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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9-12 (일) 13:07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0년_이사야서_1강-1.hwp (53KB) (Down: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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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2010년 이사야서 제 1강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말씀: 이사야 1:1-31
요절: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서는 창조에서 새 창조에 이르기까지, 멸망에서부터 구속에 이르는 성경 66권의 내용이 이사야서 66장에 모두 담겨 있어서 성경의 축소판이라 불려집니다. 1-39장(구약 39권)은 하나님의 의와 공의, 심판을 보여주는 구약적 주제입니다. 40-66장(신약 27권)의 주제는 여호와의 긍휼, 은혜와 소망에 대한 신약적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구약적 메시지와 신약적 메시지를 모두 가르쳐주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내용이 집약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3부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1부(1-39장)는 이사야 당시의 죄악을 책망하며 그 징계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로 이어집니다. 2부(40-55장)는 바벨론 포로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3부(56-66장)는 제 2의 출애굽을 넘어서서 새 창조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소망을 보여줍니다. 이사야서는 하늘과 땅에서 시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아가는 대서사시입니다. 여기에는 영적 각성에 대한 촉구와 남은 자 사상 등 하나님의 백성이 믿어야 할 필수적인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BC 750년에서 700년까지 예루살렘에 살면서 활동하였는데 그가 활동한 그 시대는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뿐인 어두운 시대였습니다.(5:22) 이사야는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오직 여호와만이 구원이심을 줄기차게 선포하여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외친 상한 심정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함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모든 것을 처음과 같이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장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고발하면서 이들을 간절히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사야가 살던 시대와 같이 말세지말에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질주하는 어두운 시대입니다. 내적으로는 온갖 병든 모습으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어떻게 이 시대를 섬겨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사야서 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사야를 부르신 하나님이 이 시대 구원역사를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그 간절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범죄 한 나라, 허물 진 백성(1-17)
  1절을 보십시오. “유다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선지자 이사야는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등 4대에 걸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쪽으로는 애굽, 북쪽에는 아람, 동쪽에는 강대국 앗수르와 신흥 세력인 바벨론에 둘려 쌓여 있어서 약소민족 이스라엘은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부패하여 어디서 손을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의 백성에게 두신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은 강대국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신다는 것과 말일에는 만방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시온으로 나오는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현재 패역한 자기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탄식하였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하늘과 땅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역사와 이들의 죄를 직접 보고 들은 증인들입니다. 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거역한 죄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나님은 이날까지 이스라엘을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듯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만큼은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소원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지만 노예 백성이 된 이들을 애굽에서 빼내셔서 거룩한 계명과 율례를 주시고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다른 이방민족도 아니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는 것은 가슴에 못질 하는 가장 악한 행위였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짐승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거역하였으니 그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악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패역한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은 자식에게 버림 받은 부모와 같이 탄식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또한 이런 백성들을 향하여 가슴이 터질듯 하였습니다.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근본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죄가 모든 죄의 뿌리였습니다. 세상에 여러 죄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반하는 일처럼 죄악 된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거역하면 짐승만도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6,27절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치 않고 거역하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왜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났을까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교만은 그들의 영적 눈을 감기게 하였고, 분별력을 빼앗아버렸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도 사탄의 유혹을 받아 교만해지자 하나님이 먹지 말라 명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입니다.(고후13:8)
  싹이 노란 나무는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이렇게 온 몸이 병들고 싹이 노란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은 은혜를 배반하고 멀리 떠난 이스라엘을 다시 돌이키기 위해 주위의 강대국을 통해 사랑의 매를 드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매를 맞으면 잠시 회개하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패역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들은 교만과 불신과 반발심으로 병들어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은 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하나님을 떠난 후 황폐한 땅에 살게 되었고 성읍은 불에 탔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켜졌습니다. 번창하였던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조금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생존자를 조금 남겨두셨기에 망정이지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더라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진멸되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 죄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그들은 겉으로는 무수한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숫양과 살진 짐승의 기름을 드리고, 수송아지, 어린 양들, 숫염소의 피를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들은 월삭과 정한 절기를 열심히 지켰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는 무거운 짐이 되어 하나님은 그런 것을 지기에 곤비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그들은 무수히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며 성전 마당만 밟고는 자기 볼일 보러 가버렸습니다. 마치 출근도장 찍고는 나가서 소일하는 자들 같았습니다. 성전의 핵심은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그 중에서도 지성소에는 죄 씻음 받는 속죄소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성전에 오는 목적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라 가르치셨습니다.(요4:24) 그러나 그들은 성전의 마당 밟은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 했다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형식적인 제사와 예배를 슬퍼하셨습니다. 제사와 예배는 범죄 한 죄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 드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유일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참된 예배를 회복해야 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 손을 펴서 많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15) 그러면 이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스스로 깨끗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스스로 씻고,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악한 행실을 버리고 행악을 그치라고 하십니다.(16) 하나님은 겉으로 거룩해 보이는 제사를 겉만 보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위선과 외식, 거짓으로 드리는 종교생활을 회개하기 원하셨습니다. 이들이 먼저 마음의 죄를 씻고 악한 행실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경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자가 자기 의를 내세우며 체면상 드리는 외식하는 제사보다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마음의 진심을 드리는 제사, 헌신을 원하셨습니다.
  둘째로, 선을 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7) 하나님은 이들의 삶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삶에서 선을 행하는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인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이들의 거룩하고 품위 있는 종교생활은 마당만 밟는, 하나님께 도장만 찍고 끝나는 삶이라고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삶 구석구석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책망 앞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전에 마당만 밟는 생활, 하나님께 무거운 짐만 드리는 형식적인 삶은 아닌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도 어느 덧 Sunday christian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성전의 마당만 밟는 것으로 자족하고 있지는 않는지?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의무를 다 했다고 여기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시51:17) 또한 하나님은 그 번제와 다른 어떤 제사보다 그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제사보다 순종을, 숫양의 기름보다 말씀을 듣는 것을 낫게 여기십니다.(삼상15:2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이나 거창한 종교행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데서 돌이켜 영적인 사람이 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방황하는 양들을 돌보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기초하여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우리가 무슨 큰 일이 생겨야 기도하고 일이 해결되면 기도를 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회개하고 성전에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8-31)
  이런 죄악 된 백성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 얼마나 하나님의 긍휼과 소망이 가득한 하나님의 초청의 메시지입니까?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해주시는가, 또 어떻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오라!
  하나님은 먼저 이들에게 무조건 오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초청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자들은 멀리 쫓아내고 당장 심판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무조건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을지라도 여전히 사랑하는 자식으로 대하셨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셨고, 주께서 우리를 잊으셨다 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라”(49:15) 죄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초청의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어느 정도 해결한 다음에 나아가고자 하면 이미 늦습니다. 지은 죄가 아무리 많아도 있는 모습 이대로 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단순히 믿고 나가면 됩니다. 주께서 부르시는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요 구원받을 때입니다.
둘째로,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오라고 하신 목적은 서로 변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변론(reason)은 이성적으로 따져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비록 짐승만도 못한 죄를 짓고 심판 받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무조건 일방적으로 심판의 채찍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는 인격적이고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명령을 어긴 아담을 먼저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시며 변론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변론할 때 근본 죄를 깨닫고 진실되게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무조건 피해서 숨고 회피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자신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문제해결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변론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실제로 하나님과 변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보며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변론하기 위해서는 나의 편견, 불신, 반발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일대일로 마주 앉아 변론하기를 기뻐하시는 인격적이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변론할 때 어떤 은혜를 받게 됩니까?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주홍 같고, 진홍 같은 죄는 모두 무엇으로도 지을 수 없는 심각한 죄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죄를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듭니다. 죄는 좋은 제사를 드린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들고 나와 사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서로 변론하는 가운데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사탄의 고소로 양심의 고통을 받습니다. 나의 고질적인 죄 때문에 양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실족시키기도 합니다. 정욕의 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며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함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악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변론을 통해 주홍 같은 죄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시고 진홍같이 붉은 죄도 양털같이 희게 해주시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무조건 용서하시고 영접하시는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씻음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우리의 죄를 흔적도 없이 지워주시고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초청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19) 이는 죄로 황폐해진 이스라엘의 완전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마저 거절하여 배반하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20) 이 모든 것들은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21-31절에는 이스라엘의 또 다른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과거 이스라엘은 신실하던 성읍이었고, 공의와 정의가 충만한 아름다운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상숭배에 빠져 영적인 창기와 같이 되었고 사랑과 섬김 대신 폭력이 난무하여 살인자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그들은 순수하고 진실한 백성이었는데 지금은 은은 찌꺼기가 가득하고 물이 섞인 포도주를 진짜인 것처럼 파는 참으로 거짓되고 이중적인 죄를 범하는 악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한 결 같이 뇌물을 사랑하고 예물을 구하였습니다. 대신에 불쌍한 고아, 가난한 과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타락한 백성들을 위해 특단의 조처를 취하고자 하십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은 무서운 징계를 통해 지도자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모든 죄악을 제거하실 때 이스라엘은 의의 성읍이요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기 백성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어찌하든지 회복시키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공의와 소망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단순한 진노의 표현이 아니라 본래대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소망과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수없이 범죄 한 죄인들을 포기치 않고 깨우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운 소산으로 복을 받도록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 찬송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 떠난 백성들을 간절히 초청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우리가 아무 자격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변론하는 가운데 우리의 주홍 같이 붉은 죄를 사함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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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2강]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관리자 2011-12-04 3487
783 이사야 [2010년 성탄 1강]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관리자 2010-12-05 3487
782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리스닝 2010-09-12 3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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