 UBF 동역자님들의 넘치는 관심과 기도를 받게 하셨습니다.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불평하고 낙담하거나 원망스런 마음로부터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겠지!  비록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뭔가 하나님의 배열 하심이 있으실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일을 통하여 좀더 깊은 하나님의 세계로 나가는 것일거야!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여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 손에 올려 드리다 보면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이 모든 문제의 답이 되어 주실거야!’  실패감을 털고 일어나 생각과 기도의 방향을 정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들어오지 않고 귓가에 맴돌기만 하던 하나님의 말씀도 쏙쏙 들어오고 답답하던 가슴과 어눌하던  말문도 트였습니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시는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매일 매일 한국사회 많은 분들과 협력하여 구호와 난민들을 돕는 일들은 힘든 일이긴 하지만 보람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모든 항구가 봉쇄되어 선박이 출항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동안 해오던 곡물 무역업도 정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저께는 인근국가인 루마니아로 보내어 한국으로 들여오는 100개 정도의 컨테이너 곡물계약을 전광석화처럼 이룰수 있었습니다. 이 위험속에서 100% 선수금을 내고 구매하겠다는 말에 저 자신 잘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물질적 손실이 하나님이 역사하시자 단번에 만회 되었습니다.

그러면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응답 하였습니까?  6b - 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자신의 이성과 상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지금 이시간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린다는 것은 헛수고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다시 그물을 내리고자 할 때 너무 피곤한 일 임에도 불구하고...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에게는 단순히 말씀에 순종하는 놀라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몬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즉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의 기본적인 자세였습니다.  시몬도 때때로 죄와 연약함으로 그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16:16)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그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앞에서 세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까지 남아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위대한 사도 베드로요 반석과 같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말씀을 믿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재미있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기적을 행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는 말씀으로  세상 떡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말씀의 떡에 대하여 말씀 하시자 그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때 시몬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베드로 전서 1장 23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핍박가운데 흩어진 성도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처음부터 시종일관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제자요 말씀의 사도로 키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 각자 각자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말씀을 의지하는 말씀의 종들로 키우시고 사용하시는 줄을 믿고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시몬이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빈 그물이던 시몬의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차고 넘쳤습니다. 얼마나  풍성하게 잡혔는지 다른 배에 있던 동무들이 와서 도와야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의 궁극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아담족에 속한 자들로서 실낙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낙원에서 쫒겨난 자의 두려움과 불안의식 속에서 하루하루를 뭔가에 쫒기듯 하며 도망자의 의식에 갇혀 살아갑니다.   끊임 없이 비교 평가하며 좀 나은 것 같으면 교만해지고 인간조건이 좀 못하다 싶은 사람들을 실패자요 인생의 루저(Loser)로 취급합니다.  온갖 교만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며  자기의를 내세우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러함 삶의 모습들이라면  여전히 아담족에 속한 이 세상의 구습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실패를 책망치 않으십니다.  예수족에 속한 자들이 어떤 실패의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같은 상황에 직면(Encounter)하게 하시어 그 실패를  말씀에 의지하여 딛고 일어서게 하십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장은 실패한 듯한 베드로 한사람을 심방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첫 부르심의 장소였던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만나십니다.  아침식사를 대접하시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심으로 그와의 첫사랑의 관계를 회복 시켜 주십니다.  세번 부인한 베드로의 실패의 마음을 하시고 세번 사랑의 고백을 하게 하심으로 그의 실패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십니다.  사람낚는 어부로서의 목자의 사명 또한 회복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이처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로 하여금 고난과 실패를 만나지 않도록 하시기보다는  오히려 직면하게 하시고 그 고난과 실패를 이길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속에서 그리고 영원한 삶속에서 궁극적인 승리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실패자, 루저는 없습니다.   사단에게 속아 일시적으로 실패한 것 같지만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생명의 말씀에 기대어 흔들림 없이 인생 항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빈그물과 같은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릴 때 그 인생 그물을 채우시고 풍성한 열매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2.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8-11)
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능력을  체험한 시몬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주의깊게 보면 이제껏 시몬이라고 불렸는데 이때부터 시몬 베드로(Simon Peter, 페트로스)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반석(페트라)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베드로로 부르시자 그의 삶은  길가의 평범한 돌같은 삶에서 반석으로서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김 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그저그런 갈릴리의 어부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의 이름을 시몬 베드로로 불러 주었을 때 그는 하나님 구속역사의 위대한 반석으로 빚어지고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사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은 것은 어부에게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어부들과 함께 기뻐해야 할 시몬이 오히려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이 고백은 현재의 상황과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상황에 맞지않는 죄인으로서의 자아를 갑자기 깨닫고 고백 하는 것일까요?  이는 그가 한 말씀에 순종하여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은 특별한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 할 때 현실문제에 매어 있던 그의 관심이 자신의 존재와 인생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몬은 예수님을 권위가 있는 랍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 했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체험을 통해서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그리스도)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서 “주여(Lord)”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는 이후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이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고 마침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신앙고백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죄인으로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주어진 삶에 충실한 삶을 산다고 생각 했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자요 하나님을 등진 자로서의 자아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단순히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닌 창조주와 피조물, 구원자와 죄인의 관계에서 오는 일종의 경외감입니다.  구원의 전제 조건은 죄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과 정욕의  죄의 바다에서 헤매다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만나 아담족으로서의 자아를 벗어버리고 예수족으로서의  새로운 거듭남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낙원의 삶에서 복낙원의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죄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님의 죄 용서함의 은혜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그리스도되신 예수님을 감사 찬양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죄 용서함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어떤 사명을 주십니까?  10b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무서워하지 말라”  시몬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From now on you will fish for people) 새로운 인생 방향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구원과 함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시몬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서 살아가던 어부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사람을 취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취하는 삶이라는 것은  죄와 허물로 죽음의 바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건져내어서 진리의 인생을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다의 물고기를  정복하는 삶에서 세상의 영혼들과 열국의 백성들을 복음으로 정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그 인생을  드리도록 사명헌장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고귀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분,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사의 직분, 직장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직분도 역시 고귀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서 예수님의 제자의 인생을 살도록 사람을 취하고 양육하는 목자의 직분은 가장 소중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바라볼 때 인간 조건이나 세상 환경이 좋지 않다고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헤롯과 같은 포악한 지도자들로 인해 절망해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목자없는 양같음을 인하여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을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 비유 하십니다.(요10:11)  주님은 저희들을 예수님의 제자요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은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습니다.(롬11:29 ) 자신의 전 인생을 투자해도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자의 직분, 복음 전하는 성경선생의 직분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감사함으로 감당합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큰 기쁨이요 영광으로 여깁니다. 아멘.

부르심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So they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자신들의 전 인생을 부르심의 은혜를 따라 제자의 인생, 목자의 인생, 사도의 인생으로 올인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참된 보화 되신 예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의 인생을 살게 되면서 그들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갈릴리 촌부들이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킨 위대한 사도의 인생을 살게 되는 시작점이 됩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들은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권세있는 사도들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역사를 이룹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부르심의 은혜입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디트리히 본 회퍼는 당시 황제이자 신처럼 행세했던 독일의 히틀러를 상대로 믿음을 지키다 독일 나치에게 순교당하였습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값비싼 은혜’라는 저서의  ‘나를 따르라’ 부분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은혜가 값비싼 것은 따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은혜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죄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만이 은혜가 아닙니다.  정말 값비싼 은혜는 이에 더하여 부르심에 순종하는 은혜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은혜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위한 리허설이다”.    

우리는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어서 사명인으로 세우신 사건을 통하여 부르심이 은혜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사명이 곧 축복이자 복음을 위한 사명인의 삶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주신 인생의 창조목적에 부합한 삶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르심에 합당하게 창조된 영적인 존재요 사명의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만족과 삶의 행복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일생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받을 때 주어집니다. 시몬은 갈릴리 촌부로서 물고기에 울고 웃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제자요 목자로 부름 받으면서부터 위대한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생육, 번성, 충만(생번충, Sonship의 회복)하며 복음으로 정복하고 다스리는 인생(Kingship의 회복, 왕같은 제사장)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창1:28, 벧전2:9) 그물이 찢어지는 듯한 말씀에 의지하는 삶의 풍성한  열매들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를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신 부르심의 은혜와 “네가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목자요, 성경 선생으로서의 사명인의 축복을  충만히 누리는 삶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가 새롭게 우리 가운데 부어져서 봄 학기 및 2022년 사람을 취하고 제자 삼는 역사가 풍성 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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