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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5-03 (일) 14:47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출애굽기
첨부#1 2009_출애굽기_4강-.hwp (39KB) (Down: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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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출애굽기제4강]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2009년 출애굽기 제 4 강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말씀 출애굽기 5:1-7:7
요절 출애굽기 7:4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바로와의 긴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로는 이 싸움에서 쉽게 이스라엘을 내 보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강력하게 대항했습니다. 먼 길을 가다보면 강을 건너기도 하고 높은 산을 넘기도 해야 합니다. 평탄한 길만을 갈 수는 없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도 장애물을 만나 절망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절망에 빠진 모세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시는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문제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역사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우리 앞서 친히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여호와가 누구이기에(5장).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접을 받은 후 바로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말씀을 들은 바로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바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이 말은 여호와가 정말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어서 묻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바로는 여호와를 무시하였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흥! 신이라고 어떤 신이 자기 백성을 노예로 살게 하는가’ 하는 뜻이었습니다. 당시에 나라사이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강한 신이 승리하고 지배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태양의 신인 바로가 보기에 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신은 아무 힘도 없는 그저 그런 하찮은 신에 불과하였습니다. 심지어 바로는 모세가 전한 말을 거짓말이라 생각했습니다.(9) 이스라엘의 신은 있지도 않는데 그들이 게을러 일하기 싫어서 있지도 않은 신이 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와 바로의 싸움, 즉 하나님과 우상들의 끈질긴 싸움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모세가 많이 밀렸습니다. 바로의 강력한 펀치에 다운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모세는 다시 기운을 차리어 바로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진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재앙을 내리실지 모른다 하였습니다. 자신의 말은 거짓이 아니니 믿어 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며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벽돌을 만들 때 필요한 짚을 주지 않으면서도 전과 같은 수량의 벽돌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바로는 그들이 게을러 말도 안되는 말을 가지고 와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수고롭게 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더욱 괴롭히면 헛생각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바로는 여호와를 몰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를 때 바로는 함부로 여호와께 저항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바로에게 매우 유익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노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경제에 꼭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이런 유익을 순순히 내놓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가 누구야’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 버립니다. 또한 크리스챤은 시간과 여유가 많아 일요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하루 종일 교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런 시간 자신을 위해 휴식을 갖던지 놀러가라 합니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유익이 되도록 돈이나 벌으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목적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그분께 나아가 예배하는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바로와 같은 반응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하는 말에 흔들리거나 위축되지 말고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구별된 삶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의 명령으로 백성들은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 짚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이는 전보다 더욱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감독들의 독촉은 심하여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직접 나아가 자신들의 사정을 말하였습니다. 감독자들이 짚도 주지 않고 같은 수량을 같은 기일에 만들라 하며 때리니 이는 부당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벽돌 만드는 것을 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록원들은 결국 자신들에게 큰 화가 있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바로가 너무나 완강하여 뜻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에게서 있으니 계속 바로에게 매달려야 할까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 모세를 만나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목자 모세와 아론을 만나자마자 원망과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자신들이 죽게 되었다 하면서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환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두신 계획을 듣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더 힘들어지자 목자 모세 때문이라고 모세를 미워하였습니다. 괜히 가만히 있는 바로에게 칼을 주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 소리에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는 백성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아마 바로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 ‘이미 이러한 태도는 예상했던 바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바로가 하나님의 강한 손의 치심을 받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로가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가 정말 강하게 나오자 당황하였습니다. 예상은 했어도 실제 경험하게 되니 이론과 실제는 달랐습니다. 모세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게 느꼈습니다. 더군다나 동족들의 원망 소리는 목자 모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부푼 꿈을 갖고 애굽에 왔는데 시작부터 쉽지 않은 문제를 만나 모세의 마음에 어두움이 몰려 왔습니다. 40년만에 돌아와서 다시 실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강한 바로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쳤습니다.
  우리도 모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봄학기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복음 역사를 이루고자 했는데 닫혀 있는 양들의 마음으로 인해 목자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말씀은 계속해서 ‘나아가라. 전하라’ 하는데 현실의 벽은 높게만 느껴집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한 사람은 더욱 이러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여러 환난과 문제들이 터집니다. 사단은 연약한 믿음을 흔들고 때로는 절망하게 만들어 신앙생활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말씀공부를 통해 신앙생활에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사단의 이런 강한 저항에 실제 부딪히면 자신도 모르게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 일이 잘 풀려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문제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세는 이런 바로의 강한 저항으로 생긴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문제 속에 매몰되어 절망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모세의 훌륭한 점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고하였습니다. 그들을 학대 속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어느새 모세는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 같으면 지도자를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한방을 날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모세는 그들을 위해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하나님께 고하였습니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Ⅱ.나는 여호와니라.(6:1-7:7)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이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시며 이제 바로가 ‘바로’ 하나님의 강한 손에 밀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에서 내 쫓다시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언약하신 내용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바로에게 나갔지만 성과 없이 오히려 더 괴로움만 얻은 모세에게 얼마나 낙심이 되느냐 하시며 위로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붙들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신 언약을 결코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십니다. 신실하게 이루어 나가십니다. 모세도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상황에 따라 마음이 변합니다. 상황이 좋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조금만 상황이 나빠지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다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문제가 있다고 당장 해결해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먼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붙들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나는 여호와라’는 말씀을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라는 이름은 조상들에게는 알리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조상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시고자 하셨을까요? 7절에서 하나님은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서 너희의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라는 사실을 알고 영접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여호와로 부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부릅니다. ‘어이 이 사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일반적인 신중에 하나의 신이 아닌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우리가 알고 부르기를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수많은 우상, 잡신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이를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또 모세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과 세계 모든 민족들이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 주이심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나는 여호와니라’ 반복하여 말씀하심은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언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는 엄청난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나 ‘나는 아무개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에 걸맞는 이름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과거 종로 거리에서 여러 주먹들을 평정하고 일본계 주먹마저 제압했을 때 ‘나 김두환이야’ 하면 그 이름의 권세를 인정하고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던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는 이러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권세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3절 말씀을 볼 때 모세도 하나님을 조상들과 같이 전능하신 분으로만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세의 마음에는 하루 빨리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바로를 한방에 쳐서 KO 시키시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좀 지체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루어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모세가 잠시 동안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 헤메더라도 하나님이 여호와 이심을 알도록, 유일하신 여호와만이 홀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때로 절망에 빠져 한치 앞도 나아갈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새롭게 만나게 하십니다. 현실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단편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참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새롭게 하나님의 넓고 깊은 세계를 체험하도록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장래에 이루실 하나님의 원대한 약속을 바라보고 이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안에서 매몰되지 않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함께 하시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행하실 일들에 대해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전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현실 문제로 인해 마음이 상해있었고 가혹한 노역으로 당장에 무엇인가 해 주기만을 바랬습니다. 곧 이루어 질 것이라도 장래 약속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 속에 완전히 갇혀 있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바로 왕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메시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듣지 않았는데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하며 자신은 입이 둔한 자다 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부딪히고 바로와 부딪히기만 하자 자신은 할 수 없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불신만 하는 모세와 아론을 계속해서 자격이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계속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을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13) 14-27을 보십시오. 이는 얼핏보면 이스라엘 열두 아들의 족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족보는 열두 아들 전체를 말하지 않고 르우벤, 시므온의 족보가 짧게 나오다 레위 족보에서 멈추고 그의 아들들 중심으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 족보는 모세와 아론이 속한 레위 족속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26,27절에 모세와 아론을 마지막에 기록하면서 이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받았고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 보내라고 애굽 왕에게 말한 자라고 적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이라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비록 모세가 어려움에 위축되어 있더라도 변함없이 그에게 두신 뜻을 이루어 나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를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루어 내려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모세는 여전히 자신은 입이 둔하여 바로가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모세는 앞에서도 그랬는데 여전히 자신은 입이 둔하여 바로가 듣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도 너무한다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말씀하셨으면 영접을 해야지 마음이 완악하구만 하고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세를 보면서 ‘그래 너는 안되겠다 다른 사람을 세울 수밖에 없구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꾸 자신은 안된다고 부정적으로 행할 때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이렇게 힘들어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인류에 길이 남을 지도자 모세도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지날 때가 있었습니다. 부정적이 된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포기하셨나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이해하시고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하신 자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힘과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새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낙망하는 모세를 실제적으로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첫째,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7:1a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 앞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아니 이미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현실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능력과 권세를 이미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모세가 손을 들어 하수를 쳤을 때 하수는 핏빛으로 변하고 개구리와 이가 생기고 애굽 사람들에게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우박이 떨어지고 메뚜기 떼가 몰려 올 것입니다. 애굽이 가장 숭배하던 태양이 사라지고 흑암이 임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모세의 손은 신의 손이 될 것입니다. 결국 바로는 이런 모세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세상에서 신과 같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12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이를 행하였을 때 헤롯은 깜짝 놀랐습니다. 현재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받은 우리를 세상에서 신과 같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두려워 하지말고 당당하게 주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에 나갈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둘째, 동역자를 세워 주셨습니다. 7:1b,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대언자로 다시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아론을 세워 주시며 더 이상 모세가 나는 말을 못해요 하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아론에게 이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장점을 살리어 역사를 섬기라 하십니다. 혼자서 역사를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의 모세와 나의 아론과 함께 동역할 때 주의 말씀을 힘있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복음 역사는 동역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둘씩 함께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안에도 가정 안에서, 요회 안에서, 팀 안에서 동역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내가, 내 손을, 내 이적을, 내 군대, 내 백성에게, 내가 하리라’라 하시며 ‘나’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란 말을 빼놓고 말씀하셔도 되는데 굳이 ‘나를’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나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모세가 말을 잘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는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가 자꾸 자신은 입이 둔한 자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6:12, 30) 말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잘 아셨습니다. 모세의 말 속에는 그가 말을 잘해 애굽 왕이 모세의 말을 듣고 백성들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모세는 내가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해야 애굽 왕도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메시지를 전하라 하셨을 때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하며 말을 못하는 자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할 때 이는 엄청난 부담으로만 작용하였습니다.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하는가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모세를 처음 부르실 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잘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무 문제 없이 말만 잘하는 자신의 입이 문제 있다고 입 타령만 하였습니다. 이제라도 모세는 분명히 알고 영접해야 했습니다. 자신은 단지 도구로 쓰임받는 존재이며, 친히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내가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힘들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의지로 열심히 일하다가도 문제에 쉽게 빠지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부담감이 아니라 기쁨으로 주님과 동역하며 신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기도하며, 주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환경을 예비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친히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실 것을 믿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 하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바로에게 전했습니다. 후에 바로는 이를 무시하기도하고 하나님의 재앙 앞에 타협하며 어찌하든지 저항했지만 모세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믿을 때 기꺼이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로에게 나아갔을 때 나이가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습니다. 이제 은퇴를 할 나이였습니다. 더 이상 acting member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들에게 나이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함께하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역사에 실제적으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모세와 같이 내가 무엇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난 할 수 없다고 부정적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네가 아니라 내가 한다. 너는 나만 따라 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도 여전히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그래요’하며 불신하는 저를 계속해서 꾸짖으시고 회개시키셨습니다. 문제는 네가 믿고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그리고 주님의 귀한 말씀과 훌륭한 동역자들을 주셨음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우리 보다 앞에 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였음을 회개합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새롭게 복음 역사를 앞장서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동역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복음 역사를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만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현재 복음 역사를 앞장서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기쁨 마음으로 주님과 동역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단의 방해 가운데서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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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47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리스닝 2010-04-11 3207
746 이사야 [2010년 성탄 1강]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관리자 2010-12-05 3196
745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6강]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관리자 2013-11-03 3187
744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리스닝 2010-09-12 3183
743 열왕기하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역사를 계승한 엘리사(시니어팀_양용.. 관리자 2009-11-09 3182
742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7강]새 예루살렘 리스닝 2010-02-19 3172
741 창세기 2009 여름수양회 2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이동원 관리자 2009-07-26 3167
740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한아브라함) 관리자 2011-01-02 3165
739 이사야 [2011년 성탄 메시지 제1강]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관리자 2011-12-11 3164
738 마가복음 [2012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버림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휴화산 2012-07-18 3149
73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2강]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관리자 2009-06-28 3146
73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2강]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관리자 2011-12-04 3144
73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6강]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관리자 2014-05-25 3142
734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7강]새끼 나귀를 탄 왕 관리자 2009-02-01 3137
73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리스닝 2010-04-25 3127
732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원규연 관리자 2009-04-12 3125
73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4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3-10-20 3123
730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4강]만민이 기도하는 집 관리자 2011-01-30 3118
72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5강]서로 발을 씻어주라 리스닝 2010-06-13 3117
728 이사야 [2012년 신년 특강 제2강] 네 장막터를 넓혀라 관리자 2012-01-15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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