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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8-12 (일) 12:56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2_마가복음_21강-1(이인구).hwp (31KB) (Down: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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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21강]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2012년 마가복음 제21강                                                                      이 인구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말씀: 마가복음 13:1-37
요절: 마가복음 13: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역사관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인생에 시작과 끝이 있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에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날 세상역사의 흐름을 알 때 방향성 있고 분명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거대한 하나님역사의 물줄기에 있는 우리가 말씀을 통해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 1장, 복음이 먼저 만국에(1-23)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나올 때 제자들은 장엄한 성전의 돌과 건물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 당시 성전은 헤롯대왕이 정권을 잡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황폐한 스룹바벨 제2성전을 재건한 것으로 건축기간만 무려 82년이 걸렸습니다.(BC19-AD63)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 건물은 아름다운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고 천정과 지붕은 금으로 장식하여 햇살이 비출 때 그 화려한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 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속담까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성전은 히브리 문명의 금자탑이요, 인간예술의 정점으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이런 제자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같은 성전을 앞에 두고 왜 이렇게 관점이 다른 것입니까? 제자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과 그곳을 찾는 많은 예배자들 그 안에서 화려한 까운을 입고 다니는 종교지도자들과 대조되어 갈릴리 달동네 출신으로 현재 머물 거처도 없이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다니는 자신들의 모습에 순간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성전의 외형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성전의 내부의 부패상을 보시고 성전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현재 성전은 헤롯의 탐욕과 백성들의 욕심과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의 죄가 뒤엉켜 강도의 굴혈로 변해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진실로 예수님의 예언대로 최후를 맞게 됐습니다.
  A.D 63년에 이르러 이 성전은 완전히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불과 7년 후 이 성전은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그는 당시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토벌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모든 식량 공급로를 끊었습니다. 5개월 후 이스라엘사람들 110만 명은 굶어죽거나 병사들의 칼에 죽고 살아남은 97000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성전이 있고 견고하게 보이는 예루살렘 성으로 도망갔지만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산으로 도망갔던 사람들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돌과 돌 사이에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소문이 돌아 로마 군인들은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성전의 모든 돌들을 다 무너뜨리고 헤쳐 놓았습니다.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성전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성전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서쪽에 있는 벽의 일부로 오늘날 ‘통곡의 벽’이라고 합니다. 성전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세월이 지나 유대인들은 그 벽을 붙들고 울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영광을 위한 성전이 죄로 얼룩진 성전이 되었을 때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쓰레기 더미일 뿐 이었습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역사에 대한 다양한 많은 시각들을 가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세상에서 보여주는 것만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봐서는 안됩니다. 세상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편에서 역사를 볼 때, 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때와 징조에 대해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의 멸망은 세상의 끝이라는 사상이 있어서 더욱 큰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 말세의 징조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말세의 징조가 무엇입니까?
첫째 거짓 메시아의 출현입니다(5,6절).
  6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오늘날같이 과학기술과 문화가 발달된 시대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그라 한다고 넘어가는 이들이 있을까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 지르고 다녀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니까 어떤 환자가 “나는 너 같은 아들 둔적 없다”고 하자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암처럼 퍼지는 신천지란 종교는 캠퍼스뿐 아니라 교회내로 퍼져 미혹된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을 쫓아낸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미혹되는 이유는 분별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많은 이들이 정신적 혼돈 속에서 무엇을 붙들어야 하나 갈등가운데 멘탈이 붕괴되고 분별력을 잃습니다. 신자들도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믿음과 가치관이 분명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미혹될 수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인생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나 신앙생활에 회의를 품고 있을 때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창세기의 첫 여인 하와의 치명적 실수를 깨달으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거짓 메시야에게 미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아닌 말씀에 기초한 분명한 영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깊이 공부할 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재난의 연속입니다(7,8절).
  1990년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동서 냉전구도가 해체되었을 때 성급한 사회학자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졌다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국지적 전쟁들이 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진을 비록한 자연재해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18세기 전 세계 지진은 640회 정도 일어났지만 19세기 2200번으로 증가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기록된 것만 2만 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 최근 우리나라에선 살빼기가 국민적 열풍이 되었지만 멀지 않은 북한이나 아프리카에선 매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이나 지진이나 기근은 인류역사를 통해 항상 반복되 왔지만 문제는 갈수록 빈도와 강도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재난가운데 두려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빠지면 자기중심적이 되고 이기적이 되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선 이런 재난의 소식을 들을 때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정말 무서운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신자들은 재난의 의미를 알고 또 이런 재난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믿을 때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재난들은 그 자체가 종말이 아니라 종말의 징조요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재난들을 통해 세상의 소망을 끊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셋째 신자들을 핍박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9-13절).
  9절을 보십시오. 말세가 가까워올수록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나 재앙의 증가보다 신자들에게 더욱 힘든 것은 핍박하는 역사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애매하게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때 피해의식과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핍박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함이라” 핍박은 임금들과 관원들 같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사도바울도 죄인이 되는 핍박을 통해 로마전도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핍박을 통해 신자들은 믿음의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속한자가 아니요 예수님께 택함 받은 자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요15;19) 예수님께선 핍박을 받을 때 무슨 말을 할 까 미리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 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11).”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하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리허설을 하며 준비해도 막상 핍박을 받게 되면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핍박의 때에 신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핍박의 때는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을 때 온전히 나와 함께 하신 성령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폭풍우 치는 밤바다를 향해하는 것 같은 인생핍박의 때에 신자는 자신이 잡고 있던 배의 핸들을 믿음으로 성령님께 넘겨줘야 합니다. 그때 부족한 자신을 주관하시는 놀라운 성령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말세의 핍박은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자신을 죽는데 내모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실제로 로마 네로황제의 핍박의 때에 많은 신자들은 가족들의 밀고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이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 즉 인내는 타고난 성품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내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굳게 붙들 때 가능합니다. 또 소망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세상 어떤 가운데서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천국본향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굳게 붙들고 소망함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말세의 때의 재난과 핍박은 종말의 징조이자 또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해산의 고통입니다. 8절의 후반부를 보십시오.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말씀을 그냥 보이는 대로 보면 시작되는 고난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하지만 그 밑의 영어를 보면 기쁨과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 많은 산모들이 출산의 고통을 힘들어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해산의 고통을 통과하여 귀하고 사랑스러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재난과 핍박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신자들에게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징조가 됩니다. 또 이런 고통을 통해 세상에 둔 모든 거짓 희망을 털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이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여러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인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 역사관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역사를 구원의 완성이라는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이끌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세상을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섭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후 곧 바로 구속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창3:15) 그리고 약속대로 마침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이 있고 또 끝이 있습니다. 세상 역사가들은 태초와 종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방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로 시작하여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로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독교 역사관을 확립할 때 역사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세상 역사가 몇몇 강대국의 지도자에 의해 주관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미국이 세계역사를 이끌어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덧 중국이 강대국이 되어 세계역사를 주관해 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되돌아볼 때 애굽, 바벨론, 바사, 그리스, 로마 등 세상 나라는 흥망성쇠를 거치며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겨자씨 한 알같이 시작은 미미하였지만 점점 자라 마침내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쓰셔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열두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역사를 준비시키셨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전 유럽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유럽에서 성숙한 복음역사는 18세기 프랑케, 진젠도르프, 윌리암 케리, 캐임브리지 세븐, 허드슨 테일러 등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선교사님들을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19세기 20세기 초까지는 미국을 선교사 파송나라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이후 미국이 타락하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였을 때 하나님은 조용한 나라, 한 많은 나라 조선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겸손과 끈기와 복음신앙으로 무장된 한국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복음을 전파하는 주의 종들을 역사의 주체자들로 삼으시고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하는 한 팀의 일대일 역사, 한 명의 제자양성이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임을 믿고 우리는 복음전파자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주님과 함께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기독교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은 만민 복음전파를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라 하셨습니다. ‘must', 'first'라 하신 것을 볼 때 복음이야말로 다른 어떤 일보다 최우선적으로, 절대적으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현실문제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복음전파를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복음만이 죄로 병들어 죽고 영원한 심판에 이를 자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일 많은 이 시대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장래를 위해 젊은 날 확실한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염려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복음전파를 가장 기뻐하시고 그 일에 마음을 드리고 기도하며 헌신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현실문제에 매이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만민 구속역사를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죄인이 이 말씀을 맡게 됐을 때 심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선교의 최전선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말세의 징조를 꿰뚫고 있는 최빠벨선교님을 보며 세상속에서 현실에 매이는 자신을 깨닫게 됐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말세의 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소망을 덧입고 깨어있게 됐습니다. 최근 많은 이방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센타근처에도 길가다 부딪히는 이들이 이방학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선 만국에 복음을 전할 선교사로 소원이 없는 죄인을 보시고 가까운곳에 많은 이방양들을 보내주셔서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얼마전까지 예배보며 말씀공부했던 이 훤 형제님도 취직문제가운데 믿음을 체험한 후 상하이 회사에 취직되 가게됐습니다. 그가 다른 선교사님과 동역하여 물질주의와 인본주의 세력이 강한 곳에서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죄인이 말세의 때에 깨어서 세상죄에 미혹되지 않고 시대를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며 증거하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 2장, 깨어 있으라(24-37절).
  예수님은 여러 환난 후에 마지막 날에 있을 더 무서운 일을 말씀하십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말세의 모든 환란이 끝난 후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립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는 시골 말구유에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감당하고 섬길 낮고 비천한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재림주의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십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왕은 왕, 심판주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지만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은 무너지는 땅과 함께 영원한 심판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고 말세가 어디 있느냐, 세상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며 담대하게 죄를 짓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친한 친구들이 다 지옥으로 가고 혼자 천국가면 재미없으니 자기도 지옥 가겠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재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질병이나 사고로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불신자들뿐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말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담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진정 믿음 있는 신자는 때의 징조를 보며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대비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라는 소설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참 복음적인 소설이고 이를 통해 인내의 믿음과 참된 소망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말세의 때에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면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처럼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일편단심 이몽룡만 바라보며 모든 고문과 핍박을 견디던 춘향이가 D-day 하루 전 고무신을 꺼꾸로 신고 변학또의 품에 안겨버렸다면 암행어사 출두하는 그 날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한 기생의 딸이지만 끝까지 믿음과 소망으로 정절을 지켰을 때 암행어사와 함께 하는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천한 죄인들이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을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그날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예수님은 천사들을 사방에 보내어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천사들이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머리를 들고 힘찬 소리로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자들은 이 땅에서 애매하게 핍박받고 손해 보는 삶을 살 때가 많았지만 그 날에는 당당히 주님을 바라보며 그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며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 재림하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재림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재림의 소망은 우리의 신앙을 진실하고 순수하고 한결같게 합니다. 재림의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땅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참 자유인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신자들이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대부분 상록수인데 무화과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봄이 매우 짧기 때문에 무화과나무 잎이 돋기 시작하면 곧 여름이 다가올 것을 알게 됩니다. 무화과나무의 변화에서 계절을 파악할 수 있듯이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가 나타날 때 주의 재림이 임박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선 이 세대 즉 성령시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알지만 죽을 날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사실을 알지만 그 날은 모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선 깨어 있으라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33,34,35,37절)  깨어 있는 삶은 스스로 조심하는 삶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눅21;34) 그러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습니까? 24시간 내내 잠을 자지 말아야 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타국에 가기 위해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있으라 명했습니다. 주인은 약속대로 반드시 다시 와서 결산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와서 자고 있는 종이 있다면 그는 그 집에서 영원히 쫓겨날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삶은 현재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시대의 문지기요 또 종으로써의 사명은 기도하는 삶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이고 또 현재 각자 주어진 직분에 충실한 삶입니다. 신자들은 장차 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눅21;37) 기도함으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할 수 있고 재앙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능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은 재난의 연속이요 갈수록 세상살이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역사는 만국에 복음이 전파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마음에 품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만국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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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1강]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리스닝 2010-08-08 3545
793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7강]새 예루살렘 리스닝 2010-02-19 3542
79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4강]한 알의 밀이 죽으면 리스닝 2010-06-07 3540
791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리스닝 2010-04-25 3537
790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리스닝 2010-04-11 3529
789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6강]천년동안 왕 노릇하리라 리스닝 2010-02-07 3526
788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7강]새끼 나귀를 탄 왕 관리자 2009-02-01 3519
78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21강]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관리자 2012-08-12 3514
786 마가복음 [2012년 가을학기특강]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12-09-30 3509
78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3강] 물을 포도주로 관리자 2015-03-29 3502
78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2강]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관리자 2011-12-04 3487
783 이사야 [2010년 성탄 1강]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관리자 2010-12-05 3487
782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리스닝 2010-09-12 3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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