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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25 (일) 12:33
분 류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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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16강]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2014년 마태복음 제16강                                                                     최동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말씀/ 마태복음 12:1-21
요절/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오늘 말씀에서는 안식일에 일어난 두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의 핵심은 안식일 법에 대한 율법주의와 복음주의의 충돌이었습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절대시 하고 이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요, 복음주의는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도전하셔서 율법의 근본정신에 대해 깨우쳐주셨습니다. 이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양들을 살리는 목자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1-13)
  1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인턴훈련 받느라 항상 배가 고팠던 제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삭을 잘라 비벼서 순식간에 먹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바리새인들의 몰래 카메라에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곧 바로 제자들의 어긋난 행동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곧 안식일 법에 저촉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남의 밀을 잘라먹은 일보다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크게 문제 삼았습니다.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이삭을 자르는 것은 추수요, 손으로 비비는 것은 탈곡이요, 입으로 분 것은 키질에 해당했습니다. 그들은 제자라는 자들이 어떻게 그 중요한 안식일 법을 어길 수 있는가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어쨌든 제자들은 안식일 법을 어기다 적발된 현행범으로서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다윗과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을 예로 들어 제자들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주시고 제자들이 무죄함을 밝히셨습니다. 사무엘상21:1-6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놉 땅으로 피난할 때 다윗과 그와 함께한 자들은 며칠을 굶게 되자 너무나 시장하여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는 진설병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진설병은 성소 안의 상 위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수효를 따라 배설한 떡으로서 매 안식일에 배설하였다가 안식일이 지나면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24:5-9) 그런데 아히멜렉은 이 거룩한 떡을 배고픈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그가 진설병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다는 율법의 규정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떡을 내어준 것입니까? 그는 의를 행하다 박해 받는 다윗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살리고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율법에 어긋나지만 그에게 진설병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비록 율법을 어겼을지라도 용납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행동을 다윗의 행동을 예로 들어 변호해주신 것은 제자들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이요 배고픈 제자들의 배고픈 상태를 깊이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신 분이시지만 율법적이지 않으십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자비와 긍휼입니다. 신명기23:25절에 보면 배고픈 자들이 이웃의 곡식밭을 지나갈 때 이삭에 낫을 대어서는 안 되지만 이삭을 따서 먹는 것은 허용하였습니다. 또 가난한 자가 자기 옷을 전당잡히면 자기 전에 돌려주도록 하였습니다. 법이나 제도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법이나 제도를 세우기 위해 존재할 때 법이나 제도는 사람을 얽어매고 정죄하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안식일에 일하는 제사장들을 예로 들어 법에는 예외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성전에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섬기기 위해 필요한 짐승을 잡아야했고 불을 피우고 성전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식일에 일을 함으로 안식일 법을 범해도 죄가 없다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하나님을 섬겨야 하므로 성전 안에서 안식일 법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성전은 제사장들에게는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성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에 거하신 성전의 원형이 되십니다.(골2:9)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기고 있으므로 죄가 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본질을 모른 채 장로들의 유전에 따라 율법만 적용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죄인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안식일 법의 근본 원칙이 무엇인지 깨우쳐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께서 진정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십니다. 제사는 희생(sacrifice)으로서 종교적인 열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인 율법적인 신앙생활보다 좀 부족하더라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호세아서 6: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번제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제사를 드리도록 하신 본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로 인해 파멸해 가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생명의 구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제사를 통해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애와 자비를 배우고 감사의 단을 쌓는 것이 진짜 예배이며 율법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2:1-4절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만드신 배경과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역사를 마치신 후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보통날과는 구별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더불어 교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가 참된 안식을 누리고 복을 받게 하십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형식을 좇아 제사만 드린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려면 말씀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인생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하기에 힘쓸 때 영혼의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빚으시기 위해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 먹는 것과 안식일 지키는 두 가지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키셨습니다. 그만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지는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우리도 안식일을 절대적으로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만 안식일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잊어버리고 의무감으로 안식일 예배를 드린다면 안식일에 하나님 역사를 섬기는 것은 피곤한 일이 되고 심령에 안식이 없고 기쁨이 없어 다른 만족 줄 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자 하는 영적 소원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안식일에 복을 누리고 선을 행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 회당에 들어가시니 그곳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손 마른 사람의 불편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마른 손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얼마나 많이 당했겠습니까? 그는 한 손 마른 것 때문에 내면까지 마르고 인생 전체가 말라버렸습니다. 그의 내면은 어둡고 부정적이 되어 슬프고 운명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자마자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손 마른 자의 인생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을 송사하는데 그를 미끼로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0b)” 예수님은 이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탄식하며 분노하셨습니다.(막3:5) 그러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조근조근 깨우쳐주셨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다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양 한 마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양을 자식처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런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안식일에 꺼내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꺼내고 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한 존재입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양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한쪽 손 마른 사람을 자기 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그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귀한 양으로 보시고 속히 어두움의 구덩이에서 꺼내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b)." 하나님의 마음은 법을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리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주신 목적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한 손 마른자와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건강하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젊은 대학생들도 그 내면은 심각한 인생문제를 안고 그늘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성격 문제, 대인관계 문제, 가정 문제, 외모 문제, 장래 문제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주일에 예배에 나와 순서에 따라 찬송하고 기도하고 메시지 듣고 헌금하며 형식을 잘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율법을 지키는 날이 아니고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여러 가지 인생문제로 고통가운데 있는 양들이 말씀 통해 죄 사함 받고 구원받도록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한쪽 손 마른 사람에게 명하셨습니다. “손을 내밀라.” 예수님은 그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냥 고쳐주시지 않고 손을 내밀라 하신 것입니까? 그가 믿음으로 자의식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마른 손 뿐만 아니라 그의 마른 마음도 고쳐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한 손 마른 사람에게는 순종의 믿음을 갖도록 도전하셨고, 사람들에게는 율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자가 되도록 도전하신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믿음의 손 순종의 손을 내밀었을 때 그의 마른 손이 곧 회복되었습니다. 그의 마른 손에는 생기가 돌고 힘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목자의 사랑으로 인해 그의 마른 손과 함께 그의 마른 심령에도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구원 받고 인생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는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병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죄문제가 해결되고 믿음도 회복되고 인생 전체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날 한 병든 영혼을 운명의 구덩이에서 구원하시는 선을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본받아 생명을 살리는 목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14-21)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마음의 완악함을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음으로 더 완악해져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기를 떠나 가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저자 마태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사42:1-4) 18절-2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친히 택하시고, 마음에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종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류 구속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임의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요한복음17:4절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나 제자양성 하신 것이나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편40:8절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의무감으로 사명을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십니다. 여기서 심판은 ‘Justice'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킵니다. 이방 세계는 참 진리를 모르고 감정과 육신의 소욕대로 살다가 죄로 인하여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상종해서는 안될 죄인으로 여기고 멀리하였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며 심판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을 죄와 심판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가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주셔서 능히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큰 소리 치고 싸워야 무슨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끊임없이 시비를 걸고 싸우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셨습니다. 또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나타내고자 애를 씁니다. 어떤 사람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역사에 충성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시고 조용히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에도 선교 일선에서 또한 캠퍼스에서 들레지도 않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복음전파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종들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어나가십니다.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종들을 통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됩니다. 한 양을 도와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애를 쓰는 만큼 양들이 은혜 받고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1대1 말씀역사를 통해 캠퍼스 가운데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영적소원 가운데 1대1 말씀전파에 힘쓰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병든 영혼들에 대한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갈대는 약한 것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갈대가 상했으니 그 연약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 유대에서 갈대는 피리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상한 갈대는 쓸모가 없으므로 꺾어버렸습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기름이 다하여 가물가물합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그을음을 많이 내고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빨리 꺼버려야 합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은 본래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강하고 담대하고 힘이 넘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내면이 병들어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쓸모없이 되어버렸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죄로 인해 한없이 무기력하고 연약합니다. 상처를 잘 받고 쉽게 유혹에 흔들립니다. 세상에서는 연약하고 쓸모없어 보이면 가차 없이 잘라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인생들을 살려내어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파자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종이 되게 하십니다. 상한 갈대와 같은 사마리아 여인을 섬세한 사랑으로 치유하심으로 병든 영혼을 살려 주셨습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38년된 병자를 찾아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고 낫고자 하는 소원을 심으시고 새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는 그와 무려 3년 동안이나 함께 하심으로 그의 병든 내면을 치료하시고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싸매고 보호하시고 치료하사 튼튼한 갈대가 되게 하시고, 꺼져가는 심지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서 힘차게 타오르는 심지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의 역사를 복음이 최후에 심판에서 승리하는 그 날까지 계속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갖게 됩니다.(21)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지치고 죄로 병든 이들을 감당해줄 목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양들에 대해서는 외면하였습니다. 연약하고 믿음이 어린 자들을 감당해주기보다 판단과 정죄를 일삼다 보니 한 사람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도와줄 양이 없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부족하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한 양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며 한 영혼이 살아나기까지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으로 섬기고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제게 두신 하나님의 소원과 양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한 채 자기 열심과 자기만족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으로 캠퍼스를 바라보고 도움이 필요한 한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은 율법을 잘 지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죄인들에게 끝까지 소망을 두시고 말씀으로 고쳐주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살리시고 심판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해 감사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이 예수님의 자비의 마음을 잘 배워서 죄로 인해 상한 갈대와 같이 되어버린 양들이 구원받고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기까지 소망 가운데 끝까지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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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 요한복음 [2011년 여름수양회 제3강]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동원 리스닝 2011-08-17 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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