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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3-16 (화) 10:14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3-1.hwp (26KB) (Down:397)
ㆍ추천: 0  ㆍ조회: 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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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3강]새성전

2010년 요한복음 제 3 강

새 성전

말씀 요한복음 2:12-25
요절 요한복음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죄악 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자 이 땅에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인간들에게 주신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온전하고 영원한 새 성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새 성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12-16)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혼인 잔치 이후에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주요 활동무대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오래 계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각 나라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도 다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부터 유월절을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이 날은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 해방일로서만 기념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 날을 기념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 소망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르고 그들을 구원하셨음을 영원히 잊지 않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지켜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중요한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이 항상 잘 지켜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유월절 예식을 지키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위 강대국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잃었을 때였습니다.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잃었을 때 이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보이는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며 살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잘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그들 신앙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늘 새롭게 되새길 때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진실되고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매번 돌아오는 '주일이다, 수양회다'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살 때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없고 은혜와 감동이 빠진 형식만 남은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한 자에게 크신 소망을 두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절대적인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바쁜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 잊을 수 있지 않은가 합리화하며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사단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마음이 부요해지고 교만해진 자를 찾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라도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신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구원의 은혜와 우리를 향하신 크신 사랑과 소망을 늘 기억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성전에 들르셨을 때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들은 성전과 떨어진 이방인의 뜰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허락받고 합법적으로 장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합법적으로 장사하는 자들에게 너무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평소 은혜롭고 인자하셨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성전을 노끈으로 청소하시는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분노하셨습니까?
첫째, 성전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성전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사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그들의 구원자요 인도자시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고자 성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요, 죄인들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성전은 이런 본래적인 기능은 다 사라지고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성전이 이렇게 타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의 편리와 유익을 위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잘 준비하도록 돕기 위해 장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예배를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여 오는 사람들은 예물준비가 힘들고 자칫 예물이 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흠 없고 점 없는 예물을 드리고자 했던 유대인들에게 이는 큰 문제였습니다. 또 성전 세를 드리는데 이방인의 우상이 새겨지지 않는 이스라엘의 화폐, 세겔이 필요했습니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장사꾼과 환전상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나 기도보다 장사가 주가 되어 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장사를 하다 보니 거기에 이권이 개입되고 인간의 탐욕으로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짐승으로는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고 성전 뜰에서 산 것으로만 드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는 당연히 비싼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독점적으로 행해지는 이런 횡포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할 수 없이 따라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왔다가 불공정한 매매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 성전의 모습은 이익을 위해 장사를 하는 시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사람들에게 분노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둘째, 중심이 비뚤어 졌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생활과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이 세속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그들의 중심이 썩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성전의 겉모습은 화려해도 중심이 썩었을 때 주님은 심히 분노하십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영적인 분노요 진리를 세우시고자 하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으로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 못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이 비뚤어지면 무섭게 분노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방해되는 것들에 대해 예수님과 같은 분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분노 할 뿐만 아니라 이를 깨끗이 없애 중심을 올바로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주일 예배를 준비할 때 방해하는 요소, 아침 기도나 철야 기도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할 때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먼저 준비되지 않은 마음, 주일 마다 습관적으로 나아오는 마음이 예배를 방해합니다. 준비하는 자는 토요일 뿐 아니라 일주일 동안 주일을 향하여 살아갑니다. 주일 예배를 중심으로 삶을 계획합니다. 예배에 임하는 자세도 진심으로 하며 감사함으로 큰소리로 찬양을 합니다. 깨끗하게 준비된 옷을 입고 준비된 헌금을 드립니다. 당연히 성경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여 참석할 것입니다. 기도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뻐하는 자는 다른 일들에 밀려 기도를 빼먹거나 놓치지 않고 기도 시간을 확보하기에 힘쓸 것입니다. 밤늦게까지 향방 없이 지내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 기도하려고 준비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입니다. 이는 우리 마음이 장사하는 것에 치우친 예루살렘 성전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세상일에 마음이 빼앗겨 있을 때 당연히 우리의 영적 소원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온전히 예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상일들에 빼앗긴 마음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만 그 중심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Ⅱ. 이 성전을 헐라(17-25)
  17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 나중에야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고소로 인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왜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과 같이 주 하나님을 특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주의 전을 지극히 사모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악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는 회개치 않고 진리를 행하시는 예수님에게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비난하고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권세를 보인 합당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종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표적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를 표적으로 보여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요구에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표적은 숨겨진 의미를 갖고 있는 기적입니다. 성전을 사흘 동안 다시 세운다면 이는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헤롯이 이미 46년간 짓고 있었고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 후로도 20여년이 더 걸려서 완공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성전을 다시 사흘 만에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못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 된 당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이 말씀을 기억하고 믿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부활보다 더 위대한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부활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는 가장 큰 소망의 표적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 표적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다는 십자가와 부활의 놀라운 표적을 그들이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 표적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을까요?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닌 예수님이 '새 성전' 되심을 가르쳐주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을 비롯하여 사람이 지은 성전은 계속해서 무너졌고 헤롯이 지은 성전도 AD 70년 로마 군인 디도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계적입니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이 사람들의 관리 소홀로 부패할 수 있습니다. 우상이 하나님 자리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성전이 아닌 시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전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결국 성전의 본래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성전으로 역할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새 성전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새 성전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기능과 역할을 하시기에 필요 충분한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나아가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 죄사함을 받기도 하고 감사 예물을 드리기도 하고 찬양하거나 기도하기도 합니다. 방향이 필요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나아갑니다. 전에는 이런 것이 모두 건물로 지어진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성소가 되시어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전 안에 있는 진설병과 같이 생명의 떡이십니다. 성전 안에 있는 등대와 같이 세상을 비추시는 빛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시어 더 이상 번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았기에 정결 규례에 사용되는 물두멍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성전의 기능을 갖추시고 행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 일어나는 세속적인 일들을 보시고 더욱 분명하게 성전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였습니다. 훈련병시절 첫 예배를 드리기 위해 연무대 교회에 갔을 때 아버지 집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는 감격에 사로잡혔었습니다. 쉬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생각마저도 통제를 받다가 자유롭게 찬양을 드리며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벅찼습니다. 정말 자유롭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였습니다. 또 한번은 졸병 시절 바로 윗 고참의 갈굼으로 예배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민 하다가 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그래도 덜 받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만나주셨습니다. 기도를 드리며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감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성전이 되시어 언제든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절기 때마다 먼 거리를 여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행하신 표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4b,2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아셨습니다. 친히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의 그 믿음이 어떠한가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의 내면을 아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거나 증언을 받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똑같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있고 그렇지 않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심을 자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영적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또한 믿는다 하여도 표적을 보고 믿는 표적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때부터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때로 표적을 보여 주시는 것은 말씀에 기초한 믿음이 부족한 인간들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인간들을 책망하시기도 하셨지만 표적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기초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표적에 기초하여 믿으려 할 뿐이었습니다. 이를 표적 신앙이라 합니다. 표적 신앙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표적을 보고 믿을 때 또 다른 계속적인 표적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다 표적을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상황에 따라 믿음이 흔들립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믿는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믿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신비하고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믿는다고 합니다. 표적 신앙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신앙에 머물러 있는 자를 인정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초를 든든히 하고 그 말씀 위에 신앙의 집을 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나아갈 수 있는 새 성전 되신 예수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합니다. 이제 새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주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기억하며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전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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