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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2-04 (일) 12:29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31강_-1_(이사가랴).hwp (26KB) (Down: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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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32강]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2011년 누가복음 제 32강                                                         이사가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20;1-26
요절; 누가복음 20;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간의 ‘권위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은 완악한 이들에게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들어 영적인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진정한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귀히 사용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1-8)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자신을 왕이요 주로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먼저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심으로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심히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1) 이렇게 하심으로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집이 되어야 함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한창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따졌습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란 눅19장 45절에서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은 사건을 뜻합니다. 이들은 성전의 업무를 맡은 기득권자들로서 예수님의 행위로 많은 물질적 손해를 보았고 자존심에 심한 손상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하늘의 권세를 덧입었다는 말이 나오기만 한다면 당장에 신성 모독죄로 고소할 태세였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그 여인을 돌로 칠 것인가 말 것인가 물으며 예수님의 답변을 촉구하는 사건과 유사합니다. 성난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난처해진 제자들...그런데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직접적인 답변대신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반문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라는 것은 당시 사람들은 다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대답치 못하고 서로 의논하며 대답한 이후의 결과만 따져보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늘로부터라고 한다면 왜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추궁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라고 한다면 당시 사람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그들을 돌로 칠 것입니다. 그들은 정답을 알려고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올무에 넣으려는 술책일 뿐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런 질문할 자격도 없었습니다. 임기응변적이고 자기 유익만 챙기려는 탐욕스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처럼 무슨 권위로 일을 하는지 이르지 않겠다고 답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 같이 자신의 권위도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이미 증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격증이나 직분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신 일을 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믿음 없는 사람에게는 권위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상 타이틀이나 자격증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보증해주지는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제자양성하며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어떤 권위로 하는 것입니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권세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믿는다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겨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더 받기 위한 영적 투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취직을 하기위해서도 여러 가지 자격증을 얻고 또 갱신하며 자격을 유지하고자 애를 씁니다. 우리는 신령한 말씀을 맡은 자들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권세를 얻고 유지해나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를 들며 권위가 어디에서 오며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문제점을 나타내십니다.

제 2장, 포도원 농부의 비유(9-26)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을 염두에 두시고 백성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를 명백히 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이후에 되어 질 일들을 예고해 주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한 사람이 포도원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사야 5장 1,2절을 보면 주인은 기름진 산을 구입하여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중에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만들었습니다. 포도를 수확하여 술틀에 넣어 포도주를 만들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주인은 모든 준비를 하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일하는 것에 주인이 간섭하지 않고 농부들에게 자율권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농부들은 심히도 기뻤습니다. 경제침체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시장에서 빈둥빈둥 놀던 이들에게 포도원 농부로 일 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은혜였습니다. 이들은 감사함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3년 정도가 지나자 포도가 결실하고 수확을 보게 되었습니다. 포도는 햇볕이 강하고 일교차가 큰 산자락에서 잘 자랍니다. 그래서 중동지방의 고원지대는 포도농사에 좋은 지역입니다. 여름에 땀 흘려 열심히 수확하게 되자 주인은 계약대로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고자 종을 보내었습니다. 당시 대개의 주인과 소작농인 농부는 반반씩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하였습니다. 주인이 좀 더 마음씨가 좋은 사람인 경우 수확량의 20퍼센트 정도만 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수확량의 10퍼센트만 내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은 당연히 기쁨으로 종에게 세를 주고 주인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냈습니다. 주인은 당장에 농부들을 해고하고 다른 농부를 고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신의 이익만 원하는 장사치가 아니었습니다. 농부들과의 관계성이 유지되는 것을 더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보낸 종이 무례하게 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염려하며 이번에는 훈련을 많이 받은 인턴 목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종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냈습니다. 주인은 그러나 이번에도 참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을 더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세 번째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여기서 농부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받은바 은혜를 감사치 않았습니다.
  농부들은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죄만 짓던 비참한 인생에서 주인의 일방적인 은혜로 포도원을 맡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찬송가 310장) 찬송을 하며 이 한 몸 바쳐 죽도록 충성하겠노라 다짐을 하였을 것입니다. 농부들은 일거리가 많은 포도원에서 수년간 땀 흘리며 열심히 수고하였습니다. 정말 일자리를 준 것만 해도 감사하였고 가족부양을 하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힘든 줄 모르게 자발적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일이 점차 많아지고 힘이 들면서 자기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커지고 은혜와 감사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전혀 그 얼굴도 보이지 않았고 수고한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때 마음이 완악해지고 조금만 힘든 일을 만나도 불평하는 말이 튀어나오고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결국 은혜에 감사치 않을 때 사단이 마음에 파고 들어와 사단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주인이 처음 포도원 땅을 얻고 일구고 준비한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놀고 있던 자신들을 포도원에 불러준 주인의 구원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감사치 않는 것이 죄의 뿌리가 되는 것을 이들은 직접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본적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복음역사를 위해 헌신할수록, 과거에 내가 어떤 자였는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모든 것을 갖고자 하는 탐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퍼센트의 소출만 세로 받는 계약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소출이 생겨 십분의 일을 세로 드리려하자 손해의식이 들었습니다. 욕심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들이 가만히 따져보니 열심히 수고한 것은 자신들이고 주인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은 주인이 직접 만드신 것이요 포도원이 있었기에 이렇게 소출을 거둘 수 있었음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과 맺은 계약도 망각하고 모든 것을 자기들이 갖고자 탐심을 부렸습니다. 사람이 성공하여 열매를 풍성히 맺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소출 얼마를 바치는 가운데 마음의 탐심을 다스려야 합니다. 주인이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한 것도 그들 마음에 생기기 쉬운 탐심을 다스리고 주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셋째로, 교만하여 주인을 주인으로 공경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율적으로 가꾸는 은혜와 특권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주인이 아니요 세로 든 청지기였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주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공경해야 했습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공경함으로써 영적 질서를 지키는 것이 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을 열심히 가꾸다보니 도에 넘치는 지나친 주인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주인은 그래도 농부들과의 관계성이 깨어지는 것을 안타까와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들은 존대하리라 여기고 만약 아들만 영접하고 세를 낸다면 이전의 악한 행동에는 이유를 묻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농부들의 입장에서는 이전의 잘못을 일시에 만회하고 안전하게 포도원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아들은 이전의 종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아들은 주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입니다. 농부들은 당연히 아들을 영접하고 세를 내야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서로 의논하며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고 그 유산을 자신들것으로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습니다. 주인이 베푼 마지막 기회였지만 농부들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죄를 짓고야 말았습니다.
  여기서 죄의 성장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농부들에게 있던 죄는 세가 아까워 주지 않고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방치하자 점차 성장해나가고 나중엔 아들을 죽여 포도원전체를 갖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동조하여 농부들의 사악함을 가중시켰습니다. 죄는 초기에 분명히 회개하고 돌이켜야합니다. 가룟 유다도 물질을 사랑하는 죄를 초기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마음에 들어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을 인도할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권위를 사람들을 이용하는데 쓰고 자기의 사리사욕만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의 교만과 욕심의 죄는 예수님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이 독생자를 죽임으로 모든 것이 그들 뜻대로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15) 반문하시며 16절에서는 직접 답을 주십니다.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그들은 주인의 오래 참고 인내하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힘이 없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종들을 쫓아버리고 아들까지 죽이면 포도원이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될 것이라 착각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들은 백성들은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 때문에 시편에 기록된 말씀이 성취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17,1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건축자들이 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귀한 돌을 버리는 것입니까? 이는 자기들이 짓는 건물에 맞지 않는 돌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자기들이 원하는 집을 짓는데 전혀 맞지가 않았습니다. 집에 맞지 않는 돌은 걸림돌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건축가들이 버린 돌이 되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성을 짓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십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당시 가옥 건축하는 방식으로 건축의 시작을 뜻하는 중요한 돌입니다. 이 돌을 중심으로 집이 시작되고 또한 완성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하나님의 도성에 쓰임 받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모퉁이의 머릿돌이요 우리 모임의 머릿돌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이나 우리 모임이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함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 자신은 열심히 책도 읽고 성실하게 직장생활도 하고 하나님의 일도 열심히 하며 뛰어다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일대일이 많아지고 요회에도 많은 동역자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정작 저 자신이 요회에서나 일대일에서나 확신이 없이 형식적으로 대화하는 것 같았으나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임스 패커목사가 지은 ‘성령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을 보며 성령은 오직 예수님을 비추이는 불빛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와 설명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그 자체보다는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내면에 확신이 생겼고 예수님을 알아가고자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예수님이 정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몇 주 전부터는 출퇴근 시에 여러 가지 책을 읽지 않고 말씀노트를 들고 다니며 보고 연구하고 혹시 양들이 어떤데서 의문이 생길지 살피며 말씀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러니 일대일이 기다려지고 말씀을 요리하여 먹는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고자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매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모퉁이 머릿돌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예수님께 헌신하며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비유를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악한 농부가 자기들을 가리키는 것을 깨닫고는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두려워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책잡고자 납세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예수님의 입에서 바치지 말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고소하고자 별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십니다. 신자들은 이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이중시민권자입니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감당해야 합니다. 때론 하나님의 일과 이 땅의 일이 부딪힐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캠퍼스 포도원을 다스릴 권위를 주셨지만 우리는 제대로 세를 드리지 못한 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드린 게 죄밖에 없고 힘든 현실 밖에 없다하여도 나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 한분을 인격적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답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기쁘고 의미있는 새해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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