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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1-06-22 (수) 12:17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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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12강]듣고 행하는 자
2011년 누가복음 제 12강

듣고 행하는 자

말씀: 누가복음 6:20-49
요절: 누가복음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예수님은 절망적인 그 시대에 열두 사도를 세우시고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택함 받은 사도들이 가져야 할 내면성과 말씀에 대한 자세를 가르쳐줍니다. 이를 평지에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평지 수훈(sermon of plain)이라 부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 수훈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복 받을 자와 저주 받을 자를 동시에 말씀하심으로 반드시 복 받을 자로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복 받은 자가 되기 위해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20-26)
첫째,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가난한 자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필요한 것을 얻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이런 자가 성공하여 부한 자가 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였습니다.(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갈함을 느끼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가 왜 복 있는 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20b)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갈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늘의 보화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므로 스스로 가난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얻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동고동락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구원과 영생을 얻고 천국 보화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습니다.(21a)
  주린 자는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픈 상태에 있습니다. 주린 자는 자나 깨나 먹을 것만 생각합니다. 돈에 주린 자는 매국노 소리도 상관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쾌락에 주린 자는 이성 없는 짐승처럼 쾌락에 몰두합니다. 사람의 인정과 사랑에 주린 자는 나이를 먹어도 사람의 관심을 받고자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림은 밑 빠진 독과 같아 아무리 채워도 영혼에 만족이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마5:6) ‘의에 주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고자 몸부림치며 투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에 주린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자 애를 씁니다. 주린 자는 자신의 주린 상태를 발견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애를 쓰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을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장차 그들이 배부름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을 소유하고 영생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영혼의 참 만족을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21b)
  눈물이라고 다 같은 눈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연민이나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죄에 대한 통회하는 마음, 방황하는 양들에 대한 상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해 침상이 젖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의 죄로 인해 한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애3:48) 예수님은 멸망을 앞에 두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눈물을 지금 흘리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십니다. 왜냐하면 결국 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는 자는 그 심령이 순수하고 겸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 자입니다. 이 시대는 눈물이 메마른 시대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양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던 목자들의 심령도 메말라져 버렸습니다. 실로 진정한 복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가뭄 때의 밭처럼 갈라진 우리 심령을 불쌍히 여기사 성령의 단비로 채우셔서 눈물이 흐르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예수님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예수님은 제자생활을 막 출발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미움 받고 왕따 당하고 욕먹고 버림받을 것에 대해 밝히십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살벌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기죽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이 복 받은 자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핍박이 있을 때 그냥 꾹 참는 것도 힘든데 주님은 기뻐하고 뛰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핍박을 받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순수해지고 강해지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면 모든 일이 잘되고 순조롭게 되고 승리할 것만 기대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예수님의 길은 다르므로 예수님만을 따를 때 반드시 핍박과 욕과 버림받는 고난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적인 복을 누리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4-26절에는 복 있는 자와는 대조적으로 화 있는 자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지금 웃는 자는 화가 있다 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칭찬 듣는 사람은 아주 훌륭한 신자 같은데 예수님은 오히려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 듣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중심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예수님은 현재는 제자들이 믿음으로 사느라 고난과 손해와 아픔이 있지만 후에는 반드시 큰상이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복은 영적이고 내면적이고 미래적인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현재의 고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진정한 상급, 영원한 상급, 지극히 큰 상을 주실 것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생각할 때 우리 인생은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러나 이 상급을 믿지 못하면 손해 보지 않고자 늘 계산하며 순전한 제자의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진정한 복을 누릴만한 내면성과 가치관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복을 사모할 때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 눈물을 흘리더라도 실족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장차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는 진정으로 승리의 인생을 사는 자가 될 것을 믿습니다.

Ⅱ. 제자의 비범성(27-37)
  지금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내면성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27-37절에서는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비범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제자의 비범성에서 첫 번째 교훈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원수를 미워하고 나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자를 똑 같이 저주하고 모욕한다면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복수의 악순환만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대신 사랑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사람의 상정을 가진 제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일들은 인간의 의지나 결심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복음의 원수로 살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덧입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이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고 오직 선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뺨을 때리면 나도 때려야 하고, 겉옷을 빼앗으면 더 큰 보복을 가해야 승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인 승리는 반드시 더 큰 싸움을 일으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9-21절에서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선을 행하라 하십니다. 비범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근거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벤허가 자신과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든 메살라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반드시 원수 갚고야 말리라 칼을 갈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차 경주에서 그를 이기고 메살라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함으로 원수를 갚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는 복수의 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비참한 심령을 가지고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골고다 언덕에 가서 주님의 기도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 순간 그는 손에서 칼을 놓고 진정으로 메살라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마음의 복수심과 원한을 녹이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the golden rule)이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얼마나 적극적인 사랑의 법칙입니까? 당시 필로(Philo)라는 랍비는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라”라는 삶의 원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고, 섬김 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본성을 잘 아시고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대접하라고 명하십니다. 먼저 대접하는 곳에 천국이 임하고 사랑의 교제가 풍성해집니다. 신앙공동체도 죄인들의 모임이라 갖가지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판단과 비방, 불평과 오해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본성대로 행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늘 먼저 대접받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분명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를 순종함으로 성숙한 제자의 내면성을 덧입도록 투쟁해야 하겠습니다.
  32-37절에서 예수님은 계속하여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자기를 선대하는 사람은 선대합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하도록 명하십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이뿐만이 아닙니다. 37절에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비판한다는 것은 재판석에 앉아 재판하는 것이요 정죄는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남의 장점은 보지 않고 약점과 허물만을 크게 보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판단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비판하고 정죄하는 대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남의 허물과 실수를 용서해줄 때 주님도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은 것은 세상에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함이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상급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에 비범한 제자의 삶을 감사와 확신 가운데 당당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거룩한 사랑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가득한 존재였지만,(엡4:24) 죄로 인해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버리고 본성대로 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닮기 위해 비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비범한 삶을 사는 것이 제자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Ⅲ. 듣고 행하라(38-49)
  지금까지 제자들은 주옥같은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평지 수훈의 결론으로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첫째, 주는 생활을 하라
  38절을 보십시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남에게 줄만한 형편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받는데서 기쁨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받기만 하면 그의 내면은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 감사가 없고 늘 받고 싶은 욕구와 의존심, 요구하는 마음 때문에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제자는 주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행20:3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주라고 명하십니다. 주는 생활을 하면 손해 볼 것 같지만 하나님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되돌려주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큰 복을 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복을 받을 그릇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주는 생활은 우리가 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는 생활을 할 때 믿음의 그릇을 크게 키워나가는 것이 됩니다. 주는 생활이 상대방을 살리고 본인은 더욱 윤택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윈 윈”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주는 생활을 하려면 물질도,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조건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주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조건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요 가치관 문제입니다. 분명한 가치관이 없고 넘치도록 채워주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주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순종을 통해 주는 생활의 행복을 맛보고, 주님이 채워주시는 복을 체험할 때 더욱 더 주는 목자생활의 기쁨을 하게 될 것입니다. 38b절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는 생활을 할 때 그것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옴을 가르쳐줍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는 생활은 자기를 위해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둘째,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다.
  39절을 보십시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져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영적 맹인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맹인인 채로 있으면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습니다. 40절에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 온전히 훈련 받은 자는 그 선생과 같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영적인 맹인들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도 정작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이는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말해줍니다. 이에 대해 탈무드에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깨끗한 모습 그대로 나왔고, 다른 사람은 얼굴에 온통 숯검정으로 칠해져 나왔다면 누가 씻으러 가겠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과연 누가 씻으러 갔겠습니까?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 씻으러 간다’가 정답입니다. 깨끗한 사람은 옆에 있는 얼굴이 지저분한 사람을 보고 자기도 그런 줄 알고 씻으러 가지만 반면에 얼굴이 지저분한 사람은 깨끗한 사람을 보고 자기도 깨끗한 줄 알고 씻으러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거울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들보와 같은 큰 죄와 약점을 발견하고 고침 받을 때 비로소 형제의 약점을 바로 보고 섬세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제자는 남을 돕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죄와 싸우며 자신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합니다. 내가 안일과 싸울 때, 내가 세상 정욕과 욕심의 죄를 회개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고자 투쟁할 때 양들의 동일한 죄 문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먼저 자신을 성찰하는 은혜를 주셔서 올바르게 인도하는 목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좋은 나무 좋은 열매
  43,44절을 보십시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죄 가운데 거하는 한 좋은 나무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가 좋은 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인 바 되어 그 안에 거할 때 예수님으로 인해 절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예수님은 마음에 무엇을 쌓느냐에 따라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쌓인 것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말과 행동을 통해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쌓아나가면 입을 열 때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올 것이요, 평소에 불평 불만을 쌓으면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아무리 조심을 해도 그대로 튀어나올 것입니다. 좋은 열매 맺기 위해 마음에 선을 쌓는 내적 투쟁을 힘써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지으라
  4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사람들은 주여 주여 예수님을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말씀에 순종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건축에 비유하여 가르쳐주십니다. 집 짓는데 가장 중요한 과정이 기초공사입니다.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집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기초를 반석 위에 둘 때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초 공사를 흙 위에 지으면 탁류가 부딪쳐 올 때 곧 무너져 그 파괴됨이 심하게 됩니다. 인생의 기초 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집의 설계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집의 기초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반석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의 기초를 둘 때 가장 견고한 집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치 않으면 주초를 흙 위에 쌓은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자는 성경공부는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말씀 따로, 생활 따로, 자기 편리한데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앞세웁니다. 이런 자는 인생의 환난이 올 때 기초부터 흔들려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가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일생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인생 기초를 쌓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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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0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1-05-22 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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