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17 (일) 15:2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6강-1.hwp (95KB) (Down:31)
ㆍ추천: 0  ㆍ조회: 584      
IP: 211.xxx.102
[2022년 누가복음 제6강]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2022년 누가복음 제6강                                                     한아브라함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말씀: 누가복음 5장 27-39절
요절: 누가복음 5장 32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요즘처럼 코로나가 대 유행하는 시기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코로나 환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의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영적으로 병든 죄인들을 치료하시기 위해 오신 영적 의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 같은 영적으로 병든 죄인을 만나고 함께 하고 식사 교제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죄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화 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27 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님이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니 그가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사건이 아주 간단히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간단치 않은 사건입니다.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이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지배 하에서 임의로 세금을 거두어 일정 부분을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졌습니다. 가뜩이나 힘들게 살고 있는 백성들의 돈을 빼앗아가는 도둑놈이요 로마의 앞잡이 매국노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레위인 것을 보면, 그의 부모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지파 사람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살라고 레위라는 이름을 지었고, 구약성경을 철저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소년 시절 그는 레위다운 삶을 꿈꿨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 시절 레위는 방황했습니다. 나라는 망했고, 독립의 희망은 없고 돈이나 벌자, 그렇게 돈에 눈이 멀어서 세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양심을 버리고 동족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의 재산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도 커졌고 불행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후회 하였지만 자기 힘으로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고, 돈 때문에 신앙을 팔아먹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행복이 없었습니다. 고독했습니다. 소외되었습니다. 돈에 팔려 창기가 된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가족들은 세리 레위를 부끄러워했고 친구들은 다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피했고, 등 뒤에서는 ‘매국노 창기보다 못한 죄인’이라고 욕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레위는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세관에 앉아서 오늘도 누구에게 얼마를 빼앗아 올까 생각하며 죄를 짓는 현장에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이런 그를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동사는 ‘주목하여 자세히 보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은 스마트폰에 사진을 띄워 놓고 수시로 봅니다. 당시 세리 레위는 누구나 보고 싶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와 상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속사람을 보십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과거를 보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의 현재의 참모습과 변화될 미래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레위의 고독과 고민을 아셨습니다. 행복 하고자 돈을 좇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한 잃어버린 자임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화된다면 세리레위가 성 마태가 될 것을 아셨습니다. 잘못 된 인생 목적과 방향을 바로잡아 주고자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평생 예수를 배우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삶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정반대의 삶입니다. 이기적인 삶 물질추구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청년들 교회 안팎 어디나 할 것 없이 물질 추구의 삶을 삽니다. 물질 추구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회장은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카이스트 석 박사를 마쳤고, 동기들과 넥슨 기업을 창업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과연 그가 행복했을까요? 돈과 성공을 목표로 달려오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배신과 재산 손실을 입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우울증에 걸렸고, 얼마 전에 생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그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28 절을 보십시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로 응답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리 자리, 세금 장부, 현금 부동산 등 다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를 옭아매던 돈의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해방과 자유를 맞았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참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그가 참된 보화 되신 예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가 예수님의 부르심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소중히 여겼던 물질은 예수님 앞에서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자 관원은 자기 소유의 가치가 예수님의 가치보다 더 크기 때문에 따르지 못했습니다.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른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레위가 지금 세관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세리로 즉시 교체 되어서 돌아올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한번 나눠준 재산은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첫째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를 배우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29 절을 보십시오. 레위가 예수를 만난 후 너무나 기뻐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전에는 돈은 많았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울할 때가 더 많았죠.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맛본 기쁨,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을 세리 친구들도 맛보고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세리들과 다른 죄인들을 많이 초청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리의 집에 가서 죄인들과 식사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참석하면 괜히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 중심으로 모여 기뻐하며 웃고 떠드는 한마디로 기쁨의 축제였습니다. 29절 다시 보십시오. 그가 누구를 위하여 잔치를 벌였습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레위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본 적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 또한 세리 친구들과 죄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기를 위하여 자기만족 자기 성공을 위하여 한다면 변화되기 전 세리 레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변화된 마태와 같이 예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한편 잔치의 특징은 한마디로 기쁨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특징은 잔칫집 같이 기쁜 것입니다. 넘치는 기쁨을 이웃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이를 일깨워 주시려고 예수님은 첫 번째 이적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토요 미팅이 매주 벌어지는 잔치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일예배가 풍성한 말씀 잔치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잔치이기를 축복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알게 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너희가 어찌 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그들이 볼 때 세리들과 죄인들은 부정한 사람들이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쓸모없는 한 인생이 변화되어 잔치를 벌였다면 마땅히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잔치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맹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구약 말씀에 정통했고, 율법을 지키고자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는 무덤덤했습니다. 이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냉정했습니다. 상대방과 기쁨을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같은 바리새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달리 예수님은 죄인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31, 32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오직 병든 자들에게만 의사가 필요할 뿐입니다. 여기서 건강한 자란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병원에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병을 키워서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병원에 오면 이미 늦어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 병자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주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 검사를 받기 때문에 무슨 병이 든 조기 발견하여 치료 받기 때문에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을 치료하는 영적 의사로 오셨습니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다 의인이다 라고 하는 자칭 의인을 치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죄를 고백하는 자들을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정죄 받아야 할 인간으로 보지 않으시고 치료 받아서 회복 되어야 할 병든 자들로 보십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거룩함을 상실하고 정욕으로 추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세리 레위처럼 욕심과 이기심으로 깊이 병들어 이기적 인생을 살아갑니다.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을 개척하고 도전하며 많은 열매를 맺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열매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병자가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자신의 병든 곳을 먼저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병든 내면을 치료 받으려면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적 의사이신 예수님께 자신의 병든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회개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성령의 불로 모든 죄를 태워 주시고, 병든 내면을 치료해 주시고 건강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킴으로써 죄 사함 받고 건강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아무 값없이 치료비 한 푼 안 받으시지만 단 한 가지 조건,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치료해 주십니다. 교회는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요 예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고 고백하는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갈급한 심령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한편 의인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적 의사인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죄인이 아니다 세리와 창기와 같지 않다 예수님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영적 의사이신 예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멸망 가운데 심판 가운데 내버려두십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앞에 진실되게 죄를 회개하고 신약과 구약의 말씀으로 처방을 받아 회개의 눈물로 먹기만 하면 죄 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2번 씩 금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많이 할수록 경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기보다 주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타 종교는 금식이나 고행을 하며 도를 닦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주 안에서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혼인집에서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잔치를 벌이기 때문에 금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세상은 초상집이 되었지만 예수님이 오심으로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은 잔칫집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때 금식하는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날을 말합니다. 그때는 마귀와 싸우기 위해 금식해야 합니다. 또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 금식 기도하는 것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어떤 사람이 아끼는 옷이 있어서 그것을 자주 입었습니다. 오래 되어 헌 옷이 되었죠. 그런데 새 옷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때 헌 옷이 찢어졌다고 새 옷을 잘라서 헌옷에 붙이는 바보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은 못 쓰게 되는 것이고 낡은 옷도 더 찢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새 옷의 천은 당기는 힘이 강하여 낡은 옷을 더 찢어지게 하기 때문이죠. 37, 38절을 보십시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 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새 포도주는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팽창합니다. 낡은 가죽 부대는 탄력성이 적기 때문에 새 포도주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립니다. 반면 새 부대는 탄력성이 있어서 새 술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헌 옷,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을 의미합니다. 유대교의 율법은 행위의 구원을 강조하는데 반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 합니다. 율법의 형식과 제도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과 절대로 함께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 즉 그리스도의 복음은 새 가죽 부대, 즉 새로운 신앙 의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은 새 포도주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팽창하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마음이 새 부대 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카톨릭은 낡은 가죽 부대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되어있는 성경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부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위를 누렸습니다. 타락 할 수밖에 없었죠. 개신교가 새 부대가 되었고, 성경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였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유럽 교회가 낡은 가죽 부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유럽 교회를 떠났습니다. 새 부대인 미국이, 한국이 새 포도주인 복음을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우리 모임 ubf도 낡은 가죽 부대가 되어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것입니다. 새 부대인 다른 나라로 다른 모임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나는 새 부대 입니까? 낡은 가죽 부대입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말씀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사람이 새 부대입니다. 말씀 앞에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새 부대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낡은 부대입니다. 낡은 부대는 정체 되지만 새 부대는 성장합니다. 낡은 가죽 부대가 되지 말고 새 부대가 되어야겠습니다. 특히 말씀 앞에 새 부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수기를 배울 때 모두 눈이 초롱초롱 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배우는 말씀이라 집중하며 들었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말씀 ‘세리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이 말씀은 복음서를 배울 때마다 지금까지 수십 번 넘게 배우고 들었습니다. 여름 바이블 캠프의 단골 메시지죠.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하는 누가복음 말씀 앞에 나의 마음이 헌 부대가 되어 있지 않은지요. 39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사실 전통이나 관습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39절 말씀은 묵은 포도주가 좋다는 격언을 인용해서 전통이나 관습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말씀 합니다. 묵은 포도주에 맛 들린 사람은 새 포도주를 맛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옛 관습만 내세우고 따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율법만을 고수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새 부대와 같은 수용성과 탄력성을 갖고 누가 복음 말씀을 배워야겠습니다. 새롭게 은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과거 세리 레위처럼 이기심,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인생의 허무와 두려움에 빠져 절망의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자에게 찾아오시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았을 때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니 주님보다 주님 주신 축복을 더 사랑하고 낡은 가죽 부대가 되어 버린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르심 받고 예수님을 따르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사는 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나를 따르라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배우는 참된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새 부대가 되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된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6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8강]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관리자 2022-07-11 341
762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7강]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관리자 2022-07-03 346
76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6강]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관리자 2022-06-26 406
76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5강]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관리자 2022-06-19 373
75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4강]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22-06-12 360
75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3강]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22-06-05 468
75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2강]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관리자 2022-05-29 371
75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1강]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관리자 2022-05-23 400
75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0강]많은 죄 사함, 많은 사랑 관리자 2022-05-15 553
75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8강]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관리자 2022-05-08 420
75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7강]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22-05-01 434
752 누가복음 [2022년 부활절 특강]청년아 일어나라 관리자 2022-04-25 333
75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6강]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관리자 2022-04-17 584
75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5강]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관리자 2022-04-10 662
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408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430
74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강]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리자 2022-03-20 437
74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강]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22-03-13 572
745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관리자 2022-03-06 415
744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6강]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관리자 2022-02-27 390
12345678910,,,41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