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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2-28 (일) 18:06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1-1.hwp (48KB) (Down:451)
ㆍ추천: 0  ㆍ조회: 2535      
IP: 211.xxx.239
[2010 요한복음1강]육신이 되신 말씀

2010년 요한복음 제 1강

육신이 되신 말씀

말씀: 요한복음 1:1-18
요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010년 봄 학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요한복음을 공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다른 공관복음이 완성된 후 마지막으로 썼는데 헬라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함으로써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썼습니다. 이 복음서에는 생명, 빛, 은혜, 진리, 영광 등의 중요한 단어들이 반복되어 나오는데 이는 모두 예수님의 속성으로서 구원의 원동력이며 열매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으로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말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 안에 충만하게 있는 은혜와 진리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Ⅰ. 태초 전부터 계신 예수님(1-4)
  요한복음은 놀라운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계셨다는 것은 영원부터 계셨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 하는 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끊임없이 알고자하던 가장 근원적인 명제였습니다. 고대 헬라 철학자들은 우주의 근원은 물이요 우주를 움직이는 힘은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BC 6세기 경 헤라클레이토스가 처음으로 로고스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제논(BC 4-3)의 가르침을 받은 스토아 학파는 로고스를 모든 실존에 스며 있는 활동적인 이성적 정신적 원리로 규정하였습니다. 이 말을 유대인들에게 신적인 의미로 보급시킨 사람은 1세기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였습니다. 그는 로고스에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그의 활약과 당시 철학 사조에 힘입어 1세기 후반에는 로고스라는 말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고,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창조사역, 중보사역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로서 말씀(Logos)이라 하였습니다. 태초에 계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선포함으로써 관념으로서의 로고스가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힙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with)은 동등하면서도 동시에 구별된 존재로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연합하여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로 향하여(toward) 인격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계시면서 함께 창조역사에 동참하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증거함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므로 예수님은 창조주시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특별한 뜻과 계획 가운데 창조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창조주의 창조목적에 따라 존재할 때 그 존재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창조사역에 주체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창조주로 만날 때 경외심으로 그 뜻에 따라 살고자 순종케 됩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이 사실과 본래 뜻과 무관하게 살 때 어둠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생명의 근원을 가르쳐줍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 생명은 ‘조에’로서 가사(可死)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간적으로 영원함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죽음의 요소가 전혀 없는 생명력이 넘치는 영적인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에 접하지 않으면 참 생명, 참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영적 생명이 우리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어둠에서 불러내어 생명의 세계, 빛 가운데 살게 하므로 사람들의 빛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12:46)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빛된 삶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두운 것은 힘든 상황이나 힘들게 하는 어떤 대상 때문이 아닙니다. 또는 능력이 부족해서, 원래 태생이 운명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오면 누구나 빛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 장으로서 부자로 살면서 행복할 것 같았지만 기쁨이 없는 어두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이 자기를 만나주시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그 안에서 용서받은 새 생명이 되었을 때 그는 이 값진 빛된 영광스러운 삶을 위해 기꺼이 그의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현재 우리도 하루도 어려운 일이나 힘든 문제가 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밝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고 그 생명이 우리의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Ⅱ. 참 빛을 영접하는 자가 받을 선물(5-13)
  5절을 보십시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빛은 예수님을, 어두움은 죄 가운데 있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있어 어디를 보아도 빛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빛이 비치고 있지만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이 어떤 것인지 전혀 개념이 없고 인식하지 못했습니다.(not understand) 세상은 영적인 무지에 있었습니다. 어둠은 그 스스로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고(not overcome) 무력하므로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 세상이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둠에 파 묻혀 그런 데로 잘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빛 가운데 사는 우리는 소수에 불과하고 고난과 역경을 만나기라도 하면 이렇게 살다가 패배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합니다. 그러나 그럴 리 없습니다. 빛은 어둠을 반드시 이깁니다. 어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작은 불꽃 하나 앞에 힘을 쓰지 못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십니다. 어둠은 빛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우리가 빛된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도 그들이 어둠의 세력에 갇혀 살기 때문입니다.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인생은 근본적으로 죽음과 심판 아래에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은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알지 못하고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영적인 소경에 불과합니다. 이들에게는 빛의 증거자가 필요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방황하며 멸망으로 가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빛의 증거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증거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이나 단체가 보낸 것이 아닌 하나님이 보내신 증거자라는 인식과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세례요한은 그의 증언을 받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오시리라 약속된 메시야가 아닌가 오해를 받을 만큼 인기가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증거자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그를 보내신 목적은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는 자들이 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증거자는 믿기까지 증언하는 책임성 있는 증거자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빛을 믿게 하는 일은 태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빛은 어떤 어둠도 물리치는 힘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끝까지 증거해야 합니다.
  이 빛은 어떤 빛입니까?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9) ‘참 빛(the true light)’은 불완전한 빛과 대조되는 완전한 빛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완전한 빛이십니까? 첫째로, 누구에게나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고 증거합니다. 각 사람이란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과 시대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에게도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주는 빛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해 고뇌에 찬 니고데모나 참된 예배의 대상을 만나지 못해 목말라 하던 사마리아 여인, 중한 질병으로 인해 어둠 가운데 지내던 38년 중풍병자, 물질을 좇아 이기적인 삶을 살다가 심판의 두려움 가운데 살던 세리 마태 등 어떤 죄인들에게도 삶의 희망과 목표가 되는 참 빛이 되셨습니다. 둘째로, 어떤 어둠의 세력도 물리치는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력한 어둠은 죄와 죽음입니다. 세상의 성인이나 현자들은 촛불이 되어 삶의 지혜를 공급해주고 도덕성을 높여주지만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생들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고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신 참 빛이십니다. 신입생들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밝고 희망찬 삶이 전개되리라 굳게 믿고 밤잠을 자지 않고 입시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면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더 큰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 빛을 영접하면 그 인생은 빛된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John Newton(1725-1807)은 노예 딜러였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팔고 죽이는 잔인한 어둠의 종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성경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찬란한 빛이 그의 심령에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기이한 빛의 세계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찬송 작사자가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찬송가305) 참 빛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늘 어둠에서 벗어나 진리의 길을 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0-12절에 참 빛에 대해 두 가지 반응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빛을 영접하지 않는 자와 영접하는 자입니다. 영접하지 않는 자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계셨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알고 또한 영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심지어 그의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는데도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였습니다. 이들은 참 빛을 배척함으로 구원의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빛을 영접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이나 의지나 뜻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남편의 의지로도 아내를 하나님의 딸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한 능력 많은 자매님이 잘 생기고 부자인 청년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아내가 되면 그 형제를 믿는 자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그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자기도 좋고 하나님께도 유익이 될 터이니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으로 좋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 남편이 믿음을 갖기는커녕 그 자매도 믿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선물로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큰 선물입니까?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Ⅲ.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14-18)
첫째, 은혜가 충만하신 예수님
  14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으로서의 하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예수님에게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고, 동시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면에서 은혜가 충만하십니까? 가장 영화로우신 분이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고,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성육신(incarnation)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은 흙과 같은 연약한 존재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한계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성육신하신 것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고 동고동락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사심으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우리에게 빛의 증거자로도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창조주로서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말구유에 탄생하시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시골 촌구석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피조물인 인간들을 종과 같이 낮아져 섬기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낮아지고 섬기시므로 은혜가 충만하셨습니다.
둘째,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
  진리는 영원불변한 절대기준이요 구원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는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를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이 진리를 알 때 진리 안에서 삶의 목표와 희망과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시므로 예수님 안에 진리가 충만합니다. 은혜와 진리는 죄인들을 구원하는데 필수요소입니다. 은혜가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게 하는 힘이라면 진리는 구원의 길이 됩니다. 그런데 은혜와 진리는 서로 상반되는 성질의 것이므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구원역사를 잘 섬기기 위해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을 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고 섬김 받고자 하기보다 섬기며, 높아지고자 하기보다 낮아지고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충만한 은혜와 진리로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15절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선재(先在)성에 대해 증거합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육신으로는 예수님보다 앞서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앞서신다고 증거함으로써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은혜 위에 은혜를 넘치도록 받습니다.(16)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17) 율법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는 구원과 자유와 영생을 줍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보이는 형상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17:3)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창조주시오, 생명의 근원이시며, 사람들의 빛이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참으로 감사하고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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