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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2-19 (금) 09:31
분 류 요한계시록
첨부#1 2010요한계시록17-1.hwp (47KB) (Down: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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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계시록17강]새 예루살렘

2010년 요한계시록 제 17강

새 예루살렘

말씀: 요한계시록 21:1-27
요절: 요한계시록 21:2,3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으로 악의 세력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영광의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장차 성도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신다는 희망의 약속을 주십니다. 인간이 갈망하는 완전한 낙원은 이 땅에서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시간 눈을 들어 하나님이 주실 낙원과 상급을 바라보며 세상의 헛된 소망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마음에 진정한 하늘나라의 산 소망을 소유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새 하늘과 새 땅(1-8)
  1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사도 요한은 죄로 더러워진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는 모두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하늘과 땅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실 완전한 낙원을 의미합니다. 그곳은 악은 모양도 없고 오직 사랑과 진리와 공의와 평화와 아름다움과 영광이 가득한 곳입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천국의 환상을 보고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은 원수 되었던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에덴동산의 완전한 회복이요, 성도들의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사도 요한은 또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보고 있습니다. 이 성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았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중심에 하나님은 새 예루살렘을 만드셨습니다. 이 성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해 드려야 할 순결과 헌신을 나타냅니다. 신부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단장하고 완벽하게 준비하여 신랑을 기쁘게 하고자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어린양의 신부요, 거룩한 성입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장막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만드신 처소입니다.(레 26:11,12) 하나님은 본래 에덴동산에서 인간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뒤에 숨는 존재로 타락하였습니다. 죄의 종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성막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친히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그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이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제 성도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 거룩한 몸이 되면 하나님과 한 장막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사역의 완성이요 하나님께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성도들에게 주실 최상의 상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더 이상 하나님의 낯을 뵙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고통하였습니다. 사울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영이 떠났을 때 그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사자굴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 요셉이나 다니엘, 그리고 갖은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한 것만으로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고 능력과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과 연합되어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것은 성도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갚아주신다는 것이요 동시에 이제 더 이상 울 필요가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흘린 눈물을 다 알고 닦아주십니다. 이들이 왜 눈물을 흘립니까? 사람들은 사망으로 인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외로운 이 땅에서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길 때 마음의 눈물이 고입니다. 마음의 상처와 억울함과 분노와 운명주의로 심령이 고통하며 신음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수치와 한계와 절망으로 사람들은 울 수밖에 없습니다. 갖가지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아픔과 두려움을 겪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고통과 상심의 눈물을 누구도 닦아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처음 것은 모두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4)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울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므로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됩니다.(사35:10) 어린양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슬픔 많던 세상이 천국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런 세계를 갈망합니까?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을 약속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인류의 범죄로 인하여 상실했던 첫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로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최종 목적지요 하이라이트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과 함께 우리의 썩을 몸도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아무리 새롭게 되려고 해도 될 수 없었는데 주께서 친히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므로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현재 부족하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모습을 먼저 우리 마음판에 분명히 새기고 이를 간절히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요한에게 “이루었도다(It is done.)”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계획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선포하시는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역사의 창시자시오 완성자입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실 뿐 아니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게 하시고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백성을 넘어 아들 곧 상속자가 되게 하시겠다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소망이 넘치는 위로의 약속입니까! 성도들은 이 땅에서 손해보고 다 잃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나라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8절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가 이 땅에서 중간결산으로 웃고 울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은 최종 결산에서 하늘나라를 상속받는 진짜 승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초청하여 주시고 우리 하나님과 한 장막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셔서 영원한 상속자 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9-27)
  9,10절을 보십시오. 마지막 대접 재앙을 주관하던 천사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성령으로 그를 크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은 한눈으로 보아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습니다. 자세히 보니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각 문마다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들은 동서남북으로 각각 3개씩 똑 같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사방 어디서나 성에 들어갈 기회가 똑 같이 주어진 것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 성문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똑 같이 열려 있습니다. 높은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구약과 신약 시대 성도들이 모두 한 백성이요 한 교회 공동체임을 말해줍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요한에게 말하던 그 천사가 금 갈대 자로 성과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였는데 성은 네모반듯하고 높이도 같은 정육면체의 모양입니다. 길이는 12,000 스다디온(1 스다디온=약 180m), 약 2160km의 크고 웅장한 성입니다. 성곽의 두께는 144 규빗이요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덮여 있습니다. 성곽의 기초 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고 열두 문은 한 개의 큰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깔려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온통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랑 되신 어린양과 성도들이 함께 거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보석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과 구속 받은 성도들의 존귀함을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과 성도 간의 연합한 삶이 빛나는 보석과 같이 찬란하고 고귀하며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염된 세상에 살고 있는 죄인들에게는 실감이 잘 안될 정도로 하늘의 모든 존귀, 영광, 권세가 충만한 곳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디즈니랜드를 설명해주면 펄펄 뛰며 가고 싶어 하듯이 우리도 그날에 받을 감격과 환희를 기대하며 곧 사라질 이 땅에 에덴을 짓느라 헛된 고생 하지 않고 하늘의 보화를 쌓고자 애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라”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면서 그 핵심인 성전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까지 다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에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벽이 성전의 잔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도 원수들의 음모가 담긴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가장 먼저 아버지 집인 성전을 찾으셨습니다. 솔로몬 왕 때 7년에 걸쳐 지어진 제 1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 후 헤롯 왕에 의해 지어진 성전도 로마군대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성전은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지요 삶의 힘이요 순례의 종착지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성전을 회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막상 성에 들어와 보니 성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그 성전이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옛 성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참 성전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새 예루살렘 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고 자신이 친히 성전이 되셨습니다. 이 땅의 성전이 그림자라면 하나님과 어린양은 성전의 원형이요 본체이십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이 땅의 예루살렘같이 특별히 임재하시는 장소로서의 성전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항상 계시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인 것은 폐하여집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신 새 예루살렘에는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갈 것입니다.(24) 새 예루살렘 성은 낮에 성문들을 닫지 아니 할 것이니 거기에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25)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첫 창조의 때와 같이 해와 달의 빛에 의존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의 광채로 충만한 세계입니다. 무엇이나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갈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낙원인 것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환경이나 달마다 열리는 풍성한 과일 열매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 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도원 입구에 큰 비석이 서 있고, 그 비석에는 “Apres cela(아프레 쓸라), Apres cela, Apres cela...”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이 뜻은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인데 이 글이 쓰이게 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법과대학 졸업반에 다니던 한 학생이 한 학기 수업을 남기고 학비를 준비하지 못해 어느 신부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신부님은 마침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이 좋은 일에 써달라고 놓고 간 돈이 있어 기꺼이 이 학생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감사하며 돈을 받아 돌아서려는데 신부님이 학생을 불러 놓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무엇을 하려나?” “예 물론 학기 등록을 해야지요” “그 다음은?(Apres cela?)” “공부해야지요” “그 다음은?” “졸업하고 취직해야지요” “그 다음은?” “결혼해야지요” “그 다음은?”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해야지요” “그 다음은?” 말문이 막힌 학생이 머뭇거리자 신부님은 조용히 대신 말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은 자네도 죽어야 하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하네” 이 말을 듣고 학생은 곰곰이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결단하고 이 수도원에 수도사가 되어 “Apres cela”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성도는 이 땅엣 것을 소망으로 삼고 사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전이신 하나님과 어린양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 하며 사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아버지, 어린양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이를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은 성도들이 갈 본향이요 최종 목적지입니다. 성도들은 영광스럽고 온전한 모습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삶을 영위할 희망을 간직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을 마음에 굳게 간직하고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성의 일원이 되도록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이요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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