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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2-22 (일) 13:26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3_성탄3강(권영진)-1.hwp (29KB) (Down: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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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탄 메시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2013년 성탄 메시지                                                                           권영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1장
요절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Merry Christmas'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의 은혜가 온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인사에 안녕하지 못하다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불편해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위로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은 보이나 정작 주인공인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마태가 전하는 성탄메시지가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절을 봅시다. 마태는 예수님의 나심을 증거하기 전 먼저 예수님의 족보를 말합니다. 이 족보는 마음먹고 성경을 읽으려는 사람을 잠들게 하는 수면제가 아닙니다. 또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고의 반복이거나 입신양명한 조상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마태가 전한 족보는 독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정통성'이라든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든지,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닌 만민의 하나님'이라든지 복음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태가 기록한 족보를 통해 꼭 알아야 할 것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긍휼입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을 보십시오. 이방인이었고 도덕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은혜의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다말과 라합과 룻은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지만 '우리아의 아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전적으로 다윗의 죄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대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다윗 왕도 탐욕과 간음과 거짓과 살인의 죄를 지은 죄인이었고 하나님은 그런 심각한 죄인이라도 진실하게 회개했을 때 용서하시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마태도 유대인으로 부끄러운 조상들의 과거를 감추고 남들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후손된 도리를 다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자신과 같은 비참한 죄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죄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회개하기까지 기다리시며 회개하였을 때 마침내 용서하여 주시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구원의 은혜를 자랑하고자 나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검은 머리 짐승이었다' 눈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죄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합니다. 마태는 이런 죄인들을 하나님의 귀한 구속 역사에 써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태의 족보에서 또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새 창조의 시작이요 구원의 완성자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까지는 허물 많은 죄인이라도 믿음으로 나온 자들을 쓰셔서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로는 우상숭배가 심해지고 죄에 빠져서 점점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로 인해 나라는 바벨론의해 망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오랫동안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간 연단을 통해 이들이 낮아지고 겸손케 하셔서 메시아를 갈망하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봅시다. 마침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셨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나심은 칠흑같이 어두웠던 역사의 마침표를 찍고 구원과 영생을 시작하는 희망의 새 아침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새 역사의 시작, 새 창조의 출발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리고 17절을 보십시오. 마태는 모든 대수를 열네 대 씩 구분하여 세조로 나누었습니다. 그 마지막의 화룡점정이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족보를 완전수 7의 배수로 만들어 예수님이 그 마지막을 찍음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완성하셨음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구원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자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이단, 삼단일 뿐입니다.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 서사시였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서사시의 하이라이트인 예수님의 나심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8절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했습니다. 저자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나심은 지금까지의 탄생과는 전혀 다르게 탄생하셨음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습니다. 시골 처녀 마리아가 구세주를 잉태하는 놀라운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이 아빠가 된다고 '와우 아멘 할렐루야' 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아니자나 정말 아니자나' 말하고 싶었습니다. 요셉은 점점 배신감, 원망, 자책, 절망 등 복잡한 여러 감정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토록 사랑했지만, 신뢰했지만 처녀가 잉태했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이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심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힘들게 결단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아를 위해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율법에 돌에 맞아 죽게 하지 않으려면 법의 고리가 끊어져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사람을 죽이는 길을 택하지 않고 살리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자기감정대로 행치 않고 마리아가 당할 위험을 배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20절을 봅시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천사는 요셉에게 '많이 당황하셨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도하는 요셉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 잉태'라는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죄인들과의 원수된 관계를 중보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시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이로써 죄인들의 온전한 중보자요 온전한 구원자 메시아가 되셨습니다. 천사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비밀을 요셉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는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는 단순한 낳고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한 성령의 역사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고심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심방 오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깨우쳐 주시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천사는 계속해서 가만히 끊고자 하던 그에게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분명한 방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역사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이렇게 오셔야 했습니까? 21절을 봅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합니다. '예수라 하라' 이는 히브리어로 '여호수아'인데 그 당시 '시몬'이라는 이름처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예수'라 이름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가, 바로 마리아가 낳을 예수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도, 마태가 복음서를 쓴 이유도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정치적 해방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 풍요를 주기 위해 오신 것은 더욱 아닙니다.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앞에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육신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죄 사함보다 당장에 급한 현실 문제를 해결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이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죄를 지으면 흠 없고 점 없는 순결한 어린 양의 피를 흘려 속죄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또 지으면 또다시 양의 피를 흘려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양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여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보고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하나님은 죄의 삯으로 죽음에 이르고 심판받아야 할 불쌍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에덴의 진정한 행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구원받지 않고는 진짜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잘생기고 멋지고 아름답고 건강한 대학생들, 능력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어둠 속에서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합니까? 정치인들 때문일까요? 취업을 못해서 일까요? 실연을 당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근본 원인은 죄가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된 행복을 누리며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또한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죽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뭐합니까? 진시황도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죽은 후까지 호사를 누리려 했지만 죽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괜히 백성들만 죽을 고생 시켰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영벌에 처해집니다. 계시록의 말씀대로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서 영원토록 소금 튀듯 튀겨져야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라' '심판은 없어, 지옥은 존재하지 않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거부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그만이다'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냐, 지옥이냐' 우리는 둘 중 하나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행복을 영원히 누리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즉시 죄를 회개하고 주께 돌이켜야 합니다. 조금 이따가, 나중에 회개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나중에 한다고 하고서 회개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에서 사함을 받고 가장 기쁘고 기쁜 성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죄에서 구원해주십니까? 22, 23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여 년 전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하여 남 유다를 치러 올 때 아하스 왕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이스라엘을 구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로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고 영적인 말을 한 것 같았으나 사실은 하나님보다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동맹군을 이기고자 했습니다. 또 성을 정비하고 성 밖 우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공사를 하여 전쟁에 대비하였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강대국을 의지하고, 실제적으로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막연하고 번거롭다 여겼습니다. 이는 마태가 살고 있었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까지 이방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근 400여 년간은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영육간에 암흑시대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이 민족이 물러가고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잘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믿기보다 로마 총독의 눈 밖에 나지 않고자 명절마다 선물을 보냈습니다. 급변하는 국제, 국내 정세를 파악하여 어느 쪽에 줄을 대야 하는가 연구했습니다. 불안정한 미래, 노후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했습니다. 백성들은 당장 살아남기 위해 현실 문제 해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조'나 구속 역사는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지 않은 아하스 왕에게 친히 임마누엘의 말씀을 주셨듯이 마태도 다시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런데 마태는 왜 감격하여 말합니까? 그것은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하스에게 주신 약속대로 실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는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님을 만나고 임마누엘의 역사가 현재 자신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수천 년 간 말로만 '너와 함께 한다' '너는 내 것이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 인간의 몸으로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대통령 아니 시장이라도 와서 손만 잡아 주어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깐 왔다가 자기 집에 가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누가 환영하는 사람이 없어도 '이놈들 인정머리도 없다' 하시며 다시 하늘나라로 가시지 않고 이 땅에서 죄인들과 3년 동안 동거동락 하셨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을 함께 드셨고 함께 굶기도 하셨고 누추한 곳에서 함께 주무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시지만 죄로 고통당하는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셨고 함께 씨름해 주시고 끝내는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떤 부담스러운 자라도 외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단순히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나와 모든 것을 공감하십니다. 나의 원망과 불평, 푸념과 욕심도 밤새도록 들어 주시고 힘이 필요할 때 힘을 주시고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를 주십니다. 사실 죄로 인해 냄새나는 자들과 함께 하며 죄를 감당해 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독한 죄의 고통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기적으로 자기 밖에 모르는 양들, 아무리 섬겨도 감사할 줄 모르는 양들,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변화되지 않은 양들을 우리는 끝내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지독한 죄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끝까지 함께 하사 도우십니다. 3년간 극진한 사랑으로 섬긴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어도 예수님은 포기치 않으시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 중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묻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400년 동안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하나님 내가 가장 고통당할 때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때에도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힘든 고난의 시기였지만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불같이 연단하시느라 흐르는 눈물을 참으셔야 했습니다. 열두 제자를 비롯한 많은 성도들이 주께 돌아와 하나님이 쓰실만한 겸손한 자들이 되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어 복음 전파의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자 마태도 이때 은혜 받은 자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임마누엘의 사랑을 맛본 자였습니다. 마태는 자신이 이 사랑의 느낌을 잘 아니까 '느낌 아니까' 우리에게 임마누엘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도 자신과 함께 해 주지 않았는데, 욕만 하고 저주만 했는데, 심지어 아내도 돈만 달라고 할 때만 함께 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마태에게 먼저 찾아오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공인된 죄인인 자신과 함께 먹고 마시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아는 좁은 내면을 가진 그와 함께 하심으로 이기심을 치유해 주사 주옥같은 산상수훈을 전하는 성 마태 목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 때 임마누엘 예수님을 보내실 준비를 하셨고 드디어 마리아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사 사랑하고 계셨음을 알고 기뻐하게 됩니다. '그렇구나!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나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희생과 변함없는 사랑을 처녀가 낳은 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도 임마누엘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언제나 '맑음'으로 만드십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도, 원하는 학교, 대학이나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유치원에 떨어졌어도 비록 건강이 좋아지지 않았어도 사업이 잘 되지 않았어도 전세 값이 자꾸 올라도 양들이 목자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어도 뺀질거리는 양마저 없어도 어젯밤 부부싸움을 했어도 올해도 결혼을 하지 못했어도 내 마음은 '흐림'이 아닙니다. '맑음'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의 간절한 소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속에 선한 역사를 이루어 주시고자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나와 함께 하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고 큰 기쁨과 위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임마누엘 예수님을 영접하기 힘들었습니다. 지난 한해 동역자들이 떠나가고 양들의 성장은 더디고 개척 목자로서 저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맞는가 하며 어두운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며 회개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변함없이 올해에도 저와 함께 하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제가 어두운 생각을 할 때마다 말씀의 빛으로 인도하여 새 힘을 주셨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을 연단하셨습니다. 남은 동역자들과 양들을 통해 부족한 자를 목자로서 세워주시고 극진한 사랑과 섬김을 받게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사랑은 지쳐 있던 죄인을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부족한 자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오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안녕하지 못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안녕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2014년 새해에도 임마누엘 예수님과 함께 힘차게 출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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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리스닝 2010-09-12 3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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