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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4-12 (일) 17:28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강_나는_부활이요(2)_최바울.hwp (36KB) (Down: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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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최바울
2009년 부활절 수양회 제2강                         최바울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1:1-44
요절 요한복음 11: 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만물이 아름답게 소생하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 화려한 꽃이 피고 이제 나뭇가지에서 본격적으로 파란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봄은 우리에게 부활을 노래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부활의 주 예수님을 배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단연코 죽음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충격이고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2000년 전 사람이 죽는다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사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당신께서 부활과 생명의 주가 되심을 선포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이 예수님을 묵상하며 부활의 믿음을 새롭게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I.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1-16)
예루살렘에서 3킬로 정도 떨어진 동남쪽에 이곳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처럼 작은 시골인 베다니라는 곳에서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 삼남매에 특별한 관심 갖고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들도 남다른 헌신과 수고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에 석면이 함유된 화장품을 꾸준히 발라왔던 오라비 나사로가 갑자기 폐를 움켜쥐며 쓰러지더니 사경을 헤메는 것이었습니다. 베다니 같은 시골에 무슨 병의원이 있었겠습니까? 놀란 자매들은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일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들이 빨리 오셔서 고쳐주시라는 말을 따로 하지 않은 것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 하나에도 평소 자신들을 사랑하시던 예수님이시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오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다같이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말씀은 ‘이 병은 죽지 않을 정도로 별것 아닌 가벼운 병,’이라는 뜻이 아니라 ‘죽음으로 끝나는 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나사로의 병은 아무 의미 없이 허망한 죽음으로 끝날 병이 아니었습니다. 이 병에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를 통해 부활의 주, 생명의 주로 영광을 받고자 하십니다.
5,6절을 보십시오.이처럼 급한 전갈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갑자기 안하시던 축구도 하시고 등산도 하시고 멀리 산책도 하시며 계신 곳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을 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틀씩이나 일부러 계시던 곳에 머무셨을까요? 여기엔 예수님의 선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인간적인 사랑을 원하고 문제해결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영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믿음, 새롭고 차원 높은 믿음을 심어주고자 작정하셨습니다. 만일 이들이 원하는 대로 달려가서 병을 고쳐 주셨다면 예수님은 이들의 좋은 주치의는 되실 수 있었습니다. 또 언제 어디서든지 요청만 하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가 되실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사로가 쓰러질 때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시 요동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이 있을 때 죽음 권세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를 얻게 되고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지 요동치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한걸음에 달려가는 사랑대신 조금 지체하시는 사랑을 통해 영적으로 가장 귀한 선물인 부활 신앙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모습, 마르다와 마리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원망과 아픔과 오해를 다 참으셨습니다.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이틀’이라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필요하다면 ‘이틀’이라는 시간을 지체하시고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진 믿음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죽은 믿음, 한계적인 믿음, 상황에 요동하는 믿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후에 곧 내 안의 믿음 없음이 드러난 후에 예수님은 반드시 새로운 믿음, 한 차원 더 높은 믿음을 주시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이 ‘이틀’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시급해 보이는 기도제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 복음화가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됩니다. 또한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이나 목자로서 한명의 제자를 키우는 것도 시급한 기도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생각보다 많이 지체하실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주시든지 아니면 내가 구하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이틀이 지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구요” 이들은 다시 유대로 간다는 말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에 예수님이 유대에 계실 때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신성 모독죄로 돌로 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10:30,31).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쉽게 결단하고 갈 수 있었지만 한번 실패를 경험한 제자들로서는 다시 유대지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심히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마비시켰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사람이 실족하는 원인은 외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 내면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지기보다 빛되신 예수님을 알고 믿음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잠은 피곤을 풀어주고 새 힘을 줍니다. 잠은 달콤하고 우리 몸과 영혼에 안식을 줍니다. 사람들은 잠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잠을 사모하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자고자 합니다. 심지어 예배 때에도 살짝 눈을 감습니다. 이는 깨어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자의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마9:24, 행7:60, 고전15:6,18, 살전4:14). 예수님 안에서의 죽음은 참 안식이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 보느냐, 아니면 다시 깨어날 소망이 담긴 사건으로 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가리켜 ‘죽을 뻔 했다’고 하고 가장 괴로운 상황을 가리켜 ‘죽겠네’ 그럽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 나라에서 깨어날 소망 가운데 잠간 자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망 가운데 죽음을 영접합니다. 죽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 그리고 잠간 자고 일어나면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나중에 올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 이것은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자,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요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했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주님,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굳이 안가도 되겠네요?”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다시 유대에 가지 않고자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느니라”하시며 나사로의 죽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로 가자고 제자들을 재촉하셨습니다. 이때 도마가 비장한 각오로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도마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런 그의 신앙을 우리는 ‘의리 신앙, 열사 신앙’이라 부릅니다. 이는 부활 신앙이 없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용기요, 충성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의 내면에는 순종하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못다 핀 꽃 한 송이로 져야 하는 서러움,왜 하필 나인가 하는 억울함이 가득했습니다. 도마가 큰 소리 치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도 마지못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열두 마리의 소떼들 같았습니다.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제자들 역시 부활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선물로 줄 것을 생각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15)

II.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17-44)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한 때는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을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조문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급히 달려가 맞았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녀 마음에 늦게 오신 예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습니다.평소 식사시간에는 일찍 오셔서 가장 앞줄에 서 계시더니, 막상 급할 때는 왜 이렇게 이틀이나 지체하셨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자마자 예수님께 원망의 말을 쏟아 놓았던 마르다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예수님께 대한 막연한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하며 부활을 장래에 일어날 일로 기대했습니다.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하고 말함으로써 과거에 얽매였습니다. 또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이라 함으로써 미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과거와 미래는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현재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예수님을 믿었고 앞으로도 믿을 예정이지만 현재는 여전히 슬퍼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25,2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첫째,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7)”는 말씀을 어김으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라는 죽음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후로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 법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인간은 유사 이래로 이 운명을 극복해 보고자 몸부림쳐왔습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 무병장수 불로장생의 영약 불로초를 찾아 온 세상을 뒤졌지만 결국 못찾고 죽고 말았습니다.이집트의 파라오도 죽지 않고자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지만 죽지 않은 대신 썩지 않는 미이라가 되고 말았습니다.지금도 지구상에는 400여명의 냉동 인간들이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속에 누워서 불치병이 정복될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 중 다시 깨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은 인류가 거스를 수 없는 가장 무서운 폭군입니다. 누가 이 절망적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죽음은 남은 생이 길지 않은 어르신들과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나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 주위에 늘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한계를 만날 때마다 죽음을 경험합니다. 죽음은 제자들 마음속에 핍박에 대한 두려움과 이로 인한 무기력으로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르다에게는 슬픔과 원망으로 찾아왔습니다. 또한 죽음은 이생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현재 삶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으로 찾아옵니다. 죽음의 권세는 이처럼 수시로 우리를 찾아와 우리 마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사망 권세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 있습니다. 기쁨이 없고 늘 무엇에 쫓기는 듯 불안해 보입니다. 하루하루 마지못해 의미 없이 살아갑니다. 장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 불신과 패배적인 생각에 시달립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실낙원한 인생들은 근본적으로 죽음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의 세력을 이기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힘이나 동일하게 죽음 앞에 무력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주, 생명의 주를 믿는 믿음으로 죽음을 정복한 삶, 부활 생명을 가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 생명의 주를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의 시작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부활 신앙은 아는 것보다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믿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재적인 부활 신앙을 원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씀은 모두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항상 현재입니다. ‘그때 이랬더라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 ‘언젠가는 잘 할 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안 돼’ 이는 마르다와 인생관입니다.우리는 ‘현재’ 예수님을 믿고 ‘현재’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서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이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스펄젼은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라 금화를 현재 세상에서 통용되는 동전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정말 미래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현재 우리의 삶을 반드시 변화시킵니다. 천국이 장차 임하게 될 나라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에도 임하듯이, 부활은 미래의 부활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우리에게 죽음의 세력을 넉넉히 이길만한 부활과 생명의 능력을 끊임없이 부어 주고 계십니다. 부활의 능력은 실패한 자를 다시 일으켜 세워 도전하게 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원대한 비전을 품고 모험을 감수하며 현실에 도전하게 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소심하고 겁 많은 졸장부를 담대한 믿음의 용사로 변화시킵니다. 고린도후서 말씀은 현재적인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이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마르다는 신앙고백을 한 후 마리아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마을 어귀에 계신 예수님께 나아가 그 발아래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울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앞에 계시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죽음으로 인해 여전히 울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그들의 불신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죽음의 권세에 굴복 당하여 우는 인생들을 향한 목자의 눈물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눈물 때문에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현재적인 믿음이 부족한 우리들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예수님께서는 이제 무덤으로 가서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방금 신앙고백을 한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다는 마음으로 죽어 썩은 냄새를 풍기는 오빠를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 마르다의 불신을 책망했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르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순종하여 믿음으로 한계상황의 돌을 옮겨 놓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마음속에 있는 불신과 의심의 돌을, 슬픔과 두려움의 돌을, 패배와 운명의 돌을, 절망과 좌절의 돌을 믿음으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돌을 옮겨 놓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우리의 몫이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친히 능력으로 역사 하실 수 있습니다.
무덤의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은 둘러선 무리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믿을 수 있도록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향하여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통통 걸음으로 나왔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던 무덤도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부활의 빛, 생명의 빛이 충만한 축제의 장으로 변하였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는 나사로로 하여금 죽음의 세계 밖으로 나오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어둠의 세계에서 예수님이 계신 빛의 세계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빛으로, 생명으로 나오게 됩니다. 요 5:25은 말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3년 전 스페인에 선교사로 가기 전만 하더라도 저에게 하나님은 저의 주치의이자 해결자셨습니다. 건강문제로 유급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서원기도를 드렸더니 다음날 바로 병을 고쳐주셔서 무사히 진급하도록 하셨습니다. 학과공부에서도 시험때마다 드리는 다급한 기도를 받으시고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제때에 졸업하도록 하셨습니다. 풀타임 목자로 사느라 물질이 없어 기도하면 기이한 방법으로 먹이시고 입혀 주셨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로 결단하고 나니 이제부터 하나님의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건강하던 나사로가 갑자기 쓰러지듯 멀쩡해 보였던 제가 스페인에서 갑자기 믿음을 잃어버리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재기를 노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틀을 유하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저는 확실한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생각에 먹고 살 확실한 방법을 준비해서 스페인에 가고자 치과를 개업했습니다. 그런데 불황을 모르던 의료계가 미국발 경제불황의 여파로인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어 치과를 통해 물질을 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수도 되지 않아 세계선교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치과 때문에 오히려 발목이 잡힌 꼴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처한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막막해서 치과 옆 조그만 교회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해보았지만 과거와 달리 즉각적인 응답이 없고 오히려 더 일이 꼬여만 갔습니다. 치과 문제 하나 해결하는 것도 벅찬 상황에 건강하시던 장인어른이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저의 아버지는 갱년기 불황장애라는 예기치 못한 정신질환으로 저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였습니다. 저의 속은 새로 태어난 아이를 포함한 세 아이들의 양육문제, 각각 몸과 마음이 아픈 두 아버지들의 건강문제, 치과 경영 문제, 임상문제들 같은 복잡한 현실문제들로인해 썩을 대로 썩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마처럼 의리상 체면상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는 심정으로 스페인에 다시 가고자 하니 내면에는 기쁨대신 두려움과 계산하는 마음으로 시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틀 유하시는 사랑으로인해 마음 속이 시끄러운 죄인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말씀을 통해 저의 실패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두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실패를 통해 그리고 이틀을 유하시는 사랑을 통해 저의 거짓된 믿음과 자아가 드러났습니다.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게으르고 무기력한 자요 순수하고 순결한 자인줄 알았는데 정욕과 욕심으로 가득한 자요 비전이 있는 자인줄 알았는데 야심만 가득한 자임이 드러났습니다. 이틀을 유하시며 거짓된 믿음을 드러내시고 또한 있는 모습 그대로의 부족하고 허물 많은 자아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자신을 돌아봐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둘러봐도 세계 선교는 이미 죽은 지 사흘이나 되었다며 포기하고 있던 죄인에게 다시 부활의 주요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죄인이 새롭게 죽은 지 사흘 된 자도 살리시는 부활과 생명의 주님께서 다시 세계 선교의 길을 여실 것을 믿고 불신의 돌, 두려움의 돌, 세상 염려의 돌을 옮겨 스페인 개척에 쓰임 받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초상난 나사로의 집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한계에 갇혀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듯이 온갖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명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죽음의 세계에서 나와 생명력이 넘치는 힘찬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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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6 이사야 [2010년 성탄 1강]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관리자 2010-12-05 3196
745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6강]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관리자 2013-11-03 3187
744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리스닝 2010-09-12 3183
743 열왕기하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역사를 계승한 엘리사(시니어팀_양용.. 관리자 2009-11-09 3181
742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7강]새 예루살렘 리스닝 2010-02-19 3172
741 창세기 2009 여름수양회 2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이동원 관리자 2009-07-26 3167
740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한아브라함) 관리자 2011-01-02 3165
739 이사야 [2011년 성탄 메시지 제1강]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관리자 2011-12-11 3164
738 마가복음 [2012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버림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휴화산 2012-07-18 3148
73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2강]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관리자 2009-06-28 3146
73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2강]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 관리자 2011-12-04 3144
73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16강]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관리자 2014-05-25 3142
734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7강]새끼 나귀를 탄 왕 관리자 2009-02-01 3137
73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리스닝 2010-04-25 3127
732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원규연 관리자 2009-04-12 3125
73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4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3-10-20 3122
730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4강]만민이 기도하는 집 관리자 2011-01-30 3117
72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5강]서로 발을 씻어주라 리스닝 2010-06-13 3117
728 이사야 [2012년 신년 특강 제2강] 네 장막터를 넓혀라 관리자 2012-01-15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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